맹호연전집
맹호연 지음, 이성호 옮김 / 문자향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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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호연은 생의 대부분을 고향의 간남원(澗南園)에서 은거해 살면서, 간혹 원근의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보냈다. 한때 과거에 응시하기도 하였으나, 낙방한 뒤로는 재상(宰相) 장구령(張九齡)의 막부에서 잠시 일한 것 외에는, 참된 은자를 추구하는 은일시인으로 여생을 살아갔다. 특히 동진(東晉)의 은일시인 도연명(陶淵明)을 이상적 모델로 삼아 그 발자취를 따르려 하였고, 마침내는 도연명의 경지에 도달한 시인으로 평가를 받는다.

이처럼 맹호연은 평생토록 은일의 삶을 추구하며 살았기에, 현재 남아 있는 그의 시 250여 수는 전원의 은일생활과 산수간의 여행생활을 간결하고 청신한 시어로 노래한 것이 대부분이다.

맹호연의 시는 그 독특한 운치로 인해 예로부터 수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중국 명대(明代)의 저명한 시인 이동양(李東陽)은, "당시(唐詩)는 이백(李白)과 두보(杜甫) 이외에 맹호연과 왕유(王維)를 대가(大家)라고 이를 만하다" 할 정도로 시단에서 차지하는 맹호연의 지위를 높이 평가하였다. 그리고 잠시나마 교유를 가지기도 했던 후배 시인 이백과 두보도 맹호연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나는 맹호연 선생을 사랑하나니(吾愛孟夫子)
풍류로 천하에 이름이 나시었도다(風流天下聞) -이백, 「증맹호연(贈孟浩然)」

양양의 맹호연을 추억하나니(回憶襄陽孟浩然)
맑은 시는 구절마다 전해질 만하다(淸詩句句盡堪傳) -두보, 「해민이십수(解悶十二首)」

맹호연은 특히 산수전원시에서 독보적 시경(詩境)을 이루어, 동진의 도연명·송(宋)의 사령운(謝靈運)을 뒤이어 산수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것으로 문학사에서 평가받고 있다. 그래서 후대 사람들은 맹호연을 왕유(王維)·위응물(韋應物)·유종원(柳宗元)과 함께 당대(唐代)의 '산수전원시파'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손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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