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 현상들 민음사 모던 클래식 40
리브카 갈첸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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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던 것이 생경하고 부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혹은 오랫동안 그러리라 예측이 가능한 상태에서 수시로 상태가 바뀌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안정감이 아닌 불안정감을 느낀다. 일기예보를 보면 종종 대기가 불안정하다는 표현을 접하곤 한다. 그 말은 외출 할 때 우산을 들고 가야 할지 선글라스를 끼고 가야 할지 확실히 가늠하기 힘들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대기불안정’이라는 표현은 비단 날씨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오랫동안 사랑하고 같이 산 아내가 어느 날 ‘진짜’ 아내가 아니라는 의구심이 들 때, 남편은 정신적으로 갑작스런 기후변화를 겪게 된다. 리브카 갈첸의 <대기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 현상들>(이하 ‘대기불안정’)은 이렇듯 어떤 사람이 당연히 예측가능하다고 믿는 상태가 흐트러질 때 어떤 고민을 하는지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소설 <대기불안정>은 매일 보던 똑같은 사람이 전혀 낯선 사람으로 느껴지는 순간에서 시작한다. 정신분석가인 50대의 남자 레오 리벤슈타인은 아내 레마를 ‘자기가 평소에 알던’ 진짜 레마가 아니라고 무작정 의심한다. 그리고 그렇게 의심 하는 근거들을 하나하나 ‘만들며’ 자신의 판단이 틀림없다고 믿는다. 마침내 레오는 진짜 레마를 찾기 위해 만만찮은 여정을 떠난다. 그러한 동시에 불안정한 그의 심리상태에 어울리는 평범치 않은 인물들 -날씨를 조종할 수 있다고 믿는 정신병 환자, 기록상 사망했다고 보이는 갈첸 박사, 레마의 어머니 등등- 과 사건들을 마주하며 레오는 점차 자신의 내부 속으로 파고들어 간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 나타나는 복잡한 심리들은 기상학 이론들과 잘 어우러져 사람의 마음과 날씨가 닮아있다는 걸 보여준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의 연인, 혹은 배우자를 의심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평소 상대방의 태도가 미심쩍거나 상대방의 대인관계가 거슬린 적이 한 두 번은 있을 것이다. 레오는 여느 연인이 가질 법한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의심하는 정도를 넘어서 상대방의 존재가치를 의심하고 부정하는 극단적인 태도를 취한다. 여기서 레오가 내세우는 증거들을 보면 언뜻 ‘그래서 진짜 레마가 아니라는 거로군’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지만 좀더 생각해보면 ‘하지만 이 남자가 하는 말은 어떻게 믿을 수 있지?’하고 자문해 볼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레오가 부정하는 레마는 레마의 도플갱어가 아니라 이전부터 알고 있던 레마라는 존재 자체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쉽게 말해 어느 대상을 부정하고 싶기 때문에 ‘없다’ 혹은 ‘아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레오는 주관적인 합리적 판단을 근거로 외부에 원인이 있다고 믿을 뿐이다. 이처럼 이 소설은 사랑 또는 마음이 얼마나 불확실하고 불안정한지 치밀한 심리묘사와 기상학 용어들을 이용해 ‘과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과학적인 분석’이라고 해서 분명한 것을 보여주는 것 또한 아니라는 것도 말해준다.

 

* 특히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사람들: 수많은 정신분석가와 자신 또는 자신의 주변인의 정신분석을 의뢰하는 사람들.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지 못해 마음 속에 복잡한 미로만 만드는 현대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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