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무기 -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운 극한 무기의 생물학
더글러스 엠린 지음, 승영조 옮김, 최재천 감수 / 북트리거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과 동물의 아름다운 동거를 위하여

 

- 더글러스 엠린 지음, 승영조 옮김, <동물의 무기>(북트리거, 2018) -

                                                                     

날자. 날아보자. 한 번 더 날아보자. 아무리 용을 써 봐도 머리가 커진 병사 벌은 날 수가 없다. 날개와 해당 근육이 심하게 감소되었다. 전투 승리의 대가로 비행 능력이 줄어들면서 아예 날지 못한다. 사회적 곤충의 병사 계급은 전투태세를 갖추는 데에 진화되어 날 수 있는 벌의 특성을 잃었다. 이렇게 무기를 얻는 대가로 잃은 신체 부위의 발육 부진은 다른 동물에서도 나타난다. 큰 아래턱을 가진 사슴벌레는 상대적으로 날개가 더 작다. 농게는 이용 가능한 자원의 반을 커다란 집게발에 바친다.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큰 집게발을 유지하는 비용도 상당하다. 달리는 데에도 에너지 소모가 크다. 먹는 데 드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포식자에게 노출될 가능성도 커지는 위험이 찾아온다. 큰뿔사슴은 극한의 무기로 인하여 멸종되었다. 소빙하기에 섭취 가능한 먹이의 감소로 자기 뼈에서 칼슘과 인을 뿔로 보충하기에도 버거웠다. 무기를 유지하기도 어렵고, 뼈도 극도로 약해져 멸종에 이른다.

 

이처럼 생존의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동물들이 극한의 무기를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자신의 에너지를 무기 진화에 쏟을까? 인간이 무기 경쟁을 하는 양상과는 얼마나 닮았을까? 인간의 무기 경쟁이 촉발할 끝은 어디까지일까? 소름끼치게 섬뜩한 연관성에 대하여 말하는 책이 있다. 몬태나대학교 생물학 교수 더글러스 엠린이 쓴 <동물의 무기>(북트리거, 2018). 저자는 어려서부터 휘어진 엄니를 가진 마스토돈(절멸된 코끼리), 커다란 뿔을 가진 동물 등의 극한의 무기(extreme weapon)'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극한의 무기는 절대적인 크기가 아니라, 비율의 문제였다. 뉴기니사슴뿔파리는 6mm짜리 뿔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소지자의 크기에 비해 막대하게 크다. 원생동물을 제외한 동물의 종수가 130만 개에 이르고, 극한 무기를 휘두르는 동물은 약 3000종에 이른다. 엠린은 아프리카, 호주, 중남미 전역으로 다니면서 쇠똥구리, 사슴뿔파리, 농게, 코끼리, 엘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동물들의 극한 무기를 연구한다. 이와 함께 인간의 무기 경쟁까지 연관 지어 자연계 생명체의 무기에 대한 메커니즘을 말한다.

 

이 책은 진화에 관한 얘기다. 그 중에서도 무기의 진화에 대한 연구 결과다.

진화라는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동물 형태의 변화로 이어지는 점진적인 교체 과정이다.”(25)

진화는 어느 한 개체 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동물과의 관계에서, 환경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변화. 진화에는 우열이 없다. 대부분의 큰가시고기는 포식자가 많은 바다에 산다. 바다 환경에 적응하면서 등과 배 쪽에 가시로 점점 무장한다. 바닷물이 내륙의 호수로 들어오게 되면 큰가시고기의 가시는 퇴화되어 무기를 버린다. 민물에서는 포식자가 적어 가시와 같은 무기가 없어도 되기 때문이다. 대신 자신의 에너지를 성장과 번식에 쓸 수 있다. 가시의 유무는 환경에 적응해 가는 방편일 뿐, 가시의 유무가 우열이 아니다.

 

진화는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고, 선택의 과정에서 생길 수도 있다. 농게의 집게발이 커지는 것은 스스로 의도한 것은 아니다. 다른 농게와의 싸움에서 집게발이 커지는 것이 유리해서 자연적으로 그렇게 진화해 간다. 올빼미에게 잡아먹히는 쥐는 내륙의 유기질 토양과 바닷가 근처의 모래의 영향을 받아 각각 갈색과 흰색으로 변환된다. 쥐가 주변 환경에 따라 털 색깔을 바꿔가는 것도 의도한 것은 아니다. 포식자에게 눈에 덜 띄기 위한 자연 선택의 과정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 극락조를 보자. 특히 수컷 극락조는 암컷에게 선택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다. 길고 화려한 꼬리 깃털을 길러 춤(깃털을 까딱거림)과 노래(날카로운 소리)로 암컷에게 뽑히기를 원한다. 이럴 때는 무기가 아니라 치장이 선택된다. 선택받기 위한 무기가 아름다워지는경우다. 이런 성선택을 암컷 선택이라고 하는데, 암컷이 특정 수컷을 선택한다는 의미다. 동물들의 무기 진화의 목적은 짝짓기다.

동물 무기의 극대화는 암컷에게 접근하려는 수컷들끼리의 경쟁의 결과다.”(28)

동물이 아닌 인간으로서 동물들의 생각을 적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을 본능이라고 해 두자. 그렇다면 인간의 무기 진화의 목적은 무엇일까. 엠린은 인간의 무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양, 성능, 크기가 변하고, 이 변화의 방향은 동물의 무기 진화의 방향과 매우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수많은 군대개미와 흰개미가 굴에서 메뚜기나 거미를 방어할 수 있다. 인간 도시의 성벽 기능이 이와 비슷하다. 아무리 힘센 군대도 좁은 성 안으로 들어가 일제 공격하기가 어렵다. 13세기 무렵 중동과 유럽에는 3만 개 이상의 성이 있었다. 인간이 손으로 만든 가장 비싼 건축물이다. 이 휘황찬란한 건축물도 화약의 발명으로 가치를 잃는다. 대포의 파괴력은 더 이상 성에 투자할 필요가 없게 만들었다. 이제는 지하로 깊이 내려가야만 안전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그물망처럼 분산된 굴과 벙커로 진화한다. 미국 샤이엔산의 벙커가 그 예이다. 이 벙커는 30메가톤의 핵무기가 2km 밖에서 폭발해도 견뎌낼 수 있다고 한다. 수용 인원은 1100명 정도나 된다.

 

저자는 2년간 쇠똥구리 7세가 태어날 때까지 쇠똥구리의 무기 진화를 연구했다. 이를 통하여 얻은 답은, 더 긴 뿔을 가진 수컷들을 씨내리로 선택한 집단의 수컷들은 뿔이 더 길어졌다. 더 짧은 뿔을 가진 수컷을 씨내리로 한 집단의 수컷들은 예전보다 뿔이 더 짧아졌다. 더 흥미로운 것은 뿔과 같은 무기가 커지면서 눈이 작아졌다. 눈의 발육 부진은 이용 가능한 영양분의 제약 때문이라고 한다. 어느 한 가지 구조의 생산에 더 많은 자원을 할당한다는 것은 그 자원을 더 이상 다른 구조의 성장에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하, 그래서 인간도 모든 것이 완벽한 신체는 드문가보다. 이를 달리 말하면 인간도 어느 한 가지는 특화되어 태어난다는 것. 즉 한 가지 재능은 다 있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듯하다. 한 나라의 살림도 마찬가지다. 주어진 자연 자원이나 경제적 자원도 어디에 얼마큼 쓰느냐에 따라 국민의 삶의 양태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국가 예산을 무기 개발과 같은 국방비에 쓰느냐, 아니면 복지비에 쓰느냐에 따라 삶의 질도 향상될 것이다. 나라마다 군비경쟁에 국가예산을 적게 쓰고 삶의 질 향상에 관심을 많이 기울이면 좋겠다.

 

엠린은 동물의 무기 진화와 인간의 무기 억제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국가는 농게와 같은 태도를 취한다.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무기를 과시하고 군사력을 광고하는 것이다. 농게들은 끊임없이 서로 도발하며 약점을 잡아 밀치락달치락하고, 집게발을 서로 문질러 댄다. 농게와 마찬가지로 국가 간의 대결은 실제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끝난다. 한쪽이 다른 쪽보다 더 강하면, 약한 국가가 물러서거나 압도당함으로써, 갈등은 격화되기 전에 끝이 난다.”(288)

그러면서 미국과 소련의 무기 경쟁의 종결을 언급한다.

경쟁을 유지하기 위해 소련은 자유재량 자원을 초과하는 지출을 했다. 거대한 뿔을 만들기 위해 자기 뼈에서 칼슘과 인을 뽑아낸 큰뿔사슴처럼, 소련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자원을 지나치게 소모한 것이다. 그래서 소련의 사회복지 계획은 심각하게 악화되어, 소련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가 열악해졌다. 그러한 지출 패턴은 지속 가능하지 않아서, 결국 199112월 소련은 무너졌다.”(296)

 

냉전 시기는 지났다. 그렇다고 무기 경쟁이 멈춘 것은 아니다. 냉전시대초기엔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로 겨뤘지만, 경쟁이 진행되면서 핵탄두의 값이 싸졌다. 잠수함, 전투기, 항공모함 등의 재래식 무기 비용은 상승했지만, 핵탄두 자체는 더 작아지고 싸졌다. 생물무기는 더 싸다. 수많은 국가가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하게 된다면 이 지구는 어떻게 될까. 많은 정부의 손에 대량 살상 무기가 들어가게 되고 악한 개인(테러리스트)도 이를 소유하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들 모두가 단 한 번만이라도 옳지 않은 결정을 내린다면 이 지구의 생명체에게 어떤 일이 생길까. 동물의 경우, 더 이상의 극한 무기가 한계점에 다다르면 검치류나 공룡처럼 멸종한다. 우리 인간이 동물과 같아서는 안 된다.

 

이빨과 뿔 등의 무기는 분명 동물의 신체 일부다. 이 무기들은 DNA로 유전되는 생물학적 진화로 이어진다. 이와 더불어 동물에게도 문화적 진화가 존재한다. 바로 흰개미의 요새, 거미줄, 쥐의 땅굴 등은 무기와 다름없다. 문화 정보가 광범위하게 학습되어 진화된다. 인간의 무기는 분명 문화적 진화다. 인간의 무기는 DNA가 아닌 문서와 컴퓨터로 기록되고 대량으로 전달된다. 인간의 무기 진화가 더 위협적인 이유다. 초록별 지구. 인간이 생존의 위협 없이, 다른 생명체와 함께 아름답게 살 수는 없을까. 인간과 동물의 아름다운 동거를 위하여 인간의 극한 무기는 멸종되어야 한다. (2018. 7. 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