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헌의 프랑스 미술 기행
이주헌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1년 6월
평점 :
절판


<50일간의 유럽미술체험1,2>와 <신화 그림으로 읽기>에서 가족들과의 미술관 기행으로 유명한 그가 혼자 프랑스 미술 기행에 나섰다. 땡이와 방개의 등장이 아쉽기도 하지만, 혼자 나선 그의 행적에 오히려 기대가 되는 것은 왠일일까?

그림은 눈 앞에 보이는 풍경 외에 때론 상상의 표현이기도, 때론 관념의 형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삶이라는 테두리안에 있는 것이기에 비단 허상만은 아닌 듯 싶다. 저자를 통해 우리는 그림을 보게된다. 그러나 그림 이상의 그림을 보게 된다. 그림을 그린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안에 그 옛날의 사람이 부시시 살아 일어나 웃으며 손짓하는 모습을 그가 남긴 그림을 통해 만나게 된다.

그 옛날... 그것도 먼 이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데도 불구하고 이토록 친숙한 이유는 나 역시 사람이기 때문일까? 그림을 그린 사람이 살았던 역사나 화풍, 뒷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있음직한 것들에 이국의 향기를 고향의 그것으로 환각하게 되는 것이었다. 저자를 따라 이곳저곳 예술의 향취를 맡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나의 주변을 돌아 보았다.

바쁜 일상 가운데 쉬 지나쳤던 내 삶의 작은 광경들도 이처럼 그림으로 표현되어 옛 사람의 해석이 달린다면, 이처럼 하나의 예술적 가치가 있는 그런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주위의 작은 것들이 문득 범상치 않게 보인다. 익숙한 것은, 소홀하게 되고, 소홀한 것은 경멸하게 되는 것이 삶의 양상이라면, 예술의 가치는 그 경멸받고 소홀했던 것들의 가치를 되살려 돌려주는데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면에서 예술은 삶의 부활이다.

주로 프랑스에 있는 주요한 미술관을 순례하며, 그 시대의 예술에 대한 회상과 술회이지만, 저자의 예술사에의 회상은 동굴에서 무덤을 아우른다. 책의 마지막 4장은 예술의 성지라 일컫는 파리에 할애한다. 그 중 몽마르트에 얼킨 거장들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부분과 도심에 자리잡은 무덤 안에 이미 유명을 달리한 이들의 체취를 맡아보는 장은 매우 인상깊다.

프랑스와 파리는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술인 듯 본서를 읽는 내내 프랑스의 예술적 영감에 흠뻑 젖어 있었다. 땡이와 방개를 두고 먼 나라에 여행길에 올라 일상을 채집해 돌아와 이야기를 들려준 이주헌님께 새삼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이 책을 만나게 되는 모든 분들이 일상의 가치를 되돌려 받아 부요함을 누리게 되기를 바란다.

매 장이 시작될 때 마다 우편 위 작은 귀퉁이에 프랑스 지도와 지나온 여정을 그려놓아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저자는 방문한 지역의 미술관 뿐 아니라 주변 경관이 사진이나 약도 풍토까지 설명이 곁들어 그 그림이 제작된 배경을 더더욱 잘 설명해 주는 효과가 있었다.

간혹 장 말미에 추가로 미술관 소개와 그곳에 소장되어있는 작품 소개는 서문에서 언급한대로 저자가 계획한 저술계획이 달성되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인 듯 싶다. 미지의 것은 또한 매력인지라 그리 불만스럽지 않다. 각 장 말미에 방문했던 미술관의 관람 메모는 훗날 방문하게 될지도 모르는 독자에 대한 저자의 자상한 배려인 듯 싶다.

책을 덮을 때 19세기 인상주의 시절의 프랑스가 생생히 포착되어 있다는 공쿠르 형제의 글 일부인 “ 우리는 그 날을, 그 햇살을 즐겼다 ”는 말이 와 닿았다. 정말이지 19세기 프랑스의 날들과 햇살을 풍성하고도 만족스럽게 맛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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