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 년째 열다섯 텍스트T 1
김혜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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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의 속도를 생각해본다. 느린지 혹은 빠른지 따위에 대해. 그다음 나에게 흘렀던, 흐르는 혹은 흐르게 될 시간의 속도를 생각해본다. 이번에는 단순하지 않게 조금 더 골몰하는 방식으로. 나의 시간은 나를 어떻게 만들어줬는지 따위에 대해. 쉽게 나오지 않는 답인 만큼 보다 명료하게 지금 이곳에 답을 적을 순 없다. 그저 이 기록을 계기로 나에게 유유히 물결처럼 새겨진 시간을 천천히 살펴보는 것.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다.

 

 『오백 년째 열다섯이라는 작품은 제목 그대로 오백 년째 열다섯에 멈춰있는 가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단군신화와 여우의 이야기를 새롭게 창작해낸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야호족의 우두머리인 령이라는 인물로부터 최초의 구슬을 전해 받는 가을의 성장 이야기가 읽는 이에게 많은 생각을 하도록 한다. 오백 년이라는 시간 동안 멈춰 있던 가을의 삶. 우리는 이 삶을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많은 것들이 물음표로 떠다니지만, 무수히 떠다니는 물음표 중 하나는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많은 걸 알게 될수록 겁이 많아진다는 사실에 대해 말이다. 가을의 시간이 멈춰있는 동안 가을을 가장 힘들게 했던 순간들은 무엇이었을까. 매일 반복되는 일상? 영원히 열다섯으로 남아야 한다는 사실? 물론 이러한 모든 순간들이 저마다의 힘듦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가을에게 가장 힘들었던 건 함께가 되지 못했던 순간들이 아니었을까. 누군가와 내일을 확신할 수 없는, 그래서 숨어버리거나 도망쳐야만 했던 어쩔 수 없는 비겁함을 갖는 순간들이 아니었을까. 비록 이건 나의 생각에 불과한 것이지만.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듯, 늘 어딘가로 숨어버리거나 감정을 나누지 않았던 가을은 신우라는 인물로 하여금 삶의 지난함을 조금씩 극복해나가는 중이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용기를 갖게 되고 누군가를 마음속에 기리기 위해 잊지 않으려고 한다.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시간은 멈춰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매일 반복되었던 가을의 오백 년째 열다섯이 조금씩 다르게 변화해간다는 것을.

 

 나는 지나가는 시간을 부단히 잊지 않으려고 기록을 자주 하는 편이다. 잊고 싶지 않은 시간을 나중이 되어서라도 꺼내 볼 수 있게, 그래서 그때의 시간을 통해 미래의 내가 무너지지 않게. 이러한 것들은 일종의 나를 지키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시간은 위태로움을 극복하게도 만들어주니까.

 이 작품을 읽고 아쉬웠던 지점들이 있었다. 서술자와 작가의 거리 유지라든지, 가장 하이라이트가 되는 장면이 단순하게 처리된다는 점이라든지, 이야기의 결말로 향해 갈수록 초반과 다르게 작품의 힘이 유지되지 못한다는 점이라든지 등 분명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난 후 가을의 시간을 살펴볼 수 있도록 자신만의 사유 시간을 마련해준다는 점이다. 가을의 시간을 경유하여 의 시간까지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그로 인해 지금의 에게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기에 성장하는 시기의 독자들이 읽었으면 하는 작품 오백 년째 열다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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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분 소설가 하준수 스콜라 어린이문고 38
이수용 지음, 김도아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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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쓰는 과정은 지난하다. 시간과 노력을 할애한 만큼 좋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고, 내가 그 이야기의 첫 독자이자 마지막 독자가 될 수도 있다. 언어를 다루고자 한다는 건, 나아가 문학을 한다는 건 어쩌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온 마음을 소비해야 하는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문학을 통해 자신의 혹은 타인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픔을 체감해내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야 미약하게나마 그 아픔을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만 어떠한 아픔에 관해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한 이들의 목소리를 희미하게라도 기억하려 애쓰게 되지 않을까 싶다.

 

 『6분 소설가 하준수의 주인공 준수는 소설가를 꿈꾸고 있는 인물이다. 이 인물은 처음 본인의 의지로 글을 쓴다기보다 자신이 좋아하고 있는 연지라는 아이를 통해 소설가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물론 소설가가 되는 과정이 그저 순탄치만은 않다. 친구들에게 자신의 꿈을 무시 받기도 하고, 이러한 무시의 시선으로 인해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는 순간도 맞닥뜨리게 되기 때문이다. 여러 과정을 통해 준수는 학교에서 나름의 인지를 굳혀가며 소설가라는 위치에 가까워진다. 그렇지만 준수 자신이 정말 소설가라는 꿈에 닿는 순간은 윤빈의 두 번째 이야기를 쓰고자 했을 때가 아닐까. 남들은 알아봐 주지 못하는 윤빈의 외로움에 대해 준수가 깊이 골몰하는 시간을 가졌던 순간. 나는 어쩌면 그 순간이 준수에게 늘 반짝거리는 무엇으로 남아 있기를 염원했던 것 같다. 누군가를 오래 생각하고 그 누군가가 가진 외로움 혹은 아픔 따위를 더 깊이 생각한다는 건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 중 하나일 테니까.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를 조금은 따뜻하게 느끼게 해 줄 준수만의 작지만 강한 온기일 테니까 밀이다.

 

 이 작품을 읽고 내가 가진, 우리가 가진 간절함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잠시나마 가졌던 것 같다. 간절함이라는 건 무언가를 꼭 하고자 할 때 그것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용기가 되어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이러한 간절함이 오히려 나를 무겁게 만드는, 깊은 어딘가로 숨게 만드는 두려움으로도 변할 수 있는 양가적인 성질을 띠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언젠가부터 했던 것 같다. 내가 하고자 하는 걸 계속해나갈수록 나도 모르게 깊어지는 마음들이 있다. 그 마음들은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어떤 힘을 주기도 하지만, 때론 점점 깊어지는 마음을 감당하지 못해 허우적거리게 되는 순간을 주기도 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언젠가 그 깊어지는 마음을 만나게 될 텐데, 너무 낯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사실은 그 꿈을 너무 이루고 싶어서, 그 꿈을 꼭 해내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너무 많이 숨어있거나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혹여나 헤어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과정에서 자신을 미워하고 있다면 더더욱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런 자신을 믿어달라고 꼭 전해주고 싶었다. 꿈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말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마음껏 사랑만 할 수 있는 시기에 놓여 있는 독자들이 부단히 읽었으면 하는 6분 소설가 하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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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 채무 관계 노란 잠수함 10
김선정 지음, 우지현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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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될 때가 있다. 우리는 그러한 순간에 함께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물론 혼자서 무엇을 한다는 게 좋지 않은 것이라거나 누군가와 같이했을 때보다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아니다. 그저 곁에 누군가 머물러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느껴지는 온기는 어쩌면 더 크게 와 닿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감히 해보는 것뿐이다.

 

 『우리 반 채무 관계라는 작품은 시원에게 빌려준 돈을 찾지 못하는 찬수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찬수의 이 이야기가 보다 확장되어 찬수의 반 아이들의 채무 관계까지 알아보며,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채무 관계 회의를 통해 해결해나가고 있다. 어떤 아이는 친구에게 맛있는 걸 사주고 또 어떤 아이는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기도 하며, 또 다른 어떤 아이는 마음에 내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친구에게 무엇을 나눠주고 있다. 우리의 생김새가 모두 다르듯, 우리의 성격, 취향 그리고 마음까지 다른 건 당연한 것이다. 앞서 적은 아이들의 모든 행동은 틀린 게 아니라 그저 다르다는 것이다. 절대적인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모두가 다른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우리이기 때문에 필히 자신의 의견만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이고, 내키지 않는 의견을 수용해야 할 때가 존재하기도 한다. 그래야만 이 사회에서 타인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가 될 테니 말이다.

 마룡초등학교 3학년 3반 친구들은 아마 이번 회의를 계기로 어렴풋이 느끼지 않았을까 감히 예상해본다. 혼자서 무언가를 해내는 것도, 자신의 의견이 존중받아야 하고 빛을 발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어주며 자신의 목소리와 함께 또 다른 목소리가 어우러져야 우리에게 채워지는 많은 소리가 평온하다는 것을 말이다.

 

 무조건적인 베풂과 무조건적인 함께를 이야기하고 싶진 않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회도 그 시간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것들이 변해가고 있으니까. 그저 내가 이 책을 읽고 느꼈던 건 어느 순간엔 혹은 어느 시기엔 혼자서 무엇을 해냈을 때의 마음보다 함께 무엇을 해냈을 때의 마음이 어쩌면 우리를 더 성장하게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마지막에 찬수가 형식에게 괜찮아, 오백 원인데 뭐!”라는 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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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업 5학년 파란 이야기 5
김혜진 외 지음, 센개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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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학년은 어떤 존재일까. 이제 곧 학교의 최고 학년이 되기 전 이들의 마음에선 어떤 것들이 꿈틀거리고 있을까. 자라나는 키와 함께 자라나는 마음은 본인도 모르게 스스로를 지키기도, 타인을 지켜주기도 한다. ‘너 사춘기니?’라는 물음 따위로 치부해 버려선 안 되는 그들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아가 부단히 견고해지길 염원하고 있는 여섯 편의 동화. 어쩌면 레벨 업 5학년이라는 작품은 어딘가에서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열두 살에게 네가 잘못된 게 아니야.’라고 말을 걸어주고 있는 게 아닐까.

 

 이 책은 여섯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었다. 김혜진 작가의 가짜 친구를 찾아라, 전여울 작가의 누가 비아를 응원하나, 박현경 작가의 너의 친절한 옥수수, 최상아 작가의 리아 오총사, 이송현 작가의 애플맨, 정연철 작가의 욱하영 회장 선출기. 저마다의 주제로 5학년을 담아내고 있다. 이야기의 등장인물, 분위기, 사건 등이 모두 다르지만 나는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은 같다고 생각했다. 어린이의 고민을 절대로 유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어린이의 취향을 존중해준다는 것. 사실 우리 사회는 어린이의 의견이 그리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현재의 주류인 어른들이 단지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고 무시를 일삼으니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여기에 있는 여섯 명의 작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5학년의 세계를 인정하고 그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최대한 존중하며, 그들을 어떠한 수단으로도 절대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쩌면 자신들의 5학년을 되돌아보며 오늘날의 5학년이 느꼈으면 하는 따뜻함, 용기, 취향, 믿음 등을 분연히 체감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여섯 편 모두 매력적인 작품이다. 흡입력 있는 소재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까지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타인을 위한 마음을 어렴풋이 배우게 될 수도, 누군가는 자신의 취향에 관해 한 걸음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개인주의가 고조되는, 혐오와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에서 온기가 깃든 것을 찾아내는 일이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여섯 명의 작가들은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했던 게 아닐까. 여전히 어렵지만, 오늘날의 어린이는 따뜻함을 잃어버리지 않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말이다.

 선물을 가져간 친구가 누군지 알면서도 밝히지 않았던 채이와 유겸처럼, 자신의 취향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소연과 은호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 무언가를 나누고 싶어 했던 현승과 지아처럼, 무섭지만 친구의 곁을 지켜주고자 했던 사총사 아니 오총사처럼, 두근거리는 감정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던 후찬과 서령처럼, 소신 있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타인을 감싸줬던 하영이처럼 우리 곁에 있는 많은 이름의 열두 살도 사실은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혹은 발견하려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껏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뿐이다.

 

 여전히 어딘가에서 레벨 업 되고 있는 5학년이, 나아가 레벨 업 되고 있는 마음을 그저 단순히 치부하기에 바쁜 어른들이 읽었으면 하는 작품 레벨 업 5학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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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상자 구해요 파란 이야기 6
김성진 지음, 백두리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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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 낯설지만 머지않은 세계를 소개해주고 있는 일곱 편의 SF 동화.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세계이기에 먼 곳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그 세계 속에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은 결코 멀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이 작품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SF를 배경으로 그곳에서 아이들이 겪는 고민을 미래의 어떤 상황들과 결부 지어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고 느꼈다. “마음 상자 구해요라는 작품을 읽은 어떤 독자들은 이 작품이 낯설다고 말한다. 나는 그러한 감상에 충분히 동의한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와 시공간이 전혀 다르니까. 하지만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상통하는 건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과 미래의 세계에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 이러한 지점에서 나는 이 작품이 많은 어린이에게 위로가 되어줄 수 있다고 느꼈다. 결말을 맺는 방식에선 작가분께 어떠한 신뢰를 확신할 수 있게 되었는데, 열린 결말이라는 것 자체가 독자의 상상력을 억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유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점에서 신뢰를 느꼈다기보다 열려 있는 결말의 방식이 독자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자 하는 작가의 사려 깊은 배려라 생각되어서 이 단편들의 결말 방식이 좋게 다가왔던 것 같다. 때로는 맺음이 확실한 결말이 예기치 못한 아픔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작품의 가장 처음 배치된 냉장고가 말을 걸어올 때SF 장르가 낯선 독자들이 진입하기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누구나 물건이 말을 걸어오는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소통이 가능한 물건과 감정을 나누며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자신만의 고민을 털어놓는 상상 또한 한 번쯤 머릿속으로 그려봤을 것이다. 이 동화는 준우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고민을 자신의 집에 있는 냉장고에게 털어놓으면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이게 된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준우는 현재 본인의 의지로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 아빠의 암묵적 억압에 의해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준우가 느끼는 마음은 아마 현재 이 세계에 있는 어린이에게도 존재할 것이라 생각했다. 오늘날의 준우들이 이 작품을 만나본다면 아주 조금의 위안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두 번째로 말해보고 싶은 작품은 드림케이프로부터 한 발짝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어린이에게서 조금은 멀어진 나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작품이었다. 현이라는 인물은 가상 세계를 통해 자신에게 처한 상황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 상황은 주인공의 형인 혁이라는 인물의 죽음인데, 현실에 있던 형의 모습을 가상 세계에 구축하기 위해 하루하루 피폐한 삶을 보내고 있다. 주인공의 엄마는 그런 현의 상황이 걱정되기에 자신과 함께 현실로 나가자고 설득한다. 나는 여기서 현이 그러한 행동을 했던 이유를 생각해본다. 나아가 현과 비슷한 독자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어린이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나아가 어린이가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은 무엇일까. 현이라는 인물에게 애도는 형의 존재를 잊지 않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가상 세계에서라도 영원히 함께 살 수 있도록 형의 아바타에 그토록 집착했던 것이고. 어쩌면 현은 피하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 용기가 없었던 게 아니었을까. 죽음을 있는 힘껏 애도하지 못하고 회피하고 있었던 혹은 받아들일 용기가 없었던 누군가가 이 이야기를 읽어봤으면 좋겠다.


 언급한 작품뿐만 아닌 이외의 작품에서도 어린이들의 마음을 아주 미약하게나마, 이제라도 알게 될 수 있는 작품이 담겨있다. 저마다의 고민으로 아픔과 힘듦이 넘쳐나는 아이들의 마음을 덜어내 줄 수 있는, 보관해줄 수 있는 마음 상자가 되어줄 책이다. 아직 완전한 마음 상자를 구하지 못했다면 김성진 작가의 마음 상자 구해요를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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