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의 인간
이훈보 지음 / 바른북스 / 2020년 12월
평점 :
절판


인문학. 작가는 <그늘의 인간>이 인문학 책이라 쓰고 있다. 때문에 필자가 <그들의 인간>을 수필이라고 소개한다면 작가의 의도와 상당 부분 들어맞지 않는 것은 아닐지 심려스럽다. 그럼에도 태그에 #한국수필 이라 적어둔 것은, 달리 읽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작가가 글에서 보여주는 독자에게 요구하고 있는 '책 읽기의 방향성' 역시 다르다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볍게 쓴 글이니, 가볍게 읽어 달라, 다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이가 있으니 재미있게 읽어주고, 당신의 생각도 허심탄회 하게 들려달라' 정도의 서술이다. 그리고 테마 마다 짧은 문구로, 치밀한 思考 과정이나 오랜 동안의 연구결과에 기반한 인문학적 논리 서술은 배제하고, 다만 글을 쓸 당시의 생각을 흘러가듯 써내려간 뒤, '아니면 말고' 식으로 테마를 정리한다.

 

작가가 <그늘의 인간> 속에서 늘어놓은 수많은 주제들은, 그 중 한 가지만으로도 책장 하나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 많은 논의의 글들을 쌓아왔던 주제들이다. <인문학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왜 태어났을까?>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것일까?> 그러나 작가는. 스스로가 책 속에서 고백한 바와 같이, 그간 수많은 철학서, 인문학서들이 공들여 쌓아온 탑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한 노력은 해본 적이 없다. 다만, 그들이 다루고 있는 주제에 대해 그냥 평범한 사람의 생각은 이렇다,는 글쓰기를 이어간다. 또한 자신의 생각에 대한 어떠한 동의도 구하지 않는다.

 

작가의 글쓰기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공감하지 않아도 끝없이 이야기를 엮어가는 저녁 무렵 선술집의 어느 테이블 위 대화를 닮아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독자에게도 자꾸만 생각을 구하는 듯 하다. 마치 대화를 시도하듯 말이다. 복잡다난한 세상사에 지쳐 하루를 정리하려던 어느 날, 조용히 방안에 누워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찰라 대화를 나눌 상대 하나 필요하다면, 여기 넋두리를 엮어놓은 글 하나가 있으니 재미를 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도다. 그런 까닭인지 깊이는 없지만 적어도 최대한 넓은 영역에 대한 이야기를 시도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단 한 가지 주제라도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다면, 그걸 시작으로 대화를 풀어나가려는 듯 말이다.

 

<그늘의 인간> 속에는 같은 류의 인간에 대한 위로가 있다. 누군가는 양지 바른 곳에서 제법 괜찮은 속도로 생生을 누비고 있고, 누군가는 양지 바른 곳으로 나가기 위해 기를 쓰고 시간과 에너지를 쪼개고 있는다지만, 그냥 그늘 밑에 앉아 그런 세상을 느긋하게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기껏 소모하지는 말자는 위로다. 그리고 언젠가, 만약 그런 생각들이 글로 비집고나와 다소 이상해보이는 글로 여김을 받게될지 모른다 하더라도, 작가는 개의치 않는다. 작가의 책 속 한 문장을 그대로 인용해 보자면, 원래 '글이란 게 이렇게 앞뒤가 안 맞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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