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서우 > 달 빛에 바랜 역사...
영웅 만들기 - 신화와 역사의 갈림길
서울대학교 인문학 연구원 '영웅만들기' 프로젝트팀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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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05.03.28

 과거에 사실이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바래면 신화가 된다고 했다.  인간이 정치적인 성향과 야욕이 있는 까닭에 어디까지나 모든 일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게 한다. 영웅들도 결국은 영웅 그 자신과 그리고 주변부에서 그들의 영광을 이용하려는 자들에게 조작된 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할 것이다. 가까운 실례로 박정희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옛날보다는 덜 할지 모르지만 영웅시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tv라는 매체를 통해서 정주영이나 이병철들의 영웅 만들기를 볼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이순신 또한 그 영웅의 대열에 끼여 들고 있다. 이렇든 영웅 끊임없이 재생산 되어 지고 있다. 그들은 오늘날에 다시 태어나고 있다 그리고 훈날 그 영웅적인 면은 태색할 것이다.

 역사가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 말했다면 영웅 또한 현재과 과거의 대화인 것 같다. 지금의 중요시 되는 영웅을 통해서 현재의 문제점이 보이기 때문이다. 박정희를 통해서 지금의 민주적 혼란을 볼 수 있고 정주영과 이병철을 통해서 불황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순신의 신화를 통해 일본에 대한 적대감과 그리고 피해의식이 강한 현재의 대한민국을 바라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표면에 들어난 모습일 것이다.  이것은 영웅을 받아 들이는 대중들의 입장에서 보는 현실이다. 이보다 영웅을 만드는 이들의 의도도 또한 중요한 단면일 것이다.

  영웅을 부각시키는 것은 소수의 지배층임에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그들은 그들의 지위를 정당화 또는 굳건히 하기 위해 과거의 인물을 현재화 시킨다.  그들의 과거의 인물의 단편을 통해서 현재 자신의 지위를 빗대며 설명한다. 여러므로 정치적인 계략이 영웅을 만들어 가는 것 같다.  영웅은 정치꾼들의 야심에서 나온 작품이다.  어린 대중을 현혹하여 자신의 권력을 굳건히 구축하는 것 그게 사실 아닐까? 그리고 때로 대중들은 영웅을 원한다. 자신의 한계에 대한 자괴감을  영웅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라 생각한다.

  영웅은 만들어 진다. 그들은 현재의 상황을 반형하고 미래를 보여 준다.. 

 목표와 교양이 부족한 대중은 어리석으며 권력의 종이라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역으로 그들은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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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렌초의시종 > 영웅 만들기-중앙일보-

영웅 만들기-신화와 역사의 갈림길 박지향 외著 휴머니스트刊

[행복한 책읽기] 영웅은 근대국가가 만든 '신화'

영웅 만들기-신화와 역사의 갈림길
박지향 외 지음
휴머니스트, 376쪽, 1만5000원

 얼마 전 영화 '알렉산더'를 봤다. 이 영화는 알렉산더가 어떻게 '신의 아들'로 불리는 영웅이 됐는지를 보여줬다. 영화에 따르면, 알렉산더를 영웅으로 만든 것은 어머니였다. 아들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남편을 죽일 만큼 자식 사랑이 넘쳤던 어머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알렉산더는 페르시아 정복에 만족하지 않고 더 동쪽으로 나아가 인도 접경에 이르기까지 끝없는 정복전쟁을 벌였다는 것이다.

 영웅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신화는 깨지고 영웅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임을 깨닫는다. 대체로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처럼 영웅의 개인적 삶은 불행하다. 헤겔 말대로 역사는 영웅의 개인적 불행을 희생물로 해서 진보한다. 영화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알렉산더가 동서문명을 융합해서 헬레니즘 시대라는 새역사를 창조하는 업적을 낳은 것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부친을 살해했다는 죄의식 때문이다. 역사에 대한 심리학적 해석은 매력적이지만, 거대한 역사의 문제를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로 환원해서 설명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역사학은 심리학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 위대했던 알렉산더 대왕은 죽어 없고, 이제 남아 있는 것은 그의 이름뿐. 그래서 역사학에서 중요한 것은 인물로서의 영웅이 아니라 그를 영웅으로 기억하게 만들었던 '담론들'이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박지향 교수의 주도아래 수행된 연구 프로젝트의 성과물로 출판된 '영웅 만들기: 신화와 역사의 갈림길'은 3 가지 문제의식으로 영웅이란 무엇인가라는 낡은 주제에 새롭게 접근했다.

 첫 번째, 이 책은 영웅의 진실이 아니라 그가 어떻게 해서 영웅이라는 칭호를 얻었고 그렇게 기억됐는지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무릇 영웅이란 죽고 나서 한층 더 길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가며, 그런 사후 인생이 펼쳐지는 무대는 바로 후세인들의 변화무쌍한 기억이다." 영웅은 죽어서 없고, 단지 그에 대한 다양한 기억들만이 존재해서 역사가 되기 위한 권력투쟁을 벌인다.

 두 번째, 이 책은 역사란 기억의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영웅의 이미지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형되고 유포됐는지를 추적했다. 일찍이 '영웅의 역사'를 썼던 토머스 칼라일은 "세계사는 위인의 전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영웅이 역사를 만든다"는 생각은 영웅사관을 낳았다. 하지만 이 책은 영웅이란 그 자신이 이룩한 업적 때문이 아니라 후세인들이 만든 그에 대한 기억에 의해 영웅으로 숭배된다는 사실을 밝혔다. 다시 말해 영웅이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영웅을 만든다"는 사실을 적시한다.

 오늘날 영웅사관은 퇴색했지만, 영웅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이 책의 세 번째 문제의식은 근대에 이르러 '사회적 기억장치'가 국가에 의해 전유됨으로써 '국민적 영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성찰하는 것이었다. 이 책이 다룬 영웅들인 나폴레옹, 잔 다르크, 엘리자베스, 무솔리니, 비스마르크는 모두 국민국가가 '국사'를 통해 만든 영웅들이다. 필자 가운데 한 사람인 고(故) 강옥초 교수가 인용한 조셉 캠벨(J. Campbell)의 말처럼 "토템의 깃발을 날리는 국가개념은 유아기의 상황을 지우기는커녕 유아적 자아를 강화, 확대시키고 있다. 한 국가가 열병식장에서 벌이는 얼치기 제의는 신이 아닌, 포악한 용(龍)인, 압제자를 섬긴다."

 다행히 국민국가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는 우리시대에서 국가의 압제자들은 더 이상 우리의 영웅이 아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우리는 떠나보냈다. 하지만 우리는 그 허전한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고 이번에는 국가가 아니라 대중매체가 만들어낸 '스타'를 영웅처럼 숭배한다. 아버지 부재시대에서 아버지의 빈 자리를 채워줄 대상을 찾아 헤매는 우리는, 내 삶과 우리시대를 이끌어 줄 카리스마적 존재를 갈구하면서 드라마 '영웅시대'를 본다.

 이 책은 말한다. 영웅이 우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과 희망이 영웅을 만든다. 영웅의 터전이 바로 우리 마음 속에 있다는 역사의 진리를 깨달을 때, 우리 모두는 영웅이 될 수 있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더 읽을 만한 책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조셉 캠벨 지음, 이윤기 옮김, 민음사)
◆영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크리스티앙 아말비 지음, 성백용 옮김, 아카넷)
◆영웅숭배론(토머스 칼라일 지음, 박상익 옮김, 한길사)

●책갈피

 프랑스인의 피를 대가로 출세한 이민족 용병대장으로 추락했던 나폴레옹은 19세기말 민족주의 시대부터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독일에 대한 복수를 위해 민족정기를 일으켜 세우는 구국영웅으로 다시 등장했다…20세기 중엽 한때 현대판 대중독재의 선구자로 나타나기도 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의 영원한 국민적 자산이자 위대한 프랑스 그 자체로 자리잡았다"
2005.01.21 17:34 입력 / 2005.01.22 10:26 수정

http://news.joins.com/et/200501/21/200501211734326971a000a200a2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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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stella.K > 영웅만들기/ 박지향 외 지음

'영웅신화'는 국민을 하나로 묶는다

휴머니스트
김기철기자 kichul@chosun.com
입력 : 2005.01.21 17:19 57'

시대가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영웅의 출현을 기다린다. 한국 근대사에서 구한말 신문마다 을지문덕·이순신 전기가 앞다퉈 실리고, 2차 대전 당시 독일에 패배한 프랑스인들이 정복자 나폴레옹을 역사에서 불러낸 것만 봐도 그렇다. 영웅들에 대한 기억은 이렇듯 국민들을 하나로 묶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활용되는 유용한 도구였다.

박지향 서울대교수 등 중견·소장 서양사학자 여섯 명은 영웅신화가 지배권력에 의해 만들어지고, 변형되고, 전승되는 메커니즘을 추적한다. 나폴레옹과 잔 다르크, 엘리자베스 여왕과 무솔리니, 비스마르크가 대상이다.

나폴레옹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기억은 숭배와 규탄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던 나폴레옹은 권좌에서 쫓겨난 후에는 전쟁광으로 배척된다. 1830년 7월 왕정 이후 ‘인민의 나폴레옹’으로 화려하게 복귀했으나 그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이 친위 쿠데타로 제2 제정을 수립하자 독재의 원형을 제공한 장본인으로 추락한다.

1870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에서 나폴레옹은 이민족의 침략에 맞선 민족투사로 다시 떠올랐고, 1·2차 세계대전과 함께 다시 프랑스 혁명의 계승자이자 유럽 해방자로 돌아왔다. 흥미로운 사실은 현실 정치가 나폴레옹 시대의 억압적 유산에서 자유로워졌을 때, 그에 대한 향수가 고조됐다는 점이다.


▲ 나폴레옹은 재임 당시 이미지 조작을 통해 황제 숭배를 부추기는 정치적 수완을 발휘했다. 하지만 권좌에서 쫓겨난 후 전쟁광, 식인귀로 추락한다. 1806년 앵그르 작.
마녀로 몰려 화형당한 15세기의 잔 다르크를 다시 불러낸 것은 나폴레옹이었다. 보수적인 왕당파와 급진적인 공화파의 공세에 맞서 그는 국가 통합의 상징인물로 잔 다르크를 재창조했다. ‘프랑스의 수호자’로 소생한 잔 다르크는 프로이센과의 전쟁과 1·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애국주의의 표상으로 떠올랐다. 제국주의 시대에 한국을 비롯한 그리스, 폴란드 등 식민지와 약소국에서 민족 해방 투쟁의 성처녀로 받들어진 잔 다르크는 최근 남성적 권위와 사회 관습에 도전한 페미니스트로 변신하고 있다.

스페인 무적함대를 물리쳐 영국의 황금시대를 연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기억은 ‘처녀왕’에서 위대한 CEO까지 오간다. 엘리자베스는 “나 자신이 연약한 신체를 가진 여성임을 알고 있지만 나는 국왕의 심장, 그것도 잉글랜드 국왕의 심장을 가졌다”고 선언, 안팎의 도전을 물리친다.

17세기 그는 기독교 신앙과 자유를 핵심으로 하는 잉글랜드 국민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부각됐으나, 성(性) 역할 구분이 엄격해진 18세기와 19세기 엘리자베스 신화는 몰락했다. 20세기 후반 엘리자베스는 마거릿 대처 총리와 같은 현대 전문직 여성의 역할 모델로 떠올랐고, 얼마 전 뉴욕타임스는 그를 ‘밀레니엄 리더’ 1위로 꼽으면서 위대한 CEO로 평가했다.

무솔리니에 대한 기억은 파시즘의 원흉에서 대중의 동의를 이끌어낸 지도자였다는 평가까지 복잡하게 얽히고, 히틀러의 길을 닦은 전임자로서 비판받던 독일 제국의 창건자 비스마르크는 최근 독일 통일의 주춧돌을 놓은 위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과거는 역사가들에게 한가로운 살롱이 아니라 기억의 전승을 둘러싼 치열한 전장임을 실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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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未知生焉知死 > 단일민족 신화, 민족국가 열망에 대한 도발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
임지현.이성시 엮음, 비판과 연대를 위한 동아시아 역사포럼 기획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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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각인된 내셔널 히스토리는 사실상 민족국가를 위한 변명이었다. 그것은 민족국가를 역사발전의 주체이자 대상으로 설정함으로써 가장 자연스러운 정치조직이라 믿게 만들고 또 정당화했다. 개개인이 일상적 삶의 영역에서 겪은 고통과 절망, 기쁨과 희망은 민족의 고난과 영광이라는 민족 서사에 가려 설 땅이 없었다.(비판과 연대를 위한 동아시아 역사포럼, 한국 공동대표 이영훈, 임지현)


올림픽이나 월드컵도 아닌데 4년 주기로 반복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일본 우익계가 만든 역사교과서로 인한 파문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우리 측의 반응을 보면 좀 이상하다. 정부가 나서서 항의하고 시민들이 규탄대회를 여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근본적인 비판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옳고 당신들은 틀렸다는 식이다. 오히려 일본의 우파언론인 산케이신문은 한국의 국사교과서를 본받으라고 한다. 일본의 새 역사교과서를 만든 주체나 한국의 비판주체는 민족적 정체성의 확립과 국민 만들기라는 동일한 역사관을 공유하고 있는 적대적 공범자들인 것이다. 이들 양자는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강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서로를 배제하고 타자화하여 겉으로는 첨예하게 충돌하지만 결국 민족주의라는 같은 토양에 뿌리내리고 있는 결과를 초래한다.


한편 교과서 파동으로 일본의 각급 학교가 우익 교과서의 채택을 꺼린 만큼 좌파 교과서도 외면해 어부지리로 중립적 교과서들의 채택률이 높아지는 결과가 초래됐다. 좌파 교과서는 정신대 문제를 비롯하여 일본의 식민지배와 전쟁에서의 가해행위를 비교적 자세히 기술하고 있어 우파로부터 자학사관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에 대해 도쿄대 강상중 교수는 우와 좌의 극단을 배제하고 중(中)을 취한다는 것은 국가와 국민에게 좋지 않았던 역사의 기억을 물타기해서 망각시키는 긴 호흡의 역사수정주의라고 지적한다. 한양대 임지현 교수는 한국의 민족주의와 일본의 민족주의가 적대적 포즈를 취하는 듯하지만 결국은 공범자라며 내셔널 히스토리의 틀을 고수하는 한 이런 싸움은 계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예 그 틀을 깨자는 것이 국사 해체라고 설명한다.


우리나라에서 민족이란 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러일전쟁 이후로, 조선왕조가 위기에 처하자 집단적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일본으로부터 민족이라는 말을 수입해 쓰기 시작했다. 이처럼 일본 제국주의의 대항물로서 탄생한 한국의 민족주의를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는 제도적 장치가 바로 국사라는 것이다. 국민국가 형성기에 민족주의는 대중을 동원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이념이었으며, 그 민족주의는 나와 남의 테두리를 규정하고 구별 짓는 이데올로기였다.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자신들의 예정된 숙명에 대한 믿음과 영광과 구원의 신화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다른 민족의 신화를 짓밟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민족주의는 태생적으로 파괴를 함유하며, 비이성적이고, 편협하고 증오심을 유발한다.


한국의 국사는 식민주의사학에 의해 구축됐고 그나마 식민지 체제하에서 한국의 역사는 역사체계 속에서 사라졌다. 1911년 1차 조선교육령에서 역사과목이 없어졌고, 1922년 2차 조선교육령에서는 일본역사를 가르쳤으며 1927년 일본사가 국사로 바뀌었다. 1938년 3차 조선교육령에 따라 민족적인 것의 말살, 내선일체의 강조, 대동아 공영권의 역사적 사명이 강조되는 국사편찬이 이루어졌다. 이는 독자적인 국민국가와 민족의 형성에 실패한 집단이 세계사에서 어떻게 지워지는지 보여준다. 제국주의와 식민지라는 역사적 경험의 차이는 엄청난 것인데 그것을 동등하게 평가해 주변부의 저항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의 거울반사에 불과하며 궁극적으로 양자는 적대적 공범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설정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것은 마치 국권회복을 목표로 무력을 선택한 의병과 국운의 융성을 위해 무력으로 진압한 일본군을, 무력을 동원하고 민중의 희생을 동반했다는 점에서 적대적 공범관계로 보는 것과 같다.


식민지 시기 민족주의 사학이 견지했던 문제의식이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남과 북 모두에서 그 건강성을 상실하고 체제 이데올로기로 전락했다. 예를 들어 민족과 자주의 관점에서 신라의 삼국통일을 외세 의존적 축소통일이라고 폄하하는 신채호식 역사해석은 유효기간이 지났다는 것이다. 즉 당시 신라의 입장에서 볼 때 고구려나 백제는 피를 나눈 같은 민족이 아니라 당나라나 왜국과 마찬가지로 맹방이 되기도 하고 적국이 되기도 하는 대외전략의 대상일 뿐임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성시 교수는 <만들어진 고대>에서 고대사 서술에서 우리나라의…… 와 같은 구절은 있을 수 없으며 근대의 국민 의식을 전제로 일본민족과 한민족이 제각각 고대 이래 자기 완결적으로 민족사를 걸어왔다는 식의 논의가 횡행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 과연 민족․국가 개념을 버리고 역사를 서술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대전대 도면회 교수는 민족․국가 개념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민족․국가에 도덕적 정당성을 선험적으로 부여하지 말고 역사서술을 하자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국민국가와 민족․민중 중심의 역사는 과거 인간의 행위를 반국민(민족)적 행위와 애국(애족)적 행위로 양분하고 그 사이의 중간적 행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국가와 민족에게 해롭게 했다는 이유로 역사로부터 배제되거나 반대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여했다 해서 이전의 모든 행위가 역사의 이름으로 사면되는 도덕적 판단을 멈출 때 역사는 비로소 개인에게 눈을 돌릴 수 있다. 도교수의 주장은 국사 해체 이후 어떻게 역사를 서술할 것인가에 단초를 제공한다.


일본의 새 역사교과서가 주장하는 아시아해방전쟁 혹은 대동아공영권 등 일본 우익의 역사논리를 해체하기 위해 우리는 국사교육의 강화가 아닌 세계사교육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역설이 있다. 다시 말해 역사투쟁에서 다양한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기 위해 민족을 코드로 한 역사청산으로부터 탈민족적 연대로 문제의 틀을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민족을 단위로 해서 우리와 그들 사이에 전선을 형성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우리 안의 그들을 배제하고 그들 안의 우리와 연대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을 권하고 있다.


남을 비판하기 전에 우리를 돌아보면 한국의 국사교과서 서술에도 문제가 많다. 아무리 국사교과서라고 하지만, 그리고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민족사와 국가사, 지역사가 대체로 일치하는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민족이라는 말이 지나치게 많이 사용되고 있다. 특히 고교 교과서에서 홍익인간을 우리 민족이 간직해온 민족정신의 원류이며 민주주의의 이념과 부합한다고 한 것은 과도한 주장이며 이것이 퇴행성 국가주의로 이해될 소지가 있다. 이제는 세계 여러 나라, 여러 민족과 평등하게 교류 협력하는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민족주의, 강대국 국가주의의 틈바구니에서 주체성․정체성을 살리려는 민족주의가 절실하다.


국사 해체론은 한마디로 담론의 과잉이며, 대안 없는 문제 제기이다. 국사 해체라는 말 속에는 근대국가 건설 과정에서 민족주의에 대한 문제 제기가 담겨 있다고 본다. 특히 동아시아 3국의 전통이 긴밀히 연대해온 이상 일국사적 시각은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러나 중국이 중화(中華)학을 앞세우고 일본이 재무장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 혼자 발가벗고(국사 해체) 비판하는 것이 과연 동아시아 평화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논의를 반전시켜 한국사학계가 개별연구를 통해 한국사의 다채로움을 보여주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사관이 강할수록 역사학은 실천성이 강하다. 사관 자체가 그 시대가 요구하는 주장, 즉 호소력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호소력과 실천성이 강한 사관일수록 과거의 진실을 과장하고 왜곡하고 단순화시키는 폐단이 있다. 예를 들어 20세기를 풍미한 민족주의사관은 민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미화시키며, 계급주의사관은 계급 갈등을 사실 이상으로 과장하는 오류를 범한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여기서 역사학은 중대한 딜레마에 직면한다.(한영우 <역사학의 역사> 에서)


한교수의 시각을 빌리면 국사 해체란 기독교사관, 인문주의사관, 계몽주의사관, 민족주의사관, 유물사관, 문화주의사관, 유교사관 등 서로 다른 가치 기준을 넘어서는 한편, 실증에 매몰되지 않는 새로운 역사 연구라 해도 무리가 아닐 것 같다. 한교수는 동아시아 보편의 역사인 동시에 한민족의 특수사라는 이중적 성격을 염두에 두고 그 테두리 안에서 한국인이 어떻게 인간과 자연의 생명의 가치를 찾으려고 노력해 왔는지 검토하는 것이 한국사 연구의 주요 과제라고 했다. 국사 해체라는 도발적 질문 뒤에 던져진 무거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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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여울 > 한국민족주의

051129

19:30-24:00 (아카뎀) 세미나

 

 

 

분단체제,세계화, 그리고 한국민족주의

박명규/서울대 사회학과

1. 발제_(k _ 대학교때 발제한 이후로 처음 요약정리 정말 오랫만의 발제란다, 잘한다, 그리고 기분좋게 열심의 논의의 중심으로 옮겨왔다. 기대주)

"통제된" "평화"민족주의

"한국민족주의는 시간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1910년대(식민화) 국가를 추구하는 민족주의, 1945년대(분단체제) 국가가 주도하는 민족주의, 1987년(사회발전) 생활민족주의-  이의 세 계기를 거치며 독특한 정서적, 이념적 질료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 정체성과 통합을 중시하는 문화민족주의, 분단감정과 분단의식을 중시하는 국가민족주의, 분단체제 약화와 독특한 집단적 자부심을 갖게하는 생활민족주의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할 수 있다.

이런 흐름은 세계화의 흐름 속에 한국민족주의의 위험성과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그 한계에 대한 비판으론 생태주의적 입장에서 개발지상주의에 대한 비판, 개인의 자유, 다양성 존중이라는 관점에서 민족이란 굴레가 국가중심주의와 파시즘의 정신구조를 낳는다는 비판, 민족의 젠더적 구성에 초점을 맞추는 페미니즘적 비판이 그것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일면 동의하지만 한국민족주의는 민족이란 가치를 절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중요한 가치들에 의해 "통제된", 상위가치로 "평화"를 두어 성찰할 것을 요구한다."

2. 진행 - 명료한 발제에 질문은 없었음. 바로 발제문의 전제에 대한 공격부터 있었음.  "민족주의" 앞에 문화,국가,생활 모든 것을 가져다 붙인 것 아니냐? 그 개념으로 모은 것 아니냐? "평화민족주의"에 모든 논의를 넣은 것 아니냐? 민족주의에 반대한다. 뻘줌한 발제자 경향이 없었고, 유효성 논의와 현실성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면서 가닥이 조금 잡혔음. 뒤풀이에서 더욱 증폭된 상태로 세부논의가 이어졌음. 하지만 논의의 진도가 나아간 것에 대해 밝힐 수 없음.(왜냐? 잘모르니까? ㅎㅎ)


3. 생각거리

3.1 내가 미국시민이나 아프리카의 가다피로 살고 있다면 위의 고민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굳이 논의조차할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처지가 이중-삼중으로 문제가 중첩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3.2 비판담론('nation')문제제기는 인정하고 민족주의가 갖고 있는 허점들을 드러내지만, 그 비판담론의 근거가 유럽이나, 학문적 정합성에 매달려 오히려 효용성이란 측면에서 제대로 보지 못하는 측면이 많은 것은 아닌가?

3.3 "민족주의" 논의자체가 의미가 있는가? 통일이 조선이나 일본 민중에게 무슨 이득이 된단말인가?

3.4 50년뒤를 가정해보자. 외국인 노동자의 2세 3세, 프랑스처럼 한핏줄의 개념이 희석화, 축소되어가고, 자본의 흐름이나 유통으로 또 다른 국면을 맞을텐데. 그런면에 있어서 "민족주의' 논의가 유의미성이 있고 현실화할 문제점에 대해 되짚어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3.5 민족이란 개념은 위험성이 있지만 생존력이 긴 것이다. 생존의 문제로 올려놓는다면 또 다른 각도에서 바라봐야 하는 것은 아닌가?

3.6 민족문제는 맞냐 그르냐의 문제로 보기보다 유효성의 측면, 도구적 측면, 현실 속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학자들은 개념화에 치우쳐 환원적 측면이 강한 것은 아닌가? 맞추어진 개념으로 발전되어 나가면 주장이 경도될 수도 있다. 어쩌면 그 주장이 자본이라는 정글에 무장해제를 하자라는 주장으로 번질 수도 있고, 자본주의 속에 살고 있음을 잊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3.7 국가주의, 민족문제, 인종문제...등등은 구분해서 논의하여야 한다.

3.8 역시 분권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은 아닌가? <--> 경제문제는 달리 보아야 한다.


4. 참고할 거리

4.1 임지현-열린, 탈 민족주의, 임해동, 권혁범 " 국민으로부터의 탈퇴"(s_ 레퍼런스가 넘많다. 한마디 한마디 각주가 넘 정확해, 하지만 하고픈 이야기가 넘 많은 듯. 논의가 다소 논점의 궤도를 넘어서 폭이 넓어진다. 산만하다 싶게.ㅎㅎ)
4.2  유럽에서 nation은 19세기 후반에서 국민국가의 형성, 자본주의 발전과 맞아떨어지면서 생긴 개념이다. 그 이전엔 이런 개념이 희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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