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
김유나 지음 / 창비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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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은 읽는 내내 ‘진실’이라는 단어의 크기를 다시 재게 만드는 소설이다. 크다고 믿어왔던 진실은 의외로 소박하고, 작다고 여겼던 선택은 삶을 통째로 흔든다. 이 책은 거창한 폭로나 극적인 반전을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아주 사소한 태도, 말하지 않은 마음, 지나쳐버린 순간들 속에 진실이 얼마나 촘촘히 숨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는 경험은 무언가를 알아냈다기보다, 오래 묵혀둔 감정을 조심스럽게 꺼내보는 일에 가깝다.


p.34~35에서 비를 맞으며 우산을 들고 기다렸을 현권이를 떠올리는 장면은 이 소설의 정서를 단번에 각인시킨다. 배려는 늘 설명 없이 도착한다. 그러나 그 배려를 받는 쪽은 쉽게 고맙다고 말하지 못한다. 누나는 “다시는 기다리지 말라”고 말하며 관계의 거리를 급히 조정한다. 이 장면이 오래 남는 이유는, 그 말이 무심해서가 아니라 지나치게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도움을 받는 순간 생겨날 감정의 빚, 그 빚이 관계를 바꿔버릴까 두려운 마음. 이 소설은 그렇게 다정함을 밀어내는 말들까지도 정직하게 기록한다.


p.61~62에서 “아무것도 없더라”는 문장은 허탈함과 동시에 묘한 해방을 안긴다. 분노를 쏟아낼 대상이 이미 비어 있다는 사실은, 남겨진 사람들의 감정을 공중에 매달아둔다. 탁 트인 바다 앞에 선 석용의 시선은, 감정의 파도가 빠져나간 뒤 남는 평평한 자리를 닮아 있다. 이 장면은 복수나 정의보다, 그 이후의 감정에 대해 묻는다. 우리는 분이 풀린 뒤에도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이 소설은 조용히 상기시킨다.


p.96에서 엄마가 말하는 “우리 둘이 이렇게 사는 것도 재밌겠다”는 문장은 따뜻하면서도 위태롭다. 태은은 고마움과 미안함을 말하지 못한 채 ‘이렇게 사는 삶’을 상상한다. 마음 편히, 둘이 재밌는 삶. 그러나 그 상상은 끝내 경계로 돌아온다. 가족이라는 관계 안에서 자유는 종종 죄책감과 함께 도착한다. 이 소설은 가족을 이상화하지 않는다. 대신 사랑과 부담, 감사와 분노가 동시에 존재하는 현실적인 얼굴을 보여준다.


p.130~132에서 ‘창조하는 아이’라는 말은 가능성의 언어처럼 들리지만, 그 여운은 채림에게로 이동한다. “너는 도대체 누굴 닮은 거니.” 칭찬처럼 가장된 이 질문이 얼마나 오래 사람을 붙잡는지, 이 소설은 세대의 언어를 통해 드러낸다. 말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다른 방식으로 되돌아와 마음을 건드린다.


p.147~148에서 사랑은 ‘함께하는 것’으로 정의되며 극단적인 선택과 맞닿는다. 은행을 털러 가는 일이 사랑의 연장선이라는 설정은 불편하지만, 그래서 더 솔직하다. 사랑이 언제나 옳은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 그럼에도 누군가는 그 선택을 사랑이라 믿고 싶어 한다는 마음. 이 소설은 그 믿음의 위험성마저 외면하지 않는다.


이 책의 인물들은 충분히 말하지 않는다. 대신 침묵과 행동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독자는 그 빈칸을 읽으며 자신의 기억을 겹쳐보게 된다. 그래서 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은 읽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른 얼굴을 가진다. 확신을 주기보다 머뭇거릴 시간을 주는 소설. 


완벽해서 믿는 진실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견딜 수 있을 때 비로소 믿게 되는 진실을 이 책은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끝까지 조용한 문장으로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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