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숲
전건우 지음 / &(앤드)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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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6 "그 숲은 강원도에서는 드물게 산마루 중간 지점부터 넓고 평평하게 형성되었어요. 그리고 고지대가 아닌데도 울창한 숲이 너르게 분포해 있다는 뜻이에요. 거기에 굵고 곧게 자라는 전나무가 수천 그루씩 버티고 서 있는 거죠. 나무가 워낙 빽빽해서 낮에도 해가 잘 들지 않을 정도라고 해요. 그런데 그 정도라면 우리나라의 다른 숲과 별반 다를 게 없죠. 빨래숲이 악명을 떨치게 된 건 그곳이 입구도 없고 출구도 없기 때문이에요.

P. 38 민시현은 현실로 돌아왔다. 눈 앞이 확 밝아지며 어두컴컴한 숲이 시야에 들어왔다. 마치 자기가 목이 졸린 듯 숨 쉬기가 힘들었다. 입을 한껏 벌리고 공기를 폐로 밀어 넣었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니 어느 정도 살 것 같았다. 천천히 정신을 차리는 가운데 민시현은 깨달았다.
이 맥가이버칼은 망자의 물건이라는 사실을 그렇다면 두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누군가가 죽은 이의 물건을 들고 있다는 가능성. 또 하나는 ....
그 누군가가 맥가이버칼의 주인을죽였다는 가능성.

P. 44 아이의 목이 쭉 길게난다 싶더니 천천히 뒤로 넘어왔다. 계속... 계속...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정도의 각도로 넘어온 목 때문에 아이의 얼굴이 거꾸로 보였다. 위쪽으로 향해 있는 입이 가늘게 갈라졌다. 곧 기괴한 웃음이 울려 퍼졌다.

P. 58 여기 이 녹음기는 EVP 녹음기로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음역대까지 다 잡아내서 유령 소리까지 녹음하는 거죠. 다음으로 보실 건 이건데요, 이 까맣고 동그랗게 생긴 게 온도 감지 센서기죠. 심령 현상이 벌어지면 주위 온도가 내려간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그걸 측정하는 거! 마지막으로 보실 게.... 적외선 카메라. 보통은 그냥 찍는데 적외선 모드로 변경하면 빛이 없는 공간에서도 충분히 뭔가를 잡아낼 수 있어요.

P. 86 윤동욱의 목소리가 갑자기 작아졌기에 민시현은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선미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전화가 끊어진 게 아닌가 할 정도였다.
민시현은 핸드폰을 귀에다가 더 바짝댔다. 그 순간이었다.

"거기서 절대 못 나와!"

P. 123 "살기맥이 겹치면 틈이 열리죠. 누군가는 그게 차원의 틈이라고 하는데, 우리 쪽 용어로는 귀문이에요. 귀문. 귀문이 열리면 온갖 귀신이 드나든다는 건 다들 아시죠? 그 숲이 바로 그런데죠. 시에서는 뭣도 모르고 그걸 개발해 보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대요. 근데 그때마다 인부가 죽어 나가고 담당자가 급사하는 일들이 생겨서 결국 포기했죠. 꽤 오래전 일인데,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인지 강원도에서 제일 영험하다는 무당을 부러 대살굿을 계획했대요. 그런데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

-> <어두운 숲> 을 읽는 내내 책장을 넘기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숲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이 소설의 공포는 갑자기 튀어나오는 괴물이나 자극적인 장면이 아니라, 빠져나갈 수 없다는 확신에서 시작된다.

P.26에서 묘사되는 빨래숲은 이미 하나의 선언처럼 느껴진다. 입구도 출구도 없는 숲, 길이 없다는 사실은 곧 선택지가 없다는 의미다. 그 숲은 자연이 아니라 의지처럼 보인다. 사람을 들여보내기 위해 존재하는, 그리고 다시는 돌려 보내지 않기 위해 자라난 공간 같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숲은 배경이 아니라 인물들을 시험하는 장치가 된다. P38에서 민시현이 망자의 물건을 손에 쥐고 숨을 몰아쉬는 장면은, 공포가 외부에서 온은 것이 아니라 이미 손에 들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맥가이버칼은 도구이면서 동시에 증거이고, 생존의 희망이자 죽음의 흔적이다.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독자는 자연스럽게 '다음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P. 44 의 장면은 이 소설이 왜 잔상처럼 남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아이의 목이 불가능한 각도로 꺾이는 묘사는 피하지 않으면서도 잔혹하다. 설명하지 않기에 더 오래 남고, 보여주지 않기에 상상 속에서 끝없이 반복된다. 웃음소리는 '공포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처럼 들린다. 그 순간부터 숲은 완전히 인간의 논리를 거부한다.

흥미로운 점은 P.58에서 등장하는 각종 장비들이다. EVP 녹음기, 온도 감지 센서, 적외선 카메라 과학과 기술은 공포를 증명하기 위해 동원되지만,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시도는 오히려 더 많은 공백을 만들어낸다. 이 소설은 믿음과 증명의 간극에서 공포가 자란다는 사실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리고 P. 86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거기서 절대 못 나와!" 라는 한 문장은 이 모든 이야기를 단 번에 봉인한다. 위협이 아니라 단정이기 때문이다. 탈출 가능성조차 허락되지 않는 말 앞에서, 독자는 더이상 안심할 수 없다. <어두운 숲> 은 읽고나면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책을 덮은 뒤에도 마음속 어딘가에 길 없는 숲 하나를 남겨두고,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 또한 안전한 출구가 맞는지 조용히 의심하게 만든다. 이 소설의 가장 무서운 점은, 숲이 책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이다.

그리고 "강원도에서 제일 영험하다는 무당' 을 불러 대살굿을 벌이려 했다는 이야기조차 결국 실패로 끝났다는 대목은, 이 숲이 인간의 신앙과 의식마저 비웃고 있다는 인상을 남긴다. 퇴마도, 기도도, 의식도 통하지 않는 장소. 그 순간 숲은 단순한 저주가 아니라, 인간이 감히 개입할 수 없는 영역으로 격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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