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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랄프 로렌
손보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평점 :
p. 어린 시절부터 유명 브랜드(랄프 로렌) 옷을 입고 유학을 가
박사과정 중이던 종수 (너무나 여성스러운)는 취미로 스케이팅을
즐기는 담당 교수로부터 ‘이 길이 아니니 그만두라‘라는 말을 듣고 수치심과 분노로 친구들에게 말도 하지 않은 채 야반도주한다.
어린 시절의 랄프 로렌처럼.
고등학교 시절 잠시 사귈 뻔했던 친구 수영의 청첩장을 보고
‘랄프로렌에게‘ 시계를 만들어 달라고 조르는 편지를 함께 쓰던 기억을 떠올린 그는 1년이란 시간 동안 미국에 더 머물면서 자료조사를 한다. 이 부분이 너무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아무리 부모님이 부자라 하더라도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은 주인공이 체류비는 어떻게 구했으며 박사 과정이 아무리 힘이 들어도 교수의 말 한마디에 그만두고 엉뚱하게도 잠시 사귈 뻔했던 결혼한 여자친구의 관심사인 디자이너를 조사하느라 백방으로 수소문을 하다니 이게 가능할 수 있는 일이었는지 읽는 내내 의문이 들었던 거 같다. 게다가 책날개에 소개된 예쁜 작가의 모습 때문인지 종수가 아닌 보미가 책을 쓰기 위해 퇴짜를 맞아가며 랄프로렌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는 모습이 떠올라 정작 주인공에게 집중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읽는 내내 나에게 종수는 여자다운 면모를 보인 남자이고,
종수가 조사 도중 잠시 사귈 뻔했던 섀넌과의 하룻밤은 너무 어색했으며 박사 과정을 중단한 종수의 체류 여비가 늘 걱정이었다. 부모님이 부자였지만 자식에 대한 걱정 때문인지 혹은 체면 때문인지
성급히 유학을 보낸 거였기에 담당 교수로부터 일방적으로 그만두라는 말을 들었다는 사실을 차마 알리진 못했을 것인데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마련한 것일까?
이 소설은 ‘1954년에 조셉 프랭클을 만나는 랄프로렌‘이 존재하는 세계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약 1년 동안 나는, 아니 저자는 그 세계를 관찰하고, 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려고 애썼다. 그들의 얼굴과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애써왔음이 여실히 보이고 있다. 어느 정도는 성공했고 어느 정도는 실패했다.
너무 과도한 바람일 수 있지만 이 소설을 읽은 사람들이 각자의 망원경으로 자신만의 ‘랄프로렌‘과 ‘조셉 프랭클‘을, ‘새 넌 헤이스‘ 와 ‘잭슨 여사‘를, 그리고 ‘종수와 ‘수영‘을 떠올리며 그들을 바라보게 된다면 아마 저자는 무척 행복할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소설가는 굉장히 좋은 망원경을 가지고 있는 우주인과 비슷한 게 아닐까 하고 종종 생각한다. 저 멀리 낯선 행성의 작은 불빛을 응시하고 마침내 그 속에서 그 ( 혹은 그녀)의 얼굴 표정을 발견하게 되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래서 그(혹은 그녀) 때문에 마음 아파하기도 하고 때때로 안도하기도 하며, 한숨을 쉬고 화를 내기도 하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물론 누구나 자주 실패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의 표정을 볼 수 없을 때가 있다. 망원경이 고장 났을까 봐, 내가 주의를 기울이지 못해서 그들 표정의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지나치지는 않았을까 걱정하고 두려워하기도 했다. 잠시였지만, 어쩌면 소설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내내 그런 걱정에 휩싸여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행복한 삶을 부여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저 나는 소박한 마음으로 바랄 뿐이다. 내가 ‘매우‘, ‘멀리‘ 존재하는 그 세계가 진짜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기를, 또한 그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대들은 그 세계를 살아가는 내내 어떤 삶을 살고, 어떤 마음으로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어떻게 견디며 무엇이 삶의 원동력을 주었는지. 그래서 행복과 불행 중에 고르자면 어떤 순간이 많았는지, 그나저나
‘랄프로렌‘이라는 브랜드를 떠올리면서 이와 비슷한 브랜드가 연상이 됐는데 그 브랜드는 ‘올리비아 로렌‘이다. 아마 내가 추측하건대 그 브랜드도 사람의 이름을 따온 것이 아닐지. 그렇다면 어쩌면 ‘랄프로렌‘의 가족일 수도 있다는 단순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