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 SNS부터 에세이까지 재미있고 공감 가는 글쓰기
이다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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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7

널 위해, 그리고 지금의 내 친구들을 위해 책을 한 권 썼어
잘 쓰는 사람만 보느라 스스로 나아질 기회를 날리지 말았으면 좋았을걸.
십 년 전의 나야, 그만 울고, 그만 울라고
글을 쓰려면 울게 아니라 글을 써야 한단다.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다.

→ 그래, 운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지금보다 나이 지거나 그러진 않겠지.
그러니까 울지 말고 글을 써야 해.
십 년 전의 널 위해 그리고 지금의 내 친구들을 위해 책 한 권 제대로 쓸 수 있으면
좋겠어. 잘 쓰는 사람만 보느라 스스로 나아질 기회를 날리지 말고 글이 안 써진다고 위축되지도 않았으면 좋겠어. 누구라도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으니까.

P.27 내가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쓰기‘ ,‘나를 불편하게 만든 것에 대해 쓰기‘라는 어떨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좋아하는 이유, 불편한 이유, 싫어하는 이유다. 나를 들여다보는 글쓰기에서는 특히 세 가지가 중요한 데 남에게 보여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길게 쓸수록 좋다. 그 표면적인 ‘이유‘가 거짓말일 때가 많아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사진을 찍고 책을 읽고, 친구들 만나 수다 떠는 것이다.
한 해 한해 저물어 갈수록 우리는 나이 들어가고 젊은 시절은 사라져가기에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서 오래도록 추억하고 싶어서 사진을 찍는 게 좋은 것, 그게 이유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쓰라고 하면 쓸 수 있지만 ‘나를 불편하게 만든 것에 대해 쓰라‘고 하면 거북할 것 같은 기분이 먼저 들지도 모른다. 일단, 나는 인내심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짧게 쓰는 게 아직은 좋다. 남에게 보여주겠다는 생각 않고 쓰는 거라면 거짓말이라도 무언가 쓸 수 있다는 게 좋은 거니까.

P.52

많이 읽는다고 좋은 글을 쓴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아예 안 읽는다면 애초에 멀쩡한 글을 쓸 확률이 낮아진다. 어휘력이 부족해지고, 가용한 문장의 형태가 단순해진다. 뿌리내리고 살 땅을 찾기 위해 전 세계를 여행하는 기분으로 나는 책을 읽는다. 사랑해 마지않지만 내 것이 될 수 없는 문장을 발견하고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 한다. 가끔은 내가 쓴 글을 읽으며 스스로를 기특하게 여기기도 한다. 이런 자기애는 글 쓰는 가장 큰 동력 중 하나다.
글 쓰는 사람은 대체로 자기혐오에 익숙하지만.

→공감한다. 많이 읽는다고 좋은 글을 썼다는 사람, 본 적 없다.
아예 안 읽고 시간만 흘려보내기에 1분 1초가 아깝다고 생각하기에 글을 쓰든, 책을 읽든
뭐라도 해야 한다. 그리고 책 읽기를 게을리하면 어휘력도 낮아져서 글을 쓸 때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길러지지 않는 어휘력으로 써 내려간 글은 단순해지지 않고 복잡해진다.
그리고 마치 여행길에서 길을 잃은 미아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겠지. 나는 글을 쓰면서
적어도 자기 혐오감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아서 책을 읽는다. 그리고 그 행위를 사랑한다.

P.133

내가 읽고 싶은 글이 세상에 없어서 내가 쓴다.
남이 읽어주는 것은 그다음의 행복이다. 일단 쓰는 내가 느끼는 즐거움이 존재한다.
쓰고자 하는 대로 써지지 않는 고통이 있고, 그래서 퍼붓는 노력이 있고, 더디지만 더 나은 형태의 결과물을 만들어간다. 남이 알기 전에 그 매일에 충실한 나 자신이 먼저 안다. 나는 내 글의 첫 독자다.

→어떤 이의 글을 읽으면서 위로가 되었던 적이 있다.
그런 힐링이 되는 글을 쓰기까지 그는 쉽게 쓸 수 있었을까?
자신이 그만큼 힘든 시간을 겪었기에 진정 위로가 되는 글을 담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고 싶어서 글을 쓰는 것도 있다. 물론 내가 읽고 싶은 글이 세상에 많지 않ㅇ나서 쓰는 거긴 하지만. 남이 읽어주는 건 그다음의 행복인 거고, 내가 쓰는 글에서 즐거움이 존재하고 쓰고자 하는 대로 써지지 않는 고통을 충분히 감내해 가면서 더욱 퍼붓는 노력이 깃들 수 있는 것이리라. 더디더랃 더나은 형태의 결과물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나는 계속 쓸 것이다. 남이 알기 전에 그 매일의 충실한 시간을 함께 한다.
자신이 내 글의 첫 독자이기 때문이니까

P.157

상처에 대해 쓸 수 있다는 말은 상처를 잊었다는 뜻이 아니라 상처와 함께 사는 법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다. 당신이 도저히 글로 옮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 일을 언제가 되면 글로 옮길 수 있을까? 서두르지 말자. 이것은 이기고 지는 배틀이 아니다.

→잊을 수 있는 상처였다면 기꺼이 글로 옮길 수 있었을 것이고, 상처라고하기엔 그보다 더 큰 상처가 많아서 상처라고 할 수도 없지 않았을까.
상처와 함께 사는 법을 알게 된 그날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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