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조차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변종모 지음 / 자음과모음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변종모 작가의 책은 두 번째다.
<같은 시간에 우린 어쩌면>을 처음 읽었을 때는 솔직히 이 정도의 필력일 줄은 몰랐다. 쉽게 눈에 보였다가 어느샌가 모르게 사라지는 작가가 많기에, 그 글의 무게를 온전히 흡수하기보다는 한 번 들이마셨다가 소진해 버렸다는 것이 맞겠다. 

그런데 <나조차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를 읽는 동안 감히 범접할 수 없을 만큼의 '작가력' (꼭 작가력이라고 말하고 싶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단어, 모든 문장, 모든 페이지에 이렇게 짙은 색을 드러낼 수 있는 작가라는 것이 마냥 놀라웠다.
글을 잘 쓰는 작가는 많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본인만의 강렬한 색을 고스란히 드러내기란, 그 본연의 색을 유지하면서도
몰입하여 읽게 하는 힘을 나는 '작가력'이라 말하고 싶은 거다.

이 책에서 작가는 우리에게 한 가지 강요를 한다.
바로 '가 보라'는 것이다.
원래 본인은 과감하거나 단호한 사람이 아니어서, 누군가에게 부탁이나 권유를 잘 못한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에게나
독자에게나 부담이 되는 말을 한 셈이다.
작가가 가 보았던 '곳'에서 찬란하고 두근거리는 느낌을 가져 보기를, 그곳에서 자신을 다독이고 시 한 편 끄적거리다 오는
시간을 보내 보기를 부담스럽지만 권하고 있는 것이다.


27,
~이런 생각도 이런 추위도, 이렇듯 분간이 되지 않는 풍경이란 꿈속의 굼처럼 경계가 혼란하다. 하얀 도화지를 꺼내어 아무것도 그릴 게 없다면 이 언덕이다. 그러다가 잘못해서 물감이라도 한 줄기 흘린다면 또한 지금의 풍경이다.

누구나 떠나고 싶지만, 현실에서 떠나고 도피를 위해 떠나는 그런 떠남을 누구나  갈망하지만 쉽게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여행 갈망자들에게 이런 문장은 강력한 자극이 되며 하나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작가가 주는 부담은 독자에게 이로운 것이다.


여러 번 여행했던 바라나시에서  우연히 발견한 꽃시장은, 살면서 자주 접했지만 무심히 또는 모르고 지나간 수많은 순간들에 대해 생각 나게 한다.


60,
여행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 우리는 일상의 지루하고도 견고한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잠시 살아보는 마음으로 떠나게 되지만, 새로운 곳에서조차 익숙한 자신을 잘 놓지 못한다. 그러니까 결국 새로운 것을 찾아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곳에서도 자신을 고집하는 일을 반복하는 것은 아닐지.
~ 자신 앞에 오는 풍경이나 사람에 대해서 정성을 다하는 일. 그들을 만나려고 스스로 걸어갔으니 내가 그곳의 주인이 아니라 잠시 지나가는 여행자로 예의를 다하는 일. 그럴 때 만나게 되는 불편함이나 이해하지 못할 일들을 그들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일. 새롭게 만나는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자주 열광하고 감동하지만, 정작 돌아와서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없다. 끝내 나를 내려놓지 못하니 합류할 수 없는 것이며, 합류하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하니 봐도 본 것이 아니며 가도 간 것이 아닐 때가 있다.

61,
떠나는 그대는 그대의 밖으로 걷지 마라. 그대 속으로 그대가 먼저 걸어가라. 자신의 자신을 먼저 만나는 일. 내가 먼저 좋아지지 않으면 그 무엇도 내 것이 되지 못한다. 당신이 누구라도 무엇이라도 상관없이. 누구의 위도 아래도 앞도 뒤도 아닌 나란히 걸으며 평행을 이루는 일.

 

현실을 견딜 수 없을 때 떠났던 몇 번의 여행, 출장이라는 명목으로 낯선 곳을 자유롭게 걸었던 여행,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떠나고 돌아온 몇 번의 여행. 다른 이름으로 떠났던 여행이지만 모두 같은 기억으로 남을 수 없는 것은, 목적과 행로가 달랐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떤 마음으로 자리를 비우고 어떤 것으로 눈과 입을 그리고 마음을 채운 채로 돌아왔는가 하는 것이 모든 여행이 같을 수 없는 이유일 거다.


134,
따뜻함을 받아들이는 속도보다
서운함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더 빠르다.
따뜻함은 둥글고
서운함은 날카롭기 때문에.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둥글고 따뜻한 마음으로 여행을 꿈꾸며, 또 돌아보기를.
책을 읽으며 다짐했다.

그리고 이제는 숨 쉬는 일조차 가볍지 않은 내가 되길 바랐다.





* 본 서평은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http://cafe.naver.com/jhcomm/1327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