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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주부입니다만 - 지금, 여기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라문숙 지음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나에게는 여러 번 읽고 싶은 책이 꽤 있다.
얼마 전에 읽은 '나가오 도모코' 씨의 <하루의 맛>과 용윤선 작가의 <울고 싶은 방>이 그 목록에 있는데 <전업주부입니다만>의 글도 왠지 앞의 두 책을 떠올리게 했다. 아마 세 명의 작가가 연령대가 비슷할 거라 추측한다.
나의 엄마보다는 조금 젊지만, 나보다는 한참 언니 같은 작가들이다.
용윤선 작가는 커피를 내리면서, 나가오 도모코 작가는 음식을 만들면서, 라문숙 작가는 집안일을 하면서.
세 분의 작가는 지나간 내 꿈을 (이루지 못하고 놓쳐 버린) 다시 꾸게 만드는 용기를 준다.
그들의 글은 하나같이 착하다. 너무 착해서- 읽는 사람의 마음과 눈과 책장을 넘기는 손까지 깨끗하게 씻어주는 느낌이다.
순간순간 누구나 겪을 만한 감정을,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잊히고 마는, 소중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서럽기도 한 여자들의 시간을 (어쩌면 평생을) 대변하는 글들이다.
<전업주부입니다만>은 몇 달 전 알게 된 책 <안녕하세요>의 저자인 '단어벌레'님의 두 번째 책이었다. 블로그에서인지 그 책을 알게 되어 서점에서 읽어 보고 사러 갔다가 래핑이 되어 있어 열어 볼 수가 없었다. 왠지 내 호기심을 무시당한 것 같아 살짝 토라진 마음으로 책을 다시 꽂아두고 왔던 기억이 있다.
아예 처음부터 주부가 될 거라던 친구와 주부가 되겠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주부가 되어 있는 본인의 이야기로, 다른 듯 같은 주부 이야기로 시작한다. 여자들은 피할 수 없는 주부의 운명으로 어떻게든 걸어들어가게 되나 보다.
잘 우러난 보리차처럼 깊으면서도 속이 들여다보이는 창호지 같기도, 탱글탱글 싱싱하지만 씻다보면 떨어져 나가기도 하는 포도알 같기도 한 글이다. 자칫 찢어지진 않을까 깨지진 않을까 끓어 넘치진 않을까 마음을 자꾸만 잡아 끌기도 한다.
편집자일 때도 있고 윤문작가일 때도 있는 나는, 좋은 글을 만나면 좀 당혹스럽다.
내가 이 책을 맡았다면, 이런 글에 어떻게 손을 댈 수 있었을까 싶어서다. 차라리 잘난 척 내지는 형식적인 글에 불과한 교수님들 글에는 고칠 게 많다. 심지어 국문과 교수의 글이라 해도 띄어쓰기나 맞춤법이 틀린 게 수두룩하다. 그런 글이라면 직업의식 발휘하며 즐겁게 일할 수 있는데. 과연 이런 글이 '일'로 주어졌을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망설이다가 우선 단숨에 읽어버렸을 것 같다. 그러고 나서 마음 그대로, 느낌 그대로 전달되는 작가의 솔직한 문체와 색깔에 여운을 느끼며 한동안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을 게 뻔하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나는 전업주부는 아니다. 그렇다고 고정적인 수입이 있는 어딘가에 소속된 회사원도 아니다. 그렇지만 내 일이 따로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낮과 밤이 바뀐 일상에 하루하루가 불규칙적이고 들쑥날쑥하여 뒤죽박죽인 시간들로 촘촘히 채워지고 있다.
무엇을 따로 해 볼 수도 없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아니어서, 마음이 아프기도 한, 어정쩡한 주부. 그런 내 존재가 눈물 나게 가여울 때가 종종 있다.
(하필 오늘 남편이 저녁을 굶어서 괜히 죄인이 된 것 같은 날이라니! 왜 내 밥은 내가 차려 먹는데 남편 밥도 내가 챙겨야 하는 건지.)
작가도 어쩌면,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길을 잃은 나와 비슷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도 없고 나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도 없는, 의무만이 가득한 주부(여자이자 엄마)의 삶이란 다 그런 게 아닐까. 삶의 패턴이 각자 다르고 속도도 다르고 모양도 다를 텐데, 왠지 내가 더 불행한 자리에 놓여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스스로 갇혀 내 꿈이 가로막히는 것 같은 느낌. 그러면서도 그 자리에 있을 때 행복하고 편안한 느낌. 달아나고 싶다가도 뒤돌아보면 다시 내 자리에 앉고야 마는.
한 가정의 주부 역할을 충실히 해내면서 책도 읽고 글도 쓰는 '단어벌레' 라문숙 작가의 글은 엄연히 남의 일기장이긴 하지만, 오롯이 나를 돌아보고 다시 꿈꾸게 만드는 위로의 편지였다.
그런 점에서 이 편지의 발신자는 독자들에게 그림으로, 선물로, 또 다른 편지로 답장을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
*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