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한 사랑 - 몸과 마음을 탐구하는 이슬아 글방
이슬아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평점 :
품절


  감상  

 

어떤 책은 읽고 나면 넘치는 감상을 자제하기 힘들다같은 책을 읽은 사람과 온종일 떠들고 싶고 나도 당장 무엇이든 쓰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한다나를 책상 앞에 불러다 앉히는 작가들내게는 이슬아 작가가 그렇다.

 

이슬아 작가의 오랜 팬이라면 그녀의 성실함과 꾸준함을 잘 알 것이다매일 에세이 한 편을 써서 구독자들의 메일로 보내는 <일간 이슬아프로젝트만 봐도 그렇다매일 쓰는 일만으로도 대단한데 매번 재밌고 뭉클하기까지 하다그녀는 자신을 생활체육인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체력 단련에도 꾸준하다오래 글 쓰는 몸을 만들기 위해서라고매일 무언가를 하겠다는 약속에 번번이 너그러워지고 마는 나는 그녀의 글을 읽을 때마다 재능보다 성실이란 말을 온전히 믿고 싶어진다나는 재능보단 성실에 더 가까운 사람이니까개인 블로그와 웹툰 연재, <일간 이슬아프로젝트를 거쳐 지금의 출판사 대표가 되기까지그녀의 쉼 없는 성장을 지켜본 열렬한 독자들에겐 그런 단단한 신뢰가 쌓여 있다. (그가 재능이 없다는 말이 아니고성실함과 꾸준함이 가져다주는 결과는 정직하게 드러난다는 것을 그녀를 통해 생생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성실한 작가이기도 하지만 세심하고 밝은 눈을 가진 글쓰기 선생님이기도 하다. <부지런한 사랑>은 그녀가 운영하는 글방에서 글쓰기와 삶과 사랑에 대해 서로를 가르치고 서로에게서 배우는 이야기다그녀는 글을 쓰기 위해 모여 앉은 이들의 몸과 마음을 풍부하게 채워줄 글감과 간식을 준비한다좋은 책에서 가려 뽑은 문장을 직접 읽어주기도 한다예열 과정을 정성스레 준비하는 작가의 세심함을 알아채면 내 손도 알맞게 덥혀지는 듯하다제자들은 먹고 떠들다 얼렁뚱땅 명문장들을 써낸다글을 다 쓰면 돌아가며 읽고 합평을 나눈다이슬아 작가가 교사로서 훌륭한 점 중 하나는 칭찬을 아주 잘한다는 것이다좋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만 왜어떻게얼마나 좋은지 설명하는 건 고도의 관찰력과 애정이 담겨야 가능하기 때문에 어렵다수신인이 따로 있는 칭찬과 조언들을 훔쳐 읽는 것만으로도 뭉클한 감동과 저릿한 자극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큰 묘미는 글방 아이들의 솔직하고 귀엽고 웃긴데 감동적인 글들이다혼자 킥킥대다가 문득기특하게 여기던 마음에 제동이 걸렸다함부로 기특히 여겨도 될까 싶었다나이주의가 팽배한 한국사회에서는 어색하지만 나는 작가가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기 때문에 마음이 동했다이슬아 작가는 아이들의 글을 책에 싣기 위해 일일이 연락하고 동의를 구하는 작업에 큰 공을 들였다고 한다당연한 일이지만 어리다는 이유로 당연한 절차들을 쉽게 생략하기도 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일련의 수고가 더 인상적으로 느껴진다또 큰맘 먹고 들인 비싼 원목 책상에 초등생 제자가 샤프로 흠집을 내기 시작했을 때, “있잖아나 이 책상 많이 좋아해.라고 말하는 식이다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고 덧붙인다부탁하듯 말하기먼저 알아챈 삶의 비밀을 가르치지 않고 그저 들려주기아이들에게 기꺼이 배우기우리 사회는 어린 존재들을 쉽게 무시하거나 배제하면서 질서를 만들어왔는지도 모른다우리 모두 빠짐없이 유년기를 거쳐왔는데도 어린 존재들을 존중하는 데 익숙지 않다

 

너는 커서 네가 될 거야아마도 최대한의 너일 거야.”

 

이다지도 멋진 말은 글방 아이들뿐 아니라 나에게도 유효한 칭찬이자 격려이다눈부신 성장을 이뤄내도 그것은 ‘최대한의 나일 뿐이다영영 나는 나로서만 살 수밖에 없으니까긍지와 한계를 동시에 일러주는 듯하다다행히 이 한계는 나를 조금 더 부지런한 방향으로 이끈다다른 이가 되어볼 순 없어도 다른 이의 자리에 잠시 서볼 수는 있다부지런히 읽고 쓰는 일을 통해 다른 존재에 대한 오해를 가까스로 줄일 수 있다는 것나에 대한 이해를 조금씩 넓혀갈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이 책에서 건져 올린 무수한 격려들이 얼마간 나를 부지런히 쓰게 해줄 것이다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한 그녀의 문장으로 글을 맺고 싶다. “남에 대한 감탄과 나에 대한 절망은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그 반복 없이는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기꺼이 괴로워하며 계속한다재능에 더 무심한 채로 글을 쓸 수 있게 될 때까지.” 


2020.11.12.


  만듦새에 대하여  

나는 초판을 사전 예약해 구입했다. 발행일을 기다리고 있던 중에 이슬아 작가님 에스엔에스에서 이 책을 위해 고르고 고른 수입 종이를 더 이상 구하지 못하게 되어서 초판 한정판은 그야말로 한정판이 되었다는 소식을 보았다. 2쇄부터는 다른 종이를 쓰게 되어 매우 아쉬우셨다는 ... 나는 종이를 잘 모르지만 그런 얘길 들으니 괜히 더 값어치가 느껴지고 귀하게 보인다. 
중간중간 아이들의 글을 사진 그대로 싣어두었는데, 생생한 연필 질감까지 느껴져서 재밌었다. 인용된 아이들의 문장들은 삐뚤빼뚤한 서체로 적혀 있는데 나중에 등장하는 고등학생의 문장은 정돈된 명조체로 적혀 있는 게 센스 있다고 느껴졌다. 
중간에 여수글방 아이들에게 쓴 편지들이 한 번에 실려 있는데, 그게 무려 83쪽부터 130쪽까지를 차지한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전에 일간 이슬아 구독할 때 봤던 내용이다. 중복되는 게 많아서 과감히 추리거나, 부록으로 뺐으면 어땠을까 싶다. 흐름이 끊긴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렇지만 이 많은 편지들 속 이 많은 칭찬의 말들은 꼭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말들이기 때문에 거의 겹치지 않는단 점은 놀랍다. 밝은 눈으로 관찰하고 애정을 가져야만 가능한 일이겠지. 



스물아홉 살인 지금은 더이상 재능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된 지 오래다. 꾸준함 없는 재능이 어떻게 힘을 잃는지, 재능 없는 꾸준함이 의외로 얼마나 막강한지 알게 되어서다.

재능과 꾸준함을 동시 갖춘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창작을 할 테지만 나는 타고나지 않은 것에 관해, 후천적인 노력에 관해 더 열심히 말하고 싶다. 재능은 선택할 수 없지만 꾸준함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10년 전의 글쓰기 수업에서도 그랬다. 잘 쓰는 애도 매번 잘 쓰지는 않았다. 잘 못 쓰는 애도 매번 잘 못 쓰지는 않았다. 다들 잘 썼다 잘 못 썼다를 반복하면서 수업에 나왔다. 꾸준히 출석하는 애는 어김없이 실력이 늘었다. 계속 쓰는데 나아지지 않는 애는 없었다. - P24

글쓰기 수업에서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너는 커서 네가 될 거야. 아마도 최대한의 너일 거야." 로맹 가리도 결국 로맹 가리가 되었다. 반복적인 글쓰기와 함께 완성된 최고의 그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그저 다음 주의 글감을 알려주며 수업을 마친다. 얼마나 평범하거나 비범하든 간에 계속 쓰는 아이만이 작가가 될 테니까. - P25

아이들이 소년의 마음으로 쓴 소년의 글을, 벗어나려고 할 때 나는 복잡한 심정이 된다. ‘아마도 너는 이제부터 더 깊고 좋은 글을 쓸 거야. 하지만 마음 아플 일이 더 많아질 거야. 더 많은 게 보이니까. 보이면 헤아리게 되니까.‘ 속으로만 생각한다. 그래도 살아갈 만한 삶이었다고. 태어나서 좋은 세상이라고 학생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런 세상의 일부인 교사가 되고 싶다. - P50

조이한은 내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학생이었지만 나는 글쓰기 교사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의 거짓말을 수호하는 과목은 글쓰기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 P54

어딘이 수업에서 했던 말을 돌아서서 까먹었듯이, 나도 돌아서서 잊을 말을 너무 많이 한 기분이었다. 재능이나 운명 같은 말은 무서워서 못 하지만 분명 꽤나 커다란 단어들을 소리내어 쏟아냈다. 그중 어떤 말은 아이들이 10년 뒤에도 기억할 거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울렁거렸다. 아무리 아니고 싶어도 글쓰기 교사란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어떤 식으로든 좋은 사람이어야 할 텐데. 아직 나는 그저 멋진 셔츠를 입은 사람인 것 같았다. - P166

우리는 그리움을 동력으로 글을 쓰기도 한다.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글쓰기는 사랑하는 것들을 ‘불멸화‘하려는 시도다. 그런 글은 필연적으로 구체적이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대상은 대부분 대체 불가능하다. 쉽게 대체 가능하다면 그리움에 마음 아플 일도 없을 것이다. 사랑을 하는 동안에는 그 대상의 세부정보를 낱낱이 알게 된다. 다른 존재와는 어떤 점이 다른지, 언뜻 흔해 보여도 왜 그 존재가 이 세상에 하나뿐인지를 배워간다. 그 존재는 이제 결코 흔해질 수 없다. 구체적으로 고유해졌으니까. 이 구체적인 고유함을 기억하며 쓰는 글에는 수많은 디테일이 담긴다. - P171

10대 초반의 아이들에게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따뜻한 격려를 해주었다. 이 시절에 내가 보낸 사랑과 용기가 20대 이후 한 사람이 혹독한 작가생활을 견디는 밑천의 일부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꼭 작가가 되지 않더라도 어떤 밑천이 될 것은 분명했다. 탄력 있는 마음을 구성하는 밑천 같은 것. 상처받지 않느 마음 말고 상처받더라도 곧 회복하는 마음, 고무줄처럼 탱탱한 그 마음을 구성하는 밑천 같은 것. - P201

실수 없이 하는 건 궁금해하는 일뿐이다. 네 인생의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냐고 물어보는 일뿐이다. 보여줄 수 있는 일기를 쓴 날들이 쌓이면 언젠가는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일기를 쓰게 될 테니까. 보여줄 수 없는 일기를 쓴 날들이 쌓이고 또 쌓이면 다시 모두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글을 완성하게 될 테니까. - P202

소설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데니즈가 슬펐다고 말하지 않는다. 고통스러웠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독자인 나는 데니즈의 눈에 쏟아져들어오는 봄의 장면을 선명히 그려볼 수 있다. 그 아름다움에 상처를 입을 만큼 취약해진 마음에 대해서도 상상해볼 수 있다. 아름다운 것을 볼 때마다 제일 소중한 사람이 옆에 없다는 사실이 몸서리치게 실감나서 날마다 새롭게 아플 것 같았다.

이 상상은 나의 몫이다. 내가 슬플 공간을 작가가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데니즈가 슬프다는 핵심 요약 문장을 간단하게 쓰지 않음으로써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가슴 아픈 이야기를 쓰더라도 작가가 먼저 울어서는 안 된다고 나의 글쓰기 스승은 말하곤 했다. 그럼 독자는 울지 않게 될 테니까. 작가가 섣부른 호들갑을 떨수록 독자는 팔짱을 끼게 될 테니까. - P208

난생처음 입 밖에 꺼내는 슬픈 이야기는 곧바로 유머가 되기 어렵다. 여러 번 말해보고 자꾸 다르게 말해볼수록 그 사건이 품은 슬픔의 농도가 옅어진다. 슬픔 속의 우스꽝스러움도 발견하게 된다. - P209

이러한 성취는 반복적인 글쓰기의 자기 치유 과정과도 닮아 있다. (…) 그 연습을 계속한 사람들은 자신을 지나치게 불쌍히 여기거나 지나치게 어여삐 여기지 않는 채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자기 연민의 늪과 자기애의 늪 중 어느 곳에도 빠지지 않고 이야기를 완성하여 독자와 관객에게 슬픔과 재미를 준다. 혹은 두 가지를 동시에 준다. 자신 말고 타인이 울고 웃을 자리를 남긴다. 그것은 사람들을 이야기로 초대하는 예술이다. 더 잘 초대하기 위해, 더 잘 연결되기 위해 작가들은 자기 이야기를 여러 번 다르게 말해보고 써본다. 먼저 울거나 웃지 않을 수 있게 될 때까지.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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