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와 함께 살라 - 어느 금요일의 여섯 시간에 일어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
맥스 루케이도 지음, 박상은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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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루케이도의 부활의 주와 함께 살라를 읽고

 

올해도 여지없이 부활절이 다가오고 있다. 의미 없이 고난주간과 부활절을 맞이했던 적이 많았다. 그래서 부활을 새롭게 공부해 볼 요량으로 루케이도의 책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아뿔싸! 너무 신변잡기적이다! 자기 이야기가 너무 많다! 성경 이야기는 어디 있지? 고상한 신학적 담론은 언제 나오지? 질문이 꼬리를 물고 있을 때, 생각이 났다. 맥스 루케이도는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선물해 주었던 너는 특별하단다.의 저자였다는 것을...

 

그렇다. 맥스 루케이도는 책을 이렇게 쓴다. 편안하게, 자연스럽게, 어렵지 않게……. 그가 제시한 허무, 실수, 죽음이라는 주제도 그렇게 낯설지 않다. 현대인치고, 허무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며, 실수를 매일 경험하지 않는 이가 누구겠는가? 무엇보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를 교묘하게 피하며 산다. 루케이도는 실오라기를 하나하나 풀어내듯, 서두르지 않으면서 이야기를 해 나간다. 어느새 나도 매료당한다. 내 이야기다. 내 허무와 실수, 그 끝에 기다리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금요일의 여섯 시간.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인생의 허무가 해결되었다. 그 십자가에서 흘려진 피로 인생의 실수, 정확히 말하면 죄와 허물이 씻음 받았다. 십자가에서 숨을 거둔 예수 그리스도, 그분 까닭에 죽음의 문제, 그 지독한 문제에 종지부가 찍혔다.

 

사실 난 근래 매우 허무했다.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론 알고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루케이도가 잘 표현한 것처럼, “깨어진 꿈의 철썩이는 파도에 얻어맞는 데 지쳤다.”(36) 그래서 무슨 일이든 하기가 힘이 들었다. 후회하고, 또 결심하지만 물 먹은 듯한 몸뚱이를 일으키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본서에서 루케이도는 이런 내 문제를 정확히 짚어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두려움에 휩싸인 채 다락방 안에 머물러 있는가? 함께 모이기는 해도 밖으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지는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문이 잠겨 있지 않아도 잠겨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락방의 허무. 약간의 믿음은 있을지 몰라도 열정은 거의 없다……당신은 그리스도에게서 등을 돌리지는 않지만, 그분을 향해 돌아서지도 않는다. 그분의 이름을 저주하지 않지만, 찬양하지도 않는다. 무언가 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함께 모여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 이유는 확신하지 못한다. 다락방의 허무. 잠긴 문 뒤에서 혼란에 빠진 제자들.”(100-101)

 

이 단락은 지난 몇 달 동안 보았던 어떤 글보다 강력했다. 내 모습이었으니까. 나는 부활의 주님의 방문이 필요했다. 허무의 벽을 뚫고 들어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찾아오심이 필요했다. , 그거였구나. 그때 제자들은 변화의 첫 단추를 잠그고 있었겠지. 곧 성령의 충만을 받을 테지. 시작은 예수님의 방문이었다. 부활하신 예수님. 사망을 이기신 분.

 

올해 부활절엔 모이기 힘들 것 같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부활의 주님을 더 소망하게 될 것 같다. 맥스 루케이도의 쉬운 문체 속에는 무겁지만 필수적인 답이 숨어 있었고, 난 그걸 찾았다. , 부활이 없었다면 허무한 인생이 어찌 감당했으리요. 어느 금요일의 십자가 처형이 없었더라면 인생의 실수는 영원히 기억되어 날 괴롭혔겠지. 6시간의 고통을 이기신 그분이 계시지 않았다면, 죽음은 현재적인 고통으로 날 옥죄였을 거야. 부활의 주님, 감사합니다. 당신의 부활이 나의 부활인 줄 믿습니다. 내게 찾아와 주세요. 매일. 매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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