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세계
막스 피카르트 지음, 최승자 옮김 / 까치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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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말 많은 세상에 던진다'. 올 가을에 열릴 어느 시민단체의 문화공연 제목이다. 너무도 많은 말들이 떠다니고 있어 혼란스러운 세상을 빗댄 말인 것이리라. 세상에 너무도 많은 말들이 떠다니고 있어 이 말이 저 말 같고, 어느 것이 옳은 말인지 그른 말인지 도무지 분간이 되질 않는다. 그러나 진정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는 말은 갈수록 적어진다. 매일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에 정신이 나갈 지경이다. 그 속에 우리의 존재가 묻혀버리고 작아지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 없다.

말은 많이 쏟아지는데 귀 기울여 듣는 이는 별로 없다. 귀 기울여 들을 말도 그다지 많은 것 같지 않다. 듣는 이가 없어도 서로들 아우성친다. 대답을 기대하지 않으면서 그저 말한다. 지껄인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 쌓여있는 말들을 털어버리기를, 쏟아버리기를 기다릴 뿐이다(177쪽).

그것이 과연 말일까? <침묵의 세계>의 저자인 막스 피카르트는 그것을 잡음어라고 한다. 사이비 말인 것이다. 언어는 성스러운 침묵에 기초하는데 그 침묵을 잃어버렸기에 공허한 사이비 말이 활개를 치는 것이다.

이 책 <침묵의 세계>는 침묵 속에서 나온 인간이 침묵의 세계를 어떻게 사유하고 경험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시간, 사물, 형상, 사랑, 조형예술, 역사, 말 등 이 모든 것들이 침묵에서 배태되고 무르익지 않을 때 우리의 존재는 오간 데 없고 공허한 지껄임만 떠돌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의 장르를 굳이 말하라고 한다면 산문집에 가깝다. 철학적 사유가 짙게 깃든 침묵에 관한 명상집이라 할 수 있다. 시적인 감성을 갖고 읽어야 하는 명상집이다.

침묵은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기 위해 달리는 고속도로가 아니다. 이리 구불 저리 구불, 울퉁불퉁 포장된 국도를 달리며 길가에 피어 있는 이름 모를 풀, 꽃들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것과 같다. 뜨겁게 내리 쬐는 태양이 지고 어스름히 저녁이 내릴 때, 그 어떤 근원적인 순간에 젖어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 침묵은 인간의 근본구조에 속하는 것(15쪽)이기 때문이다.

책은 서서히 발견된다고 한다. 속도의 시대, 무한질주의 시대에 그 동안 먼지 더미에 묻혀있던 이 책이 새롭게 발견돼 서서히 많은 사람들이 찾게되다니 참으로 다행이다. 저자는 침묵이 사라진 시대를 한탄했지만 인간은 침묵의 세계에서 나왔기에 그 근본구조를 잊지 않고 있는가보다.

이 책은 단숨에 읽어내려 내 지식의 창고를 넓히는 책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문제를 다루기에 술안주 삼을 요량으로 어쩔수 없이 읽어줘야 하는 그런 책은 더욱 아니다. 나희덕 시인의 말처럼 썩지 않는 빵을 먹듯이 조금씩 뜯어 먹어야 하는 책인 것이다.

세상 만물이 다 때가 있듯이 책도 때가 있다. 책도 나에게 맞을 때가 있는 것이다. 말은 많이 하는것 같은데 마음 한 구퉁이가 늘 허전할 때, 존재를 잃어버리고 겹겹이 허울 속에 쌓여 숨쉬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나를 발견하게 될 때, 불꽃처럼 살아왔지만 다 태워버려 내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그 때가 바로 <침묵의 세계>에 초대될 때인 것이다.

태양 아래 모든 것들을 뜨겁게 달구던 여름이 가고 겨드랑이에 슬그머니 기어드는 바람이 달게 느껴지는 계절에 '침묵의 세계'에 푹 젖어들어, 이 말 많은 세상에서 '나'의 존재를 발견하는 기쁨을 만끽하게 된다면 이 보다 더 좋을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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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결정의 원칙
라인하르트K.슈프렝어 / 생각의나무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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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타자와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나를 비교하여 정의하고 내 행복과 만족감을 계량화한다. 또한 사회적 관습, 제도에 나를 위탁한 후에야 안정감과 귀속감을 느낀다. 그것의 규모와 모습, 성격이 어떠하든지 간에 수없이 많은 '우리' 속에 나를 집어넣어 그 조직이 원하는 관습과 규범을 따라야만 비로소 안심이 된다. 내 행동의 정식을 '나' 밖에 있는 것에 맞추기에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잊고 살아가는 것이다.

라깡이 말하는 가짜 '자아'에 휩싸여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욕망을 사회적 관계 속에서 우회적으로 드러내거나 은폐하느라 신나고 즐겁게 살지 못하고 피곤하고 지루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아니 살아진 것이다. 내 인생에 벌어진 모든 일들에 대한 결정은 진정 내가 한 것이 아니다. 내 행동의 모든 결정을 외부에서 찾았기에 내 존재는 늘 불안하다.

이 책 <자기결정의 원칙>은 우리가 살면서 자기 인생의 주도권을 상실하게 되는 여러 상황을 이야기 한다. '칭찬받는 것에 익숙해 지는 것'이나 '모범을 따르는 것'이 그것이다. 사람이 자기 고유의 동기나 의도로 무언가를 행하기보다는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칭찬'을 통해서나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규범과 관습에 따르게 될때 자기 인생의 주도권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그리고 타인을 존재로 느낀다면 그것이 칭찬이든, 비판이든 무슨 상관이랴? 그러나 우리는 상대를 존재가 아닌 그가 처한 사회적 위치, 좌표로만 인식하기에 칭찬이 그렇게도 필요한 것이다. 내 존재는 많은 '허울'을 뒤집어쓰고 살아가기에 그 '허울'에 걸맞는 칭찬을 들어야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 존재가 뒤집어 쓴 이 '허울'은 나를 '성공'에 길들여지게 하거나 혹은 실패의 늪에서 괴로워하며 주변의 상황을 탓하는 '희생자 스토리'에 젖어 살게 한다.

영화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서 주인공 미뉴엘라는 성공한 여배우에게 말한다. '성공에는 맛과 향기가 없어요. 성공에 길들여진 사람은 존재를 느끼지 못해요'라고.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존재를 느끼기 전에 먼저 가치나 개념을 사고 했기에 인생의 주인으로서의 내 모습을 잃어버리고 재미없게 살고 있는 것이다.

저자인 슈프렝어는 말한다. 모든 인간은 유일하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려고 하는 것, 다른 사람의 판단으로부터 독립해 '너 자신이 되라'고 한다.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유일무이한 너의 재능이 태양처럼 빛을 발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우리를 격려한다.

내 존재를 먼저 느낄 때, 그 곳에서 즐거움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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