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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여인의 키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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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여인의 키스를 알게 된 것은 영화를 통해서였다. 1985년 윌리엄 허트와 라울 줄리아가 열연했던 이 영화는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이미 게이 영화의 고전으로 평가된지 오래다. 아마도 이 영화를 통해서 성적인 편견과 차별이 심한 우리나라에서도 동성애에 대한 따뜻한 시선들이 생겨나지 않았나 싶다.

작품의 공간은 감옥이다. 감옥은 현실사회의 질서에 부적응하거나 혹은 반항하는 이들을 격리시키는 장소다. 감성적인 동성연애자 몰리나와 냉소적인 마르크스주의자 발렌틴. 한 사람은 소년을 유혹하여 성적인 금기를 파기한 파렴치한이고 한 사람은 정치적 질서를 교란한 게릴라이다.

이들이 비좁은 감방 안에 함께 갇혀 시종일관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소설은 전개되어 나간다. 사회적으로 소수자라는 것을 제외하면 이들의 지향점은 다르다. 몰리나가 바라는 것은 사랑의 실현이지만 발렌틴에게는 무엇보다도 혁명이 중요하다

감옥이라는 폐쇄된 공간의 설정은 매우 탁월했던 것 같다. 지향하는 바가 서로 다른 두 사람은 쉽게 갈등을 일으킬 여지가 크고 그 갈등 끝에 서로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 스며들 수 있기 때문이다. 몰리나는 감옥의 지루한 생활을 견디기 위해 발렌틴에게 영화 이야기를 들려준다. 발렌틴 역시 따분한 일상보다는 몰리나의 영화 이야기에 흥미가 있다.

몰리나의 영화 이야기는 실은 발렌틴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기도 하다. 키스를 하면 표범으로 변하는 여인(몰리나의 투사)의 이야기는 곧 자신의 심리적인 불안감을 드러내는 것이며 부상당한 장교(발렌틴의 투사)와 못생긴 하녀(몰리나의 투사)의 사랑 이야기 역시 몰리나의 소망을 내비친 것이다.

몰리나는 이러한 자신의 사랑을 실제에서도 표현할 기회를 찾는다. 교도소 당국에서 발렌틴에게 약물로 끊임없이 고문을 가하자 몰리나는 성심을 다해 발렌틴을 돕는다. 침대시트를 버려가면서조차 발렌틴의 설사를 치워주기도 하고 그의 둔부에 묻은 오물을 손수 닦아주기도 한다.

결국 발렌틴은 몰리나로부터 진실한 애정을 느끼게 되고 게이인 몰리나와 관계를 맺게 된다. 발렌틴은 동성애자라는 편견을 걷고 몰리나를 애정으로 받아들였고 오히려 몰리나에게 동성애자라고 해서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충고까지 한다.
비로소 발렌틴도 게이가 성적 소수자일뿐 일반인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몰리나 역시 발렌틴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몰리나는 가석방 이후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랑하는 발렌틴의 말을 그의 동료에게 전하기 위해 접선장소로 나갔다가 그곳에서 목숨을 잃는다.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는 단지 소수의 게이나 레즈비언들 문제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따라서 사회의 질서를 따라야 한다. 그 질서는 다수의 합의 하에 이루어진 질서다.

소수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억압되고 감금되어야 한다(?)는 편에 손을 들어주어야 할지, 아니면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다. 인간은 성적으로 자유롭다. 성 정체성 역시 인간의 기호일 뿐이다(?)에 손을 들어야 할지. 아마도 자유와 인권을 중요시하는 나라에서 동성애에 대한 시각이 온건한 반면 강력한 사회 질서를 유지하려는 나라에서 동성애가 냉대를 받는 것은 이러한 까닭이 아닐는지 싶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의 사랑은 그 대상이 어떠하든지 간에 아름답다라는 것이다. 온갖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고 서로 사랑하는 이들을 보면 가슴 뭉클한 감동을 얻는 것은 동성애자건 이성애자건 간에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땅의 온갖 편견과 차별 속에서도 꿋꿋이 서로 사랑을 지켜나가는 동성애자들 역시 한없이 아름답고 인간적이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몰리나와 발렌틴의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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