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최후의 고백: 나의 누이와 나
이덕희 옮김 / 작가정신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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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죽은 사람의 유고를 뒤척여 보는 일은 설레임과 더불어 미세한 떨림을 일으킨다. 최후의 기록에는 대개 숨길 수 없는 진실이 담겨 있기 마련이고 그것은 우리들이 지난날 죽은 이에 대해 알고 지냈던 기존의 사실들을 전복시키는 마력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먼지로 가득 찬 서랍을 열고 비밀스런 노트 한 권을 조심스럽게 펼쳐보는 순간에 그 느낌이란. 만약 그것이 한 세기의 시작을 알리고 한 세기의 철학을 지배하며 지금까지도 강력한 영향력을 과시하는 사상가의 것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1900년. 19세기는 마감되었고 니체는 죽었다. 지난 8월 25일은 그가 죽은 지 만 100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때 나는 비로소 <니체-최후의 고백>이란 책을 발견했다. 20년 전 이덕희 씨의 번역으로 <나의 누이와 나>로 소개된 이 책이 작년에 새로운 판본으로 다시 출판되어 나온 것이었는데 여지껏 출판소식을 몰랐다가 도서관 서가에 꽂혀 있는 것이 우연히 눈에 띤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니체의 마지막 유고. 첫 페이지를 넘겨볼 때 그 떨림과 두근거림이란. 그리고 연이어 전해지는 전율과 경악이란.

니체 철학은 페미니스트의 비판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곤 한다. 그의 여러 저서 속에 '여자는 고양이처럼 채찍으로 다스려야 한다', '여자는 아직 동물성을 벗어나지 못한 존재다'라는 직설적인 어투가 고스란히 쓰여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니체는 낭만적 사랑에 이끌려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하는 나약한 덕(德) 역시 비판한다. 그가 낭만파 음악의 거장인 바그너와 결별한 까닭은 여기에 있었다.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는 여성성과 낭만적 사랑을 스스로 포기해 버린 니체. 그의 생리적 오기는 내게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이제 그가 남긴 마지막 유고에서 그 미스테리의 실체가 드러난다. 근친상간. 니체는 엄격한 홀어머니 밑에서 사랑에 목말라 하는 누이 엘리자베트에게 처음으로 동정을 잃게 된 것이다. 한편에는 엄격한 기독교 윤리와 도덕이, 한편에는 거스를 수 없는 누이 엘리자베트의 손길이 그의 정신을 쉼없이 갉아먹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와 헛된 망령 사이에 존재하는 튀기(159쪽), 하나님이 되려는 욕망과 벌레로 머물러야 하는 숙명 사이의 투쟁(312쪽). 이런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니체가 선택한 길은 두 가지 모두를 배반하는 것. 그는 기독교의 윤리와 여성의 사랑 모두로부터 자유로운 길, 줄곧 주장하던 초인의 길, 영원한 비존재(Not-Being, 330쪽)로서 그 스스로 신성을 획득할 수 있는 초인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로서의 삶이 아닌 짜라투스트라 니체의 탄생. 그것은 한층 더 진화된 인간 정신으로서, 신성한 아름다움의 현신으로서 새로운 세기의 시작을 알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근친상간이라는 금기, 봉인된 우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니체의 철학은 이후 그의 말마따나 현대철학의 신화가 된다. 하이데거의 실존, 푸코의 포스트구조주의, 데리다의 해체, 들뢰즈의 차이, 이밖에도 아도르노, 하버마스, 알튀세르 등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비롯한 20세기 지성계를 이끌었던 대부분의 철학과 사유는 짜라투스트라 니체의 후광 속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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