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잘한다는 것 - 일에서도 삶에서도 나의 가치를 높이는 말하기의 정석
정연주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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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 아나운서가 쓴 책 <말을 잘한다는 것>을 읽어보고 깜짝 놀랐다. 이 책이 말 잘하는 사람이 글 잘 쓰는 일은 드물다는 내 경험칙을 철저히 빗나갔기 때문이다. 이렇게 깔끔한 문장, 정확한 표현,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지식이라니.

요즘 대단한 베스트셀러인 어떤 책을 읽으면서 무슨 책을 이따위로 편집했나 싶어 읽을 때마다 회원들과 욕을 바가지로 하면서 불평하고 있다. 시작한 책이니 끝을 내야지 하고 억지로 읽을 뿐 이미 이 책을 낸 출판사와 편집자는 땡볕에 손들고 벌서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독자가 읽고 이해하기 쉽게 문장을 매만져 공을 들였다기보다는 독자를 오히려 전혀 배려하지 않고 전문 지식을 무슨 논문을 그대로 베껴 넣었나 의심이 될 정도로 다듬지 않은 채 그냥 넣어두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교정 원칙도 지키지 않은 부분들이 많아 읽으면서 회원들이 오탈자를 찾고, 내용을 ‘의논’해가면서 읽으니 말 다 한 거 아닌가.

어릴 적 아나운서를 꿈꾼 적이 있다. 내 목소리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하면서 카세트테이프에 내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어보곤 하면서 내 목소리에 스스로 도취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새 이 꿈 저 꿈으로 갈아타며 결국 말하기의 세계에 진입하지 못하고 글쓰기의 세계에 깊이 들어와 있다. 그런 나에게 <말을 잘한다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할까 싶었지만 읽어보니 왜 내가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말이 많아질 때가 많은지, 내가 즐겁게 해가고 있는 낭독모임이 왜 그렇게 즐거운지, 가끔 하게 되는 강의에 왜 ’협상의 태도‘로 임해야 한다는 건지 알게 된다.

나는 그림책 팟케스트를 운영하면서 한 달에 한 번씩 녹음하고 편집하는 작업을 한다. 그때마다 나나 출연자들의 말에서 간투사, 반복하는 말, 끝을 흐리거나 매끄럽지 않은 말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에 놀라곤 한다. 그런 부분들을 일일이 잘라내느라 녹음 분량의 2~3배의 시간이 걸리는 건 물론이다. 그만큼 ‘말하기’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한 번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다시는 주워 담지 못하는 것이다 보니 몇 번이고 다듬고 고쳐서 최종의 결과물로 출간하는 책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어렵다는 말을 우리는 너무 쉽게, 함부로, 생각 없이 내뱉고 산다. 장마가 한창이던 지난달 겪었던 일이 생각난다. 아들의 이사를 도우러 갔다가 전 집주인의 막돼먹은 언사에 분노했었다. 말끝마다 ’짜증 나‘를 달고 다니며 어느 한 가지도 양보하지 않으면서 일방적으로 오라 가라 해서 안 그래도 비 맞으며 하는 이사가 더 힘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하나 따져가며 항의한 뒤 빈말로라도 사과를 받아냈지만, 그 뒤로도 한참을 그 여자 목소리가 귀에 맴맴 돌아서 괴로웠다.

내가 쓰는 어휘 하나로 나의 세계관,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드러난다고 했다. 그런 정 아나운서의 말마따나 ‘입 밖으로 나가는 모든 말은 오랜 시간에 걸쳐 내 안에 뿌리내린 생각과 가치관이 피워낸 한 송이 꽃과 같은 것’이다. 또 '풍성한 꽃다발을 보여야 할 때도 있지만 곱고 탐스럽게 피워낸 몇 송이로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효율적인 말하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 봐야 하고.

얼마 전 소프라노 조수미가 일본인들이 자랑하는 천재 소프라노 유카씨에게 레슨하는 동영상을 봤다. 조수미는 압도적인 역량 차이를 보여준 것은 당연하고, 순식간에 상대의 부족함을 짚어내고 코칭함으로써 상대의 역량 최고치를 끌어냈다. 그런데 내 눈에는 조수미의 전문성도 전문성이지만, 상대가 자존심을 다치지 않도록 따뜻한 말과 친절한 표정, 다정한 행동을 보이는 모습이 더 눈에 띄었다. 더불어 코칭을 받는 일본 소프라도 가수의 겸손함과 진심으로 배우려는 태도도 참 보기 좋았다. 좋은 결과는 이렇게 말하는 이와 듣는 이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경쾌한 핑퐁에서 나오는 것이란 걸 보여준 사례다(https://youtu.be/Lt-dEoR8uT0).

책에는 영어로 사회를 보는 큰 행사에서 인사말을 꺼내는 순간, 아기 울음소리로 갑자기 장내가 소란해졌을 때 정 아나운서는 즉흥적으로 ’Ladies and Gentleman, and Babies!‘라고 인사해서 모두가 빵 터졌다는 일화가 나온다. 단 몇 마디로 순식간에 환한 분위기로 긴장과 당황, 난감의 순간을 넘어가는 순발력이 아무에게서나 나오는 게 아닐 터. 별생각 없이 던지는 내 말 한마디가 나쁜 돌이 되어 다른 사람을 때리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고, 내 말소리가 ’아름답기만‘ 할까 봐 두려워하며 삼가는 정연주 아나운서를 응원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내가 실망하지 않은, 진심이 담긴 글로 멋진 책을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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