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레혼
새뮤얼 버틀러 지음, 한은경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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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갈수록 작아지고 있다. 지구가 작아진다는 것이 아니라 정보통신이나 교통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이동이나 소통이 점점 쉬워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세상은 조금씩 획일화 되어간다. 세상 사람은 대부분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의사의 말이 반드시 건강을 찾아줄거라 믿고 따른다. 미국에 사는 사람이나 한국에 사는 사람이나 똑같이 시간이라는 인위적인 수치에 삶을 맞추고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 아프면 병원에 가고, 시간을 지키며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 되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당연한 일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는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살게 되었다.

새뮤얼 버틀러는 1872에레혼에서의 무용담을 발표했다. ‘에레혼nowhere를 거꾸로 뒤집어 만든 이름이다. ‘에레혼은 우리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 나라이다. ‘에레혼에서는 질병을 죄악이자 부도덕으로 여긴다. 몸에 질병이 생기면 죄인이 되어 재판을 받고 처벌당하게 된다. 반면 부도덕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는 마치 우리 세상에서 병에 걸린 사람을 대하듯 한다. 이웃 사람들은 부도덕에 대해 위로의 말을 전하고 빠른 시일 내에 회복하길 기원한다. 부도덕한 죄를 지은 사람들은 교정관(에레혼에서 교정관은 마치 우리 세상의 의사들처럼 강력한 사회적 권위를 갖는다.)이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 매우 불합리한 처방을 내 놓아도 한번 의심하는 법 없이 철석같이 믿고 따른다.

우리 세상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당연히 축복받아야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에레혼에서는 영혼 불멸한 존재였던 태어나지 않은 자가 권태로움을 견디지 못해 세상에 사람이 태어난다. ‘태어나지 않은 자는 태어남으로써 유한한 삶을 살아가게 되고 결국 죽게 되어 소멸한다. 즉 태어남은 소멸로 가는 시작, 즉 저주인 것이다. ‘태어나지 않은 자는 태어나기로 결심하고 결혼한 사람 곁을 맴돌며 끊임없이 고문한다. 그들은 결혼한 부부가 보호해준다고 동의했을 때 고문을 멈추고 잉태된다. 그래서 에레혼에서는 부모와 자식관계는 원수와도 같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출생증서를 만드는데, 아직 이성이 없는 아이를 억지로 꼬집어 울음으로 그 동의를 대신하는 이 출생증서는 아이가 나라의 법에 따라 책임을 지며 아이의 잘못은 부모에게 책임이 없으며 그를 죽일 권리가 부모에게 있다는 내용이다.

가 에레혼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갈등은 가지고간 시계에서 비롯되었다. 에레혼에는 기계가 없다. ‘가 에레혼에 도착하기 500년 전 에레혼에서는 기계를 모두 파괴했다. 에레혼에서 기계를 파괴하는 혁명이 일어난 이유는 기계의 책이라는 책 때문인데 요약하자면 기계가 계속 발전하다 보면 어느 순간 기계에게 자의식이 생길 것이고, 기계가 스스로 생식하게 될 때 인간은 오히려 기계의 노예가 될 것이라는 내용의 책이다. 그래서 기계를 소지하는 것 자체가 죄악이고, 기계는 오직 박물관에서만 망가진 모습으로 만날 수 있다.

우리는 에레혼에서의 여정을 통해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없다면 사회가 붕괴될 것이라고 생각한 많은 당연한 것들이 정 반대로 되어 있는 에레혼은 나쁘지 않게 유지되고 있다. 모든 기계를 없애도 부족함 없이 살아가고, 세상 밖으로 나가 교역하지 않고 숨겨져 있어도 나라를 유지할 수 있다. 물론 에레혼 사람들도 우리가 볼 때 불필요해 보이는 체제를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유지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음악은행이라고 할 수 있다. 에레혼에는 음악은행이라는 체제가 있고 관련 규범이 있는데 는 그때도 지금도 이 체제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에레혼에는 두 가지 통화가 사용되는데, 그 중 음악은행의 통화는 상업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그렇지만 음악은행에 계좌를 계설하고 저금을 하면 사회적으로 칭송받는다. 마치 우리세계에서 교회에 헌금을 내듯 에레혼 사람들은 음악은행에 예금을 한다.

처음 는 돈을 모으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탐험에 용기를 냈을 때 믿지 못할 경험과 아내를 얻을 수 있었다. 에레혼은 우리 세상을 거꾸로 뒤집어 볼 기회다. 도덕과 종교와 사회를 아무 의심 없이 그대로 수용한다면 우리는 그 속에서 그럭저럭 살아갈 수는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들을 의심하고 잘못된 도덕, 종교, 사회에 대해 반박하고 하다못해 열기구를 타고 탈출하기라도 한다면 새로운 세상이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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