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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칼 4
공명인 지음 / SKY미디어(스카이미디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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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 3권에 발발한 임진-정유 전쟁이 본격화되는 시기입니다. 역사대로 조선군은 연전연패를 당합니다. 그런 가운데 신구려군은 그들의 뒷머리를 후려치는 식으로 승리를 거둡니다. 설명이 이런 식이라 신군(신구려 제국군)이 무슨 얍삽한 방법이라도 쓰는 것 같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신군과의 협력을 조선이 거부한 것입니다. 그러니 신군은 별도로 혹은 의병들과 함께 작전을 감행할 수밖에 없는 처지지요.  

그런 가운데 선조는 원역사대로 몽진 길에서 개성 백성들에게 돌팔매를 맞습니다. 이런 현상은 황해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고요. 선조는 이에 앙심을 품고 황해도에서 가혹한 착취를 감행하게 됩니다.  

어떻든 선조는 윤성진이 한양을 탈환한 것도 모른 채 끝내는 신구려국의 도시가 된 평양으로 몽진을 떠납니다. 만 2년 반도 안되는 세월이지만 평양은 이미 조선의 평양이 아니었습니다. 대동계의 중간자적 역할이 두드러진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평민으로 보이는 식당 직원은 조선의 정승인 정철에게 당당하게 자기 할 말을 합니다. 

심지어 민국 출신의 구미영 대령은 말실수에서 비롯되기는 하지만 정철에게도 모자라 선조에게까지 면박을 줍니다. 사실이기는 해도 정치적 고려 등으로 감히 말하기 어려운 사안인데, 구미영은 까밝히기를 서슴치 않았지요. 4권에서 구미영과 정철의 대립은 가장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구미영은 자기 노릇도 못하는 '노털' 정철을 경멸하고, 정철은 사사건건 바득바득 대드는 '계집' 구미영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기는 쪽은 역시 힘이 있는 쪽이지요. 

음력 7월 초에 드디어 명군이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역사기록에 있는대로 조승훈과 3000명의 명군은 무능하면서도 횡포를 일삼는 그런 '당나라' 군대입니다. 조승훈은 한반도 북부가 신구려국의 치하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저 조선 땅에 있으니 조선의 영토라고 여길 따름입니다. 원래 역사대로라면 거드름을 피우고 행패를 부려도 말릴 사람이 없지만 신구려국에서 행패를 부린 대가는 매우 비쌌습니다.  

인권을 중요시하는 신구려국 수뇌부들이 조승훈의 짓거리를 가만 두고볼 리 없습니다. 특히 구미영은 조승훈을 '돼지 새끼'라고 부르며 두들겨 패는가하면 강간을 저지른 명군 몇을 즉시 사살하는 단호함을 보여주지요. 윤두수, 정철 등이 말린답시고 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몰매나 맞지 않으면 다행인 상황입니다. 구미영은 이들의 모화사상에 더욱 화가 나고야 맙니다. 

백성들에게 '미륵'이라 불리는 총령 김정신은 3권에서의 부진(?)을 만회(!)라도 하려는듯 단호하게 결단을 내립니다.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이 침해당한다면 반드시 응징한다는 원칙을 분명하게 한 것입니다. 현실 정치에서는 공허한 구호가 되기 쉬운 이 원칙이 소설에서나마 실행되는데 이로 인한 카타르시스는 결코 적지 않습니다. 조승훈을 비롯한 명군 3,000은 속절없이 죽음을 당하고 말지요. 원역사와는 획기적으로 달라진 대명정책의 첫 걸음이기도 합니다. 

민심 장악에 성공한 신구려국의 국세는 계속 확장일로를 달립니다. 단적으로 말해 조선에서 신구려로의 인구 유출이 박차를 가하는 상태였지요. 자신들을 버리고 달아난 선조와 자국 영토를 지켜내고도 모자라 조선 영토까지 힘 닿는 대로 지키려 애쓴 김정신 총령과 신군 수뇌부들이 같을 리 없습니다. 심지어 꼬박꼬박 적군들에게도 밥 챙겨주는 신군은 왜군들에게조차 신임을 얻습니다.  

신군은 명분 때문에 보류했던 황해도와 강원도 절반의 합병을 단행합니다. 강원도는 전란으로 인해 방치된지 오래이고, 황해도는 앙심을 품은 선조 정권의 수탈이 도를 넘었기 때문에 합병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지요. 음모를 꾸미는 쪽은 언제나 조선인데 결과는 신구려국이 좋게 나오니 이를 그저 소설상의 일로만 보기에는 석연치 않습니다. 역시 선조 정부가 민심을 크게 잃었다고 보아야 옳겠지요. 명분과 힘이 갖추어진 대항세력만 있다면 선조 정부를 옹호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런 점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몰라도 선조 정부가 신구려국을 눈의 가시로 여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게다가 자기네 땅을 농사지어야 할 농민이나 노비가 모두 신구려국으로 탈출하니 급기야는 양반들과 중인들로 구성된 10만의 군사가 동원됩니다. 율곡 이이의 10만 양병설이 기괴한 형태로 실현된 것이지요. 하지만 굶주리고 성난 민심을 깔아뭉개는 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원균은 망신을 당하고 권율도 퇴각했으며, 도망의 명수 이일은 아예 권율보다 먼저 달아났지요. 

급작스럽게 불어난 인구에 대처하기 위해 김정신 총령 등은 회의를 한 후 이들 난민들을 서간도, 동간도, 북간도, 연해주 지역으로 보냅니다. 한반도 본토보다 농사짓기가 쉽지는 않지만, 넓은 농토를 가질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기꺼이 이주를 하게 되지요. 신구려국의 실효적인 지배가 더욱 본격화되는 상황입니다.  

한편 김정신, 윤성진, 박혜신, 유정 등의 신구려 수뇌부는 명국 정벌을 위해 계획을 수립합니다. 역사에 밝은 박우진 장군을 비롯해 임꺽정의 아들인 임백손과 그 의형제들을 명국 본토로 보내어 정보를 수집하지요. 1593년 3월에 임백손 일행은 귀환합니다. 

원 역사에서는 임백손 일행의 귀환 시점에서 이 충무공의 웅포해전이 끝나는 시기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조선의 전쟁에 개입했을 이여송은 1월에 패배를 당하고 권율이 2월에 행주에서 승리를 거둘 것이지만, 이 책에서는 패배와 승리를 반복하는 장수가 되었습니다.  

어떻든 공명인 작가는 임백손 일행을 통해 무림의 허황됨을 까밝혀버립니다. 한국 구무협(이른바 1세대 무협)에서 한껏 부풀려놓은 이미지를 원래대로 되돌린 것이지요. 구무협의 어느 작가가 '무협은 환타지다'라는 명제를 정면으로 부정한 것입니다. 그러기는 커녕 매우 사실적으로 무림과 무뢰의 구별은 사실상 없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고, 실제 역사도 이에 가까운 형편이지요. 

굳이 민족주의를 따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공명인 작가의 까밝히기는 자칫 중화주의로 흐르기 쉬운 구무협의 폐단을 배제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실제로 구무협 혹은 이 방식으로 쓰여진 무협소설은 중화주의를 부추긴다는 전형적인 페단이 있습니다. 짱꼴라를 한민족과 자꾸 동일시하려는 중화주의 바이러스에 걸리기 쉽게 만들지요. 이런 것을 공명인 작가는 사실성에 입각하여 산산조각내고맙니다.  

과연 신구려국이 조선을 어떻게 합병할 것인지? 대명 전쟁은 어떤 방식으로 수행할 것인지 흥미진진해집니다. 5권을 기대해봅니다. 2011년에 나오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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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칼 3
공명인 지음 / SKY미디어(스카이미디어)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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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에서는 임진-정유전쟁에 대비하여 이에야스를 설득, 회유하고자 조직한 특공대들이 일본에 침투합니다. 총체적인 스토리로는 매우 간단한 과정이지만 그 속에 담긴 에피소드 들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이에야스는 신구려군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굴복하고 14세의 히데타다를 보내려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잠시나마 역효과를 부르지요.  

신겐이나 노부나가 등이 숱하게 저지른 조약 위반을 보고 배운 이에야스가 자기를 굴복시킨 윤성진을 믿게 하기 위해 자기의 후계자인 히데타다를 볼모로 제시합니다. 하지만 윤성진은 화를 내고 이를 단호히 거절합니다. 도덕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힘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 것이지요. 그것이 도리어 이에야스를 감동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힘과 도덕 모두에서 우위를 보인 윤성진에게 이에야스는 진심으로 굴복합니다. 

그럼에도 이에야스는 히데타다를 신구려국에 보내기로 마음먹습니다. 50세의 이에야스가 옹고집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일본인 특유의 '배워오기' 심정이 작동한 탓이지요. 윤성진은 이를 나무라지 않고, 이에야스의 진심을 받아들입니다. 33세의 윤성진과 50세의 이에야스 간의 휴먼 다큐먼트는 의외의 잔재미를 줍니다. 이런 윤성진과 이에야스에게 편승하여 장래에 있을 국물을 얻어먹으려는 가신의 모습도 쓴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이런 가운데 여군 중대장 4인조 중 불행한 과거를 지녔던 25세의 김간난 소령이 전사합니다. 평민에서 천민으로 그러다가 중대장인 소령으로까지 출세하는 김간난의 삶은 왜적도 왜적이지만 주자학 체제가 그리고 그 주자학 체제로 무장한 선조 정권이 얼마나 악한지를 단적으로 나타내줍니다. 왜적과 선조 정권이 존재하는 한 억울한 희생을 당할 여인들은 점점 더 늘어날 수밖에 없음을 절감시키는 장면이지요. 경우가 다르지만 정예신도 이러한 희생자 중 하나였으니까요. 

김간난 등의 전사자와 곽재우, 이범석 등의 부상자들이 생긴 가운데 윤성진, 유정 등의 특공대는 이에야스를 포섭함으로써 침략군을 30만에서 15만으로 줄이는데 성공합니다. 물론 전쟁 자체를 막을 수는 없었지만 이것만해도 신구려국이 거둬낸 괄목할만한 성과입니다. 

한편 왜군의 침입 사실을 접하게 된 조선의 선조 정권은 신구려국의 제의를 거절합니다. 대 일본전이 가장 급한 발등의 불이건만 선조 정부는 정권의 안위를 제일로 쳤으니까요. 실제로 8도 중 2도 반밖에 안되는 신구려국으로 2년이 채 안되는 기간에 인구 유출이 심하게 이루어지는 경험을 했던 그들입니다. 신구려국이 못마땅했을 것은 당연하지요. 다만 '국리민복'이라는 측면에서 어느 나라가 힘을 쓰는지는 너무나 뻔한 이치기 때문에 이를 막을 뾰족한 방법도 없습니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조선의 기득권 층은 신구려국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리 없고, 윤두수, 윤근수, 이산해, 김명원, 이일 등은 암수를 써서 신구려국을 도모하려고 합니다. 문제는 신구려국이 '건국 초기'인데다가 시대 자체가 난세인만큼 유민들이나 노비 등 실업자가 되기 쉬운 사람들을 '군대'로 흡수할 수 있는 체제라는 데 있습니다. 힘을 얻게 되는 그들이 누구에게 총부리를 겨눌지는 너무 뻔한 노릇이지요. 

게다가 신구려군 수뇌부는 원역사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할 사람들을 이미 자군의 간부로 포섭한 바가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의병장들로 내려갔으니 의병들 태반이 신구려군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원역사에서처럼 의병이 무력화되거나 관군으로 (사실상) 강제편입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듯합니다. 

만 2년 반 정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런 정도의 세월 치고는 변화가 매우 빠르게 진행된 듯도 싶지만 조선 사회가 여태까지는 단순했던만큼 소설적으로 그다지 무리는 없어보입니다. 다만 앞으로 훨씬 복잡해질 사회체제나 영역의 확대를 얼마나 설득력있게 설명할지는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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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칼 2
공명인 지음 / SKY미디어(스카이미디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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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에서는 1권에 이어 민국 출신의 적근산 부대원과 조선 출신의 인물들이 혼인을 치른 이후의 스토리, 즉 이들의 혼인 생활을 단편적으로나마 묘사하고 있습니다.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지극히 불행한 삶을 겪을 김덕령과 이몽학이겠지만 배우자들로 인해 행복을 만끽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들의 관계는 개인적으로는 물론 '정략적으로도' 성공적인 사례입니다.  

이들의 혼인은 민국인들과 조선인들의 성공적인 융합으로 인해 신구려 국민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거듭났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 중에서도 박혜신의 경우는 매우 이색적입니다. 배현정 중령이나 김치상 대령과는 또 다른 경우지요. 

일단 김치상 대령부터 살펴보면 그래도 그의 경우는 남정네인만큼 당시 여권이 낮았던 조선의 실정으로 보아 그다지 무리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면적인 애정 권력(?)은 소설에서 정여립의 딸로 설정된 정예신이 쥐고 있는 상태지요. 그렇다고 그것을 이용해 남편을 좌지우지한다기 보다는 공사나 대소 구별을 확실히 하는 조선 여성의 기질이 부부관계에서도 투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가장 이색적인 사람은 2성장군 박혜신 소장입니다. 이성식 장군이 아쉬워할 정도로 늘씬한 신체와 강인한 기질을 아울러 지닌 여성의 몸값(!)은 매우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김정신의 경우처럼 그녀도 혼인 이전에는 일절 다른 남성과의 성관계가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 어느 대체 역사소설을 보아도 민국출신 여성이 조선의 남정네와 혼인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케이스입니다. 

외강내유의 김정신, 배현정과 달리 외유내강의 정예신과 가까운 박혜신이지만 그 형태는 독특합니다. 하급자를 선택했다는 점에서는 배현정과 같지만 배현정이 게급 차이가 상대적으로 적고 명성은 높은 김덕령과 혼인한 것과는 유가 다른 상황입니다.  

물론 이몽학에게 왕족이라는 꼬리표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당시 현실에서 큰 힘을 발휘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몽학은 비겁자는 아니라해도 큰 일을 당해서는 과단성이 부족하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실제 역사에서는 이러한 약점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지요. 

하지만 이러한 점도 박혜신처럼 심지가 강한 여성에게는 장점으로 바뀌는 법입니다. 게다가 귀골로 태어났으면서도 반항적인 성장기를 보낸 남정네일수록 더욱 그러한 법이니까요. 이들의 비중은 2권 초반의 김덕령-배현정 커플보다 훨씬 높습니다. 이미『제국의 칼』이라는 소설 자체가 다분히 반(反) 선조 정권 정서를 바탕에 깔고 쓰여진 이유도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박헤신-이몽학 커플의 결합은 배현정-김덕령 커플의 그것보다 현실성이 있습니다. 이몽학처럼 체제 자체에 혐오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좀스러운 예의는 개의치 않지만 근본적인 체제를 뒤집을 생각은 그다지 많지 않은 김덕령이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실제 역사에서 김덕령은 이몽학을 무찌르려고 했습니다. 다만 윤근수가 선조에게 모함신공을 발휘해 김덕령을 죽인 것이지요. 

결정적인 문제점은 아니지만 김덕령의 부인 흥양 이씨(興陽李氏:?~1597) 같은 사람이 있는데도 공명인 작가가 하필 배현정이라는 현대 인물을 굳이 붙여준 이유가 선뜻 납득이 가지는 않습니다. 김덕령을 잘 활용해보자는 생각이겠지만 작가분이 공부를 안하셨다는 생각도 들더군요.『신쥬신제국사』의 경우처럼 의도적인 목적이 있어서 역사를 바꾼 것이라면 또 모르지만요. 

차라리 배현정을 한현의 아들인 한의연과 혼인하는 방향으로 설정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꼭 한의연이 아니더라도 생몰년이 불분명한 인물과 혼인관계를 맺게 했다면 그만큼 고증상의 부담을 줄일 수도 있고, 현대인들의 생각이 그만큼 많이 반영되어도 독자들에게 저항감이 적을 터이니까요. 이른바 '반역자'들하고만 혼인을 시키자니 좀 그렇지만 반역자라는 낙인은 어디까지나 선조 정권의 일방적인 입장이 반영된 것임을 잊어서는 아니되겠지요. 

어떻든 2권의 클라이막스는 윤성진이 누르하치와 전투를 치른 뒤 강화를 맺고, 의형제를 맺는 장면입니다. 1591년 원역사에도 없었던 전투에서 신구려군은 병기와 지리 그리고 전술의 이점을 살려서 승리를 거둡니다. 사실 '실전 경험'이라는 점에서 윤성진은 누르하치와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같은 전술이라도 현장전술 '운용'에는 누르하치에게 밀리지만 간접 경험의 누적 즉 전쟁 역사를 '활용'한다는 점에서는 윤성진이 절대 우세하지요.  

전략적-전술적 재능이 탁월함에도 누르하치가 윤성진에게 패배한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세세한 내막을 알 리 없는 누르하치는 이를 자신과 윤성진의 그릇 차이로 파악하고 윤성진에게 충성 맹세를 하지요. 이러한 오해 아닌 오해는 누르하치의 굴복이 일시적이 아니라 영속적이 될 것임을 시사합니다. 그런만큼 제후왕이 되라는 윤성진의 조건을 받아들이지요.   

제후왕으로서 '대장군'인 신구려국의 체계를 잘 모르는 이상 누르하치는 총령인 김정신을 국가원수로, 윤성진은 국방의 최고 책임자인 대장군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점은 누르하치를 나무랄 수 없는 노릇이지요. 이에야스는 김정신이라는 존재를 몰랐기 때문에 윤성진을 아예 주군으로 삼는 사태까지 벌어집니다만.

이 소설은 많은 부분에서 비극을 희극으로 바꿔주는 것 같습니다. 에를 들어 원역사에서 변윤중은 그의 부인 성(成)씨와 며느리 서(徐)씨 부인이 한꺼번에 순국하게 됩니다. 비극적인 캐릭터지요.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변윤중이 그의 사촌형인 변이중과 더불어 상당한 정력가로 등장합니다. 근거도 충분한 것 같지만 그의 성씨 때문에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얄궂은 역할을 맡았지요. 엄청나게 무엄한 짓이기도 하겠으나 재미를 불러일으키는 대목입니다. 

이런 가운데서 윤성진과 무뢰배들의 에피소드는 신구려국이라고 문제가 없지는 않으나, 대한민국과는 다른 차원에서 사회악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을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물론 사회조직이 엄청나게 복잡한 대한민국과 비교적 간단한 신구려국이 같을 수는 없지만 범죄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대한민국과 그렇지 않은 신구려국을 비교함으로서 조선 광복과 재건의 정당성을 간접적으로 나타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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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칼 1
공명인 지음 / SKY미디어(스카이미디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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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이 같은 선조 시대를 다루는 작품들 중 그렇게까지 치밀하게 구성된 소설은 아닙니다.물론『천군』같은 먼치킨 소설이나『찬란한 제국』처럼 중간 중간 비약이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이 소설을 이끌어나간다 할 수 있는 인물들은 김정신-윤성진 커플입니다. 이들은 각기 대한민국 육군의 중대장(대위)과 소대장급(중위)이지만 1590년 1월 시점의 조선으로 부대원들과 함께 떨어지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나가게 됩니다.

무려 400여년 전의 사람들과 만났을 때의 문화충격이 엄청났음을『제국의 칼』에서는 어느 정도 잘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당시 조선에서는 가장 혁신적인 단체라 할 수 있는 '대동계'의 반응입니다. 대동계는 당시 혁신적 내지는 진보적 사상을 지녔다고 평가되는 정여립이 조직한 단체인데, 이러한 그들도 단발령에는 강한 거부감을 보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정신-윤성진을 위시한 적근산 대원들은 스스로를 '고구려의 후예'로 묘사하는 식으로 문화적 거리감을 줄이는 한편, 이론적으로 '신체발부 수지부모'의 해석을 새롭게 하여 상대방의 저항감을 누그러뜨립니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의학적인 설명을 더하여 현실론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나이가 70이 넘은 대동계의 원로 조평익을 설득합니다. 

사실 이러한 설득도 상호간의 노력과 현실적인 상황의 이해타산이 맞아떨어진 산물이기도 한데, 공명인 작가는 어느 정도는 이러한 점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적어도『찬란한 제국』에 비해서는 진일보한 설명법이지요. 흔히 대체소설의 문제점으로는 현대인들에 비해 과거인들이 일방적으로 따라오거나 혹은 강제시행 시키는 식의 묘사만 있다는 점이지요. 

신구려군 수뇌측에서는 다행스럽게도 일단 대동계는 당시 조선에서 생각이 가장 트인 집단이었습니다. 만약 상대가 김장생, 김집, 송시열 같은 소위 수꼴들이었다면 두 집단의 접점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조평익은『제국의 칼』에 나오는 또 다른 대동계 지도자 민유기와 더불어 매우 트인 노인으로 나옵니다. 물론 민유기는 노인은 아닙니다만. 

일단 상대의 말을 끝까지 다 듣는 태도도 그렇지만, '현실적'인 질병 문제를 신구려군 수뇌가 제시하자 군말없이 받아들이는 자세도 훌륭합니다. 무조건 주자학적 이론만을 밀어붙이는 조정 신료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데가 있지요. 물론 이러한 데는 벼랑 끝에 몰린 대동계의 현실적 처지도 있었지만 그런 점을 감안해도 조평익은 나이답지 않게 유연한 자세를 보입니다. 

또 나이가 나이니만큼 행정에도 익숙했던 것 같습니다. 신구려군 수뇌부가 전적으로 믿고 맡길만큼 원숙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이 책에서 좀 아쉬운 점이라면 현실적으로 쓸만한 조선 인물인 양산숙이나 한현 같은 사람들을 왜 활용하지 않는가 하는 점입니다. 조평익이 그 당시로 상당한 고령임을 감안하면 무작정 '과도기'의 인물이 될 그에게만 의지할 수는 없으니까요. 

물론 양산숙이나 한현은 무인 기질이 있는 인물들입니다. 그렇지만 그것 뿐인 인물들은 아니고 양산숙은 천문과 지리에 능통하며 한현은 민심을 잘 파악하는 재주가 있으니 이들을 잘 활용한다면 좋을 것인데요. 워낙 인물들이 많은 시대인데다가 신구려국 인물들까지 고려해야 하니 불가피한 상황일지도 모르지만 좀 아쉽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역사적으로는 1894년에서야 반상제가 폐지되지만 신구려군 수뇌부는 1590년 시점에 반상제를 폐지합니다. 원래대로라면 엄청난 문화충격이고 혼란이 야기되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난세인데다가 선조 정부의 정치가 워낙 형편 없었던 당시의 정황이 그것을 대폭 줄여준 것으로 보입니다. 신구려국의 압도적인 무력도 한 몫을 단단히 했겠지만요. 

1년 4개월만에 신구려국은 엄청난 약진을 하는데, 공명인 작가가 '정여립 사건'이 생기기 전인 1589년 시점에 도착해서 2년 4개월 정도 개혁의 시간을 가지고, 정여립도 살려서 포섭하는 방향으로 나갔다면 훨씬 더 설득력있는 전개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실 1년 4개월의 시간으로 개혁이나 변혁은 너무 짧지요. 공명인 작가도 이 점은 전혀 고려하지 못했던 요소로 보입니다. 

여하튼 다소의 무리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제법 설득력있게 제시되는 까닭은 한마디로 말해 선조 정부의 민심 이반 때문일 것입니다. 워낙 X판을 쳐놓으니 누가 해도 선조보다는 낫겠다는 암묵적인 공감대가 당시 백성들까지는 몰라도, 최소한 독자들에게는 형성된 까닭입니다. 게다가 몇 명이 건너온 것과 달리 적근산 부대원 전체가 건너온 상황은 문명의 이기를 비교적 용이하게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줍니다. 

1권에서는 그런 식으로 1590년 1월에서 12월까지의 한 해가 묘사됩니다. 과도팽창이라면 과도팽창이지만 신구려군 수뇌부가 기존의 조선 세력 중 유용한 인물들을 영입한 덕에 비교적 큰 혼란 없이 뿌리내릴 수 있다는 설정의 전개가 무리 없는 스토리로 제시되었다 여겨집니다. 2권에서는 누르하치와의 대결이 진행되는데 전개가 상당히 빠른 편입니다. 공명인 작가의 '무리수'라 여겨지는 구석이 적지 않지만 그래도 질질 끄는 것보다는 낫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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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칼 1
공명인 지음 / SKY미디어(스카이미디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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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정권에 적대하고 반역자로 찍힌 사람들이 활약하는 것만으로도 시원해지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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