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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칼 4
공명인 지음 / SKY미디어(스카이미디어)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제 3권에 발발한 임진-정유 전쟁이 본격화되는 시기입니다. 역사대로 조선군은 연전연패를 당합니다. 그런 가운데 신구려군은 그들의 뒷머리를 후려치는 식으로 승리를 거둡니다. 설명이 이런 식이라 신군(신구려 제국군)이 무슨 얍삽한 방법이라도 쓰는 것 같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신군과의 협력을 조선이 거부한 것입니다. 그러니 신군은 별도로 혹은 의병들과 함께 작전을 감행할 수밖에 없는 처지지요.
그런 가운데 선조는 원역사대로 몽진 길에서 개성 백성들에게 돌팔매를 맞습니다. 이런 현상은 황해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고요. 선조는 이에 앙심을 품고 황해도에서 가혹한 착취를 감행하게 됩니다.
어떻든 선조는 윤성진이 한양을 탈환한 것도 모른 채 끝내는 신구려국의 도시가 된 평양으로 몽진을 떠납니다. 만 2년 반도 안되는 세월이지만 평양은 이미 조선의 평양이 아니었습니다. 대동계의 중간자적 역할이 두드러진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평민으로 보이는 식당 직원은 조선의 정승인 정철에게 당당하게 자기 할 말을 합니다.
심지어 민국 출신의 구미영 대령은 말실수에서 비롯되기는 하지만 정철에게도 모자라 선조에게까지 면박을 줍니다. 사실이기는 해도 정치적 고려 등으로 감히 말하기 어려운 사안인데, 구미영은 까밝히기를 서슴치 않았지요. 4권에서 구미영과 정철의 대립은 가장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구미영은 자기 노릇도 못하는 '노털' 정철을 경멸하고, 정철은 사사건건 바득바득 대드는 '계집' 구미영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기는 쪽은 역시 힘이 있는 쪽이지요.
음력 7월 초에 드디어 명군이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역사기록에 있는대로 조승훈과 3000명의 명군은 무능하면서도 횡포를 일삼는 그런 '당나라' 군대입니다. 조승훈은 한반도 북부가 신구려국의 치하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저 조선 땅에 있으니 조선의 영토라고 여길 따름입니다. 원래 역사대로라면 거드름을 피우고 행패를 부려도 말릴 사람이 없지만 신구려국에서 행패를 부린 대가는 매우 비쌌습니다.
인권을 중요시하는 신구려국 수뇌부들이 조승훈의 짓거리를 가만 두고볼 리 없습니다. 특히 구미영은 조승훈을 '돼지 새끼'라고 부르며 두들겨 패는가하면 강간을 저지른 명군 몇을 즉시 사살하는 단호함을 보여주지요. 윤두수, 정철 등이 말린답시고 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몰매나 맞지 않으면 다행인 상황입니다. 구미영은 이들의 모화사상에 더욱 화가 나고야 맙니다.
백성들에게 '미륵'이라 불리는 총령 김정신은 3권에서의 부진(?)을 만회(!)라도 하려는듯 단호하게 결단을 내립니다.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이 침해당한다면 반드시 응징한다는 원칙을 분명하게 한 것입니다. 현실 정치에서는 공허한 구호가 되기 쉬운 이 원칙이 소설에서나마 실행되는데 이로 인한 카타르시스는 결코 적지 않습니다. 조승훈을 비롯한 명군 3,000은 속절없이 죽음을 당하고 말지요. 원역사와는 획기적으로 달라진 대명정책의 첫 걸음이기도 합니다.
민심 장악에 성공한 신구려국의 국세는 계속 확장일로를 달립니다. 단적으로 말해 조선에서 신구려로의 인구 유출이 박차를 가하는 상태였지요. 자신들을 버리고 달아난 선조와 자국 영토를 지켜내고도 모자라 조선 영토까지 힘 닿는 대로 지키려 애쓴 김정신 총령과 신군 수뇌부들이 같을 리 없습니다. 심지어 꼬박꼬박 적군들에게도 밥 챙겨주는 신군은 왜군들에게조차 신임을 얻습니다.
신군은 명분 때문에 보류했던 황해도와 강원도 절반의 합병을 단행합니다. 강원도는 전란으로 인해 방치된지 오래이고, 황해도는 앙심을 품은 선조 정권의 수탈이 도를 넘었기 때문에 합병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지요. 음모를 꾸미는 쪽은 언제나 조선인데 결과는 신구려국이 좋게 나오니 이를 그저 소설상의 일로만 보기에는 석연치 않습니다. 역시 선조 정부가 민심을 크게 잃었다고 보아야 옳겠지요. 명분과 힘이 갖추어진 대항세력만 있다면 선조 정부를 옹호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런 점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몰라도 선조 정부가 신구려국을 눈의 가시로 여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게다가 자기네 땅을 농사지어야 할 농민이나 노비가 모두 신구려국으로 탈출하니 급기야는 양반들과 중인들로 구성된 10만의 군사가 동원됩니다. 율곡 이이의 10만 양병설이 기괴한 형태로 실현된 것이지요. 하지만 굶주리고 성난 민심을 깔아뭉개는 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원균은 망신을 당하고 권율도 퇴각했으며, 도망의 명수 이일은 아예 권율보다 먼저 달아났지요.
급작스럽게 불어난 인구에 대처하기 위해 김정신 총령 등은 회의를 한 후 이들 난민들을 서간도, 동간도, 북간도, 연해주 지역으로 보냅니다. 한반도 본토보다 농사짓기가 쉽지는 않지만, 넓은 농토를 가질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기꺼이 이주를 하게 되지요. 신구려국의 실효적인 지배가 더욱 본격화되는 상황입니다.
한편 김정신, 윤성진, 박혜신, 유정 등의 신구려 수뇌부는 명국 정벌을 위해 계획을 수립합니다. 역사에 밝은 박우진 장군을 비롯해 임꺽정의 아들인 임백손과 그 의형제들을 명국 본토로 보내어 정보를 수집하지요. 1593년 3월에 임백손 일행은 귀환합니다.
원 역사에서는 임백손 일행의 귀환 시점에서 이 충무공의 웅포해전이 끝나는 시기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조선의 전쟁에 개입했을 이여송은 1월에 패배를 당하고 권율이 2월에 행주에서 승리를 거둘 것이지만, 이 책에서는 패배와 승리를 반복하는 장수가 되었습니다.
어떻든 공명인 작가는 임백손 일행을 통해 무림의 허황됨을 까밝혀버립니다. 한국 구무협(이른바 1세대 무협)에서 한껏 부풀려놓은 이미지를 원래대로 되돌린 것이지요. 구무협의 어느 작가가 '무협은 환타지다'라는 명제를 정면으로 부정한 것입니다. 그러기는 커녕 매우 사실적으로 무림과 무뢰의 구별은 사실상 없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고, 실제 역사도 이에 가까운 형편이지요.
굳이 민족주의를 따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공명인 작가의 까밝히기는 자칫 중화주의로 흐르기 쉬운 구무협의 폐단을 배제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실제로 구무협 혹은 이 방식으로 쓰여진 무협소설은 중화주의를 부추긴다는 전형적인 페단이 있습니다. 짱꼴라를 한민족과 자꾸 동일시하려는 중화주의 바이러스에 걸리기 쉽게 만들지요. 이런 것을 공명인 작가는 사실성에 입각하여 산산조각내고맙니다.
과연 신구려국이 조선을 어떻게 합병할 것인지? 대명 전쟁은 어떤 방식으로 수행할 것인지 흥미진진해집니다. 5권을 기대해봅니다. 2011년에 나오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