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칼 2
공명인 지음 / SKY미디어(스카이미디어)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2권에서는 1권에 이어 민국 출신의 적근산 부대원과 조선 출신의 인물들이 혼인을 치른 이후의 스토리, 즉 이들의 혼인 생활을 단편적으로나마 묘사하고 있습니다.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지극히 불행한 삶을 겪을 김덕령과 이몽학이겠지만 배우자들로 인해 행복을 만끽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들의 관계는 개인적으로는 물론 '정략적으로도' 성공적인 사례입니다.  

이들의 혼인은 민국인들과 조선인들의 성공적인 융합으로 인해 신구려 국민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거듭났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 중에서도 박혜신의 경우는 매우 이색적입니다. 배현정 중령이나 김치상 대령과는 또 다른 경우지요. 

일단 김치상 대령부터 살펴보면 그래도 그의 경우는 남정네인만큼 당시 여권이 낮았던 조선의 실정으로 보아 그다지 무리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면적인 애정 권력(?)은 소설에서 정여립의 딸로 설정된 정예신이 쥐고 있는 상태지요. 그렇다고 그것을 이용해 남편을 좌지우지한다기 보다는 공사나 대소 구별을 확실히 하는 조선 여성의 기질이 부부관계에서도 투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가장 이색적인 사람은 2성장군 박혜신 소장입니다. 이성식 장군이 아쉬워할 정도로 늘씬한 신체와 강인한 기질을 아울러 지닌 여성의 몸값(!)은 매우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김정신의 경우처럼 그녀도 혼인 이전에는 일절 다른 남성과의 성관계가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 어느 대체 역사소설을 보아도 민국출신 여성이 조선의 남정네와 혼인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케이스입니다. 

외강내유의 김정신, 배현정과 달리 외유내강의 정예신과 가까운 박혜신이지만 그 형태는 독특합니다. 하급자를 선택했다는 점에서는 배현정과 같지만 배현정이 게급 차이가 상대적으로 적고 명성은 높은 김덕령과 혼인한 것과는 유가 다른 상황입니다.  

물론 이몽학에게 왕족이라는 꼬리표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당시 현실에서 큰 힘을 발휘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몽학은 비겁자는 아니라해도 큰 일을 당해서는 과단성이 부족하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실제 역사에서는 이러한 약점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지요. 

하지만 이러한 점도 박혜신처럼 심지가 강한 여성에게는 장점으로 바뀌는 법입니다. 게다가 귀골로 태어났으면서도 반항적인 성장기를 보낸 남정네일수록 더욱 그러한 법이니까요. 이들의 비중은 2권 초반의 김덕령-배현정 커플보다 훨씬 높습니다. 이미『제국의 칼』이라는 소설 자체가 다분히 반(反) 선조 정권 정서를 바탕에 깔고 쓰여진 이유도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박헤신-이몽학 커플의 결합은 배현정-김덕령 커플의 그것보다 현실성이 있습니다. 이몽학처럼 체제 자체에 혐오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좀스러운 예의는 개의치 않지만 근본적인 체제를 뒤집을 생각은 그다지 많지 않은 김덕령이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실제 역사에서 김덕령은 이몽학을 무찌르려고 했습니다. 다만 윤근수가 선조에게 모함신공을 발휘해 김덕령을 죽인 것이지요. 

결정적인 문제점은 아니지만 김덕령의 부인 흥양 이씨(興陽李氏:?~1597) 같은 사람이 있는데도 공명인 작가가 하필 배현정이라는 현대 인물을 굳이 붙여준 이유가 선뜻 납득이 가지는 않습니다. 김덕령을 잘 활용해보자는 생각이겠지만 작가분이 공부를 안하셨다는 생각도 들더군요.『신쥬신제국사』의 경우처럼 의도적인 목적이 있어서 역사를 바꾼 것이라면 또 모르지만요. 

차라리 배현정을 한현의 아들인 한의연과 혼인하는 방향으로 설정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꼭 한의연이 아니더라도 생몰년이 불분명한 인물과 혼인관계를 맺게 했다면 그만큼 고증상의 부담을 줄일 수도 있고, 현대인들의 생각이 그만큼 많이 반영되어도 독자들에게 저항감이 적을 터이니까요. 이른바 '반역자'들하고만 혼인을 시키자니 좀 그렇지만 반역자라는 낙인은 어디까지나 선조 정권의 일방적인 입장이 반영된 것임을 잊어서는 아니되겠지요. 

어떻든 2권의 클라이막스는 윤성진이 누르하치와 전투를 치른 뒤 강화를 맺고, 의형제를 맺는 장면입니다. 1591년 원역사에도 없었던 전투에서 신구려군은 병기와 지리 그리고 전술의 이점을 살려서 승리를 거둡니다. 사실 '실전 경험'이라는 점에서 윤성진은 누르하치와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같은 전술이라도 현장전술 '운용'에는 누르하치에게 밀리지만 간접 경험의 누적 즉 전쟁 역사를 '활용'한다는 점에서는 윤성진이 절대 우세하지요.  

전략적-전술적 재능이 탁월함에도 누르하치가 윤성진에게 패배한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세세한 내막을 알 리 없는 누르하치는 이를 자신과 윤성진의 그릇 차이로 파악하고 윤성진에게 충성 맹세를 하지요. 이러한 오해 아닌 오해는 누르하치의 굴복이 일시적이 아니라 영속적이 될 것임을 시사합니다. 그런만큼 제후왕이 되라는 윤성진의 조건을 받아들이지요.   

제후왕으로서 '대장군'인 신구려국의 체계를 잘 모르는 이상 누르하치는 총령인 김정신을 국가원수로, 윤성진은 국방의 최고 책임자인 대장군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점은 누르하치를 나무랄 수 없는 노릇이지요. 이에야스는 김정신이라는 존재를 몰랐기 때문에 윤성진을 아예 주군으로 삼는 사태까지 벌어집니다만.

이 소설은 많은 부분에서 비극을 희극으로 바꿔주는 것 같습니다. 에를 들어 원역사에서 변윤중은 그의 부인 성(成)씨와 며느리 서(徐)씨 부인이 한꺼번에 순국하게 됩니다. 비극적인 캐릭터지요.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변윤중이 그의 사촌형인 변이중과 더불어 상당한 정력가로 등장합니다. 근거도 충분한 것 같지만 그의 성씨 때문에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얄궂은 역할을 맡았지요. 엄청나게 무엄한 짓이기도 하겠으나 재미를 불러일으키는 대목입니다. 

이런 가운데서 윤성진과 무뢰배들의 에피소드는 신구려국이라고 문제가 없지는 않으나, 대한민국과는 다른 차원에서 사회악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을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물론 사회조직이 엄청나게 복잡한 대한민국과 비교적 간단한 신구려국이 같을 수는 없지만 범죄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대한민국과 그렇지 않은 신구려국을 비교함으로서 조선 광복과 재건의 정당성을 간접적으로 나타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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