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84호 - 2015.가을
문학동네 편집부 엮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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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로서, 설교자로서 설교준비의 일로서나 개인적 취미로서나 시나 소설을 부지런히 읽고 있고 이들에서도 자주 좋은 예화와 감화를 받지만, 어느 때 부턴가(정확히는 2011년 여름부터^^) 평론에서도 받고 있습니다(창조주께서 세상에 글 잘 쓰는 사람들을 내셨음에 감사하며). 평론만 나누려 합니다. 작품과 작자, 문학 등을 설교문과 설교자, 신학에 빗대어 받고자 한 이야기들입니다. 문단 단위로 평론자가 바뀝니다(쪽 수).

00씨의 작품들은 마지막까지 손에서 놓기 아까운 작품들이었다. 노련한 비유와 이미지의 운용이 시를 오래 써온 사람의 문장임을 느끼게 해 주었다.-그런 설교가 또한 좋은 설교가 아닐까 ...(392)

시를 끝까지 읽게 하고 다시 읽게 했다. 잘 비판받기 위해 쓰면 안 된다. 당신의 글에서 문제점만을 발견하는 사람은 당신을 냉철하게 아끼는 게 아니라 당신의 장점을 감지할 능력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 나는 다 설명되지 않는 신비와 도약을 품고 있는 글을 대체로 좋아한다.-정성껏 작성하고 소신껏 설교하자!(393)

정치적 상상력 (일상의 봉건적 삶을 전복시키는 민주주의 혁명) 이야말로 문학의 가장 '오래된 미래'다. 진부한 말이지만 쓰기는 본질적으로 고치기다. 그리고 고치기가 가장 치열한 생각하기다.-설교에도 오래된 미래가 분명 있다. 고치기를 잘 하자!(398)

죄책감은 문학이 벗어날 수 없는 매력적인 주제 중 하나다.-설교의 매력적인 주제와도 통한다! (401)

00씨의 작품은 '문학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뚜렷한 견해를 함축하고 있었다.-신학적 설교, 영적 설교!(405)

그 문제에 대해 이렇게 은밀하게 그러나 그 누구도 못 알아차릴 수는 없게, 사라짐과 망각할 수 없음을 절박하게 포착해내는 작가가 또 누가 있을까.-이렿게 뭐랄까 입체적으로, 노련하게 설교하기!(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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