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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 역정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03
존 번연 지음, 정덕애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5월
평점 :
때로는 노골적인 것이 더 와닿을 때가 있다.
기독교 서적이 가지는 분명한 방향성과 교훈적인 내용이 뻔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생각할 거리를 더 많이 던져주었다.
인명과 지명이 '우유부단함', '게으름', '완고함' 등 뚜렷해서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가치가 명확히 드러난다.
처음에는 유치한 설정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인화된 등장인물이 한 가치만을 대표하는 단순함 때문에
내 삶과 결부시키기에는 더 쉽다는 장점이 있었다.
게다가 관련 성경 지식이 없어도(책에서도 미주처리 되어 있고)
탈무드처럼 그저 이야기로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옛이야기'를 듣는 느낌이 더 강했다.
내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면면들이 '크리스천'의 여정을 통해 드러날 때
다른 사람 또한 나와 같은 갈등을 갖고 산다는 위안감을 얻기도 했고,
사실 모두의 인생이 이런 천로역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미래의 행복, 혹은 어떠한 성과를 담보로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 어리석어 보이는 요즘 시대에
삶의 지침을 재정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고,
죽기 전에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지 등등
오랜만에 삶에 대한 깊이 성찰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그저 두꺼운 고전을 한 권 완독했다는 기쁨보다는
두고두고 꺼내어 볼 수 있는 책이 내 방에도 있다는 작은 위안이 되어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