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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문학상 수상작품집 : 2009-2018
신수원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3월
평점 :
노란 조끼를 입은 시위대는 없더라도, 대한민국에 살면서 실로 많은 시위를 보고 자라왔습니다. 서울역에 하루 두번 드나들 때에는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태극기를 휘두르기도 하고, 어느 외국어가 들리던 광화문 근처의 학원에서는 걷기 어려운 이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행렬을 해 나가기도 합니다. 그저 나에게는 없는 일이라, 내 몸과 나의 역사에는 있지 않을 것 같은 사건이라 넘겨짚기만 했던 일들의 시작이 사실은 우리 모두의 일상에서 시작되었던 것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찾아오는 불행을 막을 수 없어 굳은살이 잔뜩 배긴 손으로 써내려간 #손바닥문학상수상작품집 입니다.
남의 아픔이야 어떨지 모르는 일이지만 사람은 자기 손톱 아래에 박힌 가시 하나에도 잠을 설치고 하루를 망친다고들 합니다. 나의 아픔이 나에게 가장 큰 고통이 되는 이유는 나만이 나의 역사를 빠짐없이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고공 농성을 하던 노동자는 철거의 상황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걱정하기 앞서 자신의 오물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무서워합니다. 시골에서 올라온 짙은 화장의 초등학교 동창생의 타락은 사실 난체 하느라 읽어본 영어 한두마디에서 시작되었을지 누가 알았으려나요. 20분만에 배달을 완료해야 하는 그 사람이 집드로 돌아가 노모를 돌보는 시간은 억겁처럼 길기만 합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일생을 나 로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나 로 살아가는 데에도 벅차기만 한 이 인생이 조금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기 계발서를 읽고 오직 행복만 남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해피엔딩의 영화를 보며 나의 세계를 확장해 나가곤 합니다. 하지만 실로 필요한 것은 타인의 손끝에 배긴 굳은 살을 바라보며 나의 바깥 어딘가의 다른 삶을 살아보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듯 현실적인 캐릭터들과 방금 뉴스에서 본 것 처럼 별 것 없는 사건들은 작품이 장르를 무너뜨리며 마음으로 치닫아 오릅니다. 나에게는 평생 없을 것 이라고 생각한 모든 일들의 시작은 별 볼일 없는 일상이라는 것. 나는 내가 알아가야 할 슬픔을 미리 보고 왜 이런 일이 불행의 대명사가 되어야 하는 것인지 수십번 고민하며 책을 읽어내려갑니다. 마음은 처음 집을 나온 때 마냥 먹먹하게 하는 이 속삭임들이 눈물나도록 밉기만 합니다. 늘 생각하고 있던 것은 아니지만 한순간도 잊지 않고 살아야 하는 우리의 불행들을 소중하게 적어내려놓은 글을 읽으며 모두가 함께 나아가야 할 올바른 미래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싶습니다.
#북큐레이션날
당장 눈 앞에 일어난 괴물같은 문제에 급급해 어떻게 이야기가 시작되었는지도 잊지는 않으셨나요? 나 자신이 되는 것도 버거워 숨이 턱끝까지 올라온 지금, 모든 것을 내려놓고 따뜻한 이불 속에서 고요히 남의 슬픔을 겪으며 우리 모두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은 당신에게 <손바닥 문학상>을 추천합니다. 모든 거대한 괴물의 시작은 누군가의 일상이었듯, 세상을 바꾸는 작은 시작 또한 나의 일상이 될 수 있을테니까요. 지금 당장, 내가 시작할 수 있는 발걸음에 동참하고 싶은 당신과 불편하지만 고맙고 사랑스러운 이 이야기를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