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 DSLR
최예원 지음 / 문학세계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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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집을 읽다보면 유독 마음에 쏙 들어오는 소설이 하나쯤 있다. 제목으로도 사용한, 어쩌면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작품이 그러할 때도 있고, 그와는 달리 그다지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한 작품이 그럴 때도 있다. 이 단편 모음집에서 내 마음을 뒤흔든 작품은 후자에 속한다.

 

최예원 작가의 <클럽 DSLR>에는 책 제목과 동일한 ‘클럽 DSLR’을 위시해 ‘생존 게임’, ‘등대를 향하여’, ‘어제 뜬 달’, ‘오시계’가 실려 있다. 작가의 말을 읽어보면 ‘클럽 DSLR’과 ‘생존 게임’에 작가의 애정이 쏠려 있다는 느낌이 들지만 내게 가장 좋았던 작품은 ‘오시계’였다.

 

이 작품이 좋았던 이유는 말 그대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 때 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묘사 때문이었다. 증조할머니, 할머니를 모시며 양계장을 하시던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고향에서도 5일장이 열리던 장터는 우리 남매의 놀이터였다. 책에 나오는 약장수, 엿장수 아저씨와 아줌마의 공연은 별다른 볼거리가 없던 어린 우리들에게 그 어떤 영화나 연극보다 즐거운 공연이었다.

 

5일장에 대한 묘사만 내 마음을 끈 것은 아니다. 모든 식구가 도라지를 까야 했을 만큼 가난했던 그 시절, 우리 가족도 역시 도라지를 깨면 보내는 시간이 적지 않았다. 도라지만 보면 얼마나 싫었던지 지금도 가족들이 만날 때면 가끔씩 그 시절 얘기를 하며 열을 내곤 한다. 그런 일상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실린 이 소설이 어찌나 반갑고 좋았는지 모르겠다.

 

소설의 외형은 이렇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며 나를 즐겁게 했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그렇게 즐거운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힘든 삶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클럽 DSLR'에서 보여주는 익명성처럼 이 소설에서는 근거 없는 소문이 마을 주민들 사이에 퍼져나가면서 결국 한 사람의 삶을 파괴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요즘도 인터넷의 익명성을 방어막으로 내세워 근거 없는 소문을 부풀려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는 현대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생기기 이전에도 수많은 소문들이 아무런 근거 없이 퍼져나갔고, 때로는 소문이 부풀려지면서 한 사람의 삶을 완전히 나락으로 끌어내리기도 하였다. 더 큰 문제는 소문을 내는 사람이 소문의 진위에는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은 채 자신의 무책임한 행동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문 즐기는 동네 사람들에게는 물론 아이가 병으로 죽었건 맞아 죽었건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가 않았다.(p.278)

 

인간이란 정말 그런 존재인가? 진실 혹은 타인의 아픔은 돌아보지 않은 채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자신이 행한 행동조차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는 그런 존재......

 

웃으며 읽기 시작한 이야기가 한없이 나를 짓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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