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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언
안드레이 마킨 지음, 이재형 옮김 / 무소의뿔 / 2016년 11월
평점 :
책을 제본한 방식이 독특하다. 유언이라는 제목에 어울릴만한 방식이다. 그렇게 멀지 않은 옛날 선조들이 실로 책을 꿰맨 듯한 그런 편집. 이런 제본 방식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만하다. 거기에 책 표지에 딱 이렇게 적혀있다.
95년 프랑스 공쿠르상, 95년 프랑스 메디치상, 95년 청소년 공쿠르상
간단히 말해 95년 프랑스를 뒤흔든 소설이라는 말이다. 하나의 상을 받기도 힘든 데 프랑스 최고 문학상 3개를 동시 수상했다니. 그런데 작가가 누구지, 누구기에 이렇게 상을 휩쓴 거야?
안드레이 마킨이라고? 흠. 프랑스 작가라고 하면 베르나르 베르베르 정도나 댈 수 있기에 안드레이 마킨이라는 이름은 정말 생소했다. 그는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후 언어연구소 교수로 근무하다 프랑스 여행 중 정치적 망명을 하고 그 이후로 작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활동하다 프랑스로 망명한 사람이 쓴 <프랑스 유언>이라는 작품. 그것만으로 묘하다. 아무리 할머니가 프랑스 사람이었다고 하더라도 러시아에서 보낸 시간들을 고려하면 프랑스어로 글을 쓴다는 게 그렇게 쉬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요소들이 바로 소설에서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는 것 같다. 어린 시절 할머니께 들었던 이야기를 풀어내는 듯한 소설 속 이야기는 마치 저자가 그의 할머니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다듬어 들려주는 듯이 느껴진다.
그래서 <프랑스 유언>이라는 제목을 사용한 걸까? 할머니가 들려준 프랑스의 모습, 프랑스인의 삶이 마치 할머니의 유언처럼 들렸기에. 그렇지만 그는 프랑스에서 정말 프랑스인으로 정착한 걸까? 아니면 러시아에서처럼 낯선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걸까?
정체성이라는 문제는 어느 곳, 어느 사람에게나 생기는가 보다. 외할머니집에 가서는 할머니가 프랑스어로 들려주시는 책을 들으며 프랑스에 대한 꿈을 꾸다 학교로 돌아가서는 완벽한 러시아인으로 살아가야 하고, 프랑스에 온 뒤로는 낯선 외국인으로 대하는 프랑스인들 속에서 살아야 했던 화자 혹은 저자에게 정체성의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면 그 또한 이상한 일 아닐까?
작가 개인의 삶과 그가 살아간 시대의 역사적 사실들이 잔잔하게 펼쳐지면서 깊은 생각에 빠지게 만든다. 소설의 구조도, 그 안에 담긴 내용도 쉽지 않지만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듯한 이야기가 작가의 삶을 생각하게 만들기에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기억은 하나의 추억이 아니라 삶 자체라는 그 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