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에서의 오해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최정수 옮김 / 부키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시몬 드 보부아르.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녀의 이름이 유독 기억이 나는 이유는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선언했던 페미니스트의 대모이기 때문이다. 한국식 유교주의에 강한 영향을 받았던 그 어린 시절에 그녀의 생각과 삶은 내게 또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962~1966년 사이 사르트르와 함께 여러 차례 소련을 방문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보부아르의 자전적 소설로 1992년이 되어서야 발표된 작품 <모스크바에서의 오해>는 여러 가지 생각을 품게 만드는 작품이다.

 

그렇게 길지 않은 분량의 소설이지만 이 책이 내게 수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진 이유는 나 역시 조금씩 나이가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나보다 연배가 많으신 분들이 뭐라 하시겠지만 말이다.

 

각자의 일에서 은퇴한 앙드레와 니콜. 각자 다른 사람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이 있는 노부부는 어느 날 모스크바에 있는 앙드레의 딸 마샤를 만나러 간다. 그 곳에서 부부는 서로 다른 감정과 생각에 빠져든다. 체체에 대한 실망에 빠진 앙드레, 마샤를 보며 지나간 세월과 나이 들어감에 대한 생각에 빠진 니콜. 이렇게 서로의 생각에 빠진 노부부는 점차 상대방에 대한 오해가 쌓이게 되는데...

 

이 소설은 소련이라는 지금은 사라져버린 국가의 모습, 특히 소련 사회주의가 어떠했는지를 살펴볼 수도 있고, 오랜 세월 함께 했지만 두 사람 간에 어떻게 오해가 쌓여가고 이를 또 어떻게 풀어 가는지를 알게 되기도 하고, 여성에게 노화가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한 남자의 아내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어느 순간 점차 나 자신을 잃어가는 듯한 느낌에 깊은 시름에 빠져있던 내게 두 사람이지만 하나의 모습을 가질 수 있는 부부의 모습은 또 다른 감정을 이끌어낸다. 우리 부부는 앞으로 어떤 부부의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앙드레와 니콜의 시선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두 사람의 심리적 변화나 생각의 토대를 읽어나가는 재미도 솔솔하다. 게다가 앙드레와 니콜의 모습을 보면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재미도 적지 않다.

 

모스크바에서의 오해는 오해로 끝나고 말까? 아니면 오해가 또 다른 이해를 낳게 될까? 궁금증이 커지면서 한 순간에 훌쩍 읽어버린 또 다른 나의 이야기를 읽었던 잊지 못할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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