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보검
김정현 지음 / 열림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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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스(바람)를 타고 이제는 거의 혈혈단신이 되다시피 하여 신라를 찾아온 이역 젊은이의 이야기이다. 그의 활약을 통해서 당시 신라의 모습을 돌아보며 또한 오늘날의 우리를 비춰보는 책이다. 새삼 깨닫게 되는 건, 신라에 대해서 우리는 몇몇 역사적 사건들 외에는 별반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사료가 터무니없이 적기 때문이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고 하지만, 당장 신라의 개국과정은 난생설화에 기대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너무나도 친숙하게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해 온 우리의 역사를 다시 곰곰 돌아보게 해 주는 것으로 이미 충분하지 않을까.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여겼던 우리 조상들의 나라를 향해서 혈혈단신으로 달려오는 이역의 왕자를 보는 순간 당황스러워진다. 게다가 황금의 나라라니. 게다가 신라가 제국의 면모를 갖추었다는 것은 또 무슨 의미일까? 멀리, 롭성이라 불리웠던 작은 왕국에까지 알려진 나라였던가? 신라가? 당황스러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프리카 원주민과 트로이 전쟁의 일화가 신라의 수도 경주에서 언급되리라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게다가, 이것은 그저 상상에서 그치지 않는 듯하니 더욱 놀랍다. 당시 한반도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자를 형상화한 사자춤과 그를 응용한 우산국 정벌의 이야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 아닌가. 어디까지가 상상이고 어디까지가 실재인지 갸웃거리게 하는 사건들이 이어진다. 지증왕이 그런 까닭에 정말로 후사가 늦었을까 하는 것은 애교다. 사자춤에서 영감을 얻은 이사부 장군의 우산국 정벌에 트로이 목마라는 에피소드가 가미되는데 이르면 정말이지 직접 그 시대로 시간의 바람을 타고 직접 확인하러 달려가 보고 싶어질 지경이다. 우산국 정벌에 이어 대마도 정벌론에 이르러서는 관련 사료를 찾아보게 될 만큼, 우리가 겉으로만  알고 있었던 신라시대의 모습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이차돈의 순교, 이사부 장군의 우산국 정벌, 신라의 가야 정책등과 같은 굵직한 사건들의 이면에 숨은 신라의 실제 모습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어쩌면 오늘날의 모습에 투영해 본 그 시절의 겉모습에 불과할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신라의 속 모습을 파헤쳐간다.

 

한편, 등장인물들은 이상적이며 지고지순하기만 하다. 씬쓰라로프는 자체로 불굴의 의지와지혜를 겸비한 인물이며, 그를 위해 하나씩 별이 된 친구들 중 그 누구도 낙오되거나, 포기했다는 이는 보이지 않는다. 씬쓰라로프를 황금의 나라로 인도하겠다는 살신성인의 희생정신만이 있을 뿐이다. 불교를 통한 신라의 융성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려는 상화공주, 그리고 공주를 연모함에도 결국은 우정과 신의를 택하는 유강과 우국충정의 표본인 이사부 장군에서 자애로운 임금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이상적인 인물상이다. 이에 반해 갈등을 일으키면서 주제의식을 강화시켜주는 인물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대신, 기득권층이라 불리는 귀족층이 사리사욕만을 내세우는 집단으로 등장한다. 왜구라는 존재들 또한 오로지 신라와 가야를 약탈하기 위해 존재하는 듯한 집단으로 등장한다. 이런 구조로 인해 당시 신라의 진면목을 조금 더 역동적이고 세밀하게 부각시키는데 다소의 제약이 있지 않았나 싶다. 신라를 통해서 반추해보는 주제의식이 등장인물들의 사건과 갈등 속에서가 아닌, 서술적인 대화를 통해서, 그리고 저자 자신의 직접적인 설명을 통해서 표현되는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책의 말미에서,

 

56기의 무덤을 발굴했는데, 그 중 14호로 명명된 고분에서 황금보검이 찬란한 모습을 드러냈다. 황금보검은 지금껏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키질석굴 69호 벽화에 거의 동일한 모양의 보검이 보일 뿐이다(중략) 14호 분묘에는 남자 두 사람이 나란히 묻혀 있었으며(후략)

 

라는 대목에 이르는 순간, 이런 일말의 아쉬움은 이역의 왕자가 날마다 새롭고 사방을 망라하는 나라를 찾아온다는 설정에서 느꼈던 당황스러움과 마찬가지로 일거에 해소되고 만다.

 

바로 이것이었구나! 하고 무릎을 탁 치게 된다. 나란히 누워있는 주검으로부터 시작해서, 씬쓰라로프가 벤투스(바람)를 타고 먼 길을 달려 신라를 향했듯, 저자는 상상력과 문헌을 타고 시간을 달려 신라를 향했고, 결국 그 시대에서 만난 것이다. 저자가 어찌해서 씬쓰라로프가 신라를 향해 달려오는 장면으로 이 드라마의 출발점을 잡았으며, 상화와 유강이 그런 모습으로 존재하며 신라의 모습을 살펴보도록 했는지를 깨닫게 되고, 신라가 그 당시 능히 천년을 누릴 만큼의 제국다운 문화적 면모를 갖추었다고 말하는 저자의 견해에 비로소 크게 공감하게 된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다고 여겼으되, 실상은 잘 모르고 있지 않았는지 자각하게 해주는 훌륭한 책이다. 고분에서 출토된 황금보검과 그 보검의 주인에 대한 범상치 않은 모습에서 출발한 이 한 권의 책은 익히 알고 있었던 우리 역사에 대한 낯설음이라는 출발선 상에 독자들을 올려 태우고 그 시대에 대한 새로운 시선으로 이끌며, 새록새록 생각할 단초들을 제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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