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여행하면 할수록, 아니 미국만 가더라도, 세월의 결이 도시에 잘 녹아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우주도시 같은 신주쿠의 마천루 한편으로는 딸랑거리는 자전거와 작고 오랜 집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는 동경도 마찬가지입니다. 홍콩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허나 우리 서울은 옛것은 그냥 가난한 것 혹은 밀어버려야 할 것으로 치부됩니다. 그래서 이 유서 깊은 도시에 세월의 흔적이 자연스럽게 스며있다기보다 날카로운 칼로 잘라낸 것처럼 삐족빼족 각이져 있습니다. 세월의 흔적과 흐름을 중시한다기보다 싹 깔아 뭉개고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합니다. 다 같이 잘 살겠다는 이름으로 시작된 재개발과 우후죽순 늘어선 뉴타운에서는 동네란 말을 쓰기가 애매합니다. 이것은 비단 서울만의 풍경이 아니겠지요. 불과 10년 전 모습도 찾기도 힘들어진 삭막한 대한민국의 풍경입니다.


허나 다행스럽게 아직, 전국 곳곳, 도심 곳곳에 숨어 있는 골목들이 있고, 골목들은 은은한 비경을 품고 있나봅니다. 이 책의 골목들은 그 사라져가는 것들의 끝자락을 조용히 잡아봅니다. 산토리니의 골목이 아름다운 것은 이국적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 골목에서 느껴지는 향취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라고 그런 것이 없겠습니까.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찾아낸 골목들. 아마 몇 년 후면 이 책에 소개된 몇몇 골목은 사라질 수도 있고, 몇몇은 크게 변화해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대접을 못 받아왔던 우리의 골목길을 작가는 걸음의 속도를 늦추고 들어가봅니다. 천천히 음미하고, 바라보고, 아무것도 안 하면서 즐기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그 어떤 누구의 사연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을 작은 모퉁이 길, 이리저리 돌아난 낡은 계단 앞에서 멈춰서 보라고 합니다. 익숙한 풍경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한 곳. 어쩌면 골목 산책의 매력은 거창한 볼거리보다 계단, 화분 등 평소 스쳐 지나쳤던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날씨 좋은 어느 날 노천 카페에서 여유롭게 읽기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 책을 보다 훌훌 털고 일어나 바로 사진 속 골목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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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여행하면 할수록, 아니 미국만 가더라도, 세월의 결이 도시에 잘 녹아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우주도시 같은 신주쿠의 마천루 한편으로는 딸랑거리는 자전거와 작고 오랜 집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는 동경도 마찬가지입니다. 홍콩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허나 우리 서울은 옛것은 그냥 가난한 것 혹은 밀어버려야 할 것으로 치부됩니다. 그래서 이 유서 깊은 도시에 세월의 흔적이 자연스럽게 스며있다기보다 날카로운 칼로 잘라낸 것처럼 삐족빼족 각이져 있습니다. 세월의 흔적과 흐름을 중시한다기보다 싹 깔아 뭉개고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합니다. 다 같이 잘 살겠다는 이름으로 시작된 재개발과 우후죽순 늘어선 뉴타운에서는 동네란 말을 쓰기가 애매합니다. 이것은 비단 서울만의 풍경이 아니겠지요. 불과 10년 전 모습도 찾기도 힘들어진 삭막한 대한민국의 풍경입니다.


허나 다행스럽게 아직, 전국 곳곳, 도심 곳곳에 숨어 있는 골목들이 있고, 골목들은 은은한 비경을 품고 있나봅니다. 이 책의 골목들은 그 사라져가는 것들의 끝자락을 조용히 잡아봅니다. 산토리니의 골목이 아름다운 것은 이국적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 골목에서 느껴지는 향취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라고 그런 것이 없겠습니까.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찾아낸 골목들. 아마 몇 년 후면 이 책에 소개된 몇몇 골목은 사라질 수도 있고, 몇몇은 크게 변화해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대접을 못 받아왔던 우리의 골목길을 작가는 걸음의 속도를 늦추고 들어가봅니다. 천천히 음미하고, 바라보고, 아무것도 안 하면서 즐기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그 어떤 누구의 사연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을 작은 모퉁이 길, 이리저리 돌아난 낡은 계단 앞에서 멈춰서 보라고 합니다. 익숙한 풍경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한 곳. 어쩌면 골목 산책의 매력은 거창한 볼거리보다 계단, 화분 등 평소 스쳐 지나쳤던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날씨 좋은 어느 날 노천 카페에서 여유롭게 읽기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 책을 보다 훌훌 털고 일어나 바로 사진 속 골목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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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 - 최갑수 골목 산책
최갑수 글.사진 / 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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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라하다, 따뜻한다, 평화롭다, 아날로그, 사람, 흔적에 대한 모든 것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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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
케빈 마이클 코널리 지음, 황경신 옮김 / 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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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케빈만큼 쿨하게 장애를 인정하고 넘어선 사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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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빵집
이병진 지음 / 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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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좋아한다고 자부하고 다니는 사람은 많다. 나도 그렇고. 심지어 생일날이나 등장하던 케이크는 이제 크리스마스나 가족 모임에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음식이 되었다. 또한 어느 동네를 가든 빵집이 꼭 두 군데 이상씩은 붙어 있다. 이렇게 빵 소비가 많을진데 맛있는 빵, 좋은 재료로 만든 빵에 대한 정보는 늘 부족하다. 같은 빵이라고 다 같은 맛이 나는 건 아니다. 예를 들자면 뺑 오 쇼콜라라는 제품이 가게마다 있지만 어느 제과점에선 생크림에 초코칩을 넣어서 팔고, 어디에선 바스락거리는 페이스트리에 굵고 진한 초콜릿을 심어서 판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지, 단가를 낮추기 위해 어떤 재료들로 대체하는지 우린 잘 모른다. 매일 굽는 빵집과 매일 직접 만드는 빵집의 차이도 잘 모른다.

 

이 책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맛있는 빵집을 찾는 척도가 장인이 만드는 믿을 수 있는 건강한 빵의 그것과 같기 때문이다. 또, 맛집 소개서들이 주로 그렇듯 짧은 감상평만 담고 있지 않은 것도 장점이다. 빵에 대해 깊게 파고들면서 감칠맛나는 글이 충분히 있어서 읽는 것만으로 42개의 빵을 먹은 것 같은 포만감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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