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생각하느라 꽃을 피웠을 뿐이에요
나태주 엮음, 한아롱 그림 / 니들북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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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변하는 것만이 생명이고 아름다움이다.
변하는 것 그 자체가 세상이고 자연이고 우리네 인생이다. ...
눈부신 봄과 아쉽게 떠나는 봄, 새롭게 찾아오는 사랑과 잊혀져가는 사랑.
그 사이에 우리들 마음이 놓여 서성이고 있다.
울고 싶다. 목 놓아 울고 싶다.
그러나 소리 내어 울지는 말아야지.
지그시 울음을 참고 있으면 마음 속으로부터 우러나는 몇 마디 말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들의 시다.
-서문 中, 나태주 작가- "

 

나태주 시의 가장 큰 장점은 '시어가 쉽다'는 게 아닐까 싶다.
'풀꽃 시인'이라는 별호답게 자연의 변화, 특히 꽃과 나무의 생을 가장 예민하게 느끼는 시인이기도 하다. 
이 시집은 나태주 시인이 추구해 온 그러한 시 세계의 연장선에 있으면서
인생에 대해 더 넓게 관조하고 인간사에 대해 좀더 수용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행복은 하늘 위에 두둥실 무지개라고 생각했다
산 너머, 산 너머에 있는 거라고 생각해
긴 목을 더 길게 늘이곤 했다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고
어제 거기, 내일 저기에 있다고 생각해
그리워했고 애달파 했고 늘 아쉬워했다
번번이 목이 마르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비록 여기에 그대 나와 함께 있지 않을지라도
거기에 그대 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안심이고 평안하고 행복하다
비록 지구 반대편에 그대 있을지라도
함께 지구를 숨 쉬고 지구를 느끼며
하루하루 살아감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러하다 하루하루다
하루하루의 평안과 안녕과 무사함이 행복이다
그대 거기 잘 있나요?
나 여기 여전히 숨 잘 쉬고 있어요
멀리, 그대의 안부를 묻는다
우리에게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는
목숨의 거리가 있을지라도
거기 그대 잘 있나요? 나 여기 잘 있어요
스스로 묻고 대답하며 나는 오늘도
그대로 하여 충분히 행복하고 기쁘다

그 위에 무엇을 더 꿈꾼단 말인가!

- 멀리 그대의 안부를 묻는다, 나태주 -"

 

행복, 사랑, 삶, 희망... 4가지 키워드를 두고.... 나태주의 자신의 시와
에밀리 디킨슨, 괴테, 로버트 프로스트, 윌리엄 워즈워스, 타고르, 빅토르 위고, 투르게네프 등등 ...
우리가 사랑하는 많은 시인들의 시를 (따로 챕터 구분하지 않고) 함께 담고 있다.

"헤어지고 나서 / 해가 갈수록 / 보고 싶은 너
이시가리 교외에 있는 / 너의 집 뜨락 / 능금나무 꽃이 떨어졌으리
길고 긴 편지 / 3년 동안 세 번 왔었지 / 내가 쓴 편지는 네 번인데
- 노래, 이시카와 다쿠보쿠 -"

 

"나 죽으면 울어줄 사람 위하여 / 이 쪽지를 남긴다
나 죽어도 오래 잊지 않을 사람 위하여 / 마음을 담는다
너를 만난 것이 세상에서 가장 좋았던 일 / 널 사랑해서 고마웠고 행복했다
나 없는 세상에서라도 너무 / 힘들어 하지는 말아라
예쁘게 잘 살아라 / 하늘에서 내려다 본다
- 쪽지글, 나태주 -"

 

노 시인은, 긴 인생을 돌고 돌아 보니
어릴 적 어머님이 해 주시던 단순하고 명쾌한 말씀 속에 
인생사 살아가는 깊은 지혜가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노라고 고백한다.
자신이 떠난 뒤에도 여전히 세상에 남아있을 작품에 대해
내 것 아닌 듯 놓아 주라고 자식들에게 당부의 말도 남긴다.  
충분히 고마웠고 행복했다는 마음으로 삶을 놓아준다.
예전에 작가와의 만남에서 나태주 시인이 힘들었던 개인사를 얼핏 들려준 적이 있기에
그러기가... 삶에 대해 긍정적이고 수용적인 자세를 갖기가... 쉽지 않음을 아는데
나도 저 만큼 살게 되면 저렇게 깊어지고 넓어지고 평온해질까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시인은 이 책에 실린 시편들에 대해 독자에게 주는 '꽃다발' 같은 것이라고 하였다.
봄의 끝자락에 뭉클한 감동으로 그 꽃다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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