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의 눈물 대한민국 스토리DNA 16
전상국 지음 / 새움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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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국 작가의 중단편 9작품을 한 데 모은 소설집 우상의 눈물은 글 전반에 걸쳐 날 것의 냄새를 짙게 풍긴다마초적이라고 해야 할지남성적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독자들에게 어떤 압도적인 위압을 풍긴다고 표현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그럴 정도로 9편의 작품은 모두 강렬하고 인상적이다요즘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는 정제되고 예쁜 느낌의 글들과 사뭇 다르다그래서인지 책을 펼치고 그 흐름에 익숙해지기까지다소 힘들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글을 만들어내는 상황들이 극적인데다 그 갈등을 풀어가는 방법이 너무 현실적이기 때문이다그리고 그러한 현실적인 맞닿음이 주는 왠지 모를 불편한 분위기가 소설 전반에 만연하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는가소설혹은 글을 읽는 것은 그 행위를 통해 내가 가지지 못한 이상에 닿고 싶은 마음이 발현된다는데 1차적 기쁨을 느낀다던지, 혹은 내가 처한 현실에서 벗어나 이상적인 현실에 들어감으로 인해 그 순간만이라도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 같은 것.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이 소설집 우상의 눈물은 풀어내는 해답마저 지극히 현실적이다
예를 들어 이렇다
표제작 우상의 눈물은 교내 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헤친다
반의 문제아인 유급생 기표는 반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들이 있으면 그를 골라내 괴롭힌다자신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주변 아이들을 이용한다하지만 그들을 통제하는 우두머리가 기표라는 걸모두가 알고 있다선생님들마저 그런 기표를 포기한다와중반장이 된 형우는 의협심이 넘친다. 반 아이들 모두가 좋은 길로 가길 바란다
문제는 여기서 발발한다문제아 기표마저도 인정한 듯 보였던 형우는, 아이들의 우려와는 다르게 반을 잘 이끌어나간다그러다 기표의 유급을 막기 위해 반 아이들과 합의하여 부정행위를 시키려 하는데외려 이 부정을 기표가 고발하고 나서게 되며 문제가 커진다. 기표가 부정행위의 중심에 있던 반장 형우에게 폭행을 가하게 되는 것이다. 기표를 퇴학시키자는 사람들을 만류하며 반장 형우는 모두가 좋은 길로 가고자 한다. 그렇게 입원을 마치고 반으로 돌아와서도, 형우는 기표의 가난을 반 아이들에게 알리며 기표를 돕자고 반 아이들을 설득한다.
아마 여기까지가 보통의 내가혹은 보통의 독자들이 바라는 아름다운 결말혹은 이상적인 현실일지 모른다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 소설집 우상의 눈물은 갈등을 풀어나가는 방법이 너무도 현실적이라 답답하게 가슴이 저려온다.

" 형우는 기표네 가정 사정을 낱낱이 얘기함으로써 이제까지 우리들에게 신화적 존재로 군림해 온 기표의 허상을 빈곤이라는 그 역겨운 것의 한 자락에 붙들어 맨 다음 벌거벗기려 하는 것 같았다. 기표는 판잣집 그 냄새나는 어둑한 방에서 라면 가락을 허겁지겁 건져 먹는 한 마리 동정받아 마땅한 벌레로 변신되어 나타났다.


형우의 바람대로 반 아이들은 기표를 악마에서 그저 불쌍하고 도움이 필요한 불안정한 아이로 생각하고 그를 돕기 시작한다. 그렇게 반의 분위기는 형우의 바람대로, 혹은 담임의 바람대로 화기애애해진다. 그러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가 언론에 알려지며 결국 영화로 제작되는 기회까지 맞게 된다하지만 온순한 양으로 변한 것 같던 기표가 영화 관계자를 만나기 직전에 사라진다동생에게 이런 편지를 남기고.

무섭다나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
  
이 소설은 기표의 물리적인 폭력눈에 보이는 폭력을 다룰 뿐 아니라 기표를 위해서라는 말로 포장된 형우와 반 아이들의 보이지 않는 폭력을 이 소설은 그대로 드러낸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타인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자행되는 무수한 행동들그 보이지 않는 폭력으로 인해 다시 상처를 받는 나와 우리들
  
그래서 이 소설은 불편하게 다가온다그리고 그 불편함이 익숙해지기까지 €혹은 이 책과 친해지기까지나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뿐만 아니라 책의 시작을 알리는 플라나리아에서는 여러 토막을 내도 각 개체가 다시 하나의 완성된 몸으로 자신을 복제해내는 플라나리아를 닮은 한 여자의 증발과 사체로 발견되는 과정을, ‘우리들의 날개에서는 살이 낀 둘째아들 두호가 죽어야 가장인 남편이 산다는 말을 듣고 자식이 죽기를 바라는 부모의 모습과 자신에게까지 악영향이 끼친다 생각하여 어린 동생을 산에 버리고 오다가 마음을 바꿔먹는 첫째 아들 한호의 이야기를 그린다그리고 그 모습들은 앞서 이야기 한 현실과 너무 닮아있어 글을 읽는 내내 착잡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그러한 감정의 굴곡을 거둬내면 사실 이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다른 방식으로 깨달음을 준다혹 내가 누군가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하는 의문과 자기반성을 하게 해준다. 나 역시 이 책을 읽는 동안 따끔하고 저릿하게 울렸던 것 만큼 많은 생각과 반성을 할 수 있었다
  
다음에 읽을 때는 우리 조금 더 친해져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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