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
임재희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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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흐릿한 가운데 그녀의 의식만이 분명했다. 한국도 미국도 아닌 현재 서 있는 곳이 그녀가 존재하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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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어딘가에 속해있고 싶어하고 소속되고 싶어한다. 정착이 주는 안정감과 소속이 주는 안락함때문일 것이다.

 

나는 2000년 초반에 2년 정도 일본에서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처음 한국을 떠날 때만해도 일본에서의 누릴 수 있는 삶은 일상이 여행일 것만 같아 행복한 마음을 가눌 길 없었다. 하지만 정작 일주일이 지나고 난 뒤 찾아온 박탈감이랄지, 허무함은 공허함이 되어 내게 돌아왔다.

 

나는 그곳에서 철저하게 이방인으로 취급받았다. 일본이라는 국가의 소속이지 않은 내게는 국가가 주는, 혹은 소속이 주는 안정감이 없었다. 그것은 내가 어떤 일을 당해도 그것을 보호해주거나 지켜주거나 혹은 상처를 보듬어줄 누군가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살아야했다. 유순하지 않은 말을 해가며 나의 말도 아닌, 그들의 말도 아닌 어중간한 말과 대충의 웃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텨야했다.

 

속하지 않는다. 속할 수 없다. 어느 그룹에 낄 수 없다. 발버둥쳐도 되지 않는다.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긴 밤 외로움이 사무쳤고 한 낮 공허함이 몸부림쳤다. 그렇게 버티는 삶을 지켜내다, 나는 결국 일본의 지진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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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양아버지는 오랜 생각 끝에 나의 이름을 그렇게 지어달라는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대요. 그래서 Abcd라고 써놓고 ‘압시드’라고 발음해보았더니 꽤 괜찮더래요. 그렇게 나는 한국에서부터 영문 이름을 갖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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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폴의 하루'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들의 이야기 아홉편을 한데 묶어둔 책이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와서 살거나, 한국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간 여덟명의 사람들 이야기와 태어나서 부터 쭉 한국에서 살고는 있지만 어떤 불행들로 인해 사회로 부터, 친지로 부터 철저히 고립되어 버린 한 여인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전체적인 감상편을 이야기하자면, 아홉편의 이야기가 모두 좋았다. 온전히 나의 이야기 같지는 않았지만 내가 일본에서 체류하는 2년간 느낀 감정들이 고스란히 녹아져있었다. 읽기도 수월하고 작가 본인의 감정이 오롯이 담겨져 있었다. 하고자 하는 주제가 일괄 되어 하고자하는 이야기의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책 마지막에서처럼 이민자 및 역이민자를 다룬 이야기 8편과 한국에서 살면서 고립되어 정착하지 못하는 여인 동국의 이야기도 큰 멜로디 안의 변주처럼 잘 어우러졌다.

 

짬짬이 읽기 좋은, 그리고 생각할 요소가 많은 책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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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흐릿한 가운데 그녀의 의식만이 분명했다. 한국도 미국도 아닌 현재 서 있는 곳이 그녀가 존재하는 곳이었다. 딱히 공간성도 시간성도 없는 원초적인 그리움 같은 게 뭉실뭉실 피어오르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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