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 (반양장) -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9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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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바로 책의 겉을 감싸고 있는 띠지였다.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누구를 고르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은 기존의 통념적 가치가 뿌리 깊게 박힌 나에게 충분한 자극을 주었다.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출산율에 골머리를 앓던 정부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바로 부모가 양육을 포기하는 아이들에 한해서 직접 기르기로 한 것이다.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이들은 국가의 아이들(Nation's children)으로 이름 붙여지고, 전국 각지에 설립된 NC 센터에서 열여덟 살까지 생활할 수 있다. 열여덟 살 이전에 새 부모에게 입양이 된다면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한 NC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 있다. 하지만 열여덟 살까지 새 부모를 만나 입양되지 못한다면 부정적인 인식과 함께 사회에 떠밀리게 된다.


NC 출신이라는 사실을 물감으로 지워 버리고 싶었을까?

혹은 자신의 미래를 원하는 색깔로 물들이고 싶었던 걸까.

각기 다른 색이 서로에게 물들어가는 과정이 바로 부모 면접이었다.

색이 섞여 전보다 밝게 빛날 수도 있고, 탁하게 변할 수도 있었다.

p34


  제누 301은 국가의 아이들의 일원이다. 제누는 1월에 태어난 남자아이의 총칭이며 301은 구별을 하기 위해 붙인 고유 번호다. 따로 이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열일곱 살의 나이로 NC 센터에서는 비교적 고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곧 열여덟 살이 되기 때문에 좋은 부모를 만나서 NC 센터를 떠나야 NC 출신이라는 기록이 전산상 남지 않을 테지만,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입양을 원하는 부모(프리 포스터)들을 바라보기 때문에 쉽지만은 않다. 제누 301은 그간 여러 번 페인트(부모 면접의 준말, Parents Interview)를 경험했기 때문에 입양 신청을 원하는 자들의 목적은 오로지 정부가 제공하는 경제적인 지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활관 룸메이트 아키 505, 국가의 아이들을 돌봐주는 가디언들 그리고 제3자가 보기엔 자격 미달이지만 진심으로서 제누 301을 대해주는 괴짜 부부와 겪는 에피소드 등을 통해 제누 301 스스로 조금씩 성숙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세상 어떤 부모도 미리 완벽하게 준비할 수는 없잖아요."

(...)

"부모와 아이와의 관계, 그건 만들어 가는 거니까요"

p91


  제누 301이 그간 만난 입양을 원하는 부모(프리 포스터)들은 사전 정보에 빠삭하고 모든 것이 계획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반면 후에 만난 이상한 부부와 같은 경우는 계획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최종적으로 제누 301의 거절로 입양이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제누 301은 이상한 부부에게 더 큰 매력을 느꼈다. 물론 어느 정도 육아에 대한 사전 지식을 겸비하고 있다면 좋은 부모가 될 가능성은 높아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준비가 지나치다면 오히려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아이 본연의 모습이 아니라, 부모들에게 꾸며지는 아이의 모습 말이다. 이 내용은 이상한 부부 중 아내인 하나의 과거 이야기와 이어진다. 딸이 외교관이 되길 원했던 하나의 어머니는 자신의 꿈을 딸에게 투영했다. 그 결과 딸은 온전한 자신의 모습으로 삶을 살지 못했다. 언제나 어머니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특히나 자식은 부모의 소유라는 생각이 강한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은 부모가 원하거나 시키는 대로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져왔다. 과연 그것이 옳은 것일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까지나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 역시 서로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독립이란 성인이 된 자녀가 부모를 떠나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의 말처럼, 어쩌면 부모 역시 자녀로부터 독립할 필요가 있는 건지도 몰랐다.

자녀가 오롯이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걸 부모에 대한 배신이 아닌 기쁨으로 여기는 것, 자녀로부터의 진정한 부모 독립 말이다.

p160


모른다는 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모르기 때문에 배울 수 있고, 모르기 때문에 기대할 수 있으니까.

삶이란 결국 몰랐던 것을 끊임없이 깨달아 가는 과정이고 그것을 통해 기쁨을 느끼는 긴 여행 아닐까?

p196


  저자는 사회에 만연한 차별에 대해서도 꼬집고 있다. 소설 내에서도 NC 출신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굉장히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일반 가정에서 출생한 부류들은 NC 출신을 무시한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제누 301은 새 부모를 만나 NC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지우기보다는 헤쳐나갈 것을 다짐한다. 차별을 한다고 해서 애써 NC 출신임을 부정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연 우리 사회, 혹은 우리 개개인들은 이런 차별에 대해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정말로 모른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양념 같은 것인 듯하다. 우리가 전지전능해서 모든 것을 안다 가정한다면, 인생이 무슨 재미가 있을까. 불안과 설렘, 그리고 환희와 기쁨 같은 단어는 애초에 느껴본 적이 없거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모른다는 것이 가져다주는 결과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상관없이 우리는 거기서 살아있음을 느끼는 게 아닐까.

  청소년 문학이라고 해서 얕본다면 큰 오산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생각해보아야 할 것들을 여럿 던져주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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