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람일시 및 장소 : 메가박스 청라 15:05
일단 고마워요 알라딘, 책만 주시는 줄 알았더니 이번에는 이렇게 영화 티켓까지.
봉감독의 <기생충>이 스크린 독과점을 하는 바람에 2주 전에 개봉한 <알라딘> 보는 게 쉽지가 않았다. 극장에 가서 들어 보니, 기생충 아니면 알라딘이라고 하더만. 암튼 스크린 독과점이 영화 산업 발전에 도움이 아니라 독이 될 거라는 생각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특히 상영과 제작이 분리되지 않은 한국에서는 더더욱.
디즈니의 <알라딘>이 실사화된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걱정을 했다지. 그런 건 아마 <라이언 킹>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라이언 킹도 기대가 많이 된다. 램프의 요정 지니(윌 스미스 분)와 원숭이 아부가 다 해먹었다고 하던데 과연. 이야기는 가족과 함께 항해에 나선 윌 스미스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노래로 불러 달라는 말에, 점잔 빼다가 결국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지금은 배우로만 활동하지만, 1968년생인 윌 스미스는 이미 18세에 프레쉬 프린스라는 예명의 래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니 노래 실력 하나는 인정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빌보드 1위 곡도 두 곡이나 가지고 있더라는.
서설이 언제나처럼 길었다. 주인공 알라딘(메나 마수드 분)은 사막의 왕국 아그라바에 사는 생계형 좀도둑이다. 아버지 어머니는 어려서 돌아가시고, 배운 기술이라는 도둑질 뿐이니. 시장에서 배고픈 아이들에게 빵을 주려다 도둑으로 몰린 재스민 공주(나오미 스콧 분)를 돕다가 눈이 맞은 알라딘. 아들이 없는 아그라바 왕국의 술탄은 재스민 공주에게 왕국을 물려 줄 수 없다. 이 틈을 타고 교활한 재상 자파는 왕국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음모를 꾸민다. 어때 이 정도면 전형적이지.
알라딘이 도둑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으로 고민한다면, 재스민 공주는 술탄이 될 수 없는 자신의 한계와 싸운다. 한편, 자파는 최고의 소서러(마법사)가 되기 위해 마술램프의 요정인 지니의 힘이 필요하다. 지니는 알다시피 세 가지 소원 밖에는 들어줄 수가 없다네. 개인적으로 영화 알라딘에서 최고의 장면을 꼽는다면 다음의 두 장면이 있다. 하나는 알라딘이 마술램프의 동굴에서 얻는 장면, 마법의 양탄자까지 등장하니 어찌 경이롭지 않을 수가 있을까. 자파는 동굴에서 오로지 마술램프만 들고 나와야 한다는 경고를 하지만, 각양각색의 보물들에 눈길을 주지 않을 수가 있나. 원숭이 아부의 선천적인 욕심(!) 때문에 결국 사달이 나고야 만다. 의외로 거리의 좀도둑 알라딘이 욕심을 내지 않고 자파의 경고를 그대로 따른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다른 하나는 역시 디즈니 뮤지컬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지니의 도움으로 아브와바인지 뭔지하는 존재하지 않는 왕국의 왕자로 둔갑한 알라딘이 아그라바 왕국에 입성하는 장면이다. 지니의 경고는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확실해 보인다. 더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이 원하게(the more you have, the more you want) 된다는 거다. 당연한 게 아닌가. 돈과 권력이 없다면, 없는 대로 만족하면서 사는 법이다. 그런데 우연찮게 그런 돈과 권력이 생긴다면 볼 것도 없다. 문제는 그래도 나름 선한 심성을 지녔던 알라딘마저 재스민 공주와 결혼하겠다는 욕심에 빠져 지니를 램프에서 풀어 주겠다는 약속을 어길 거라는 선언이었다. 돈과 권력이 주는 유혹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는 말인가.

자파의 경우에서 보듯, 돈과 권력을 가져서는 안될 사람이 가지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된다는 걸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알라딘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신세대 여성관을 대변하는 재스민 공주 못지않게, 흥미로운 캐릭터가 바로 술탄의 경호대장 하킴이었다. 우직한 무장 하킴은 재스민의 아빠 술탄이던, 자파 술탄이던 법대로를 외친다. 왕위 아니 술탄계승권이 없지만 백성을 사랑하는 재스민 공주가 술탄이 된다면 백성들이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어디선가, 가장 가난한 사람의 행복이 지도자가 누리는 행복만큼이라던가 하는 말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암살당하고, 공주마저 비슷한 운명을 겪게 될까봐 걱정한 아빠 술탄의 염려로 궁전에 매여 사는 재스민 공주의 삶이 과연 행복한 건지. 그리고 바보에 가까운 스칸랜드 출신 왕자와 결혼해야 될지도 모른다는 설정도 참 그렇다.
디즈니는 술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무슬림 왕국이 분명한 아그라바의 종교적 색깔을 쏙 빼버렸다. 서구 사회에서 요즘 이슬람 근본주의의 테러로 무슬림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런 설정을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디즈니가 구사하는 오리엔탈리즘은 여전히 변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 초반에 윌 스미스가 불러 제끼는 “애러비언 나이트”처럼 환상을 자극하고, 마법사가 정치를 주무르는(이슬람 신정정치에 대한 노골적인 비꼼일까) 미지의 세계를 소재로 삼아 세계 영화판을 주무르는 자시의 이윤을 극대화하겠다는 일종의 세계화 전략이 아닌지 나는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즐기면 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너무 많은 걸 기대한 게 아니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뭐 어쨌든 영화는 즐겁고 재밌게 봤다. 어디선가 인도 영화라 춤과 노래가 빠지면 안돼서 엔딩에 신나는 춤판을 설정했다고 하는데, 알라딘이 인도 출신은 아니었지 아마. 뭐 또 그러면 어떤가.
다시 한 번 고마워요 알라딘. 앞으로 열심히 책 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