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준비의 기술
박재영 지음 / 글항아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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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가 안 되면 시원스쿨, 여행을 못 가면 여행준비

p.239

영어가 안 되면 시원스쿨...여행을 못 가면 여행준비..?

누구나 아는 광고 문구에 여행준비를 스리슬쩍 넣은 이 사람.

"취미가 뭐예요?" 물으면,

"여행준비요."라고 답하는 이 사람.

바로 여행준비의 기술의 저자 박재영 작가가 '이 사람'이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는 현실에서

여행준비의 기술'여행준비'라는 새로운 대안 취미를 제안한다.

이제...저자의 다양한 여행준비 경험(?)과 유머를 곁들인...

 

(null)

코로나로 국가 간 이동이 어려워진 지금,

해외여행은 불가능할지라도

가고 싶은 여행지를 정하고,

뭘 먹을지, 뭘 할지를 정하는

'여행준비' ..지장이 없다!

이처럼,

여행은 아무나 못 가지만

여행준비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말은

지금 이 시국에 너무나도 달콤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너무나도!

재밌어 보인다... 꿀꺽

 

(null)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여행준비의 과정에서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이유는 여행준비가 선택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선택이란 포기의 다른 이름이다.

p.62

 

(null)

수학여행 전날 설레어 잠 못 이루듯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은 참으로 설레고,

때론 실제 여행보다 큰 즐거움을 준다.

물론 여행을 계획하는 스타일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여행준비가 주는 공통된 장점이 있다.

바로

'내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게 해준다.'

는 것이다.

여행지 선정부터 우린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 후로도 여행준비는 갖가지 선택을 요구한다.

이처럼 기나긴 선택의 과정을 지나다 보면

내가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에 대한 대략적인 지표가 나온다.

우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로 이러한 과정을 지나고 보면

막상 내가 내가 생각하는(?) 사람과 다르단 것을 알 수 있다.

여행준비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갖는다.

 

(null)

여행을 가면 반드시 그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곳을 방문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기만 하면 된다.

p.81

어디 가서 자랑할 수도 없고 사진 말고는 남는 것도 없는, 남들이 좋다고 하는 유명 관광지보다는 내 마음이 왠지 끌리는 곳, 그곳을 선택했을 때 기억에 훨씬 더 오래 남는다. 좋은 곳이 좋은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곳이 좋은 곳이다.

p.203

 

(null)

포털 사이트에 여행지를 검색하면 가장 위에 뜨는 관광명소와 식당.

특별함이 없지 않은가?

저자는 남들도 가길래 따라가는 여행보단

내가 좋아하는 곳,

다른 이들에겐 특별함이 없더라도 나에게 특별함을 주는 여행을 지향한다.

여행은 나 좋으려고 간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null)

항공료나 숙박비를 포함한 전체 여행 경비를 생각하면, 그 많은 돈을 쓰는 것이 결국은 행복한 추억을 만들기 위한 것임을 생각하면, 그 여행을 대표할 수 있는 한 끼의 식사에는 돈 좀 써도 아깝지 않다.

p.104

 

(null)

여행가서 돈 아끼는 건 멋없지 않은가?

(멋도 없고 맛도 없을 수 있다.)

물론 한도는 있겠지만,

여행지에서만큼은 대단한 걸 먹어보자.

요즘 유행인 플렉스를 해보자.

집 돌아와서

! 이거 그냥 먹어볼걸!

하며 후회하는 것보단 먹고 나서 후회하는 게 후련하지 않을까?

후에 같은 여행지를 갔을 때 그 음식점을 배제하면 된다.

 

(null)

책을 읽다 보면 가고 싶은 곳이 생기고, 그런 마음이 오래도록 진하게 쌓여 있는 곳에 가면 더 즐겁다.

p.159

독서와 여행준비는 좋은 짝이다. 둘 다 좋은 취미지만, 두 가지를 다 좋아하면 확실한 시너지가 생긴다. 목적지가 정해졌을 때, 조금만 검색해보면 그곳과 관련된 책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책값 몇만 원을 미리 쓰면, 여행이 최소 몇십만 원어치는 더 즐거워진다. 독서는 여행준비를 자극하고, 여행준비는 독서의 보람을 느끼게 해준다. 독서는 여행을 더 즐겁게 만들고, 여행은 독서를 더 즐겁게 만든다. 이런 게 바로 '선순환'의 좋은 예가 아닐까.

p.167

 

(null)

책을 읽다가 그 지역을 가보고 싶은 생각 다들 해보셨을 거다.

(이 글을 찾아 읽는 사람이라면 분명???)

아름답게 묘사된 소설 속 광경에 매료되어 여행을 갈 수도 있고,

여행책자를 훑다가 여행을 가게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책은 우연한 여행의 계기를 제공한다.

책 속 광경을 실제로 보게 됐을 때의 감상은

모 아니면 도겠지만,

그 여행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음은 분명하다.

 

(null)

여행의 진짜 즐거움은 준비하는 단계부터 시작해서 긴 시간 동안 추억을 곱씹는 과정 전반에 걸쳐 있다. 하나 더 보고 덜 보고가 그렇게까지 중요한 건 아니라는 의미다.

p.236

위의 말에 따르면,

여행준비도 여행의 일환이다.

사실상 여행의 시작은 여행준비인 것이다.

그리고 여행이 가고 싶어지면

우리 모두 구글맵을 켜보자.

구글맵의 별표 기능을 사용하여

가고 싶은 지역을 저장해보자.

그것만으로도 후에 여행을 갈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참고로 네이버 지도에도 저장 기능이 있다.

나는 네이버 지도 저장을 사용한다.

네이버 지도 단점은 국내만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여행준비의 기술을 읽고 나면 묘하게 여행준비란 취미에 빨려 든다.

나도 모르게 여행준비에 납득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런 내가 싫지 않은 기분이다.

이 책. 심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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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간판들 - 오래된 한글 간판으로 읽는 도시
장혜영 지음 / 지콜론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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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왜 그럴까 조금

촌스러운 걸 좋아해~

아이유 팔레트 중

 

사라지지 않는 간판들

 

 

왜 그런지는 몰라도 촌스러운 걸 좋아하는 아이유처럼

나도 살짝 헤져있고, 어딘가에 녹이 슬어있을 법한 것들을 좋아한다.

이렇듯 촌스럽고 낡은 느낌을 좋아함을

'세월의 흔적이 묻은 것'이 취향이라고 포장해본다.

 

사라지지 않는 간판들에선 오래된 한글 간판으로

도시의 세월을 거슬러 함께 여행한다.

책 속 소개된 간판은 업종을 가리지 않고

오직 오래된 간판이란 공통점만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작가가 소개하고자 했던 간판들과 결이 비슷한,

내가 한국을 돌아다니며 수집(?) 한 간판을 여기서 소개해보고자 한다.

 

올해 여름, 기회가 생겨 강릉을 다녀왔다.

여행을 갈 때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것 하나는 꼭 가야 한다'

라는 다짐을 하는데, 이번엔 그 장소가 테라로사였다.

 

커피로 유명한 강릉에서 커피로 유명한 테라로사.

당연히 가봄직하지 않은가?

가서 놀란 건 커피 맛보다 '한길서가'가 있음과 테라로사의 탁 트인 내부 전경!

간판 역시 노출 콘크리트 벽에 한국스러운 글씨체와 영어의 부조화가 독특하다.

 

같은 강릉 여행에서 툇마루를 갔지만,,!

하필 내가 간 날 영업을 하지 않았고 아쉬운 마음에 간판이라도 찍어왔다.

주름진 나무 간판에 투박하게 쓰인 가게 이름이 정겹다.

강릉 여행 이틀 차이자 마지막 날엔 역시 해장을 위해 토담 순두부로 향했다.

배부르게 나온 뒤 마당을 서성이다 가게의 간판을 발견했다.

칠판(?) 같은 디자인에 토담 순두부가 적혀있고

나무 기둥에 무심하게 박혀있다.

정겹다!!!

 

생각보다 날이 안 더워 정처 없이 산책을 하다가 발견한 정류장

필름 카메라에 담기기 애매한 거리였지만 꽤 느낌 있게 나왔다.

이로써 강릉 여행 끝!

 

간판만 봐도 부산 광안리의 소금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가?

부산역 바로 앞에 있는 초량 밀면의 간판은 중국집 느낌(?)을 풍긴다.

초원(복어)복국은 가운데에 있는 복어가 참 귀엽다.

통영 상회는 민락 회센터 안에 있다.

큰이모의 지인분이 하셔서 부산 갈 때마다 저기서 배부르게 회를 먹는다.

민락 회센터 안에 위치한 횟집의 대부분은 저러한 형태의 간판이다.

(그래서 특정 횟집을 찾기 어렵다,,)

 

보수동 책방 골목은 옛날 책방의 이미지 그대로이다.

온갖 종류의 책이 자리 잡고 있으며

서점마다 특색 있는 큐레이션을 가지고 있다.

간판은 밋밋하지만 '나 서점이야~'하는 느낌을 확실하게 준다.

 

초원복국을 가는 길에 발견한 옛 느낌 물씬 나는 다가구주택이다.

나의 부산 집 근처에도 단색 칠에 단조로운 검정 글이 적힌 주택이 많다.

이건 부산 특유의 디자인인가?

 

부산 자갈치시장 근처였을 것이다.

혹시나 하고 이런 느낌의 사진을 내 앨범에서 찾아보면

역시나 있다.

녹슬고 떨어진 간판이 장인의 기운을 풍긴다.

 

나의 역 컬렉션이다.

이렇게 나열해서 보니

모든 역은 간판이 같은가 보다.

 

이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간판 사진이다.

춘천에서 떠돌다가 발견했다.

사진 찍은 지도 4?쯤 된 듯해서 아직 가게가 있을지 모르겠다.

녹슨 간판과 해 질 무렵의 초라함이 잘 어우러졌다.

 

노들섬에 있는 노들서가의 간판이다.

노들섬에서 보이는 석양을 간판에 담은 모습이다.

이 사진은!

지콜론북 강연을 다녀와 찍은 사진이다.

지콜론북 서포터즈를 마친 지도 어느덧 한 달이 넘었다.

끝이 있음은 항상 아쉽지만,

지콜론북 덕분에 나의 22살은 알찼다.

(책과 가까운 한 해를 보내고자 하는 나의 목표를 이뤄줬다!)

 

누군가는 그저 스쳐 지나갈 것들에 시선을 두고 사라져감에 안타까워하는,

자그마한 것들에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라지지 않는 간판들을 쓴 저자의 마음도 그러할 것이다.

책에 담긴 가게들이 언젠가 물리적으론 사라질지라도,

사진으로 남겨두고 기록한다면

사라지는 간판들은 사라지지 않는 간판들로 남을 것이다.

 

덧붙여 사라지지 않는 간판들을 읽으며

나의 앨범을 정주행하는 기분은 참 묘했다!

잊으면 안 될 기억들을 되찾아준(?) 소중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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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령사 오백나한의 미소 앞에서 - 김치호 한국미술 에세이
김치호 지음 / 한길아트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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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이 모데라토(보통 빠르기)’라면 고미술은 몰토 아다지오(아주 느리게)’쯤 된다고 할 수 있다.”

 

책을 읽다 보면 나의 부족한 지식이 드러나 부끄러운 기분이 들곤 한다. 클래식 음악 에세이를 읽을 때가 그러했고, 고대 한국미술 에세이 창령사 오백나한의 미소 앞에서를 읽으며 다시금 부끄러움을 느꼈다.

 

창령사 오백나한의 미소 앞에서의 저자는 특이하게도 경제학 교수 경력이 있다. 저자의 독특한 경력 때문인지 미술품 컬렉션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저자가 마주한 미술 시장을 경제학의 눈으로 파헤치려는 시도가 자주 보인다.

미술문화가 자본과 경제력으로 양육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실을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

 

미술 문화가 꽃피울 수 있었던 동력이 부와 권력을 지닌 재력가들의 후원임은 부정할 수 없다. 사업에 있어선 누구보다 계산적이었던 재력가들이 예술에 관해선 한없이 너그러워지는 신기한 현상 덕분에 오늘날 우린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예술작품을 마주할 수 있게 됐다.

 

특정 미술이 있는 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것 역시 위의 이유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부로 채워지지 않는 교양을 채우기 위해 재력가들은 집에 고가의 미술품을 장식하며 본인의 부와 교양을 과시한다.

 

경제학도인 저자의 날카로운 눈엔 부와 미술의 연관성이 포착되었고 재력가들이 미술품을 선호하는 것으로 미술품이 상속에 유리하고, 장기적인 투자와 재테크 수단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이유를 제시한다. 나였으면 보지 못했을 부분을 저자가 날카롭게 짚어주며 경제학과 미술을 자연스레 연관 짓자 글이 빠르게 흡수되는 기분이었다.

 

더불어 여타 시장과 다른 미술 시장의 특징으로 작품의 진위 여부, 정보의 비대칭, 과다한 거래비용, 폐쇄적인 시장을 들며 이는 곳 신뢰의 붕괴로 이어지기에 길게 본다면 미술 시장이 점차 쇠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녔다고 토로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시장의 투명성 회복을 도모하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미술 시장의 신뢰 회복을 위해선 작가 도록, 컬렉션 목록, 거래 이력 등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시장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경매 시장 활성화를 제시하지만, "현실과 괴리되는 것이 이론의 숙명인지라며 이론의 한계를 스스로 절감한다.

 

한국 고미술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주제가 바로 환수 문제다. 호란과 왜란을 겪고,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지나며 우리나라의 많은 미술품이 국외로 유출됐다. 그중에선 도굴 등의 불법적인 방법이 동원된 경우도 있고, 개인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가져간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뼈아픈 역사가 있다 보니 문화제 환수 문제에 있어선 불법, 합법을 가르지 않고 온 나라가 예민하게 반응하며 언론은 이때다 싶어 불을 제대로 붙인다.

 

명확한 증거도 없이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호들갑을 떨며 불법인 양 몰아붙이고 소송을 제기한다든가 국가 간 문제로 부각시켜서는 더더욱 안 될 일이다. 그럴수록 물건은 지하로 숨어버리고 시장을 통한 환수 기회마저 원천적으로 잃어버리게 된다. 목적이 환수에 있다면 그 목적 달성을 위해 국가기관이 전면에 나서기보다 민간의 힘과 지혜를 빌려 그들이 알아서 경매에서 낙찰받거나 사오게 하면 되는 것이다.”

 

맹목적인 애국심과 단기 실적주의에 매몰되면 부작용이 커지고 국외에 소재하는 문화유산은 점점 더 지하로 숨어들게 된다. 시장에서 사올 수 있는 기회마저 잃어버린다는 말이다.”

 

이에 저자는 문화유산 환수 문제는 국가가 아닌 민간에 의해서 시행되는 것이 올바르다고 지적한다. 국가가 전면에 나서게 되어 환수 문제가 시끄럽게 만들어진다면 정당한 방법으로 사들일 수 있는 기회조차 수면 아래로 사라지게 될 것이라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건넨다.

 

저자의 한국 고미술 컬렉션에 대한 애정은 책 곳곳에 듬뿍 스며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을 즐겨 모으거나 한 분야에 몰입하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마니아라고 부른다. 수집 마니아를 수집광으로 부르듯, 그 말에는 부정적인 의미보다 오히려 순수하고 긍정적인 의미의 병적이거나’ ‘미치광이라는 뉘앙스가 담겨있다.”

 

책 속 위의 문장을 보는 순간은 저자와 나의 급격한 공감대와 내적 친분이 형성되는 순간이었다. 마니아를 한국어로 풀어 말할 때 '~' 등 뒤에 미친 자를 의미하는 단어를 붙이지만, 실상 '미친'의 의미는 더없이 순수한 욕구를 말한다. 좋아하는 문구류, 좋아하는 저자의 책, 영화 포스터 등을 야금야금 수집하는 나로서 기분이 괜히 좋아졌다.

 

책 사이사이엔 미술품 사진이 있기에 저자의 경험에 대한 이해가 수월하다. 책에서 소개하는 청자 양각 구룡 정병은 웬만해선 미술품에 관심 없는 나조차도 소유욕을 일으키게 했다. 문제는 갖게 된다 하더라도 설거지를 어떻게 해야 하냐는 의문이 남는다.

 

다양한 상상력이 스토리텔링에 더해질 때 차가운 유물은 온기가 돌고 살아있는 생명체로 거듭나게 되는 법이다.”

 

올해 초에 한성백제박물관 안에 있는 정보자료실에서 한 달간 일한 적이 있다. 아무래도 일하는 곳이 박물관 안에 있다 보니 출퇴근 길엔 항상 전시되어 있는 유물을 보았고 시기마다 하는 기획전을 보기도 했다. 어떤 유물은 굳이 박물관에 있어야 하나 싶기도 했고, 어떤 유물은 정말 가치가 있어 보였다.

 

굳이 이런 얘기를 하는 건, 한성백제박물관의 유물이 별로였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알아보는 나의 지식, 정보, 상상력이 부족했기에 유물을 차가운 돌덩어리들로 취급했단 것이다.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한국의 것들에 관심을 갖고 박물관을 들르며 지식과 정보를 쌓고, 해당 전시, 유물에 대한 상상력을 곁들인다면 모든 유물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고 있음을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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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 여섯 개의 세계
김초엽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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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지닌 시의성은 만들어진 세계를 통해 읽는 이로 하여금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팬데믹: 여섯 개의 세계에선 김초엽, 듀나를 포함한 6명의 작가가 6편의 SF소설을 통해 팬데믹에 처한 우리 사회가 느끼는 이질감, 단절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풀어낸다.

 

코로나19는 순식간에 우리의 일상에 침투하여 많은 것을 앗아갔고, 지금에 이르러선 우리의 일상 자체가 되었다. 세정제를 사용하여 건조해진 우리의 손, 물아일체가 된 마스크가 그것을 증명한다. 확진자 수가 줄어들며 끝날 듯 보이던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일상으로의 복귀라는 달콤한 꿈을 안겨줬다. 그러나 2차 유행기에 접어들며 각종 시설이 폐쇄되고 거리두기가 강화되며 일상으로의 복귀는 꿈으로만 남게 되었다.

 

최후의 라이오니_김초엽

어떠한 이유로 멸망한 행성을 탐사하는 도중 만난 로봇들을 통해 해당 행성의 멸망 이유와 로봇이 기다리고 있는 라이오니라는 존재에 대해 들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의 이야기이다. 작품 속 행성의 멸망 이유인 전염병과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는 동일시되기엔 무리가 있지만, 앞으로도 다양한 전염병과 마주하게 될 우리 사회에 명확한 위기의식을 전달한다. 멸망한 행성 속 문명이 어느 미래엔 우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죽은 고래에서 온 사람들_듀나 작가

물에 잠긴 행성에서 문명을 이어가기 위해 고래 무리의 등 위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고래 무리의 등 위에서 살아감은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을 나타냄과 동시에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인간을 위협하는 전염병이 연이어 발생하는 것은 기존의 자연을 폭력적으로 다룬 인간의 업보이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지내며,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질병에 대비할 줄 아는 태도를 보여야만 할 것이다.

 

미정의 상자_정소연

코로나19의 현시점을 한 연인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소중한 사람을 코로나19로 잃게 된다는, 상상도 하기 싫은 가정을 소설로나마 보게 되니 기사보다 현실 직시가 잘 되는 기분이다. 암울한 주제를 다뤘기에 잃은 후 끝 맛이 텁텁한 건 어쩔 수 없는 듯하다.

 

그 상자_김이환

전염병으로 마비된 사회 속 자원봉사자들의 희생과 구했어야 하는 이를 구하지 못했을 때의 처절한 심경을 소설로 그려낸다. 작품 속 자원봉사자와 코로나19를 이겨내기 위해 희생하는 의료업계 종사자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이 아니리라 본다.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이들의 희생을 사회가 소홀히 여기게 되는 지경에 이르지 않기를 바라게 하는 글이다.

 

차카타파의 열망으로_배명훈 작가

격음과 파열음이 사라져버린 한국의 미래를 보여준다. 작품 자체에도 격음과 파열음이 거의 없으며 발음이 사라진 미래라는 발상은 재밌고 신선하다. 더불어 코로나19 이전엔 자연스러웠던 사람과 사람의 오프라인 만남이 사라져버린 현재 겸 미래를 보여준다. 일상이 그리워지는 순간은 언제나 불쑥 생기지만 무의식에선 언제나 코로나19 이전의 복작복작하고 정겨운 일상을 원하고 있음을 느꼈다.

 

벌레 폭풍_이종산

기후변화로 벌레 폭풍이 일상이 되었음에도 이를 뚫고 연인을 만나러 가는 포포의 이야기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시스템의 발전은 개인이 사회로부터 단절되었다는 느낌을 조금이나마 줄여줬다. 그런데도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욕구는 쉽사리 해소되지 않는다. 작품 속 스크린을 통한 영상통화와 온라인 산책이 현재에도 가능하다면 코로나 블루를 겪는 이가 분명 줄어들 것이지만, 결국 연인을 만나러 가는 포포처럼 우린 대면을 원한다.

 

SF소설 속 디스토피아는 우리가 나아가지 말아야 할 미래의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올바른 미래로 우릴 안내한다.

팬데믹 사회를 SF소설로 풀어냄은 현실과 소설의 거리를 넓혀주어 읽는 이가 느끼는 심적 불편을 줄여주지만, 코로나19란 팬데믹을 겪고 있는 우린 SF 속 모든 디스토피아를 코로나19로 대입하는 상황에 마주한다. 이를 통해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사람 간 대면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결국 팬데믹: 여섯 개의 세계는 문학 속 시의성이 독자와 사회에 작용하는 긍정적 효과를 시의적절하게 보여줬다. 끝으로 미정의 상자속 인용문이자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의 브리핑 중 나온 문장으로 마친다.

 

만약 정말로 힘든 상황이 온다면 시계를 되돌리고 싶을 순간이 바로 오늘일 것입니다.”

-2020. 8. 25. 14:23,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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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
리처드 J. 번스타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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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쓰인 책이 왜 오늘날까지 읽힐까? 이러한 물음을 달고 수많은 스테디셀러를 둘러보면, 그들에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21세기에 벌어지는 문제와 동일한 문제를 다루거나,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음이다.

『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에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다룬 악의 평범성과 더불어 아렌트의 다른 저서에 담긴 난민, 혁명정신 등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며 현대의 우리가 아렌트로부터 무엇을, 왜 배워야하는 지에 대해 말한다.


난민 문제는 현실적으로 와닿거나, 그들에게 진실로 공감하기엔 어려운 문제다. 몇몇의 과격한 이들은 난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며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방인이 자국에 들어온다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경계하는 것은 보호행위의 일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난민을 배척하고 이들로부터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우는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아렌트는 유대인이란 이유로 미국 시민이 될 때까지 18년 간 무국적 상태로 지냈다. 이러한 아렌트의 경험은 그녀가 난민과 무국적자의 어려움에 예민하게 나서는 이유 중 하나다.

아렌트는 난민에 대해서 국가와 국민의 '주권'이 오용되고 있다고 말한다.난민을 배제하는 국가와 국민의 주권은 오직 바람직하지 않은 난민을 배제하는 데에 사용된다. 거부당한 난민이 지내는 난민캠프는 비참함으로부터 탈출한 이들에게 세계가 제공하는 유일한 나라로 작용된다.


난민은 현대 정치의 병적 모습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집단이다. 난민과 인권 문제를 다루는 국제 기구들과 NGO들이 증가했는데도 주권 국민은 자신들이 누구를 난민으로 받아들일지 또는 받아들이지 않을지를 결정할 "절대적" 권리를 여전히 맹렬하게 지켜내고 있다.

p.41


'양도불가능한 권리'에 대한 미국의 선언은 역사에 있어서 긍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그럼과 동시에 역설을 지닌다. '양도불가능한 권리'는 누군가를 명확하게 지목한 개념이 아닌, 추상적인 개념이다. 이는 각각의 선언을 한 프랑스인 혹은 미국인을 대상으로하지, 모든 인간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난민과 같이 나라를 잃고 떠도는 이들에겐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권리를 갖지 못한 자가 겪게 되는 최초의 상실은 고향의 상실인데, 이는 자신들이 태어나 이 세계 안에서 자신들을 위한 분명한 자리를 마련해주었던 사회적 조직 전체의 상실을 의미했다.

p.46

권리를 갖지 못한 자가 겪게 되는 두 번째 상실은 정부의 모든 보호를 상실하는 것이다.

p.47


아렌트는 가장 근본적인 권리란 "권리들을 가질 권리"라고 주장했다. 이는 권리가 보장되고 보호되는 특정한 공동체에 속할 권리를 말한다. 어떠한 공동체에도 속하지 못함이란 곧 보호받을 수도 없으며 목소리를 낼 수도 없음을 의미한다.


전체주의적 해결책들은 전체주의 정권의 몰락 이후에도 인간에게 가치 있는 방식으로 정치적·사회적 또는 경제적 고통을 완화하는 일이 불가능해 보일 때면 언제나 나타날 강한 유혹물의 형태로 살아남을 것이 당연하다.

p.59


과거 나치를 비롯한 어긋난 신념이 만들어낸 역사의 오점엔 전체주의가 있거나, 전체주의의 잔재가 남아있다. 비록 21세기에 와서는 전체주의가 몰락했지만, 이는 언제나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전체주의가 지닌 손 쉬운 해결책의 유혹은 워낙 강력하기에, 완전한 전체주의를 띠고 있지 않더라도, 어디에서나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 전체주의이다. 아렌트는 전체주의가 몰락했더라도 언제라도 나타날 수 있는 것이 전체주의이기에 이를 항시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또한 전체주의는 법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게 하는 법적 인격 살해, 친족 간 혹은 민족 간의 살해를 지시하고 유도하는 도덕적 인격 살해, 마지막으로 자발성과 개별성의 파괴라는 3단계의 총체적 지배의 논리를 지녔으며, 이 세 단계를 거쳐 사람을 살아있는 시체로 만든다. 즉, 전체주의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을 잉여적인 인간으로 만듦에 있다. 이처럼 아렌트가 경고하는 가장 큰 부분에 전체주의가 있다.

이 책의 매력은 아렌트를 무조건 지지하는 것이 아닌, 비판할 점은 비판하고 넘아간다는 데에 있다.

인종문제에 대하여 아렌트는 공립학교에서 흑인과 백인을 분리해 교육하는 것이 미국수정헌법 제 14조를 위반한 것이라는 내용에 비판하는 오류를 범한다. 아렌트는 유대인으로서 공격받을 때는 그 무엇도 아닌 유대인으로서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고 선언했지만, 자신의 경험에 근거해 흑인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물론 그녀가 "사회적 영역에서 벌어지는 차별에 반대한 것이 아니었고 차별의 법적 강제에 대해서만 반대했던 것"이지만 이는 아렌트가 인종차별에 있어서 둔감했다고 볼만하다.


우리는 선과 악을 절대적인 관계로, 강한 이분법적인 방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영웅이 존재하고 악인이 존재한다. 사악한 가해자들이 있고 무고한 희생자들이 있다.

p.100


악을 신격화하는 행위는 악을 저지른 대상을 비판하는데엔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방법이지만, 이는 그 사람이 저지른 행위가 아닌 사람 자체를 악으로 뭉뚱그리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아렌트가 주장하는 '악의 평범성'은 악과 선은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닌 개인에게 공존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치 밑에서 유대인 수송과 학살을 맡은 아이히만의 죄목은 다른 이들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 부재와 사유의 부재가 되며 아이히만이야말로 악의 평범성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아렌트는 주장한다.


아주 중요한 점은 집단의 권력은 집단이 함께 행위하는 동안에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집단이 해체되거나 흩어지면 그들의 권력은 사라진다.

p.141

권력이 있는 사람은 집단의 구성원들에 대해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권력을 위임받은 것이고, 따라서 그들은 권력을 부여했던 개인 또는 집단에게서 자신의 권력을 항상 철회할 수 있는 것이다.

p.141


아렌트는 권력이란 개인에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집단에게 존재하는 것이며, 권력은 지배하여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위임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오늘날의 정치를 보면,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나뉘어있다는 기분을 받을 때가 있다. 또한 정치인의 권력에 우리가 자연스레 복종하기도 한다. 아렌트에 의하면 이는 올바르게 되고 있는 정치와 권력이 아니다. 권력은 집단의 것이며, 한 개인은 그것을 위임받은 것에 그치기에 개인이 권력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정치를 서투르게 한다면, 언제든지 집단은 개인을 끌어내릴 수 있다. 이는 불과 몇 년 전 한국의 촛불혁명을 떠오르게 한다. 책에서 역시 한국의 촛불혁명을 언급하며 권력이란 집단의 것임을 다시금 명시한다.



오늘날 우리가 아렌트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아렌트가 우리 앞에 아직도 버티고 서 있는 위험들을 예민하게 잘 이해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이되지 않도록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p.170


처음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아렌트를 읽고, 읽어야 하는 이유는 아렌트의 경고와 철학이 현재에서도 적실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아렌트가 마치 예언가와 같다고 여겨진다.

끝으로 아렌트는 앞에 놓인 명과 암을 직시하고, 현실에 놓인 문제를 부정하지 않고 온전하게 책임지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요컨대 『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 읽고 아렌트를 읽는 행위는 아렌트가 말한 '책임지는' 행위의 일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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