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가 권하는 인간다운 삶 - 루소와 함께 자연을 거닐다 My Little Library 4
김중현 지음 / 한길사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인간의 자유란 원하는 것을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것이 내가 요구하고 자주 소유했던 자유다.

『루소가 권하는 인간다운 삶』 p.158

『루소가 권하는 인간다운 삶』『사회계약론』『에밀』로 유명한

장 자크 루소 입문서다.

감성 에세이와 자기계발서는 담을 수 없는 깊이가 있다.

총 3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자연과 가까운 삶, 교육, 학문하는 삶을

루소의 저작을 통해 비추어 보며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통찰을 일관되게 말한다.


루소는 태어날 때부터 병약했으며

태어난 지 얼마되지 않아 친모를 잃는다.

아버지와 남겨진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어린 루소가 의지할 곳은 오직 독서와 자연뿐이었다.


본래 인간은 개미떼처럼 뒤엉켜 살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드문드문 흩어져서 경작하며 살도록 되어있었다. 인간은 한곳에 모이면 모일수록 더 타락해진다. 정신의 타락과 육체의 병약함은 우글거리면서 사는 군집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결과다.

p.24

몰두를 통한 망각이야말로 마음의 자유에 이르는 좋은 방법이다.

p.78

내가 좋아하는 일은 별 것 아닌 일에 몰두하는 것, 수없이 많은 일을 시작하고도 아무 일도 끝내지 못하는 것, 마음 내키는 대로 오가는 것, 끊임없이 계획을 바꾸는 것, 날아다니는 파리 한 마리의 모든 행적을 쫓아다니는 것, 그 아 래에 무엇이 있는지 보려고 바위를 들어내는 것, 10년 걸릴 일을 열심히 시도하다가 10분 후에 그 일을 미련없이 포기하는 것, 되는대로 그러니까 온종일 빈둥거리는 것, 매사에 오직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기분만을 따르는 것 등 말이다.

p.79


루소는 인간이 군집한 도시를 타락의 장이라고 생각했다.

이와 달리 자연 속에 자리한 시골을 끊임없이 찬양한다.

인간은 본디 자연에서 났으며,

자연에서 생활하는 것이 건강한 삶이라고 말한다.

이는 루소가 시골에서 지냈던 경험과

도시에서 치인 경험이 만든 가치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그들 자신이 되어보는 때를 찾지 못한다. 어린 시절에는 아이로, 청년 시절에는 청년으로 살지를 못한다. 그 시절은 그저 빨리 흘려 보내야만 하는 의미 없는 시기일 따름이다.

p.97

우리 시대에 행해지는 반권위주의적인 교육 모델 역시 부분적으로 루소의 기본사상에 기초한다.

p.104

아이에게 죽음을 막아주는 것보다 스스로 살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산다는 것은 그저 숨만 쉬는 것이 아니라 활동하는 것이다.

p.115

결국 루소가 아이에게 가르치기를 바라는 것은 교실에서 암기를 통해 얻는 관념적이고 공허한 지식이 아니라 실용적인 지식, 즉 생존에 도움이 되는 지식이다.

p.120


『에밀』에서 루소는 아이를 자연에서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과도한 교육은 아이의 '아이다움'을 해치며

아이, 청년, 어른의 시기에 각각 맞는 경험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당시 프랑스의 교육에 대한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제시한 것이지만,

이는 현대에 와서도 울림이 있다.

무한 경쟁을 통해 얻는 것은 부모의 만족이지

아이의 행복이 아니다.


야망도 허영심도 없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에게, 사막에서혼자 사는 것은 동료들 속에서 혼자 사는 것보다 더 잔인한 일도 더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고독한 은둔 생활에 대한 성향은 분명 전혀 사악하지도 않고 염세적이지도 않습니다.

p.121

덧없이 사라질 존재인 내가, 모든 것이 변하며 모든 것이 순간적인 이 지상에서 영원한 구속의 끈을 마음 속에 만들어서 무엇 하겠냐?

p.149

사라지지 않는 아름다움 이외의 것에는 애착을 품지 마라...(중략)...삶의 모든 것을 관조함으로써 그것이 너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지 않도록 초탈하는 법을 배워라. 역경 속에서도 꿋꿋해지는 법을 배우라. 결코 죄를 짓지 않도록 의무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법을 배우라. 그러면 너는 운명에 아랑곳하지 않고 행복할 것이며, 정념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숙할 것이다.

p.149

우리 인생에 곤란함이 생기는 이유는 결핍 때문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애착 때문이다. 우리의 욕망은 커져 있는데, 우리의 힘은 거의 모자란 상태다. 인간은 바람에 의해 많은 것에 집착한다. 자신의 애착을 증대시키면 증대시킬수록 그는 자신의 고통을 더 증가시킨다.

p.162


루소는 사교성이 없었을뿐더러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았다.

혼자 지내며 자연 속에서 산책하거나

독서하는 등, 혼자 몰두하는 행위를 좋아했다.

루소는 혼자 지낼 수 있으며,

아무에게도 신세지지 않고 마음의 짐이 없는 상태를 선호했다.

욕망은 자신의 한계 안에서만 일어나야하며,

한계를 벗어나 욕망하게 되면

이는 곧 불행으로 다가온다는 충고를 한다.


인간의 정신은 모든 학문을 공부하기에 충분하지 않고 항상 한 가지 학문을 전공으로 선택해야 하지만 다른 학문들에 대해 어느 정도의 개념이 없으면 자기 학문에서 깜깜한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흔히 있다.

p.181

'오늘'은 내일, 내달, 20년 후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은 오늘로 존재하며 또 존재해야 한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오늘의 삶도 중요하기에, 오늘의 삶을 향유해야 한다. 목표를 갖고 살아가되 그것을 이루는 과정을 즐겨야 한다. 목표에만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p.203

인내와 온유함과 체념, 청렴 그리고 공평무사한 정의는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것이기에 죽음이 그것들의 가치를 앗아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없이 계속 축적해도 좋은 재산이다. 내가 내 노년의 여생을 바치려는 것은 오직 그 유익한 공부를 위해서다. 나 자신의 향상과 함께 지난 시절 보다 더 덕망 있는 모습으로 생을 마치는 법을 배운다면 정말 행복할 것이다.

p.210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과정을 도외시하는 삶.

이는 내일, 내달, 20년 후를 위해 오늘을 수단으로 소비하는 것과 같다.

루소의 말은,

욜로, 카르페디엠과 같이 무한한 희망을 주는 문구가 아니다.

근거 없이 오늘을 즐기란 말이 아니다.

목표를 향해 달리되,

오늘을 그저 내일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지 말자는 것이다.

필요한 것 외에 욕망하지 않는 삶,

오늘을 음미할 줄 아는 삶.

이런 것이 루소가 말하는 인간다운 삶의 덕목이다.


『루소가 권하는 인간다운 삶』은 전혀 어려운 책이 아니다.

학교에서 배운 사회계약론이니 뭐니 하는 어려운 철학도 절대 아니다.

잔잔하게 과거의 지식인과 대화하는 느낌의 책이다.

루소가 들으면 좋아할 법한 말로 풀자면,

루소와 한적한 시골에서 산책하며 나누는 담소와 같다.

이 책에서 루소가 말하는 인간다운 삶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읽는 이의 삶에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부분부분을

적당히 재조합해서 읽는다면,

충분한 정도가 아니라 최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은 태양
린량 지음, 조은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조건'과 '무대가'란 수식이 가능한 유일한 '사랑'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자식이 올바르고 행복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어렵겠지만
그 애정이 나를 향한다는 것은 느낄 수 있다.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마음에 대한 산문집인 『작은 태양』에선 가정의 아이를 '작은 태양'으로 표현한다.
아이가 자라기 전엔 가정의 태양은 부모다.
아이에겐 부모가 세상의 전부이며 그저 빛나는 존재로서 따르게 된다.
하지만 아이가 점차 커가면서
아이 자체가 태양이 되어 빛을 발한다.
아이는 더이상 부모가 비추어주는 볕만 바라보지 않는다.
자신 자체가 누군가에게 태양이 된다.
그리고 그 볕은 부모에게까지 가닿는다.


밤은 결코 신비롭지 않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소리가 잦아들고, 움직이던 것들이 가만히 쉬고, 이런 상황일 뿐이다. 그러나 심야 일꾼에게는 다른 사람이 알 수 없는 심야 일꾼만의 고요한 사유와 그윽한 정취가 있다. 나는 밤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 조종사에게 인사를 건네고, 기적을 울리는 기관사의 안전을 빌곤 한다. 어느 집의 어느 개가 왈왈 짖는 소리를 좋아하고, 맞은편 지붕에서 달을 바라보는 검은 고양이를 좋아하며, 비스듬히 마주 보는 이웃집 신문사 직원이 대문을 들어서면서 아내와 나누는 포근한 대화를 좋아한다. 
p.58

나는 책상 밑에 두꺼운 방석을 놓고, 털양말을 신고, 솜옷을 걸치고 다리에도 하나 덮는다. 전기난로는 45도 각도로 나를 쪼이게끔 배치한다. 앉아 있는 의자 양옆에도 의자를 늘어놓고 잘 추려낸 참고도서와 사전 등을 잔뜩 쌓아놓고, 커피 한 잔과 차 한 잔에 과자 반 상자와 담배 한 갑을 둔다. 책상 위에는 보온병, 그릇, 젓가락, 뜯지 않은 라면을 놓는다. 
p.286
 
아이의 탄생은 가정의 큰 기쁨이지만
모든 현상엔 양면이 있기 마련이다.
부모는 아이를 통해 힘을 얻고, 그 힘을 동력삼아 다시 아이에게 베푼다.
하지만 아이가 어릴수록, 아이에게서 한시도 신경을 뗄 수 없게 된다.
결국 부모는 개인의 휴식과 아이에 대한 애정을 교환한다.
정신 없고 행복으로 가득찬 나날 중, 어느새부턴가 낯설어진 고요의 시간이 온다.
바로 새벽이다.
밀폐된 공간 속 홀로 존재함과 나만의 책상 앞에 앉아 따뜻한 차와 커피를 마시는 시간.
한적하게 책을 읽고 새벽만이 내는 소리인 정적과 이따금 정적을 비집고 흘러드는 기분 좋은 소음.
부모는 아이를 통해 활력을 얻지만, 모든 활력이 아이를 통해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잊고 지내던 일상과 느지막한 하루.
이 역시 아이와 쉴 새 없이 행복을 나누던 부모에게 주어지는 틈새의 행복이다.

 
모든 어른에게는 이런 인생의 비밀이 있다. 다들 '목숨을 건 외줄타기'를 하면서 자랐다. 어른이 되려면 살얼음판을 건너야 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찌 보면 운이다. 
 나에게 자식이 생기고 나니 마음이 싹 변했다. 완전히 딴판이 되었다. 나는 자식이 어떤 '외줄'도 건너지 않길 바란다. 차라리 내 몸이 부서져라 일해서 12미터 너비의 널찍한 시멘트 다리를 놓아주겠다. 나는 자식이 어떤 살얼음판도 건너지 않길 바란다. 차라리 내 어깨에 태워 강을 건너고, 얼음이 깨진다면 아이를 물 위로 쳐들고 기꺼이 얼음물을 마실 것이다. 
p.80

'미지의 미래'를 앞에 두고 나는 마구잡이로 팔을 휘둘렀어. 요행히 '상당히 괜찮은 것'을 움켜쥐었지. 물론 너의 세대는 나처럼 그렇게 막무가내가 아니길, '도박판'에 뛰어들듯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러는 대신 너는 '이성'을 차근차근 써먹기를 바란다. 
p.298

 자식 세대의 고통을 가불하여 그들의 고통을 줄이고 싶어하는 것이 부모다.
아이가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겪길 바라는,
최대한 고생을 덜하길 바라는 마음은 어느 부모에게나 해당될 것이다.
물론 그럴 수 없단 걸 알겠지만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그러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부모가 되어봐야 알 것 같다.


부모가 자녀를 귀여워할 시간은 너무나 짧다. 인생의 여정이란 본질적으로 혼자 걸어가는 고독한 원정이리라. 우리는 마땅히 자녀를 벗처럼 대하고 벗처럼 사랑해야 한다. 
p.95
 
아이가 집안에 대혼란을 일으키는 원인은 부모다. 부모가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이웃집에 가서 "쟤 좀 호되게 때려줘요!" 하고 고함치기보다는 부모더러 "꼭 그렇게 바빠야겠어요?" 하고 소리치는 것이 합당하다. 
p.108

아이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한 행동이 어떨 땐 아이를 외롭게 만들 때가 있다.
아이가 생기면 돈이 들고, 결국 돈을 벌기 위해 부모는 밖으로 나간다.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짧다.
아이가 부모를 찾는 시간 역시 길지 않다.
어떤 부모는 아이가 어릴 적, 아이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한 걸 후회한다.
참 슬픈 일이다.
아이를 위한다면, 아이가 바라는 걸 해주는 게 최선이겠지만,
대부분이 이를 알겠지만
실제로 행하기엔 현실이 참.
그렇다.


아이들이 하는 얘기가 다 내 어릴 적에 겪은 일이라는 걸 알고 나면 '저작권을 침해당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다채롭던 내 소년 시절의 '긍지'가 나를 일깨운다. 난ㄴ 아이들의 황금생활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억누를 권리가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때 그 소년의 마음에 품은 가치를 깎아내리고 억누를 권리가 없었듯이. 
지금까지도 나의 소년 시절은 나에게 가장 진지한 의미가 있다. 다른 사람이 깔보는 것은 용납할 없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한 소년 시절은 인간이 손에 넣은 가장 커다란 재산, 천만의 가치가 있는 재산이라고 생각한다. 
p.291

부모 역시 누군가의 자식이었기에 그들만의 시절이 있다.
그리고 자신을 답습하며 소년시절을 떠오르게 만드는 자식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누구나 겪었고 겪어야만 하는 시기를 아이가 좀 더 현명하게 지나길 부모는 바란다.
어떻게 해야 그럴 수 있는지 그 시기를 겪어본 부모는 방법을 알면서도 바라보기만 할 때도 있다.
섣부르게 아이에게 참견하는 건 되려 독이 될 수 있음을 아는 부모는 그렇다.
부모는 아이에게 다양한 방향을 제시해줄 뿐, 어떤 길을 갈지 정하고 발을 딛는 건 아이의 몫이다.


세상 모든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나한테도 아버지가 있단다. 세상 모든 '아이'가 그렇듯 나도 '아버지' 역할을 맡고 나서야 '아버지'가 '얼마나 고된 직업인지' 깨달았지. 엄청나게 '애가 타는' 일이건만 '대우'는 형편없거든. 그때 나는 '내 아버지를 찾아가 이야기 나누고픈' 마음이 간절했어. 나날이 어려워지는 '시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두 아버지가 만나' '지혜의 불꽃'을 피워 알아냈으면 했지. 
 p.294

아버지는 인생백과사전의 '서문'을 쓰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구나. 소년 시절에 나는 인생백과사전만 읽으려 했지 '서문'은 읽을 생각이 없었단다. 어렵사리 그 두꺼운 백과사전을 읽어나가며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우연히 '서문'을 뒤적여보게 됐지. 그제야 서문이 썩 훌륭하다는 걸 알았지 뭐냐. 
p.296
 
부모가 힘들다는 건 안다.
얼마나, 어떻게.
그건 모른다.
부모가 되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가늠이 되지 않아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갖게 된다는 것이 두려울 때도 있다.
조금씩 나이가 들고 성인이 되어 부모님이 밟아온 길을 나 역시 딛기 시작하면서부턴,
한걸음 내딜때마다 부모님이 대단한 분임을 느낀다.
아무래도 대단하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사랑은 언제나 성내지 아니하느니라."

성경 구절이면서 『작은 태양』에 자주 나오는 문장이다.
이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을 자주 떠올렸다.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진 매주말마다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온 가족이 한강을 갔다.
캐치볼도 하고, 배드민턴도 치고, 인라인스케이트도 탔다.
어머니는 클로버 군락에서 네잎클로버를 찾으시기도 했다.
아버지는 연 날리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언제 어떻게 떠올려도 행복한 기억이다.
평생 갈 좋은 기억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역시 부모님 덕이다.

언젠가 꾸릴 수도 있는 내가 속한 새로운 가정은 전혀 짐작이 안 가고 막연하지만
만약에, 만약에 꾸리게 된다면 받은 것 그대로.
받은 것 이상으로 하는 건 너무 어려워 보이니까.
모자라지 않게 하고 싶은 바람이다.
그것만으로 벅찰테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 - 경계인이 바라본 반세기
도널드 리치 지음, 박경환.윤영수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의도된 소박함
그것은 일본인이 삶과 아름다움을 대하는 태도다.
21세기의 일본엔 화석화된 모습이 대부분이지만
사라졌기에 다시금 펼쳐볼 가치가 있다.

그리고 『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에선 일본의 영화, 미학, 전통과 여성을 다룬 20편의 에세이로 미미하게 남아있는 과거 일본의 것을 살려냈다.
일본인의 시선이 아닌, 푸른 눈의 시선으로 바라본 일본.
완전히 일본의 것으로 규정되지도,
완전히 일본의 것이 아닌 것으로 규정되지도 않는,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경계인이기에 한걸음 뒤에서 객관적으로 일본을 보고, 기록했다.

과거 일본에겐 미학을 정의하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현대에 와선 많은 연구가 이뤄졌고 미학을 말해주는 다양한 단어와 정의가 생겨났다.
그렇다면
어느 나라보다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확고한 일본이
왜?
어느 민족보다 아름다움을 미덕으로 여기는 일본이
왜 미학에 대해 정의하려 들지 않았을까?
『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에선 이를 명쾌하게 말해준다.
그것은 바로,
미학에서 진리로 통하는 아름다움이 국가와 개인 자체에 내재화 되어있으며,
일상 자체에 포함된 당연한 흐름이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카리키는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중략)...그것은 말로 논의할 필요 자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일수도 있다."
p.279

그렇다면 19세기 이전의 일본이 생각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자연에는 잠재성만 있을 뿐이다. 사람이 거기에 형태를 부여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p.20

비어 있는 장면을 의미로 채운다.
p.143

자연의 결과가 아닌 수단을 모방했다. 이러한 수단 중 하나가 바로 단순함이다.
p.276

그렇기 때문에 낡고 금이 간 찻잔에 황홀해하고, 짧게 피었다 지는 꽃에 열광하고, 힘과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마땅히 스러지고 마는 사무라이를 자주 언급하는 것이다.
p.278

꽃꽂이나 정원처럼 사람의 손을 거친 자연
자연의 결과가 아닌, 피고 지는 꽃과 뜨고 지는 해
여백을 통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영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낡고 닳는 사물
지지 않는 꽃이 아닌, 때가 되면 떨어지는 벚꽃

이것들이 과거 일본이 가치를 부여한 아름다움이다.
추상적이지만 이미지를 그리기엔 충분하고 그려진 이미지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덧없음과 단순함, 그리고 여백이야말로 일본이 가치있다고 하는 아름다움이다.
일본이 아름다움을 대하는 태도는 삶을 대하는 태도로까지 연장된다.

'시카타가 나이(어쩔 수 없군)' -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이 말은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에 매달리기 보다는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자는 뜻이기 때문이다.
p.185

삶의 유한성이 없다면 삶도 없고 아름다움 또한 의미를 잃는다...(중략)...삶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삶의 불확실성이다.
p.188

죽음은 비극이라기보다 애처로움의 대상이다. 애처로움은 극복할 수 있지만 비극은 그럴 수 없다.
p.261

전 세계의 수 많은 사람은 자신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언젠가 사라지고 만다는 생각을 애써 회피하며 한평생을 보낸다. 오직 몇몇 시인만이 그 사실을 직시한다. 그리고 그걸 기념하고 찬양하는 것은 아마도 일본인들뿐이다.
p.297

삶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
흘러가는 것을 붙잡지 않는 태도
이러한 태도는 역설적이게도 삶을 강렬하게 살게끔 한다.

"죽음을 인식하는 자만이 강렬한 삶을 산다."
라는 말을 한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이 떠오르는 대목들이었다.

『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를 읽을 때 항상 잊지 말아야 하는 점은
경계인의 시선에서 쓰여진 책이란 것이다.
일상이 되어버린 삶에선 볼 수 없는 것을
처음 겪는 자는 낯설어하고 의문을 품는다.
결국 일본인이 보지 못한 일본의 모습을
경계인은 볼 수 있다.

이 책을 알차게 읽을 수 있는 방법도 나름 알게 되었다.
『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엔 20편의 에세이가 나온다.
앞선 19편의 에세이는 마지막 [일본 미학 소고]를 깊이있게 읽을 수 있는 과정이다.
글이 쓰인 시기가 과거에서 현재로 진행되기에 시기별로 작가가 포착한 일본을 음미할 수도 있다.

『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는 전통 일본 미학이 무엇이며, 다른 나라와 무엇이 다르고, 얘기해야할 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말한다.
일본이 삶과 죽음을 대하는 태도,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방식,
그것들이 반영된 영화 등의 이미지, 장인과 예술가가 남긴 화석화된 예술품은 자연에 맞닿고 소박함과 절제를 추구하며
흐르는 것을 그대로 두고 음미하는 19세기 이전 일본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쳐버린 배 - 지구 끝의 남극 탐험 걸작 논픽션 24
줄리언 생크턴 지음, 최지수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리뷰] 지구 끝의 남극탐험 『미쳐버린 배』를 읽고

A급 고전!

.

.

생생한 호러 스토리. 스릴 넘치는 이야기!

.

.

책을 덮으면 다시 읽고 싶어질 것이다!

.

.

영화 포스터나 책 추천사에서 많이 읽어본 문장들이다.

다양한 저널에서 영화나 책을 위의 문장들로 추천한다.

그리고 『미쳐버린 배』도 그렇다.


사실 이런 문장을 읽으면 '우와! 진짜 재밌겠다!' 라는 반응보단
'클리셰 가득한 저 문장들을 대체할 문장으로 뭐가 좋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각설하고 『미쳐버린 배』은 위의 문장들 그대로다.
19세기 말 남극 탐험에 관한 실화 서바이벌 스토리를 생생하게 담았다.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이 책을 덮은 지금, 19세기 말 남극탐험을 다녀온 벨지카호에서 내린 기분이다.

그때 꿈 꾸던 미래는 지금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꿈을 현실로 이루었다는 사실을 꿈만이 갖고 있는 황홀함에 비할 수 있을까?
p.102

남극탐험이란 꿈을 실현하는 출항 당일의 부푼 설렘부터

바다가 끝나는 지점에서는 마치 히말라야 산맥 중턱까지 해수면이 올라온듯, 눈이 내리고 있었다.
p.141

남극대륙을 처음 본 그 벅차오름

해도에 없는 첫 해협으로 가는 길을 기념하기 위해 드 제를라슈는 비록 자신과 부하들과 야생동물만이 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돛대에 벨기에 국기를 휘날리게 했다.
p.144

지도에 기록되어 있지 않았던 해협을 발견한 명예로운 순간

"우리는 더 이상 항해사가 아닌, 형을 선고받은 수감자들."
p.195

최악의 가정이었던 남극에서 갇힌 채 겨울을 보내는 순간

거의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죄수처럼 배를 묶어놓았던 얼음 가장자리에서 배가 쿵 하고 떨어지는 순간, 벨지카호의 장교와 선원들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탈출하는 순간까지 남극 항해의 과정을 상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남극항해 중 벌어지는 일화와 선원 간의 갈등과 유대를 읽다보면
벨지카호에 함께 승선한 선원 중 한명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만큼 몰입감이 대단한 책이다.

어느 정도냐면 사령관이 결단있게 고난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쓰인 선원의 기록인

"속으로는 신에게 기도했다. 당신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을 거라고."
p.172

를 읽곤 사령관인 드 제를라슈의 리더쉽을 보고 선원들이 신뢰와 존경을 갖게 되는 과정에 가슴이 웅장해졌다.

그 뿐만이 아니다.
벨지카호에서 각자 나뉘어진 역할을 소개하고 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선원들을 보며
'내가 벨지카호에 승선했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무슨 일을 하고 싶을까?'

라는 상상을 했다.
필자가 벨지카호에 탑승했다면 아마 무례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맛없는 요리를 선보이는 주방장 정도가 되었을 것 같다.


끝으로 『미쳐버린 배』을 과몰입하면서 읽을 팁이 있다면,
지금 같은 여름에 『미쳐버린 배』를 냉방이 약간 과한 곳에서 읽는 것이다.
분명 남극의 냉기와 서늘함을 찰나 정도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벨지카호의 선원들이 펭귄과 물범을 사냥하듯
여름의 더위를 사냥할 목적으로 『미쳐버린 배』에 나오는 남극의 풍경을 상상하며 읽는 방식도 추천한다.

『미쳐버린 배』에 나오는 귀여운 문장으로 진짜 마무리를 짓겠다.

갈매기와 펭귄은 마치 콜로세움의 관람석에서 경기장을 바라보듯 사방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p.1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통찰지능 -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
최연호 지음 / 글항아리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IQ + EQ < InQ

책 표지에서부터 낯선 공식이 보인다.

IQ와 EQ는 많이 들어봐서 알겠는데, 도대체 InQ는 무엇인가?



흔히들 IQ나 EQ의 수치에 따라 성공의 여부를 예측한다.

그러나 저자는 연구자료와 통계치에 근거하여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새로운 성공의 척도를 제시한다.

그것이 바로 InQ, 즉 통찰지능이다.​



그렇다면 통찰은 뭐고, 통찰지능은 뭐란 말인가?

란 의문을 품기도 전에 저자는 친절하게 각 단어의 정의를 내려준다.



통찰이란?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봄'​

p.37



통찰지능이란?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맥락을 읽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힘.​

p.37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힘

이 문장이 바로 이 책의 핵심이다.



『통찰지능』에선 통찰지능의 중요성을 저자의 의학적 경험과 분야를 가리지 않는 인물의 에피소드,

베이컨, 밀, 유발 하라리와 같은 철학자의 인용을 통해 풀어낸다.



"환자가 보여주는 모든 증상이 의사가 내린 진단으로 설명되지 않으면 그 진단은 틀렸을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p.344



"환자가 보이는 여러 증상 가운데 다른 것을 무시하고 하나에만 집중할 때 의사는 오진하게 된다."​

p.80



책에서 '전체는 부분의 합 보다 크다'는 게슈탈트 원리를 강조한다.

그렇다면 통찰지식과 게슈탈트 원리는 어떤 연관성을 지니는 것일까?

그 예시로

.

.

.

복통과 설사 증상을 지속적으로 보이는 아이와 부모가 의사를 찾아왔다.

부모는 아이가 걱정되어 무슨무슨 검사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보챈다.

의사는 가만히 지켜보더니, 부모에게 묻는다.

"아이의 체중이 줄었나요?"​

부모는 그렇지는 않다고 답한다.

"그럼 아이의 식사량이 줄었나요?"​

역시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의사는 부모에게 아이가 편식을 하는지, 식사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는지 물어보고

종합하여 진단을 내린다.

식사 시간에 아이가 편식하는 음식을 더 많이 먹으라고 강요해서 아이는 스트레스를 받고,

이러한 심적 이유로 식사 시간만 되면 복통을 호소하는 것이라고.​

부모는 안심한 표정을 짓고 아이와 집으로 돌아간다.

.​

.

.

의사를 찾아오는 환자는 의사에게 전적으로 의지한다.

그만큼 의사는 전문적인 지식과 풍성한 경험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진단명을 내리기 전에 환자에게 나타나는 증상을 다양한 방면으로 바라봐야 하며

놓치는 건 없는지, 다시금 짚어봐야 한다.



이러한 게슈탈트 원리는 의학만이 아닌,

다양한 전문 분야에 적용될 수 있음을 저자는 강조한다.



통찰지능의 본질은 과정이다. 그리고 과정은 맥락이다.​

p.237



인간은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 맥락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의 보유자다.​

p.64



나 자신의 경험과 상상을 이용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p.220



맥락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다.​

p.221



통찰지능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이며,

곧 보이지 않는 과정과 맥락을 보는 것이다.

고로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보기 위해선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상력은 인간이 가진 가장 큰 능력 중 하나다.​

역지사지의 태도 역시 내가 상대방이 되어보는 상상으로부터 시작된다.

결과만 추앙하는 현대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과정과 맥락을 중시하는 태도.

이 태도를 갖추는 것이 통찰지능을 탑재할 수 있는 시작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필자는 『통찰지능』을 심리학 서적 읽듯이 읽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 것은

상대방의 무의식, 대화의 맥락 등이 있고

이를 볼 수 있게 하는 힘이 통찰지능이라고 생각한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고,

상대가 싫어하는 언행을 하지 않는 것.

이 정도를 포착할 수 있는 수준의 통찰지능만 되어도,

이 책을 통해 이 정도 통찰지능을 갖출 수 있다면

이 책은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끝으로 『통찰지능』에서 인용했고, 필자가 심히 동감한 공자의 말을 적고 가겠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행하지 마라.

p.316 공자 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