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특별한 관문 - 아이비리그의 치열한 입시 전쟁과 미국사회의 교육 불평등 걸작 논픽션 20
폴 터프 지음, 강이수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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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엔 사이좋게 미국과 한국 모두 입시비리가 터졌다. 이 사건들은 입시생을 태생적 한계와 허무감에 빠뜨렸다. 동시에 대학과 입시 제도가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물음을 대중들에게 던졌다.

 

이러한 사회적 담론이 오가는 가운데, 인생의 특별한 관문은 미국의 입시와 교육 불평등에 대한 현장보고서이자 대학교육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한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대중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정보를 담아낸 것이다.

 

대학은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이자, 사회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다. 가난한 이가 부유해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해소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은 부의 대물림과 가난의 대물림 현상을 더욱더 공고하게 다진다. 어째서 사회이동을 원활하게 형성하던 대학이 경직된 사회 구조를 공고하게 만드는 장애물이 된 것일까? 이러한 현상엔 SAT/ACT(미국의 수능)와 같이 표준화된 입학시험이 한몫했다. 한국에서 사교육이 성행하듯이, 미국 역시 SAT를 대비한 사교육 바람이 엄청나다.

 

"그렇다면 SAT가 아닌, 사교육 시장이 잘못된 것 아닌가?" 라는 날카로운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하나, 사교육의 수요가 없다면 공급 역시 없을 것이다. 왜 사교육의 수요가 생기는지에 대해 짚을 필요가 있다. 공교육만으로는 SAT를 잘 치를 수 없으며, SAT를 잘 치르지 못한다면 명문대에 입학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사교육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되는 부유층 부모의 자녀가 SAT에 유리해지고 자연스레 부유층 자녀가 빈곤층 자녀보다 명문대에 갈 확률이 월등히 높아진다. 그렇다고 모든 빈곤층 자녀가 명문대에 입학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빈곤층 자녀가 명문대에 입학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입시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며 SAT성적이 우수한 학생(대박!) 우선, 입시에 대한 정보가 있고, SAT성적도 받쳐주는 학생은 빈곤층임에도 명문대에 당당하게 입학한다.(멋있다!) 두 번째, 내신 성적이 높아 입학시험선택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 학생(입학시험선택제란 간단하게 말해서 SAT성적을 아예 보지 않고, 내신 성적만으로 신입생을 뽑는 제도다.)

그러나, 이들을 심사하는 입학사정관들은

 

1. 대학의 등록금 수입이란 요구

2. SAT/ACT 입학시험의 영향력, 가계소득과 입학시험의 분명한 상관관계(SAT성적이 높으면 가계소득이 높을 확률이 높다.)

이 두 가지 이유로 저소득/상위권 보다 고소득/중하위권 학생을 선호한다.

 

이해가 잘 안 될 것이다.(아마도) 밑에 순환을 봐보자.

 

대학이 학생에게 많은 비용 투자(하기 위해선)-> 등록금 수입 증가(해야함) -> (이를 위해선)부유층 학생 증가(해야함) -> US뉴스 대학순위 오름

 

, US 뉴스 대학 순위를 올리기 위해선 부유층 학생을 입학시켜야하며, 이들이 입학하면 등록금 수입이 증가한다. 그렇게 되면 대학이 학생들에게 보다 많은 비용을 투자할 수 있다. 높은 입결과, 대학이 학생에게 투자하는 비용이 US 뉴스 대학 순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결국, 대학의 수지타산과 US 뉴스 대학 순위로 인해, 입학시험선택제에 합격할 수준의 내신이 되어도 모든 빈곤층 학생을 입학 시킬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여차저차해서, 입학시험선택제로 빈곤층 학생이 명문대에 입학했다고 치자. 자 이제, "빈곤층 자녀가 명문대에 힘겹게 입학하고 졸업까지 성공적으로 하여 사회이동을 이뤘답니다~" 하는 성공신화이자 아름다운 동화같은 결말을 바란다면, 이는 크나큰 오해다. 명문대에 입학하는 대부분의 학생은 부유층에 속하거나, 중산층 이상이며, 백인 혹은 아시아계 학생이다. 빈곤층, 흑인 혹은 라틴계 학생은 극소수에 이른다. 명문대에서 주를 이루는 백인 문화와 부유층의 소비 습관은 흑인/라틴계, 빈곤층 학생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준다. 또한, 생계가 불안정한 빈곤층 학생은 학업에만 온전하게 집중하지 못한다. 이는 졸업률을 통해 증명된다. 부모의 소득 수준이 졸업률에도 인구통계학적 집단 별로 영향을 미친다. 학교 생활에서 소속감을 얻지 못하는 빈곤층 학생은 휴학하는 경우가 잦다. 그에 반해 열심히 학업에만 집중할 수 있으며, 방학마다 별장으로 쉬러 가는 부유층 학생에게 휴학? 글쎄, 목적이 다를 것이다.

 

우린 이제 빈곤층 학생은 입학 후에도 관리가 필요하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를 알게 된 몇몇 미국 대학은 개인적으로 학생을 관리하고, 수업에 따라올 수 있도록 보충수업을 펼치는 등 다양한 이론적/심리적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대학은 신입생 중 빈곤층의 비율을 늘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들이 졸업까지 무사히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의무가 있다. 사실상 빈곤층의 신입생 비율보단, 빈곤층의 졸업률이 해당 대학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판가름하는 지표다.

 

이제 다른 논의로 넘어가보자. 대중과 사회는 대학을 어떤 기관으로 인식할까? 몇몇 대중은 대학이란 그저 학문을 배우는 곳이며 나약한 밀레니엄이 의지하는 곳이라고 인식한다. 이들은 대학에 입학하지 않더라도 먹고 살 수 있는 수단이 많다고 생각한다.(물론 맞긴하다.) 예를 들어 용접과 같은 기술을 한 번 배우면 평생 고액의 연봉으로 살 수 있으니 굳이 대학을 가려고 아둥대지 말고, 기술을 배워봐라.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이들은 대학과 기술을 대척점에 놓고 이야기한다. 용접과 같은 기술 역시 이론이 있어야하며, 대학에서도 이와 같은 기술을 가르치기도 한다.

이제 반대로 가보자. "대학은 학문을 배우러 가는 곳이지 돈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라는 의견. 어떤가? 필자는 이는 꽉 막힌 의견이라고 생각한다.(물론 모두가 대학에 갈 필요는 없으며, 본인이 원하는 직업이 대학졸업장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 안 가는 게 맞다.)대학졸업장의 가치가 예전만은 못하지만, 대학졸업자와 고등학교 졸업자의 연봉 차이는 실재한다. 이를 '대졸 임금 프리미엄'이라 칭한다. 고학력자가 보다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은 단순히 경제 논리에 입각한 사실일뿐이다. 또한, 단순히 경제논리에 입각한 사실이기에, 청년들이 대학교에 들어와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와 대학이 협력할 필요가 있다.

대학 입시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맞다. 이는 인생의 특별한 관문을 읽기 전에도 알았을 것이며, 읽고 나선 더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은 그저 "대학 입시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래!"에서 그치지 않는다. 진정한 가치는 미국 대학 입시의 사례를 통해 한국을 돌이켜 보는 것이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9 청소년 통계보도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2018년 고등학교 졸업자의 대학 진학률은 69.7%이다. 또한, 10년째 대학 진학률 OECD 1위를 달리고 있다. 한 반에 30명이 있다고 치면, 그중 21명이 졸업 후 대학생이 되는 것이다. 너무 많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인생의 특별한 관문에서 미국은 대학생을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한국과는 상반되는 입장이다. 한국과 미국의 입시는 비슷하지만, 기본적으로 국가가 다르다. 두 나라 모두 대학 졸업장의 가치가 과거에 비해 떨어졌지만, 한국은 미국보다 더하다. 한국은 대학 졸업자 공급이 수요에 비해 너무나도 많다. 따라서 한국은 인생의 특별한 관문에서 제시한, "보다 많은 이들이 대학교를 가야 한다"라는 처방전이 안 맞을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은 청년층 인구가 계속해서 줄어드는 만큼, "공교육이 활성화되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회구성원이 많아진다면 그것은 해당 사회 전체의 이익이 될 것이다."라는 전제는 가지되, 해당 전제를 초등~고등학교 과정에서 해결 지어야할 것이다. 적어도, 대학 진학을 독려하는 건 현명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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