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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상 위의 중국 - 술 향기가 들려주는 중국의 어제와 오늘
고광석 지음 / 섬앤섬 / 2016년 9월
평점 :
늦은 점심, 후배와 회사 앞 '짱께집'에 간다. 짬뽕 하나씩 시킨다. 기다리는 시간이 뭔가 허전하다. 서로 의미심장한 눈빛 마주치며 "딱 한 잔만?"하고 멋쩍게 웃는다. 짱께집에서는 소주가 어울리지 않는다. 짬뽕 국물에 단무지 베어물더라도 짱께집에서는 빼갈이다. '빼갈' 하나 주세요, 라고 주문한다. 이왕 먹는 것 군만두도 하나 시킨다. 종업원은 따로 묻지도 않은 채 심드렁하게 일어서더니 네모난 초록병에 담긴 북경고량주를 내준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함께 해왔을, 애정하지 않을 수 없는 조합이다. 탕수육을 곁들이면 금상첨화고 말이다.
근데 좀 아쉽기는 하다. 왜 짱께집 중국 술은 늘 북경고량주 아니면 이과두주일까? 물론 요즘에는 연태고량주가 있는 곳이 제법 많긴 하다. 그래도 딱 그만큼이다. 중국에는 동네 숫자 만큼 지역에서 자랑하는 술도 많은데 말이다.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중국의 고급 바이지우라고 해봤자 예전에 마오타이를 제일로 치다가 요즘에는 수정방, 아니면 우량예다.
서안을 다녀온 사람도 기념선물로 수정방을 사오고, 강서성 난징 등을 다녀온 사람도 기념선물로 수정방을 사서 들어온다. 심지어 중국 현지에서 사업하는 이들조차, 어쩔 수 없이, 지인에게 줄 선물로 수정방을 사온다. 덕분에 중국의 면세점에는 가짜 수정방이 넘쳐난다고 하고, 그렇게 한국사람들은 그들의 대표적 호갱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왜 이렇게 됐을까.
첫째, 산업화사회로 접어든 이후 만들어진 획일적인 문화다. 국내에서도 아주 오랜 시간 각각 마을마다의 특성과 향취를 간직한 그 많은 술들이 자취를 감췄고, 그중 일부만 겨우 복원됐을 따름이다. 획일화한 맛의 소주만 마셔온 탓에 술은 즐기는 것이 아니라 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러한 영향이 중국 술을 바라보는 시각도 획일화시켰다고 본다. 아니면, 무지하게 비싼 수정방만을 찾는 식으로 변질되거나.
둘째,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탓이다. 물론, 술이라는 게 뭐, 꼭 공부하면서 먹어야할 거창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와인이 국내에서 제법 큰 시장으로 자리잡고 있긴 하지만, 와인 앞에서 많은 이들을 긴장하게 만들곤 한다. 마리아주가 어떻다는 둥, 빈티지가 뭐라는 둥, 디캔팅이 필요하다는 둥 근사하게 평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을 준다. 식당에서는 디캔팅, 떼루아, 피네스 등 외계어들이 난무하니 더 할 말도 없다. 다만, 중국술은 조금 다르다. 이백, 두보, 도연명, 소동파 등 우리에게도 친숙한 역사 속 문인들, 혹은 사기, 초한지 등의 등장인물들의 행적마다 술 이야기가 꼬박 곁들여진다. 또 지역마다 고유의 특성을 간직한 술들이 있다. 그렇기에 중국의 술을 마신다는 것은 단순히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게 아니라 풍성한 이야기를 마시고, 유구한 역사 속으로 뛰어듬을 뜻하게 된다.
'술상 위의 중국'이 반가운 이유다. 인문학적인 지식부터 시작해 술 주문법 등 실무적인 지침까지 중국 술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또한 중국의 각 지역별 술에 대해서도 풍성하면서도 깔끔하게 설명을 곁들이고 있다.
요즘 진핑형님이 중국몽을 주구장창 얘기하면서 자연스럽게 '멍쯔란(몽지람, 꿈의 푸른 색)'이 중국 술의 최고봉을 차지하고 있다. 무지하게 비싸서 중국의 보통사람인 라오바이싱들은 평생 가도 먹을 수 없는 술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중국 술꾼들 사이에서는 '멍쯔란을 먹는 것이 중국몽'이라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소리까지 나올 정도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들은 대신 멍쯔란의 둘째 동생인 하이즈란(바다의 푸른 색)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곤 한다. 물론 그것도 결코 싼 술은 아니지만 말이다. 한국에서는 그마저도 접할 방법조차 없으니 언감생심이지만 말이다.
이제 바람은 하나다. 내 주변 사람들이, 아니면 주변 사람의 주변사람들까지 '술상 위의 중국'을 많이 읽고 혹여 중국 출장, 여행 등을 다녀올 때면 그 지역의 특색주를 선물로 사다줬으면 하는 것이다. 중국을 직접 못 가더라도 그렇게나마 넓은 대륙의 맛과 향, 이야기를 가까이 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