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님 웨일즈.김산 지음, 송영인 옮김 / 동녘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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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은 김산(본명: 장지락)이라는 혁명가의 뜨거운 삶을 님 웨일즈가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의 첫 부분은 님 웨일즈와 김산의 첫 만남으로 시작한다. 1937년 7월 미국의 젊은 여류작가 님 웨일스는 노신도서관에 소장된 영어 책을 집중적으로 빌려가는 동양사람의 이름에 호기심을 갖는다. 마침 그녀는 폐쇄된 조선의 상황을 영어로 설명해줄 조선사람을 찾고 있었기에 영어 책을 술술 읽을 수 있는 그라면 영어를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를 만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한다. 이렇게 어렵게 만난 김산에게서 그녀는 묘한 매력을 느꼈다. 그녀는 그와 여러 이야기를 할수록 그의 삶과 생각을 책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해서 그 시대의 수많은 혁명가 중에서도 장지락의 삶을 정리한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김산과 님 웨일즈가 만나는 부분을 쓴 초반내용은 정말 예감했던 대로 무지 지루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김산의 어린시절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에서부터는 재미 있었다. 김산이라는 한 사람의 일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기에 부담이 없었다. 그리고 그 한사람의 시각으로 그 시대의 큰 사건(3.1운동, 일본대지진 학살)을 설명하니 더욱더 현장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중국으로 가서 본격적으로 혁명운동을 하는 부분에서부터는 이해가 안 가기 시작했다. 중국역사와 그 시대의 역사적 지식이 박했던 나이기에 김산이 주관적으로 설명하는 일련의 큰 사건들과 인물들을 그 책만 보고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책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인터넷상을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물론 아주 많은 시간을 드려 찾길 시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한 혁명가가 그 시대에 역사적 큰 사건이라고 생각한 것을 쉽게 찾을 수 없었던 것은 그만큼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장지락이라는 혁명가의 이름을 이 책에서 처음 봤듯이 우리나라에는 국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이들의 역사적 기록을 등한시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의 주 부분인 그의 혁명활동에 관한 사항을 내가 이해할 수 없었기에 전반적인 줄거리를 쓰는데 많은 애를 먹었다. 그래서 책 내용을 요약하는데 책 뒷부분의 해설(p.325~336)을 많이 참조하였다.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던 부분은 한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깨달으면서 하나하나 삶을 이루어 가는 모습이다. 전반적으로 책은 이해하기 어려웠고 흥미롭지는 않았지만 어려운 시대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그의 삶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나는 아리랑을 읽으며, 예전에 체 게바라 평전을 읽었을 때보다 훨씬 큰 감동을 받았다. 그것은 마치 내가 뛰어들어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뜨끈뜨끈한 마음을 심어주는 것 같았다. 체 게바라가 성공한 혁명가라면 김산은 성공하지 못한 혁명가이다. 하지만 나는 왜 김산에게서 더 많은 김동을 받은 것일까? 내 생각엔 그것은 김산이 성공하지 못한 혁명가 이기 때문인 것 같다. 언제나 승리자는 한명이고 패배자는 많다. 그 수많은 패배자 중에서 정말 패배자다운 패배자가 그렇게 멋질 수 가 없다. 한 치의 흠도 보이지 않는 성공한 혁명가를 보는 건 지루한 한편의 드라마 같다면, 김산의 일생은 정말 흥미진진한 삶 그 자체로 내 마음속에 투영되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 우리에게 많이 읽히고 있는 수만은 혁명가들의 서적은 대부분 성공한 혁명가들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성공한 혁명가는 승리자로써 자기의 인생의 과오나 잘못은 모두 증발하고, 그 뒤에 고귀한 그 자신만의 이미지로 남는다. 마치 모든 게 톱니바퀴처럼 이가 맞아 돌아가듯 모든 게 그 사람을 위한 환경으로 맞춰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김산의 일생은 그러한 일생의 조작이 거의 없는 생생한 고난 그 자체로 기록되어 있다. 이 고난을 해쳐나가는 김산을 봐오며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듯 난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여자와의 열애 장면도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마음에 드는 씁쓸함이 생겨났다.

이렇게 과거 속의 한 인물의 삶이 현실 속의 사람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우리는 역사 속의 인물들을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위에서 말했듯이 국내·외 독립운동가들을 왜곡되지 않고 진실되게 알 수 있는 길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많이 안타깝다. 장지락도 님 웨일즈라는 작가가 아니었다면 영원히 역사 속에 묻혔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우리의 현실과 미래를 위해 과거를 알 필요가 있다. 따라서 앞으로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는 것과 가려져 있던 역사를 벗겨내는 일은 우리에게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에 깊었던 점은 장지락이 감옥을 나온 후 당 사람들이 그를 불신해 많은 고통을 겪을 때 끝까지 자기 자신을 고뇌하고 반성하면서, 자신의 목표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짚었으며, 지도자로서의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인식하고 용기있게 행동한 점이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자기자신을 잃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딛고 더욱 열심히 사는 모습에서 많은 감동을 느꼈다. 조금만 힘들면 포기하던 내 모습도 반성이 됐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내 삶을 내가 열심히 꾸려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장 기억에 남던 구절로 감상문의 끝을 내고 싶다.

'나는 단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에 패했다. 나는 내 자신을 이겼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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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2006-03-27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패한 혁명가? 무엇이 실패이고 무엇이 성공일까요?
혁명가 김산에게 '실패한 혁명가'란 딱지는 너무 깊이가없고 설명이 부족한 말입니다.
 
탁류 - 중고등학생이 꼭 읽어야 할 한국단편소설
채만식 지음 / 홍신문화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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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탁류처럼 더러운 물이 되어 흐른다면 그보다 불쾌할 수 있을까? 탁류는 바로 그러한 세상이 정말로 온다면 그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를 초봉이라는 한 여인을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매우 어두운 소설임을 알 수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매우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초봉이가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남자들에게 꾐을 당하고, 제법 유식하단 부모의 배신으로 그런 인생을 살아간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다. 그렇게 꼬일 대로 꼬인 그녀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자기가 낳은 자식을 돌봐주고 그것을 낙으로 살아가는 비참함이랄까. 그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매일 마다 인터넷으로 날아오는 이 세상의 처참한 소식들이 떠올랐다.

이 소설은 비현실적이지도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으면서 정말 이 세상에 존재할법한 스토리를 적당한 상황을 만들어 묘사하고 있다. 소설 한 장 한 장을 넘기면서 나는 이러한 비참한 상황에 놓인 주인공과 경험을 같이 할 수 있었다. 절망에 빠진 사람이 취할 행동과 생각등을 계속 고뇌이며 이 책의 후반부를 읽어 나갔다. 정말 이러한 절망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절망이라면 나는 지금까지 내 마음속으로 다짐했던것 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계속 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나는 작지만 많은 시련을 겪으면서 이렇게 카이스트에 입학까지 하게 되었다. 국제 대회를 나가던것, 과학고를 들어와 남들에 비해 뒤처진 학습 진도에 대한 고민. 그리고 대학 입시에 대한 고뇌와 스트레스가 떠오른다. 어른들은 예기한다. 인생에서 큰 실패를 일찍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나중에 큰 고난이 닥쳐올때 갈대처럼 꺾여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고. 짧지만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되돌아 볼때 나는 정말 그렇게 큰 어려움 없이 지금 이 자리에 서게 된것 같다. 하지만 결국 내가 그런 고난이 찾아 왔을때 잘 대처할 수 있을까란 질문은 실제로 그런 고난이 찾아오기 전가지는 영원히 대답할 수 없을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을 넘어가서 이 소설에서 묘사하는 이러한 스토리는 결코 소설에만 존재하는 이야기는 아닌것 같다. 정말 이러한 어이없는 스토리가 진행되는게 바로 현실이라는게 최근들어 내 생각이다. 9월 11일 미국 국제 무역 센터 빌딩이 붕괴되는 사건도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황우석 박사가 논물을 조작하고 그 주위 사람들이 돈에 눈이 멀어 어이없는 일들을 한것도 모두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렇듯 이러한 비참한 스토리는 결코 우리가 책에서만 볼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인간의 이기적인 본심은 많은 부분에서 나타난다. 그렇게 이성적인 인간도 모두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를 절제할 줄 모르는 상황이 많고, 돈이라는 물질적인 욕구로 한 나라를 팔아먹기 까지도 한다. 이러한 인간의 이기심은 끝을 모르고 이어진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의 이기심으로 이루어 진 것이 이 세상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이러한 인간의 이기심을 느긴게 내가 과학고등학교를 들어오고 나서 부터이다. 보통 사람이 어른스러워 진다고 하면 생각이 남을 배려하고 사회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얘기로 말을 하지만, 거꾸로 설명을 하자면 정말 계산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해석을 할 수도 있다. 과학고의 학생들은 대부분 이러한 ‘어른스러운’ 사람들의 부류였다. 자기 인생이 벌써부터 치밀하게 계산된 하나의 과정 정도로 까지 보였다. 사람들을 사귀는 것을 하나의 이용 방편으로 사용하는 애들을 보고 나는 정말 어이가 없었음을 느낀다. 그러한 친구들 때문에 정말 실망도 많이 했고,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친구 관계가 가식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학교에서 살기란 매우 힘들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이러한 각박한 세상 삶에 있어서도 희망은 보인다. 탁류에서도 계봉이나 승재 같은 인물을 등장 시키므로써, ‘이 세상은 그렇게 각박하지만 그래도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에 아직 살만하다’ 라는 메세지를 전해주고 있다. 과학고에서의 내 삶도 그랬다. 그렇게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애들도 있었지만, 정말 진실되고 친한 친구들도 많이 사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생각을 가진 애들부터 도인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애들까지 많은 애들을 사귈 수 있었다. 이러한 친구들과 같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 그런 각박한 환경을 이겨내고 졸업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성선설을 믿고싶다. 우리 모두 어렸을적엔 순수했다. 하지만 사람간의 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그런 세상에 적응하고 살아가려 바뀌게 되어버린다.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만들지만 결국 사람들은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아 변해가기 시작한다. 무한경쟁의 세계화 시대에서 우리들이 사는 이 세계는 점점 힘들고 어렵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에 적응하여 살아가는 우리들도 모두 이기적이고 계산적으로 바뀌어 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사회 속에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거나, 정말 올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 하기에 아직도 우리 세계가 멸망하지 않고 유지 되고 있다. 결국 이렇게 완벽하지 않으면서 너무 낙천적이지도, 너무 비관적이지도 않은 이 세상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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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세트 - 전10권 - 양장본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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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국사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하지만 역으로 중고등 학교 때 치렀던 시험 점수는 잘 나오질 않았다. 조선의 3번째 왕이 누구며, 대표적인 친일파가 누구누구인지를 일일이 외워가며 학습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 아닐 수 없었다. 역사는 그 속에 우리 삶의 지혜와 교훈이 담겨져 있고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의 왕들을 순서대로 외우거나 어떤 인물이 어떠한 나쁜 행동을 했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강은 그러한 역사의 중요한 몇가지 흐름을 소설로 잘 풀어내어 썼다고 생각한다.

<한강>을 읽는 동안 내 가슴은 뭉클 거리며 부모님 세대에 대한 감동이 밀려왔다. ‘감동’이라는 두 글자로만 그 느낌을 표현하기에는 너무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우선, 아득한 중, 고등학교 시절 외웠던 4.19니 5.16이니 하던 먼 나라 이야기만 같았던,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직접 겪으셨던 그 숱한 이야기들. 비단 정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풍요로운 경제의 밑바탕을 너무나 많은 분들께서, 너무나 많은 분야에서 피와 땀으로 일구셨다는 숭고한 사실. <한강>은 내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듯이 그렇게 잔인하고, 눈물겹고, 설움에 복받치도록 소근거려 주었다. 어째서 나는 우리나라가 이토록 슬픈 역사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국사’책에 쓰여진 단 몇 줄 밖에 되지 않는 그런 ‘사실’들의 나열이 아닌, 살아 숨쉬는 아픔들에 무지했단 말인가? 아무리 내가 이러한 역사적인 고통을 실제로 겪지 않고 모두 끝나고 새로운 정권시 시작되었을 80년도 후반에 태어났어도 말이다. 4.19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서는 당시 대학생들의 데모장면을 읽으며,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마치 내가 그 현장에서 목청 돋우며 ‘민주주의여 만세’를 외치던 대학생처럼 비장했었는지. 그러면서도, 제 3자의 위치에서, 나라면 그랬을까. 유일표처럼 내가 가진 꿈이나, 당장 살아가야 할 이유들을 다 버리고,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이름들을 위해서 피를 흘리며 가슴이 터지도록 그 말들을 외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유일민처럼 어쩔 수 없는 자신과 가족들의 상황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시위장만 맴돌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의 연장선 상에서 지금의 내 모습을 비춰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이 이루어 놓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세상에서, 땀 한 방울,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렇게 너무 가벼운 소사들에만 목을 메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서른을 바라보면서 개인의 안위가 아닌 다른 이상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등의 많은 생각들이 교차되었다. 철 모를 때 깊은 고민 없이 민중가요 노래패에 들어가 ‘사상 없는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부끄러움으로 자리잡았다. 우리의 부모님들이 눈물과 피를 흘리며 부르던 그 노래를 나는 악보에 적혀있는 하나 하나의 음과 선 이외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그 때에는 그저 노래가 좋았을 뿐이라는 자기 위안만 등에 업고서 말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짓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승만, 박정희의 정권 틈에서, 아니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오는 정치권의 협잡꾼들의 이야기들 읽으면서-물론 어느 정도 사료를 바탕으로 한 허구일테지만-또 엉망을 넘어 개판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의원나리님들의 작금의 행태를 읽고, 보고, 느끼며 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4.19로 금방 이어질 것만 같았던 민주화는 너무나 오랜 기간을 거치고 헤메이면서도 여전히 그 자리를 찾지 못했다. 여전히 부정과 비리가 난무하고, 비방과 흑색선전들. 잠잠하면 터지는, 우리네 부모님들을 가슴 쓸어내리게 하는 억대의 미친 짓들은 꾸준히 터지고 있다.

농민으로 살다, 서울로 상경해 평생을 반 거지로 살았던 천두만, 봉재공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폐병으로 죽은 여공, 버스 여 차장, 독일로 떠난 탄광 공들, 여간호사, 사우디로 날아간 근로자들, 월남으로 달려간 젊은 청년들, 온몸에 기름을 붇고 노동자의 권리를 부르짖던 전태일, 그리고 아무런 힘도 없이 그저 묵묵히 땅을 지키며 살던 수많은 농민들. 그들이 대한민국을, 세계 20위 안에 드는 경제 대국을 만드는데 공헌한 분들이라는 사실 또한 고개를 떨구게 만든다. GNP 1000불도 안되던 우리나라를 이제 1만불 시대로 만드는데 그들은 너무나 많은 것들을 희생해야만 했다. 먼지를 마시고, 깊은 탄광에서 탄가루를 마시고, 먼 타국에서 24시간 365일을 뙤약볕을 마시고, 남의 나라 전쟁에서 피를 흘리며 우리는 그렇게 그들의 피와 땀으로 대한민국을 만들어 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또다시 깨닫게 해주던 구절들.

<한강>은 ‘역사’책이다. 학창시절 암기를 위해 두 세줄 외웠던 구절이 아니라, 한이 담겨있고 슬픔이 담겨있고, 아픔이 새겨진 우리의 살아 숨쉬는 역사책이다. 지하철에서, 독서실에서, 도서관에서, 집에서 이토록 하나의 책에 빠져 지내본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한강>은 역사에 대한 내 무지를 깨우쳐주었고, 아직도 남아있는 내 구석 어딘가에 슬픔을 불러주었다. 읽는 내내, 하염없이 작은 내 존재와 내 일상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 주었고, 한편으로 나를 단단하게 해주는 힘을 주었다. 써 내려가고 싶은 여흥이 아직 많이 남아있지만, 하찮은 내 글귀가 오히려 <한강>이라는 작품에 누가될까 더는 못 쓸 것 같다. 읽기만 했던 나도 마지막 권을 덮으며 이토록 허전한데, 작가는 어떤 허망함과 쓸쓸함을 안고 살고 있을까. 너무 아픈 과거가 많은 나라다. 우리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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