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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아이디어 - 창의성을 깨우는 열두 잔의 대화
김하나 지음 / 씨네21북스 / 201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잔. 미스티
▫ 창의성의 신화가 우리를 창의성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그러나 예술가들도 절대로 ‘아무것도 없는 데서’ 뭔가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 어떤 분야에 있어서 창의적인 성과를 내려면 일단 어떤 식으로든 성실하고 진지하게 기본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그걸 다른 각도로 바라 볼 수 있다.
▫ 니진스키, 고흐, 괴델, 글렌 굴드 등 천재들이 보인 광기는 고도의 창조적 집중력을 묘사할 때 쓰이는 단어다. 그들은 자신의 작업에 지나칠 정도로 몰두했고, 작업의 매 순간, 모든 세부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집착했던 사람들이었다. 미쳐버릴 정도로 성실하고 진지했던 사람들인 셈이다.
그러나 대중들은 천재 신화를 낭만적으로 바라보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진지함과 성실함보다는 광기와 기벽을 흉내내내려 든다. ‘허세’와 ‘예술가 놀이’와 ‘천재 코스프레’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스스로 창의적 인간의 예민함을 표방하고 자신의 창조하는 사람일수록 대부분 재주는 평범한데 그냥 성격이 별로 안 좋은 경우가 많다. 천재성은 드러나는 것이지 그렇게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천재신화를 잘못 소비하기 시작하면 엉뚱한 자의식만 비대해지기 십상이다.
▫ 천재들이 작업을 쉽게 해내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비범한 집중력으로 유, 무형의 지식을 빨리 흡수하고 유연하게 사고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늘에서 사과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마지막 한 방울이 물을 넘치게 하는 것처럼, 지식과 생각이 꽉 차있을 때 우연한 자극이 다가왔을 뿐이었다. 우리는 사과가 떨어지기를 기다릴 게 아니라, 사과의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창의성은 하나의 태도다.
▫ 모든 사람은 창의성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 그건 마치 사랑할 수 있는 능력과도 같다. 우리는 영화와 티비에 나오는 드라마틱한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스스로도 소박한 방식으로 누군가를 충분히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이미 안다. 할머니는 손자를 사랑할 수 있고, 초등학생은 짝꿍을 사랑할 수 있다. 친구를 사랑하고, 강아지를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한다. 그러나 사랑만큼이나 인류의 중요한 힘이고 근간인 창의성 역시 우리 모두가 나눠 가질 수 있는 것이다.
2잔. 벽돌 같은 단어
▫ 창의성, 크리에이티비티 -> 아이디어. 아이디어는 모호하지 않고, 더 쉽게 주고 받을 수 있다. 누군가의 아이디어를 가져와서 내 작업에 쓸 수도 있고, 내 아이디어를 빌려 줄 수도 있다. 창의성이란 단어는 그 사람이 가진 고유의 인성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쉽게 주고받거나 쪼갤 수가 없다. 아이디어란 말은 벽돌 같은 단어다.
▫ 우리가 겪는 모든 것에서 창의성이 아닌 ‘아이디어’를 찾아내자. 나뭇잎의 잎맥처럼 아무리 작은 부분도, 전체와 같은 구조로 되어있으며, 아이디어도 이와 같다. 풀이나 나뭇잎 하나도 아이디어, 커다란 아름드리 나무도 아이디어고,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면 그 숲도 아이디어다.
▫ 크고 작은 아이디어는 모두 반짝인다. 우리가 반짝임을 발견하는 순간, 그건 우리 안에 들어와 씨앗이 된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 씨앗들은 우리 안 어딘가를 떠돌다가 알맞은 조건이 되면 싹을 틔운다. 700년된 연꽃 씨앗이 꽃을 피우는 것처럼, 아이디어는 그렇게 싹을 틔우고 자라난다.
3잔. 작은 반짝임들
▫ “창의적 사고란, 항상 해왔던 방식대로 행하는 것이 특별한 미덕은 아니라는 단순한 깨달음을 의미한다” - 루돌프 플레시, 철학자.
4잔. 맛을 그리는 능력
▫ 아이디어라는 말은 무궁무진한 의미를 담을 수 있다. 맛, 소리, 향기, 색깔, 동작, 형태 속도...... 내가 반짝임을 느낀 감각을 ‘아이디어’라는 감각에 집어넣어보자. 말을 넓이는 것이다. 도저히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5잔. 축척
▫ “벽을 눕히면 다리가 된다” - 안젤라 데이비스
▫ 국가라는 개념도 천부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처럼 생각되지만 핏줄과 땅에 금을 긋는 건 어디까지나 우리 인간들의 관념이다. 플로베르는 “지도의 어떤 땅덩어리에 빨간색이나 파란색으로 금을 그어놓고 그것을 다른 땅과 구분하는 조국의 관념, 그것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6잔. 또 다른 대륙
▫ 어쩌면 우리에게 예술에 대한 오해를 심어주고, 우리 앞에 금기의 유리벽을 두른 것은 예술작품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훌륭하게 완성된 하나의 작품을 대할 때면 압도적인 느낌, 설명하기 힘든 감동, 전에 보지 못한 새로움, 벅찬 경외감 등으로 인해 그 예술작품이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기적이 신을 상정하게 하는 것처럼, 기적 같은 예술작품은 인간이 그것을 만들어 냈다는 걸 믿기 힘들게 한다. 창조성의 신화는 여기서 생겨나는 것이다.
모차르트의 위대함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얘기하기 좋아하는 가십의 영역과는 분명 다른 부분이다. 우리는 다만 그가 만들어낸 음악을 통해, 남과는 달랐던 그의 시도와 완성을 발견해낼 수 있을 뿐이다.
▫ 예술가의 일화는 천재, 광기, 벼락같은 영감, 기적 등의 화려한 단어로 점철되는데, 이것은 창의성의 본질에 대한 심각한 왜곡을 가져온다. 수없이 많은 가능성의 갈래 사이에서 갈등하고, 실험하고, 선택해야 하는 예술가의 분투와 집중, 끈기, 성실성 등은 저 화려한 단어들 뒤로 숨어버리기 때문이다.
▫ 축척을 변경해서 모든 요소들이 합쳐져 전체적으로 자아내는 특별한 감각을 느낀다면 그것까지도 하나의 아이디어가 된다. 우리는 작가가 주려고 하지 않았던 아이디어들까지도 얼마든지 얻어갈 수 있다.
▫ “비평은 말을 할 수 있지만, 모든 예술은 벙어리인 것이다” - 노스럽 프라이, 문학비평가.
▫ 내가 감탄하며 음미하는 만큼 내 아이디어는 늘어나는 것이다.
▫ 완성이 아닌 시도 자체의 반짝임을 발견하려는 시각을 갖자.
8잔. 벽과의 전쟁.
▫ 사람의 머리는 엄청난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보관하기 위해 자동으로 카테고리를 나눠 단순화 작업을 한다. ‘이미 알고 있다’고 받아들이면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어렸을 때 ‘이건 뭐야?’ ‘이건 왜 이래?’라는 질문을 하루 종일 달고사는 이유는, 아직 머릿속이 말랑말랑 한 것이, 틀이 잡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많은 즐거움 중에는 이렇듯 서랍 속에 넣어버릴 수 없는 뭔가를 우리 앞에 던져준다는 점도 있다. 예술이란 작게든 크게든 벽을 넘어가는 속성을 띈다. 아무런 벽도 넘어가지 않는 예술은 진부하기만 할 뿐이다. 그래서 좋은 예술은 언제나 신선한 법이다.
▫ ‘주어진 조건 안에서 열심히’가 아니라 주어진 조건이 정말로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것. 내 앞을 가로막은 벽이 정말로 단단한 벽인지, 아니면 내가 밀어 넘어뜨리거나 뛰어넘을 수 있는 벽인지를 실험해보자.
▫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각각의 자리에서 맞닥뜨린 벽이다. 한 걸음을 나아가기 위해선 벽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게 우선이다.
9잔. 곤죽과 더 큰 곤죽
▫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처음에 어떻게 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지를 깨닫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어딘가 우연해진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라는 말이 있다. 지금의 우리가 과거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가 역사를 재구성한다는 뜻이지 이는 단순한 암기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한석봉은 명필이었다’에서 그친다면 그건 과거의 사실일 뿐이다. 하지만 한석봉의 글씨가 다른 사람의 글씨와 어떤점이 달랐는가, 어게 아름다운가, 그만의 개성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 한석봉이 깬 벽은 무엇이가를 살펴본다면 한석봉의 아이디어는 살아나 21세기의 우리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 아이디어의 렌즈를 통해 과거를 살펴본다면 과거의 펄떡이던 아이디어 들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과거와 현재는 별개의 것이 아니다.
우리를 가로막는 것은 벽, 벽, 벽이다. 우리는 주위의 모든 것들을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눈을 감고 다닌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우리의 모든 주의와 감각을 일깨우기 떄문에 최고의 경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표지판의 생김새나 레스토랑에서 주문하는 법지, 익숙하던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 ‘사랑’이란 단어를 ‘남녀 간의 로맨틱하고 배타적이며 육체성을 포함하는 관계’로만 정의내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평생 살면서 사랑이란 사건을 겪을 기회는 고작 몇 번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사랑의 범위를 무한이 넓힌다면, 그사람의 세상에는 사랑이 차고 넘칠 것이다.
▫ “모든 벽은 문이다” - 에머슨, 시인.
▫ 사랑을 따라가야 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대상에게 자신을 열게 된다. ‘나’라는 경계의 벽을 허물고, 바깥으로 나를 내어주고 무언가를 들어앉히는 것이다. 사랑의 강력한 자기장은 우리 안을 다 뒤헝클어 놓고 재구성한다. 음악이건, 여행이건, 뜨개질이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 “당신이 내가 아니라서 너무 좋습니다. 우린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까”
10잔. 상자
▫ 상자를 믿어라. 당신이 무언가를 많이 느끼고 감탄하며 채워두었다면, 당신이 집중할 때 상자는 분명 무언가를 꺼내준다. 무언가 불편하거나 미진하거나 지루할 때도, 그 상태를 받아들이지 말고 이 아이디어 상자를 갖다 대보라. 이 상자야 말로 창의성의 태도를 상징한다.
12잔. 한걸음
▫ 헨리 데이빗 소로의 책 <월든>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피츠버그지 여행일 가기로 친구랑 내기를 한다면, 친구는 피츠버그지의 기찻삯을 벌기 위해 일을 시작할 테지만 자신은 바로 그 순간부터 한 걸음을 내딛기 시작할 거라고. 자기가 가진 두 다리로 그 순간 한 걸음을 걷기 시작하는 도보여행자야말로 결과적으로는 가장 른 도보여행자라는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무엇을 갖추고, 마련하기보다는 바로 지금 그 자리에서 더 나은 세상을 ‘살아버리는’게 낫다는 뜻일 것이다. 이 말은 창의성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하다.
▫ 아이디어는 무엇을 더 갖추고 나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진 것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기 위해 바로 이 순간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 없어서 안돼’라는 말에 어깨를 으쓱하고는 ‘글쎄, 그럴까?’ 라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은 어쩔 수 없다’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면 좀 낫지’의 정신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