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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처음 알게된 것은 성당에서 신부님의 말씀을 통해서였다.
그때 말씀하신 부분이 새해에 조카들에게 보낸 '토끼야 일어나라' 라는 편지였다. 흔히 잘 아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에서 이 책의 저자인 신영복 교수는 자는 토끼를 그냥 두고 지나치는 거북이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하면서 자는 토끼를 깨워서 함께 가는 멋진 사람이 되라고 충고하고 있다. 이 글은 나에게 큰 의미를 갖게 해주었다. 상위 20%가 하위 80%를 먹여 살린다는 현대의 이 각박한 시기에 우리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준 것이다. 모두가 함께 앞으로 나아가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말이다.
이쯤에서 저자에 대한 소개를 안할 수 없겠다. 이 책안에 모여진 엽서를 쓴 신영복 교수는 진보지식인으로서 1968년 통일 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간 복역하다 88년 광복절날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98년 사면 복권된 후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하다 얼마전 퇴임하였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간 감옥이라는 곳에서 갇혀 있으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거나 또 현실에 안주해버리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는 것은 차 놀랍고도 존경스럽다. 이 책은 저자가 옥중에서 부모님, 형, 동생 등에게 보낸 엽서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안에는 신영복 교수의 사상, 철학, 신념뿐 아니라 생생한 삶의 현장도 잘 드러나 있다.
'창문' 보다는 역시 '문'이 더 낫습니다. 창문이 고요한 관조의 세계라면 문은 힘찬 실천의 현장으로 열리는 것입니다. 그 앞에 조용히 서서 먼 곳에 착목(着目)하여 스스로의 생각을 여미는 창문이 귀중한 '명상의 양지'임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결연히 문을 열고 온몸이 나아가는 진보(進步) 그 자체와는 구별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p.194)
이 부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신영복 교수의 삶의 현장에 온몸을 던져 앞으로 나아가는 진보적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이 못지않게 강조한 것이 바로 '실천'에 있다. 그저 생각과 관념만으로가 아니라 직접 삶의 현장에 투신하여 살이 부비껴야 하는 실천적인 삶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사람은 실천활동을 통하여 외계의 사물과 접촉함으로써 인식을 가지게 되며 이를 다시 실천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그 진실성이 검증되는 것입니다. 실천은 인식의 원천인 동시에 그 진리성의 규준이라 합니다. (p.277)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그가 몸소 겪은 자기 인생의 결론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특히 자신의 사상을 책에다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서 이끌어내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아무리 조잡하고 단편적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사상은 그 사람의 삶에 상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삶의 삶의 조건에 대하여는 무지하면서 그 삶의 사상에 관여하려는 것은 무용하고 무리하고 무모한 것입니다. 더욱이 그 삶의 삶의 조건은 그대로 둔 채 그 삶의 생각만을 다른 것으로 대치하려고 하는 여하한 시도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폭력입니다. (p.297)
또 한가지 크게 와닿은 저자의 생각은 나의 입장, 나의 눈으로 상대방을 또는 사회를 보라는 '상대주의적 시각'에 관한 것이다. 바로 위의 글에도 나와있듯이 이는 우리의 좁은 시야를 경계하고 함부로 쉽게 판단하는것에 대한 위험성을 말한다. 조금더 열린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
섬 사람에게 해는 바다에서 떠서 바다로 지며, 산골 사람에게 해는 산봉우리에서 떠서 산봉우리로 지며, 서울 사람에게 있어서 해는 빌딩에서 떠서 빌딩으로 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섬 사람이 산골 사람을, 서울 사람이 섬 사람을 설득할 수 없는 확고한 '사실'이 됩니다. 지구의 자전을 아는 사람은 이 우김질을 어리석다 깔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렇다면 바다나 산이나 그런 구체적인 경험의 현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뜨는 해를 볼 수 있는가? 물론 없습니다. 잇다며 그곳은 머리 속일 뿐입니다. '우주는 참여하는 우주'이며 순수한 의미의 관찰, 즉 대상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가치중립적인 관찰이 존재할 수 없는 법입니다. (p.212~213)
사람이나 사물, 사회나 역사를 바라볼때 우리는 각각의 분리하여 이해하는 것이아니라 서로간의 관계성을 인식하고 연대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즉 큰 코끼리의 각각의 부분만을 보고 판단하는것이 아니라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는, 각자가 저마다의 삶의 터전에 깊숙히 발목 박고 서서 그 '곳'에 고유한 주관을 더욱 강화해가는 노력이야말로 객관의 지평을 열어주는 것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곳' 이, 바다로 열린 시냇물처럼, 전체와 튼튼히 연대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앞에서 쭉 얘기한 진보적 정신과 그에 따른 실천성, 연대성, 그리고 상대주의적인 시각까지 이것은 다른 것들이 아니다. 모두 저자의 일관된 사상의 흐름 속에 녹아있는 것이라고 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참 공감도 많이하고 또 그만큼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다. 오죽했으면 책을 거의 한달내내 읽었을까.. 그만큼 저자의 20년 동안의 집약된 사상들이 나에게 쉽사리 다가오지 못했던 것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은 아게게 많은 것을 일깨워 주었고 또한 내가 추구하는 방향을 다시한번 돌아보고 재확인 해보게끔 하였다.
다만 읽으면서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앞부분의 70년대 편지들에서는 한자가 너무 많아 의미파악이 쉽지 않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책을 읽을때면 옥편과 국어사전이 꼭 함께 동참했으니 말이다. 덕분에 한자공부에 대한 필요성도 새삼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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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살은 떠돌이 광대넋이 들린 거라고도 하고 길신이 씌운 거라고도 하지만, 아직도 꿈을 버리지 않은 사람이 꿈 찾아나서는 방랑이란 풀이를 나는 좋아합니다. <p.117>
영위하는 일상사와 지닌 생각이 한결같지 못하면 자연 생각이 공허해지게 마련이며 공허한 생각은 또한 일을 당함에 소용에 닿지 못하여 한낱 사변일 뿐이라 믿습니다. 저희들이 스스로를 통찰함에 특히 통렬해야 함이 바로 이런 것인즉, 속빈 생각의 껍질을 흡사 무엇인 양 챙겨두고 있지나 않는가 하는 점입니다. <p.190>
새로움이 완성된 형태로 우리 앞에 던져진다면 그것은 이미 새로움이 아니라 생각됩니다. 모든 새로움은 그에 임하는 우리의 심기가 새롭고, 그 속에 새로운 것을 채워나갈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주어지는 새로움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p.233>
즐거운 마음으로 무엇을 궁리해가며 만들어낸느 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그 즐거움은 놀이이며, 궁리는 학습이고, 만들어내는 행위는 곧 노동이 됩니다. <p.271>
'작은 실패'를 간과하지 않는 자기비판의 자세입니다. 실패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실패의 발견이 필요한 것이며, 실패가 값진 것이 아니라 실패의 교훈이 값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패와 그 실패의 발견, 그것은 산에 나무가 있고 땅 속에 바위가 있듯이 우리의 삶에 튼튼한 뼈대를 주는 것이라 믿습니다. <p.334>
200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