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세계문학총서 6
밀란 쿤데라 지음, 김규진 옮김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1995년 8월
평점 :
절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소설에서 그것은 토마스에 대한 테레사의 시선이다. 우리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같은 눈높이에 있지 못할 때가 많다. 여기에 교묘한 엇갈림이 숨어 있다. 테레사는 토마스의 가벼움을 이해할 수 없었고, 토마스는 테레사의 사랑조차도 번번히 배신하며, 그 때문에 여자는 일평생 질투로 괴로워 하며 불안 속에서 지낸다. 이러한 가벼움이란 도대체 어디서 연유하는가?

1968년,소련군의 진주로 짓밟히는 체코의 정치적 상황을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역사란 때때로 너무나 무겁다. 일찍히 아우슈비츠가 그러했고, 외세에 의해 무참히 좌절된 프라하의 봄이 그러하고, 군인들의 총칼에 사정없이 학살당한 1980년의 광주가 그러하다.

인간이 인간으로 여겨지지 않는 상황, 혹은 삶이 이성의 질서에 의해 거칠게 유린되는 상황, 여기서 우리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경험한다. 선과 악이 명백히 갈라서고, 적과 아군이 피흘리며 대립되는 곳에서 심한 이율배반과 모순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쿤데라는 그것을 키치라고 부른다. 키치의 세계 안에선 모든 것이 만능이다. 그 세계의 동조자가 되던가, 아니면 반대편에서 안티테제를 형성하고 영원한 타자의 낙인을 받아 투쟁하는 길이다(아! 위대한 변증법의 교리여..)

그러나 키치의 바깥에선, 놀랍게도 가벼움이 발생하고, 가벼움은 키치를 우스꽝스럽게 비틀어 버린다. 가벼움은 일종의 넘어섬으로 현실의 비극과 희극을 모두 포용한다. 삶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별종인가? 쿤데라의 뒤에서 은희경 씨가 갈파한 적이 있지만, 삶에서 아름다움과 따뜻함, 호의만을 발견한다면 반쪽짜리 관찰이다.

삶의 이면은 호의나 선의보다 장난과 악의, 짖궂은 심술과 투정으로 가득찼다. 따라서 배신이야 말로 예측불허의 삶에 맞서는 가장 훌륭한 무기이며 현명한 태도가 된다. '대열에서 일탈하여,낯선 곳으로 나아가기'를 충실하게 실현하는 사비나야 말로 가벼움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다. 토마스는 중요한 순간, 테레사를 선택함으로 자신의 인생에 족쇄를 채우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지만, 사비나는 프란츠마저 버리고 -결혼이야 말로 너무나 무거운 삶의 형식이다- 미국으로 떠나 버린다. 가히, 무소속한 존재의 상태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하겠다.

그렇다면, 존재의 가벼움이 참을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테레사의 본성을 의미한다. 테레사는 천성적으로 무건운 삶을 살아간다. 그렇다고 그녀가 부도덕하거나 강압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녀는 삶을 진지하고 엄숙하게, 그리고 통일적으로 바라보고자 애쓴다.

그녀는 무질서하고 혼란한 것,정당하지 못한 것을 견뎌내지 못한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위치를 망명한 폴란드가 아니라, 자기 정체성의 근본모토인 프라하에서 찾는다. 테레사의 천성은 배신이 아니라, 키워 내는 것이다. 때문에 그녀는 신뢰의 반역을 용납할 수 없다.

토마스 부부가 키우던 개가 죽었을 때, 삶의 모든 것을 잃어번린 듯 슬퍼하는 테레사를 보라. 테레사는 무거움이지만,사랑과 온기가 있고,지켜 내려고 애쓸 뿐, 떠나려고 하진 않는다.사진기를 들고 프라하 거리로 진주하는 탱크에 저항해 용감하게 맞서는 것도 그녀의 무거움에서 기인한다. 그녀에게 가벼움은 비겁한 자기도피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자,이제 정리해 보자. 우리는 어디를 향해 발을 내딛을 것인가? 이 소설을 읽어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제목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만큼 이 단어가 우리의 시대정신으로 자리매김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고자하는 욕망. 존재의 외부에서 책임이니 의무, 신념 등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존재에 대한 비난과 힐책,강요 등으로 부터 가벼워지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근원적 바램이지 않겠는가. 그러나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바라는 것은 분명 무거움의 정서이다.

그 사이에서 기우뚱 거리며, <프라하의 봄>에선 테레사에게 애정을 보내고 싶다.-왜냐면 줄리엣 비노쉬가 너무 예쁘게 나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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