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미술관 예술산책 - 크리에이티브 여행가를 위한
명로진 지음, 이경국 그림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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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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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왕국 프로이센
크리스토퍼 클라크 지음, 박병화 옮김 / 마티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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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처음에는 브란덴부르크만 있었다.'로 시작하며, 마지막은 '결국 브란덴부르크만 남았다.'로 끝난다. 저 문장들 가운데서 프로이센이라는 네 글자는 어디에도 없다. 900페이지의 활자 속에서 정신없이 휩쓸리던 끝에 시작과 마지막을 살피곤 대체 이 책을 읽은 기록을 어떻게 남겨야 할까 머리가 아파졌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읽은 책에 대한 이미지와 느낌을 곧잘 잊어버리곤 하는 내게는 책을 읽은 뒤의 기록은 중요한 것이었다. 때론 즐거움으로, 때론 애석함으로 글들을 남기곤 했지만, 이런 장편의 역사서는 처음이었고 비교적 낯선 '프로이센'이라는 국가는 더욱이나 어려움을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고민은 결국 '프로이센'은 어째서 이다지도 낯선 나라인가를 되돌아보게 하며 꼼꼼하게 붙여 놓았던 포스트잇들을 뜯어가며 선택했던 문장들을 키보드로 기록했다. 

대장정의 서두와도 같이 프로이센의 만듦새는 '브란덴부르크'로 시작했다. 그리고 이 안에는 호엔촐레른가(家)가 있었다. 선제후 가문 중의 하나였던 호엔촐레른은 강력한 권한을 부리기보다는 자리를 보전하기 위하여 휘청거리는 집단이었고, 오스트리아와 스웨덴, 카톨릭과 루터파, 수많은 조건과 요구들 속에서 무릎 꿇고 중립을 원하는 위치였다. (어쨌거나 게오르크 빌헬름의 시대에는 그랬다) 비록 그 이후에 프리드리히 2세 등의 프로이센 대대로 찬양되는 집권자들 또한 등장하였으나, 나폴레옹에게 휘둘렸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권력을 행사하고 싶었으나 시민들과의 맞서 싸우는 과정 및 타국(특히 프랑스)의 정세에 자리보존을 두려워했던 4세 등의 인물들이 무대로 올라섰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강자를 생각하고 이들이 지도자로서 모든 권력을 휘둘렀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위의 인물들과 그 역사를 읽다 보면 인간사는 세상사 지금과 200-300년 전이 그다지 다를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이 지도자들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여서 (역시나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프리드리히 2세의 어린 시절 및 그의 유년과정들이다.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그들의 경제적 운영과 종교적 신념 및 유대인들에 대한 처우 등등을 자세히 표현하고 있다고 해서, 이외 시민들의 삶과 배경들에 대하여 인색할지도 모른단 오해는 금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900페이지나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당시 삶을 살아갔던 농민들, 시민들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표현한다. 덕분에 자신들의 역사에 빠삭할 독일 학생들일지라도 지금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은 알 수 없을 것이란 확신이 들고 만다.

『잔혹한 이야기가 선정적이긴 해도, 적어도 간접적이나마 실제로 사람들이 겪은 생생한 경험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

종교전쟁인 30년 전쟁 속에서 수많은 사람의 죽음과 이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방법에 대해서까지 세세하게 설명한다. 정말 잔혹한 이야기다. 민간인들이 군대를 통해 코가 잘리고 귀가 잘리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과히 종교라는 테두리 안의 전쟁이 인간사의 모든 핑계를 안고 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로부터 400년이나 지난 지금에도 인간들은 여전히 종교 때문에 싸우고 있다. 여전히 군대는 민간인을 학살한다. 달라진 점이라면 살육의 방법이 더욱 확실하고 더욱 깨끗해졌다는 것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해버리면 이 글의 끝처럼 되어버리지만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인간이 너무 빨리 죽고, 새로 태어나는 인간들은 그전의 역사를 모르는 채로 너무 빨리 죽어서.

프리드리히 2세의 통치방법에 대한 설명은 재미있다. 프로이센 왕국의 헌법 기능을 했던 '프로이센 국가 보통법', 그리고 이 틀을 만든 프리드리히 2세는 (사담이지만 이 책은 온갖 프리드리히가 나오고 온갖 빌헬름이 나온다. 오히려 태정태세문단세가 고마울 판이다.) 공공이익을 위해 일하는 성실한 종복으로서 반포된 법에 규칙과 절차를 정했다고 하지만, 그 또한 사법당국에 일방적으로 개입했던 때가 있다고 하는데 이것이 '물방앗간 주인 아르놀트 사건'이라고 한다. 주 내용은 사법의 불합리함을 평민 아르놀드가 프리드리히에게 토로했고, 이를 인정한 프리드리히는 사법 당국은 번복, 열받은 프리드리히는 담당 판사 세명을 1년간 성채에 억류하도록 명령했으며, 아르놀드의 물방앗간으로 들어가는 물길은 복구 되었다는 이야기다. 얼핏 들으면 이토록 백성을 사랑하는 프리드리히 2세의 미담같아 보이고, 2020년대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보니 차라리 저 때에 사는게 나을판이라는 막말도 나온다. 모두 떠나 왕실과 평민들간의 관계가 이토록 가깝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부분, 그것을 이 일화로 표현하는 시각은 이 책이 담고 있는 다양성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최근 들어 역사 속에서 사라진 여성들의 이야기를 파헤치고자 하는 움직임이 많이 포착되고 있고, 그에 많은 관심이 있는 나 또한 다양한 매체들을 찾아보고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풀고 있는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의 역사 가운데에 여성들의 지분은 크지 않다. 관련 내용에 붙이는 초록색 색깔의 포스트잇의 개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 여성들의 삶과 당시 정세에 관련된 여성 귀족과 왕족들의 삶을 이야기 한다. 선제후의 장남, 요한 지기스문트의 아내였던 안나 폰 프로이센은 매우 진취적이며 호전적인 여성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친가를 활용한 전투적인 외교정책을 추진했으며 아군들을 설득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반면,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아내인 루이제에 대한 일화들도 적혀 있다. 매우 우아하며 온화하고 현명한 왕실 인물이었던 그녀는 미인이기도 했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배경들로 인하여 오히려 국민들에게 왕보다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다이애나 황태자비처럼 패션의 아이콘이 되기도 하고, 꽃을 내밀며 인사하는 평민소녀를 끌어안고 키스해주는 등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감동하게 했다. 이후 나폴레옹과의 전투에서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는 아내인 루이제를 보내 설득하게 하는 등의 모습 또한 보인다. 결국 설득은 실패로 돌아갔으나 나폴레옹은 루이제에 대하여 단정한 호감을 내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는 이에 대하여 의견을 표현다.

루이제의 공적 활동은 자신의 궁정을 소유하고 우선권을 행사하며 외교정책을 다루는 여성 군주로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아내와 조력자로서의 역할이었다. 』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그녀의 탁월한 능력과 재능은 어디까지나 남편에 대한 봉사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  

비교적 여성이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표출할 수 있었던 선제후 시절과 달리 왕정에 들어서며 여성의 역할은 축소되었다. 즉 새로운 왕비는 자신의 방에서 새로운 왕이 머리에 왕관을 내려줄 때까지 기다리게 된 것이다. 비록 이 책은 묘사되는 여성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가 만족스러울 만큼 방대한 것은 아니지만, 당시 여성들의 삶이 어떠했고 어떻게 변해갔는지 판단할 수 있는 좋은 장을 마련해준다. 이만큼은 만족스러운 배움이다.

19세기가 열리면서부터는 프로이센의 방향성이 바뀐다. 1789년의 시민 혁명과 나폴레옹의 등장, 이후 왕권의 복귀 등의 다채로운 프랑스의 역사가 주변국들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시민들의 등장과 이들과 왕족들의 관계 (이 울타리 안에 있는 종교적 알력싸움은 빠짐없이 등장하며 오히려 주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의 주인들이 되는 군대의 권위 등등. 차차 쌓아 올려지는 독일이라는 국가 통일의 선망과 또 이를 이루지 못하고 무너지는 근대의 모습까지 조망된다. 비스마르크가 촘촘하게 쌓아 올렸던 국가간의 외교 관계를 식민지 개척에 불꽃을 튀겼던 빌헬름 2세가 무너뜨린 것처럼, 이해는 하지만 전반적인 이해는 어려운 수 싸움이 진행된다. 이런 수 싸움들 끝에 프로이센은 실패하고 독일은 해체된다. 그러나 작가의 이야기는 이런 프로이센의 실패에서 끝나지 않는다.

앞서 작가는 이런 이야기를 남긴다. 

『독일은 프로이센의 완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프로이센의 실패에서 나온 것이다.  』

이 책의 주요 논지가 22p에서 나와버렸다. 이래서 들어가기 전의 작가의 말은 무섭다. 이를 이해하면 작가가 또박또박하게 쓴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많은 이름들과 그들의 삶이 쓰인 수많은 기록의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나는 프로이센의 기록을 다루면서 선악을 나누거나 그 경중을 가리지 않으려 했다. '교훈'을 전하거나 현재 또는 미래 세대에게 도덕적, 정치적 조언을 전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독자들은 몇몇 프로이센에 적대적인 저작들이 그린 음산하고 전쟁을 도발하는 개미-왕국을 이 책에서 마주칠 일은 없을 것이다. 프로이센 전통에서 나올법한 훈훈한 노변정담 역시 없을 것이다. 21세기 캐임브리지 대학교에 있는 호주 출신 역사학자의 글이기에 나는 프로이센의 기록을 애도하거나 찬양해야 할 의무(또는 유혹)에서 기꺼이 벗어났다. 대신에 이 책은 프로이센을 만들고 없앤 힘들을 이해하고자 했다. 』

책을 다 읽고서 가장 앞장의 글들을 다시금 읽으면 잔잔한 감동이 밀려온다. 인간에게 완전한 중립이란 없고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애정이나 혹은 이유있는 증오 모두 삶의 증명들이다. 그러나 작가는 선과 악도 경중도 가리지 않으며 프로이센을 바라보고자 했다. 이는 무미건조한 로봇의 마음으로 글을 써내렸다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핵심은 마지막 줄이다. '프로이센을 만들고 없앤 힘들을 이해하고자 했다.' 똑같은 이야기를 계속하면 할말이 없는 것처럼 보여 민망하지만 그럼에도 너무 중요한 이야기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람은 너무 빨리 죽고 역사는 반복된다. 반복되려는 역사의 끝에서 사람은 생을 마감한다. 그 끝자락을 보는 그때의 기분은 어떠할까. 반복되어 좋을 역사와 시간이 있을까? 흔하게 묘사되는 팍스 로마나, 요순시대가 그러할까. 그러나 내 눈에는 그 시대 또한 그다지 반복되어서 좋을 것 같지 않다. 역사는 가끔 거대한 덩어리로 인간이 만들어낸 강자의 서사와도 같이 느껴지지만,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배워야하는 중요한 메세지가 있다. 그런 중요한 메세지는 이런 책들이 전해준다. 거대한 공동체를 만들고 없앤 힘. 시간의 과정에서 일어났던 사건 사고와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 그것들 만큼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세지가 있을까. 

매체들 가운데에서 '죽기 전에 읽어야할 필독 도서!'라는 문구를 자주 본다. 아마 못 읽은 책 덕분에라도 나는 2000년은 더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고 감정 포인트가 다르니 '꼭 읽어야하는 것'이라며 강요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 개개인의 삶에 중요한 책이란 존재하며, 이 역사 서적 또한 내게는 꽤 중요한 책으로 자리매김될 것 같다. 삶을 사는 언저리, 불현듯 신들린 듯한 작가의 어느 문구를 떠올리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 족하다. 

+ 좋은 책을 써준 작가님은 물론 두께를 보면 볼 수록 건강이 염려되는 번역가님과 출판사분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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