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의 자리로 - 그 나라를 향한 순전한 여정
C. S. 루이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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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소개된 루이스 책은 두꺼운 책이 거의 없다. 그러나 편한 마음으로 집어들었더라도 읽을 때마다 늘 어렵다고 느낀다. 하지만, 루이스의 책처럼 하나의 주제에 대해 쓰여진 얇은 책을 읽어 내려가다보면 감탄하게 만드는 책도 없다.


특이하게도 이번 책은 루이스의 책들에서 '신자의 자리로'라는 주제 아래 각 책들에서 선별하여 엮은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방법으로 루이스의 글을 띄엄띄엄 보는 것은 조금 조심스럽다는 입장이지만, 읽고 나니 많은 책들에서 이렇게 한 주제 아래 책들의 부분, 부분들의 집합을 만들어 낸 결과물이 놀랍다고 느껴진다. 오히려 정교하게도 원래 한 책인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낼 정도였다. 루이스가 원래 서술 방식이 나름의 독특함이 있어서 그 서술 방식의 일관성이 빚어낸 놀라운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중요한 것은 변화 자체의 성격이지 그 일이 벌어질 때의 감정 상태가 아니다.

즉 자신의 노력을 믿던 우리가 이제 변화되어,

스스로 해내려고 애쓰는 행위를 모두 단념하고 하나님께 맡기게 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신자의 자리로, C.S.루이스, 두란노, p.17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루이스의 책은 주로 근본을 다루었다. 근본을 다루기에 주로 변증하는 방식이 주였다.(내가 읽은 책들이 주로 그랬다) 하지만, 이 책은 회심한 신자의 관점에서 '신자의 자리'를 고민하는 이 책은 변증보다는 실제적인 믿는 사람의 삶과 고민을 다루고 있다는 면에서 한켠으로 루이스와 내가 한 동지라는 느낌이 들어 즐겁기도 했다. 또 한켠으로는 신자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나와 격차가 너무 차이가 나면 어쩌지 하는 염려도 들었다.


읽고 나서 보니, 어느 부분은 비슷하고, 어느 부분은 차이가 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차이는 신자로서 제대로 고민을 해 본 적이 있는 부분인가 아닌가의 문제이지 근본적인 차이는 없는 것 같았다. 루이스는 성년이 다 되어서 '예기치 못한 기쁨'에서 소개된 것처럼 회심했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회심기는 상당히 철학적인 물음 앞에서 답을 찾아가던 과정이었고, 변증의 과정이기도 했다. 아래 발췌된 것처럼 '내적 갈망의 대상'의 답을 찾아가던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기쁨의 대상을 찾아버린 것이었다.


“무엇이 내 갈망의 대상이냐?”라고만 묻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질문은 나를 경외의 땅으로 밀어넣었다.

나는 절대 고독 속에는 자아의 바깥으로 나가는 길, 즉 그 무언가와의 교류가 있는데,

그 무언가는 감각의 대상이나 우리의 생물학적 필요, 사회학적 필요, 상상의 산물, 마음상태와 동일시되기를 거부하면서,

자신이 순전히 객관적인 존재임을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무언가는 몸보다 훨씬 더 객관적인 존재이다. 왜냐하면 몸처럼 감각의 옷을 입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감각의 옷을 입지 않은 ‘타자’, 형상도 없고(우리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오만 가지 형상을 만들어 내서 절을 하지만)

무엇으로 규정되지도 않는 미지의 존재, 갈망의 대상이었다.

기치 못한 기쁨, C.S.루이스, 홍성사, p.(어디쯤)


그 물음의 답을 찾아헤맸던 사람이었기에 그 과정에서 만난 많은 질문에 답을 이미 찾아 놓은 듯 했다. 이렇듯 정답인 것처럼, 루이스의 책은 늘 단호하다. 하지만, 진지한 고민 앞에 서면 그의 대답이 거의 정답에 가깝게 느껴진다. 이 책에서 소개된 신자로서의 고민과 질문도 마찬가지다. 루이스 만의 정답이지만, 함께 성장해 가는 신자로서의 정답이기도 하고, 나에게 있어 정답이기도 하다.


순전한 기독교 4장을 읽다가 퍼뜩 깨달음을 얻은 순간이 지금도 기억난다.

루이스의 설명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이 될 때

우리는 우리를 온전하게 빚으시려는 하나님의 작업에 합류한 것이며,

과정에 수반되는 고통을 거부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사랑이 미진하여

언제라도 우리를 포기하실 거라고 주장하는 샘이다. ... '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단번에 이루어지는 사건이 아니라 기나긴 여정이며,

나와 가장 가깝기에 내 부족한 모습에 가장 큰 영향을 입을 사람들이

곧 이 성화 과정에서 하나님이 주로 쓰실 교실임을 일깨워주었다.

신자의 자리로, C.S.루이스, 두란노, 엮은이의 글 중에서, p.10


변증의 글도 포함되어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는 루이스의 독보적인 특기 아닌가! 그리고 그가 쓴 상당의 책이 변증서라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특히 이성, 자기부인, 기독교의 불변성, 위선, 이분법을 다루는 장에서는 그의 주특기가 많이 드러난다. 신자로서의 삶을 위해 이렇게까지 고민의 과정을 거쳐왔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서두에서 루이스는 독자에게 신앙인으로서의 여정 중에 어디쯤 와 있는지를 점검하게 만든다. 이 영원한 우주 속에서 티끌에 지나지 짧은 시기를 살아가는 신앙인에게 그 시기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묻는다. 이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해야 신자의 고민에 합류할 수 있다. 질문의 핵심은 우리를 이끌어 이 세상이 아닌 세상 너머의 그 곳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제대로 의탁하고 있는지에 질문이다. 대답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변화 자체의 성격이지 그 일이 벌어질 때의 감정 상태가 아니다.

즉 자신의 노력을 믿던 우리가 이제 변화되어,

스스로 해내려고 애쓰는 행위를 모두 단념하고 하나님께 맡기게 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p.17)

...

처음에는 도덕과 의무와 규율과 죄와 덕이 기독교의 관건인 것 같지만,

기독교는 우리를 이 모두에서 이끌어 내 그 너머의 세계로 데려간다.(p.22)

신자의 자리로, C.S.루이스, 두란노, p.17~22


질문에 대답한 독자는 이제 루이스가 안내하는 신앙인으로서의 고민에 대해 함께 철학하게 된다. 철학하게 된다는 표현은 어렵게 들리지만, 생각하며 읽게 된다는 관점에서 보아도 그렇고, 루이스의 해설을 읽어보아도 저 표현이 자연스럽다. 어렵게 느껴질수도 있지만, 그 고민들은 정말! 실제적이다. 집에서 나는어떤가? 문제의 인간이 주변에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용서를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 과학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사랑하지 않는데 사랑해야 하는가? 삶의 현장에서는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이다.


역시, 루이스와 함께하는 우리의 고민, 우리의 철학은 실용적이다.


15개의 장을 통해서 루이스는 명쾌한 답을 제안하거나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의 해법을 제안하지는 않는다. 대신 독자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던져주고, 함께 고민한다고 표현한 것처럼 그의 고민 내용을 들려준다. 그러다보면 나의 답, 나의 해법을 찾아갈 수 있다.


믿음을 공격하는 것은 당신의 오감과 상상이다.

신약에 나와 있듯이 이는 '믿음과 이성의 싸움'이 아니라,'믿음과 보는 것의 싸움'이다.

듣거나 보기에 너무 위험하지만 않으면 우리는 명백히 위험한 일도 능히 감당해 낸다.

대개 우리의 진짜 문제는 명백히 안전한 일이 무서워 보일 때다.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신앙이 흔들릴 때는 진정한 논증으로 공격당할 때라기보다

신앙에 개연성이 없어 보일 때다.

즉 온 세상이 그런 멍한 표정을 지을 때다.

이 표정은 실재보다 우리의 감정 및 인식 상태에 대해 훨씬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신자의 자리로, C.S.루이스, 두란노, p.73


그런데 특이할만한 것은 이 책을 관통하는 루이스의 제안 사항이 있는데 바로 '하나님의 관점'이다. 예를 들어 3장의 '품기 힘든 문제적 그 인간이 있는가?'에서는 그 인간은 바로 나이므로 하나님의 관점에서 해석해 보라고 제안하고, 4장의 '재림의 복음, 나의 오늘을 어떻게 바꾸는가?'에서는 하나님의 마지막 날에 초점이 있으므로 모든 것을 그 초점으로 보고 어디에서 무얼하고 있었는지 정직하게 대답할 것을 루이스는 제안한다. 또한 5장 '줄기찬 일상 속 도발, 용서를 계속실천하려면?'에서는 용서하는 삶은 하나님을 빗대어 이웃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지를 고민하라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루이스는 '하나님의 관점'을 매 장마다 제안하며 나의 관점을 조정할 것을 요청한다.


자비란 '기독교적 의미의 사랑'을 뜻한다.

그런데 기독교적 의미의 사랑은감정이 아니다.

기분이 아니라 의지의 상태다.

누구나 본인을 향해서는 그런 의지가 본능적으로 있으나

타인을 대할 때는 이를 학습해야 한다.

신자의 자리로, C.S.루이스, 두란노, p.136


루이스의 제안에 동의했다면, 우리는 위 인용구의 예처럼 루이스는 신자에게 의지를 가지고 실천할 것을 강하게 말하고 있다는 것에도 동의해야한다. 신자의 삶은 단순히 고민하고, 사유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실천하는 삶을 살기 위한 부단한 노력의 한 가운데 믿음이 있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있다는 사실을 은연 중에 알려준다. 우리는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부단한 노력으로 살아가야 하는 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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