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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 만난 동성애
슘 프로젝트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수능이 끝나고 갑자기 할 일이 모두 없어져버린 고3의 반은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못할 이야기가 없던 그때,
소란스럽던 한 친구가 갑자기 조심스레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있잖아, 5반에 J하고 8반에 D하고 사귄대. 레즈비언이래. 아, 더러워.
시니컬하게 앉아서 그저 말하던 그 친구를 쳐다만 보고 있던 나의 첫 반응은, '그게 왜 더럽지?'였다.
물론 놀라웠으나, 그 아이들이 야자 시간에 종종 어두운 주차장이랄지,
층과 층 사이의 계단에서랄지, 혹은 학교 담 아래서랄지 자주 마주쳤기 때문에
그제야 나는 그네들의 행동이 이해가 갔다. 아, 둘이 사귀는 사이였구나.
여자와 여자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내 사랑의 개념이 그들의 그런 노골적인 행동에도
전혀 그들을 의심하게 만들지 않았다는 건 일단 넘기고,
친구들에게 두루 신임을 얻어 학생회 활동을 왕성히 해왔던 그 아이들이
한순간에 기피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 나는 못내 이해하기 힘들었다.
여전히 그 아이들은 그 아이들인데…….
그 이후 학교가 있는 지역에 단 하나밖에 없는 영화관에서 그 둘을 마주쳤다.
색이 있는 써클렌즈에 칼머리, 펑퍼짐한 바지, 꼭 잡은 두 손.
나는 오랜만에 보는 그들에게 안녕~이라고 인사하곤 유유히 지나쳐갔다.
그런데 난 다른 것도 봤다.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잡았던 두 손을 황급히 놓곤 그 자리에 꼿꼿이 굳어버렸던 것을.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하는 나를 고개까지 돌려봤었다.
(그들의 태도에 도리어 내가 놀라 나도 고개를 돌려 그들을 봤었다.)
나는 오랫동안 학교의 모든 아이들이 그 아이들을 더럽다고 이야기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그런데 최근 내 기억이 전복됐다.
학교의 모든 아이들이 그 아이들을 더럽다고 이야기했다는 건 내 기억의 오류다.
처음 내가 그 아이들이 사귄다는 것을 들었던 그 자리에서,
사실 그 아이들에게 더럽다고 했던 건
그 이야기를 전했던 그 친구, 단 한 명뿐이었다.
나머지는 그저 듣고 있었다. 나처럼.
수능이 끝난 고3들에겐 모든 것이 화젯거리고 모든 것이 빨리 사라진다.
그 아이들의 기억 속엔 그날들의 일이 어떻게 되어 있을까.
학교의 모든 아이들이 자기에게 더럽다고 손가락질 한 것으로 되어 있을까.
그저 하루에 듣는 수많은 가십거리처럼 듣고 잊어버렸던 나 같은 학생들조차
자신들을 늘 더럽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여겼던 것은 아닐까.
'차별없는세상을위한기독인연대' 활동을 하면서
기독교라면 덮어놓고 싫어하는 성소수자들이 많다는 걸 느꼈다.
(내 눈으로 그들을 직접 대면하고 이야기를 나눴던 것은 아니다.)
사실 난 그런 태도가 동성애자라면 덮어놓고 호모포비아를 드러내는 보수 기독교인들과
무엇이 다른가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한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호모포비아는 아니지만,
그때의 나처럼 그런 이야기를 듣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면
그런 이야기를 나쁘게 전하는, 그렇게 생각하는 기독교인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런 것이 아니다, 라고 당당하게 외칠 사람이 필요하다.
(어… 근데 나는 아닌 것 같은데… 뭐, 기회가 닿으면 하겠다. ……
이 말들, 어디서 내가 했던 것 같은데, 데자뷰 현상인가?)
한동안 내 입장에선 그다지 파격적이지 않은 <하느님과 만난 동성애>를 놓고
난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혹은 평가(!)해야할지 고민했다.
<하느님과 만난 동성애>는 그랬다.
모두들 동성애에 대해서 '아닌 것 같은데' 하면서 생각만 하고 있을 때
똑바로 서서 목소리를 낸 것이다. 아니라고.
그런데 세상은 수능이 끝난 고3들의 반을 넓혀놓은 것에 불과한 것인지,
모든 것을 수다거리로 전락시키고 금세 잊어버린다.
내가 <하느님과 만난 동성애>를 읽고 꼭 감상문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곤 금세 잊어버린 것처럼.
꼭 이 책을 한 권 더 사서 내 친구에게 선물하겠다고 마음먹고는 금세 잊어버린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