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6강 - 생애 첫 연기 수업
리처드 볼레스라프스키 지음, 전일성.김혜민 옮김 / 불란서책방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두근두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프카, 카프카 - 프란츠 카프카 타계 100주기 기념
김태환 외 지음 / 나남출판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과 나를 바라보게 해주는 문장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숀 탠, 한 예술가의 스케치
숀 탠 지음, 김경연 옮김 / 풀빛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거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보낸 반짝이는 선물 같은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평신도, 교회를 세우다 - 평신도 중심으로 본 한국 기독교사
김일환 지음 / 밥북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사관 배웠을 충격이 상당했다.

사건 하나에는 가지 사실만 있을 거라고 막연히 믿고 있었는데

누가 언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사건 하나는 설명 여럿을 갖게 된다니.

학교 다닐 배운 역사가 전부인 알았는데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결단과 행동만이 역사에 남는 것인줄 알았는데.

사관 있다는 마치 그동안 배운 역사한테 배신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책에서도 비슷한 기분을 맛봤다.

이유는 없지만 나는 막연히 선교사들이 한반도에 들어온 이후에야 기독교가 퍼지기 시작했고 

널리 퍼진 한참 이후라고 믿고 있었다.

( 무식은 논외로 하고 싶다.)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한반도에는 기독교인들이 있었다고 한다.

상인들이었다.

이후에도 기독교를 받아들인 사람들 중엔 양반도 있었지만 백정과 여성들도 많았다 한다.

지금에야 표면적으론 모두가 평등해서 선뜻 상상할 없지만

양반들이 백정들과 함께 예배드릴 없다고 예배당까지 나눈 적도 있다고 하니 

당시 신분이란 예수님도 단번에 타파할 없는 그런 것이었나 보다.

하지만 분명 기독교는 백정과 여성에게는 복음이었다.

사람이 되고 세상으로 나아갈 있게 하는 복음.


이야기는 흐르고 흘러 독립운동까지 나아간다.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소리로 고백하고 밤이 깊도록 참회했다는 대부흥의 뜨거움이 

결국 독립운동까지 번진 모양이다.

(안창호 선생님도 기독교인이었다니!)

일제는 기독교가 널리 퍼진 지역 주민들을 눈여겨보다 사건까지 조작해서 대거 잡아들일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책은 이쯤에서 이야기를 접는다.


마지막 장에서 앞뒤로 책을 뒤졌다.

뭔가 이야기가 있어야 같았다.


만약 옛날의 기독교가

기독교를 종교로 하는 사람들에게 우월감을 심어줬다거나

은근 돈을 모았다거나

시대의 흐름에 관심이 없었다거나

(있었어도 자기 밥그릇만 생각했다거나)

그랬다면 두번째 배신감은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신분제의 밑바닥에서 사람으로 취급받지 않던 사람들을 사람으로 끌어올리고,

대부흥의 열기 속에서 기꺼이 삶의 곪아터진 부분을 드러내고

목숨도 아깝지 않은 시대의 고난에 맞서싸우도록 했던 기독교가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지금은 무엇을 하는지,

혹시 2권에 나오는 아닌지 괜시리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느님과 만난 동성애
슘 프로젝트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수능이 끝나고 갑자기 할 일이 모두 없어져버린 고3의 반은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못할 이야기가 없던 그때,

소란스럽던 한 친구가 갑자기 조심스레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있잖아, 5반에 J하고 8반에 D하고 사귄대. 레즈비언이래. 아, 더러워.

 

시니컬하게 앉아서 그저 말하던 그 친구를 쳐다만 보고 있던 나의 첫 반응은, '그게 왜 더럽지?'였다.

물론 놀라웠으나, 그 아이들이 야자 시간에 종종 어두운 주차장이랄지,

층과 층 사이의 계단에서랄지, 혹은 학교 담 아래서랄지 자주 마주쳤기 때문에

그제야 나는 그네들의 행동이 이해가 갔다. 아, 둘이 사귀는 사이였구나.

여자와 여자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내 사랑의 개념이 그들의 그런 노골적인 행동에도

전혀 그들을 의심하게 만들지 않았다는 건 일단 넘기고,

친구들에게 두루 신임을 얻어 학생회 활동을 왕성히 해왔던 그 아이들이

한순간에 기피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 나는 못내 이해하기 힘들었다.

여전히 그 아이들은 그 아이들인데…….

 

그 이후 학교가 있는 지역에 단 하나밖에 없는 영화관에서 그 둘을 마주쳤다.

색이 있는 써클렌즈에 칼머리, 펑퍼짐한 바지, 꼭 잡은 두 손.

나는 오랜만에 보는 그들에게 안녕~이라고 인사하곤 유유히 지나쳐갔다.

그런데 난 다른 것도 봤다.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잡았던 두 손을 황급히 놓곤 그 자리에 꼿꼿이 굳어버렸던 것을.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하는 나를 고개까지 돌려봤었다.

(그들의 태도에 도리어 내가 놀라 나도 고개를 돌려 그들을 봤었다.)

나는 오랫동안 학교의 모든 아이들이 그 아이들을 더럽다고 이야기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그런데 최근 내 기억이 전복됐다.

학교의 모든 아이들이 그 아이들을 더럽다고 이야기했다는 건 내 기억의 오류다.

처음 내가 그 아이들이 사귄다는 것을 들었던 그 자리에서,

사실 그 아이들에게 더럽다고 했던 건

그 이야기를 전했던 그 친구, 단 한 명뿐이었다.

나머지는 그저 듣고 있었다. 나처럼.

수능이 끝난 고3들에겐 모든 것이 화젯거리고 모든 것이 빨리 사라진다.

 

그 아이들의 기억 속엔 그날들의 일이 어떻게 되어 있을까.

학교의 모든 아이들이 자기에게 더럽다고 손가락질 한 것으로 되어 있을까.

그저 하루에 듣는 수많은 가십거리처럼 듣고 잊어버렸던 나 같은 학생들조차

자신들을 늘 더럽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여겼던 것은 아닐까.


 
'차별없는세상을위한기독인연대' 활동을 하면서 

기독교라면 덮어놓고 싫어하는 성소수자들이 많다는 걸 느꼈다.
 

(내 눈으로 그들을 직접 대면하고 이야기를 나눴던 것은 아니다.)

사실 난 그런 태도가 동성애자라면 덮어놓고 호모포비아를 드러내는 보수 기독교인들과

무엇이 다른가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한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호모포비아는 아니지만,

그때의 나처럼 그런 이야기를 듣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면

그런 이야기를 나쁘게 전하는, 그렇게 생각하는 기독교인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런 것이 아니다, 라고 당당하게 외칠 사람이 필요하다.

(어… 근데 나는 아닌 것 같은데… 뭐, 기회가 닿으면 하겠다. ……

이 말들, 어디서 내가 했던 것 같은데, 데자뷰 현상인가?)


 

한동안 내 입장에선 그다지 파격적이지 않은 <하느님과 만난 동성애>를 놓고

난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혹은 평가(!)해야할지 고민했다.

<하느님과 만난 동성애>는 그랬다.

모두들 동성애에 대해서 '아닌 것 같은데' 하면서 생각만 하고 있을 때

똑바로 서서 목소리를 낸 것이다. 아니라고.

 

그런데 세상은 수능이 끝난 고3들의 반을 넓혀놓은 것에 불과한 것인지,

모든 것을 수다거리로 전락시키고 금세 잊어버린다.

내가 <하느님과 만난 동성애>를 읽고 꼭 감상문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곤 금세 잊어버린 것처럼.

꼭 이 책을 한 권 더 사서 내 친구에게 선물하겠다고 마음먹고는 금세 잊어버린 것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