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평신도, 교회를 세우다 - 평신도 중심으로 본 한국 기독교사
김일환 지음 / 밥북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사관’을 배웠을 때 충격이 상당했다.
사건 하나에는 한 가지 사실만 있을 거라고 막연히 믿고 있었는데,
누가 언제 어떻게 왜 보느냐에 따라 사건 하나는 설명 여럿을 갖게 된다니.
학교 다닐 때 배운 역사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결단과 행동만이 역사에 남는 것인줄 알았는데.
‘사관’이 있다는 건 마치 그동안 배운 역사한테 배신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이 책에서도 비슷한 기분을 맛봤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막연히 선교사들이 한반도에 들어온 이후에야 기독교가 퍼지기 시작했고
널리 퍼진 건 한참 이후라고 믿고 있었다.
(내 무식은 논외로 하고 싶다.)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한반도에는 기독교인들이 있었다고 한다.
상인들이었다.
이후에도 기독교를 받아들인 사람들 중엔 양반도 있었지만 백정과 여성들도 많았다 한다.
지금에야 표면적으론 모두가 평등해서 선뜻 상상할 순 없지만,
양반들이 백정들과 함께 예배드릴 수 없다고 예배당까지 나눈 적도 있다고 하니
당시 신분이란 예수님도 단번에 타파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나 보다.
하지만 분명 기독교는 백정과 여성에게는 복음이었다.
사람이 되고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복음.
이야기는 흐르고 흘러 독립운동까지 나아간다.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큰 소리로 고백하고 밤이 깊도록 참회했다는 대부흥의 뜨거움이
결국 독립운동까지 번진 모양이다.
(안창호 선생님도 기독교인이었다니!)
일제는 기독교가 널리 퍼진 지역 주민들을 눈여겨보다 사건까지 조작해서 대거 잡아들일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책은 이쯤에서 이야기를 접는다.
난 맨 마지막 장에서 앞뒤로 책을 뒤졌다.
뭔가 이야기가 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만약 옛날의 기독교가
기독교를 종교로 하는 사람들에게 우월감을 심어줬다거나
은근 돈을 모았다거나
시대의 흐름에 관심이 없었다거나
(있었어도 자기 밥그릇만 생각했다거나)
뭐 그랬다면 두번째 배신감은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신분제의 밑바닥에서 사람으로 취급받지 않던 사람들을 사람으로 끌어올리고,
대부흥의 열기 속에서 기꺼이 삶의 곪아터진 부분을 드러내고
목숨도 아깝지 않은 듯 시대의 고난에 맞서싸우도록 했던 기독교가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지금은 무엇을 하는지,
혹시 2권에 나오는 건 아닌지 괜시리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