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옮김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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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눈으로 담은 나무들의 모습은 나에게 몰랐던 세계를 열어주었다. 그것이 뭔가 나 역시 나무를 사랑하고, 또 자연을 찬탄하게 되는 그런 세계는 안타깝게도 아니지만, 물론 그때도 지금도 인간에 의해 망가져 버린 각종 자연의 모습에 분노하고 화가 나면서도 또 그다지 변하지 않는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을 다시금 느끼긴 했지만, 사랑하는 자의 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눈 앞에 보이는 저 나무에 대해 얼마나 많은 지식과 어휘를 가지고 설명하고 묘사하고 나타내고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을 글로 옮길 수 있을까? 책을 읽다 보면 나는 생각도 못했던 아름다움을 읽을 수 있다. 나는 헤세가 쓴 함박꽃나무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정말 아름다운 꽃을 가진 나무였다. 여름 목련이라고도 한다고 하는데, 내가 생각한 목련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접하지 않았으면 나는 그냥 와 예쁘다.라고 생각하고 지나쳤을 것 같다. 이렇게 섬세하게 이 나무에 대해 묘사하고 그리고 이를 통해 삶의 통찰을 드러낼 수 있는 것, 그건 헤세여서 그리고 그가 훌륭한 작가여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헤세가 정말로 나무들을 숲을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자연을 사랑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느꼈다.

블로그 후기 중 

hattosis.tistory.com/91 


나무는 언제나 내 마음을 파고드는 최고의 설교자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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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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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북스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인생 책이 또 하나 나온 기분이다. 작가님의 이전 소설 [오베라는 남자]도 읽으면서 와 정말 글을 맛깔나게 쓰시는 분이구나 했는데 (심지어, 그냥 블로그에 올리던 처녀작이었다.) 이 책은 개인적으로 훨씬 더 좋았다.


프레드릭 배크만 작가님의 [불안한 사람들]



단 한페이지도 그냥 넘기지 못하겠어서 어찌나 많은 곳에 줄을 쳐가며 읽었는지 반도 안 읽었는데, 100장짜리 인덱스 스티커 한통을 다 썼다. (줄 친곳에 인덱스 스티커로 붙인다. 모든 줄은 연필로 긋지만, 줄을 그은 이유(의미)를 인덱스 스티커로 구분한다.)


그것도 소설책에 이렇게 만이 밑줄을 그으면서 읽은건 사실상 처음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작가님께서 그만큼 많은 말을 담으셨고, 솔직히 좀 많이 직접적으로 담으셨는데, 그만큼 정신이 없기도 하다.


예를 들면 이런식이다.


당연히 짐은 경험이 있는 척하려고 했다. 원래 아버지들은 아들에게 뭘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는 데다 더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못하게 되는 순간 우리가 아이들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우리를 책임지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헛기침을 하고 고개를 돌리며 휴대전화를 꺼냈다.

[불안한 사람들] - 프레드릭 배크만 p.85


나는 좋았다. 소설의 내용을 방해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책을 다 읽고 곰곰이 곱씹어 보면서 음, 작가님이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으셨구나, 이렇게 소설 속에 녹여내는 것도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라고 생각했을 뿐, 다만 오! 맞아!! 하면서 줄을 긋느라 책 읽는 시간이 평소의 두배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사실 굉장히 단순하다. 그리고 그 결말도 어떻게 생각하면 뻔하다. 근데 어떤 '반전'은 솔직히 정말로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어서 책의 앞부분을 다시 찾아가 읽기도 했다. 세상에! 편견을 가진 나 자신!! 반성해!!!


이 책은 어떤 은행강도의 인질극이 중심인데, 심지어 현금없이 운영이 되는 은행을 털러 갔다가 의도치 않게 옆에 있는 건물에서 인질극을 벌이게 된 은행강도와, 인질들 그리고 그 사건을 담당하게 된 경찰 부자의 이야기이다. 전지적 작가 시점의 작가 개입이 매우 많은 소설인 것도 이 소설을 정신없게 만들지만, 등장인물이 굉장히 많고, 그들의 이야기가 하나하나 다루어지는 데다가, 동시에 인질극이 진행되는 동안의 경찰 부자의 상황과 그리고 인질극이 벌어진 아파트의 내부의 상황에 더하여 모든 사건이 끝난 후 경찰서에서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왔다 갔다 심지어 10년 전의 어떤 이야기도 나오니 원 세상에 그렇게 정신이 없을 수가 없다.


하지만 솔직히 이렇게 후기를 쓰려니 정신이 없는데, 읽는 동안에는 그런느낌을 개인적으로는 받지 않았다. 그냥 즐겁게 읽었다. 하지만, 조금 떨어져서 생각해보니, 어쩌면 호불호가 갈릴 부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생각을 해 보면 부동산정책이나 은행 그리고 전체적인 경제 시스템을 좀 신랄하게 비판하는 책인 것 같지만, 그 속을 드려다 보면, 모든 등장인물의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너무 공감이 되고 마음에 와닿았다. 마음이 아픈 부분이 정말 많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특히 10년 전 경찰관중 아들 쪽인 '야크'가 만난 다리 위에 선 남자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마음이 무너졌다. 책을 덮고 나서도 어디선가 벌어지는 일일 것 같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런데, 사실 작가님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를 생각하면 의외로 답은 쉽게 나온다. 아니 작가님이 사실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한다.


이 책은 바보들의 이야기라고...


그리고 우리는 모두 아닌척 하는 어른인 척하는 바보들이라고.


이건 여러가지에 대한 이야기지만 무엇보다 바보들에 대한 이야기다. 따라서 남들을 바보로 단정하기는 쉽지만 인간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바보같이 어려운 일인지 잊어버린 사람이 아닌 이상, 남들을 바보로 단정하지는 못한다는 점을 미리 짚고 넘어가는 편이 좋겠다.

[불안한 사람들] - 프레드릭 배크만 p.15


이야기가 시작되는 첫번째 페이지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건 여러 가지에 대한 이야기지만 무엇보다 바보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책을 덮으면 아니, 읽다 보면 알게 된다. 아 이 책은 나에 대한 이야기구나. 하는...


사실 인간은 모두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 그건 인질이 된 사람중 사라를 보면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데, 작가님께서 그녀 캐릭터를 만드는데 굉장히 공을 많이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녀는 사실 소설의 사건을 관통하는 줄거리를 생각하면, 사실 엑스트라다, (물론 주조연급이겠지만) 사실 이 사건의 주인공은 바로 이 은행강도니까.


사실, 모든 인생은 평범하고 동시에 평범하지 않다. 이 책에 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도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야기 일 수 있지만, 또 굉장히 특별한 이야기 일 수 있다. 그들의 생각하는 방식, 그리고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들이 굉장히 특별해 보일지 몰라도 또 굉장히 평범하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뭐야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이런 사람이 다 있어? 하다가 결국은 아, 나와 내 이웃의 이야기구나? 하게 되는 거다.


그리고 이 작가님은 정말 이런 쪽으로는 특출나신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슬프기만 하거나 처음부터 끝까지 웃기기만 하는 그런 이야기는 없다 만약 있더라도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다. 그건 우리네 삶이 그렇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쁘기만 한 사람이 없고, 착하기만 한 사람이 없다. 완벽한 사람은 더더욱 없다.


이 책은 그런 부분들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었다. 유쾌하게 하지만 한구석으로는 굉장히 찡~ 하게 웃음과 안타까움이 범벅이 되어 책을 읽는 내내 온갖 감정에 휩싸였다.


나는 이 책을 읽다가 이렇게 메모를 적어놨는데, 지금은 어디쯤에서 이런 메모를 적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이 책을 읽는 동시에 [고통 없는 사회]를 읽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 우리 모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서로가 고통을 참는데 면역이 없다보니 금방 지쳐버린다. 그래서 상대의 사정을 생각하기 전에 나의 나쁜 기분에 쉽게 휩쓸린다. 조금 아주 조금만 인내하고 물러서서 기다리면 이런 데서 오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머리속이 굉장히 바빴다. 그래서 너무나도 좋았고, 개인적으로는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 아마 자주 입에 언급하고, 몇 번을 다시 읽고, 또 여기저기 추천할 것 같다. 사실, 제대로 된 후기는 다시 천천히 읽어보고 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계속 생각하는데, 나는 책이 좋으면 너무 좋았어요!!! 하느라고 제대로 된 서평을 쓰지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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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후, 오늘 - 세계여행 후 시작된 일상 이야기
임지혜 지음 / 하모니북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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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으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책과 함께 온 엽서와 손편지는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여행을 잘 다니지 않지만, 스쳐 지나간 곳이라도 꼭 포스트 카드를 사서 모으는데, 가보지 못한 곳의 포스트 카드를 받아보고, 괜히 마음이 설레었다. 언젠가 이 도시에 나도 가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 많은 여행지 중에서 이 사진의 장소가 내 손에 들어온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 

 

여행은 그런 역할을 한다.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러나 막상 떠나기는 쉽지 않은 데다가, 여행을 다녀온 후 결국 추억이 되어버리는 그 간극이 때로는 너무나도 버겁다. 그럼에도 역시 여행은 가슴을 뛰게 만든다. 언젠가 어딘가 누구나 마음에 그리는 장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아름다운'추억이 된다. 떠나면서 두 번 다시 오지 않겠다 외쳤던 곳마저도 시간이 지난 뒤에 돌이켜 보면, 다시 한번 가고 싶은 여행지가 되는 것이다. 

 

임지혜 작가님의 [여행 후, 오늘]

 

 

 

여행을 기록한 책은 참으로 많지만, 길고 긴 여행 후의 삶을 그리는 에세이는, 글쎄 별로 본 기억이 없다. 작가님은 그 부분에 주력해서 책을 쓰셨다. 그리고 첫 페이지는 긴 여행 후 집으로 돌아온 작가님의 모습으로 채웠다. '여행의 완성은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라고 하신 말씀이 참으로 와 닿았다. 그래, 여행의 완성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고, 그 말을 나는 여행은 돌아올 곳이 있어야 의미가 있다는 말로 해석했다.

 

그리고, 이렇게 여행을 '추억'할 수 있는 것도 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사실 책은 온전히 여행 후의 일상을 그린 책은 아니다. 당연히 여행지의 이야기가 더욱 많았다. 그러나 확실히 퇴사를 하고, 돌아온 후 작가님의 삶,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던 것 같다.)를 그리며, 결국 현실로 그리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는 느린 속도를 보여주었다. 폴란드에 3년을 살다 온 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다녀와도 당연히 괜찮을 줄 알았는데, 다녀와서 비어져 버린 그 3년이라는 시간을 나는 아직도 메꾸지 못하고 있다. 

 

대신 좋아하는 것 그리고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씩 하고 있는데, 그건 작가님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여행 라디오라는 팟캐스트를 벌써 7년째 운영을 하고, 이렇게 책도 내셨다. 아마 이전의 회사원 생활과는 완전히 다른 삶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퇴사를 하고, 여행을 떠나라고 권장하는 듯 자신의 여행을 그리는 책들을 많이 본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그런 사람들을 '용감한'사람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그 이후를 이야기해주는 책은 글쎄, 내 기억에는 없다. 내가 눈이 갔던 이야기는 어떤 회사는 이런 사람에게 무슨 일이든 맡겨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을 하지만, 또 어떤 회사는 '그리고 또 훌쩍 떠나버리겠지?'라고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했다. 그렇지만, 그 전에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이렇게, 작가님은 기나긴 여행 후, 작가님의 '오늘'을 만들 기 위한 노력을 책 앞머리에 쓰셨다. 물론 이 책의 내용만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없지만, 누군가에게 그래! 떠나봐!!라고 쉽게 말하기는 분명 어려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무책임한 책들 사이에서 진짜를 보여주는 책. 

 

그러나, 두 번째 장부터는 역시 작가님의 여행기를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여행기도 그다지 엄청나게 호화롭다던가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게 만드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쩌면 고생기 같은 느낌도 났다. 이상한 남자들에게 눈이 가린 채 소매치기를 당했다는 이야기나, 버스를 타고 가다가 코끼리 떼 때문에 갑자기 버스가 멈춰 버린 이야기들은 누군가에겐 가슴이 설레는 모험기가 될 수도 있겠지마는 겁이 많은 나에게는 너무나도 무서운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였다. 

 

물론 예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들도 많지만 어째서인지 책을 덮었을 때 나는 이런 부분들만 생각이 났다. 

 

그리고 여행 후, 지금은 이런 이야기들 조차도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그러니까 여행 후, 이기 때문에 이렇게 추억으로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행을 다녀온 후 '후천성 여행 중독자'가 된 작가님의 '여행에 대한 생각'까지.... 책의 구성이 정말 잘 되어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 역시 '여행'이라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책을 읽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분명 다를 것이다. 작가님도 미술관에 갔을 때, 교과서에서 보던 그림들을 실제로 봤을 때 느낌이 달랐다고 말을 하지 않았던가 

 

수많은 책을 통해 나는 여행을 읽을 수 있지만, 역시 여행은 경험이고, 그리고 추억이 되어야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도, 그리고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좋은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긴 여행을 고민하고 준비하는 사람도 읽어보면, 무엇을 생각하고, 또 조심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읽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었다. 

 

여행 후, 결국은 오늘을 맞이할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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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트렁크 팬티를 입는다 - 까탈스런 소설가의 탈코르셋 실천기 삐(BB) 시리즈
최정화 지음 / 니들북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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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적, 그러니까 중학생 때 나는 학교에서 실행한 <남녀평등 글짓기>에 낼 글을 썼다. 주제는 '왜 여자들은 자기 편할 때만 '남녀평등'을 주장하고, 체육시간이나, 뭔가 귀찮고 힘든 일을 할 때에는 '여성/남성'을 내세우는가?'였지만, 글짓기 취지에 안 맞다는 이유로 입상을 못했다. 뭐 입상을 하고 안 하고는 중요하지 않지만, 그때도 지금도 '평등'이란 단어를 자기 입맛에 맞게 고쳐 쓰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래서 처음에, 이 책을 보고 조금 난감했다. '탈 코르셋'이라는 반응에 조금 예민해져서였다. 잘못된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 있기 때문에, 이 책도 그런 부류의 책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책을 펼치지 못하고 한동안 고민했었다. 그러나,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이건 그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자유'에 관한 책이었다. 

 

[나는 트렁크 팬티를 입는다] 최정화 작가님

 

 

 

 예를 들어, 처음엔 역시 브래지어이다. 현재 남아있는 '코르셋'하면 역시 브래지어, 가슴을 조이는 이 브래지어를 하면 나는 아무리 내 가슴둘레에 맞추거나, 편하다고 소문이 난 것을 입어도 어김없이 체한다. 요즘 운동을 하면서 조금 조이는 브라탑을 입곤 하는데, 그럴 때면 마스크와 함께 내 숨을 조여 어지러울 정도로 산소부족을 경험하곤 한다. 작가님은 심지어, 요가 수업을 할 때, 이 브래지어를 벗어버리셨다. 심지어 요가를 가르쳐 주시는 분이 남성 분이신데,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녀가 브라탑을 하지 않고, 요가를 하더라도, 다들 각자 본인의 운동을 하는데에 (요가니까 수련이라고 해야 하나?) 바빠서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확실히 도전하기에는 어려운 영역인 것 같다. 그리고 솔직히 이 부분은 읽으면서 음 티를 안 냈을 뿐 한 번쯤은 다들 눈길을 보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나는 집에 있는 평상시에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살다가 밖에 나갈 때도 만약 옷이 충분히 두껍다면 굳이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운동을 할 때에는 꼭! 스포츠 브라 또는 브라탑을 하는데, (숨이 막히고 산소가 부족하게 느껴질지라도, 일단 내 덩치에 안 조이는 걸 찾기가 힘들어서 그렇다.) 그건 운동하기에 가슴이 걸리적거리고 불편해서다. 그러니까, 결국 브래지어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는 나의 선택의 문제인 건데, 이 선택은, 이 정말 개인적이기 그지없는 선택임에도 사회적인 시선이 따라붙는다. 작가님은 이게 씁쓸하다고 하셨다. 

 

 화사와 설리가 생각이 났다. 둘 다 '노브라'패션으로 사람들의 구설수에 올랐었는데, 폴란드에 살 때 많은 사람들이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밖을 돌아다니거나 일을 하기도 했다. 나는 처음에는 너무나도 놀랐는데, 나중에는 별로 신경을 안 쓰게 되었다. 나뿐 아니라 그 누구도 그걸 가지고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이 문제는 확실히 인식의 차이이고, 이 인식은 바꿔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하긴 했지만, 이 책은 사회적인 문제점을 꼬집고 비판하는 책이 아니라, 작가님이 세상에 시선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화장이 점점 얇아지고, 결국은 하지 않고, 또 예쁜 옷이 아니라 내 몸에 맞고 편한 옷을 찾게 된 과정들, 코 밑에 거뭇한 수염이나 겨드랑이, 또는 다리에 나있는 털들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 다른 사람의 시선에 휘둘리는 삶이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한 삶을 살아가는 과정과 용기를 보여주셨다. 

 

남성, 여성의 시선이 아니라 인간대 인간으로서 그저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것, 그리고 타인의 선택이 피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면 그 선택에 대해 무례하게 굴지 말 것, 너무나도 당연하고 단순한 일이지만, 이렇게 목소리를 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싸웠고, 지금도 싸워가고 있다. 남자와 여자를 나누자는 것도 아니고, 남자의 권리를 내놓으라고 외치는 것도 아닌 그저 자기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자유를 달라는 것. 

 

이 책은 그런 책이었다. 많은 생각을 했고, 가끔은 이거 너무 TMI인데? 했지만, 결국은 작가님의 솔직함과 유쾌함 그리고 용기에 박수를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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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레벨 업 - 제25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작(고학년) 창비아동문고 317
윤영주 지음, 안성호 그림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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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 어덜트, 어린이 도서들도 두루두루 좋아하는 편인데, 신선하다 싶은 책이 있어 읽어보게 되었다. 사실 게임 판타지
장르는 매우 좋아하는 편인데, 라이트 노벨류나 판타지
책이 아닌 영 어덜트 게다가 아동문학상 수상작인 책이어서 더 시선이 갔다.

확실히 좋은 책이었다. 대상을 탈 만 하다! 고 생각했다. 일단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인 게임, 게다가 가상현실 게임이라니 트렌드에 꼭 맞았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 아이들이 게임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잘 드러나있고, 그건 많은 아이들의 공감을 살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세계가 있고, 그들도 '생각'을 하고 산다. 보통 부모들이 '네가 뭘 알아?'라는 말로 아이들을 무시하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들도 생각을 하고, 각자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들도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세상을 배워간다. 그런데, 어른들은 아이들의 감정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울면 성가셔하고, 화를 내면 당황해하며 더 크게 화를 낸다. 아이들은 쉽게 존중받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존중받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아이들은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에게 점점 비밀을 만들게 된다. 

 

그래 놓고, 아이들에게 '왜 진작 말을 하지 않았느냐?'라고 나중에 일이 터지고 나면 되묻는 것은 잘못되었다. 그전에 생각해야지, 내가 아이가 마음을 툭 터놓을 수 있는 어른이었을까? 하는 생각. 그러나, 부모들에게 어른들에게 이것은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부모님의 부담스러운 기대 속에서 '슈피리어스쿨'에 들어가게 된 한 소년의 이야기이다. 그 학교에서 주인공은 학교에서 군림하고 있는 한 학생에게 자꾸만 돈을 주게 된다. 발단은 엄마가 사준 최신 홀로그램 북, 

"너 부자구나" 하고 다가온 이 아이는 계속해서 아이의 돈을 뺏는다. 그리고 그 액수는 점점 커진다. 그리고 집에 가서도 부모님은 '공부', '학교'에만 관심이 있을 뿐, (아이가 느끼기에) 그럼 당연히 현실이 지옥이 되고, 자신의 맘대로 할 수 있는 게임 속 세상이 천국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공감으로 시작한 이 이야기는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동시에 배움을 준다. 첫 번째 죽음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알려준다. 게임 속 세상과 현실 세계에서 괴리감을 느끼며 괴로워하고, 차라리 게임 속에서 살고 싶다.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아마, 게임중독에 빠질 거다.) 생각할 수많은 아이들에게 네가 살아있는 이 세상의 가치를 똑바로 보라 말해주기도 하고, 사랑하는 친구와 이별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잘 보내주는 법을 가르쳐 준다.

 

게임을 소재로 한 소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많은 아이들은 공감할 것이고, 어른들이 읽으면 아이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아이든 어른이든 책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겠지. 

 

참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읽은 건 3월 중순 즈음인데, 이렇게 후기를 쓰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왜냐하면 많은 이야기와 많은 생각할 거리가 담겨있는 책인 데다가 어린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하니,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 되어서... 아직 독후감 쓰는 실력이 많이 모자란가 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다. 나도 내가 하는 일로 내 세상을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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