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의 새 구두 알맹이 그림책 56
최은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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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늬바람2기 활동으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귀여운 꼬마 여름이는 새 구두를 주문했다. 내 발에 딱 맞는, 그리고 나만을 위한 구두를 받기 위해서는 무려 10일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할 터였다 어른들에게도 길게 느껴질 열흘의 시간은 하루하루를 온전히 느끼면서 살아갈 아이에게는 더 긴 시간일 것이다.

이 책은 여름이의 기다림의 시간을 그린 책이었다. “나는 잘 기다려요”라고 말하는 여름이를 보며 나는 자꾸만 새어 나오는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

여름이가 나열하는 작은 기다림들, 기다림은 길이만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여름이와 함께 살펴보니 두께도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선물을 급식을 그리고 화장실을 기다리는 것처럼 때로는 조급하게 때로는 편안하게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두 발에는 새 구두가 신겨져 있다. 특히 마지막에 구두를 받으러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지난 열흘보다 더 길었다는 것을 읽으면서 세상의 시간과 마음에 시간의 다름에 대해 생각했다. 기다림이라는 것을 정말 잘 표현한 부분이 아닐까 싶었다.

여름이의 기다림은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저씨는 잘 만들고, 나는 잘 기다려요"라는 말은 그냥 "나는 잘 기다려요"라는 말 보다 더 의미 있게 나에게 다가왔다. 기다림이 초조함이 되는 이유는 그 속에 담긴 불안 때문인 것 같다. 혹시 어떤 일이 조금이라도 틀어져서 더 늦어진다면, 받을 수 없어진다면, 나의 기다림에는 불안과 초조가 담겨있지만, 여름이의 기다림에는 설렘과 기쁨이 가득했다. 아저씨가 분명 자신의 신발을 '잘 만들 것'이라는 믿음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다림 자체가 여름이에게는 하나의 성장을 의미했다. 어른들이 느끼기에는 단순한 일이지만, 어린 여름이에게는 아마 첫 기다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걸 해냄으로 이제 여름이는 숫자를 이제는 100이나 셀 수 있고, 달력과 시계를 볼 수 있는 것처럼, 기다림을 아는 아이가 되었다. 여름이가 결국 두 발에 꼬옥 맞게 신은 신발이 어땠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여름이는 열흘의 시간 동안 성장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호아킴 데 포사다 작가님의 [마시멜로 이야기]라는 책이 있다. 아이들에게 맛있는 마시멜로를 보여주고, 잠시 나갔다 올 테니까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잘 기다리면 마시멜로를 두 개 주겠다고 하고 밖으로 나갔다 왔을 때, 정말로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잘 기다린 아이는 훗날 반대로 그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먹어버린 아이에 비해서 좋은 직장과 좋은 연봉을 받는 성공한 인생을 산다는 어떤 실험이 적힌 책이었다. 이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의 나의 욕망을 쫒기보다 지금 내가 정말로 해야 할 일을 알고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결과가 오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니까 이렇게 '기다림을 아는, 그리고 그 기다림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도 믿을 수 있는 아이'가 되는 것은 중요한 일이고, 분명한 성장이다.

그렇게 받은 구두가, 완벽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보다 좀 크거나 적어서 다시 수선을 해야 할 수도 있고, 발이 자라서 그렇게 좋아하는 구두를 더 이상 신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결말이든 이 그림책에서는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여름이는 구두를 잘 기다렸고, 아저씨는 구두를 잘 만들었다. 그것으로 되었다. 앞으로 여름이의 인생에 어떤 기다림의 시간이 오더라도 여름이는 잘 기다릴 것이다. 이 책은 결말까지 완벽했다.

우리 인생에는 기다림이 필요한 때가 있다. 심지어 엄청 많다. 세상이 너무나도 휙휙 바뀌는 것 같아서 그 속도를 따라 가려다 보니 조금만 늦어도 내가 뒤쳐지는 것 같고, 그때에 만난 기다림은 나를 초조하게 만들고 때로는 화가 나게 만든다. 그러나 기다려야 할 때 에는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고,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고, 하필이면 설레면서도 초조한 기다림 속에서 내 손에 들어와서 인생의 중요한 교훈을 남긴 책이었다.

(블로그 후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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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사랑한다면, 바르바라처럼 반올림 53
이자벨 콜롱바 지음, 윤예니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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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서포터즈 활동으로 바람의 아이들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

  이 책을 지금의 타이밍이 아닐 때에 읽었다면 나는 조금 더 마음을 열고 책을 읽어 나갔을 것 같다. 

하필이면 책을 받은 시점이 마이클 셸런버거 작가님의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을 읽고 있는 중간이었고, 정확한 정보의 제공 없이 목소리만 높여서 하는 시위가 얼마나 문제가 되는 지를 한창 읽고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의 주인공에게 조금은 날이 선 채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자벨 콜롱바 작가님의 [지구를 사랑한다면 바르바라처럼] 

 

  하지만 이 책은 사실 말하자면 자연환경을 얼마나 아껴야 하는지, 그래서 우리가 무슨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관련된 책은 아니었다. 물론 주인공 바르바라는 환경을 아끼고 깨끗한 환경을 위해 심지어 시위를 하는 학생이기 때문에 그녀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다양한 문장들로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녀가 그래서 환경을 얼마나 사랑하고 또 무엇을 하는지가 아니었다. 그녀가 하는 행동과 말은 물론 중요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는 이 어린 소녀를 향한 각종 시선과 공격이었다. 

  TV를 켜거나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하루에도 몇번씩 그리고 하루에도 몇 명씩 누군가를 공격하고 있는 언론을 마주하게 된다. 언론뿐 아니다. 블로그의 글도, 그리고 유튜브를 통해서도 쉽게 누군가에 대한 어떤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상관이 없이) 정보를 접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서 만들어진 2차 3차 저작물이 전국으로 또는 전 세계로 뻗어나간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지만, 한 때 과도한 마녀사냥이 문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잘못된 정보가 마치 사실인 것 마냥 각종 매체를 통해서 뻗어나갔고, 당사자는 사람들에게 '정신이 나갈 정도로' 시달렸다. 사람들은 그 정보의 제대로 된 출처와 사실 여부는 상관하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이 굉장히 고고한 사람인 것 마냥 매체 속의 누군가를 비난했다. 

  어떤 사람은 그저 스마트 폰, 또는 TV를 보며 혀를 끌끌 차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그 사람의 모든 신상을 캐내는 한편 직접 찾아가서 돌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그 가족까지 사회적으로 매장시켜 버렸다. 우리는 그것이 매우 쉬워진 세상에 살고 있다. 

  책속의 바르바라는 그저 지구를 사랑하고, 환경을 생각해서 지구를 위협하는 일을 하지 말아 달라 호소하는 한 학생이었다. 같은 뜻을 가진 친구들과 함께 '위원회'를 만들고, (조금 격한 방법이지만, 자신의 뜻을 제대로 보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 수업을 거부하고 밖으로 나가 시위를 함으로써 자신의 의견을 세상에 보여주었다. 

 처음에 언론은 그런 바르바라와 친구들의 이야기에 환호를 보냈다. 인터뷰를 하고, 그녀가 마치 청소년의 대변자, 미래의 희망인 것처럼 떠받들였다. 물론 바르바라는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걸 어리둥절하게 생각했지만 그녀 역시 사람인지라 기분이 좋았을 거다. 그리고 얼마간의 책임감도 생겼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가 대통령의 보좌관의 전화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물론, 나는 그녀가 잘못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녀가 아직 어리다던지, 생각이 없었다던지 변명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녀는 적어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소녀이기 때문이다.) 다만, 고작 대통령의 초대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그리고 거짓된 정보를 언론에 뿌린, 그리고 그녀가 정말 바라는 것은 제대로 들어주지도 않을 것이면서, 정치적으로 그녀를 이용하려는 대통령을 '허언꾼'이라고 언론을 통해 비난했다는 이유로 

 그녀가 치뤄야 할 대가는 너무나도 가혹했다. 어른이 아이를 상대로 했다기엔 더럽고 치사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역시나 사람들은 진실이 무엇인지 쳐다보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고작 고등학생인 그녀를 성적 대상으로 합성해서 그녀의 주변 인물들에게 보낸 것이나, 불량배를 이용해 그녀를 폭행했던 일들은 정말이지 이것이 청소년 대상 소설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이 이야기가 그냥 소설에서 그치지 않고, 정말로 현실에서 너무나도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기도 했다. 

 특히 바르바라를 성적 대상으로 만들어버린 합성이라던지, 사진들 그리고 그것을 퍼다 나르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리고 바르바라가 '여성은 성기와 가슴과 엉덩이로 이루어져 있는 건가?'하고 절망하는 장면이 (나는 절망처럼 느껴졌다.) 평생을 가정폭력에 시달린 그녀의 할머니의 이야기와 어우러져 또 한 번 좌절했다. 어쩌면 우리가 한걸음 나아갔다고 느끼는 것은 허상이고, 그냥 방법만 바뀐 것이 아닐까? 오히려 더 악랄하고 잔인하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비해 '연쇄살인'이 줄어들지 않았냐는 물음에 전문가는 '방법이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n번방'이 여성을 (또는 남성을) 자살로 몰고 가는데, 그것 또한 연쇄살인이라고 엄숙하게 말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바르바라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면서 그리고 언론에 노출이 되면서 세상에 바랐던 반응은 이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녀를 향해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주면서 그녀를 삼키려 했다. 고작 20살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를 상대로...! 

 어른으로써 나 역시 이렇게 노출 된 아이들을 지켜줄 수 없을 것 같다는 무기력함이 한몫 더 했다. 끊임없이 배우고 끊임없이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 뒤를 따라올 미래세대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인가. 그것은 '환경보호'의 차원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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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를 위하여 - 이우 소설집
이우 지음 / 몽상가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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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가들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얼마 전 읽었던 이우 작가님의 [자기만의 모험]이라는 에세이가 너무 좋았어서 이번에는 이우 작가님의 소설집을 읽게 되었다. 시대도 배경도 다른 8개의 이야기는 마치 작가님이 머릿속에 그리는 세상을 엿보듯 생생하게 전달이 되었다. 사실 이렇게 사회 반영이 진하게 묻어나는 소설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그동안 책을 읽어온 내공도 좀 있고, 무엇보다 작가님의 책은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라는 기대가 각각의 단편을 읽는 내내 있었다. 때로는 기대를 하면서 때로는 마음을 졸이면서 책을 읽다 보면 마음 깊숙 한 곳에서 뭔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상과 사회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어떤 생각과 의문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다양한 시대 그리고 다양한 배경 속에서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허덕이는 여덟 명의 주인공들. 꿈을 좇으며 살아가는 이들도, 그리고 꿈속에서 살아가는 이들도 꿈에 먹혀 버리면 자신을 잃어버리기 쉬워진다. 그리고 그 결과는...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나를 돌아보았고, 이 사회를 생각했고, 또 역시나 시대 배경 때문이었을까 역사를 생각했다.

이우 작가님의 [페르소나를 위하여]


 

우리는 흔히 미래에 바라는 어떤 것에 대해 말할 때 '꿈을 꾼다'라고 한다. 이것은 심지어 영어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마틴 루터 킹이 자신이 바라는 세상에 대해 말하면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듯 '꿈'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어떤 세계를 뜻한다. 그러니까 그 꿈이 정말로 이루어졌을 때, 그것이 온전히 내가 원한 모습으로 오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첫 번째 소설은 전쟁 중에 어느 마을로 흘러 들어간 아이의 이야기이다. 할머니와 둘이서 살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전쟁 때문에 혼인을 하자마자 남편을 전쟁터에 보내야 했던 한 여인의 품에서 자라게 된다. 아이에게는 꿈같은 시간이었고, 여인은 아이를 돌보고, 열심히 일을 하면서도 서방님이 얼른 돌아오시기를 꿈꿨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여인의 남편이 돌아온 이후의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은 앞으로 우리가 이 단편집을 통해서 무엇을 앞으로 보게 될지 알게 된다.

 

두 번째 소설은 이 소설의 제목이 된 이야기이다. [페르소나를 위하여] SNS 인플루언서가 된 한 여인의 삶을 그린 소설이었다. 제목이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었고, 그리고 이 소설을 다 읽어도, 왜 이 소설의 제목이 이 책의 제목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니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현실을 굉장히 잘 반영한 SNS에 중독된 인플루언서 그러나 나는 그녀가 그냥 SNS에 중독이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중독이라고 함부로 말하기에, SNS는 그녀의 삶 그 자체였다. 그리고 나는 잘 모르겠다. 그녀가 보여주는 모든 모습은 우리가 보고 싶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 뿐. 그러나 그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 그녀에게 사람들은 아니, 나를 포함한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등을 돌렸다.

나 역시 그렇게 쉽게 등을 돌리는 사람 중에 한 명이어서 조금 충격적으로 이야기가 다가왔다. 나 역시 공인에 대한 기준이 높고,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사람은 더 이상 찾지 않는다. 예전에 '연예인'은 마치 올림포스의 신과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우리와는 뭔가 다른? 그러나, 이제 SNS시대에서 우리 모두가 그런 공인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마치 신들이 인간계로 내려왔거나, 누구나 신이 될

 

세 번째 소설은 매우 흥미로웠다. 어느 날 갑자기 야만인들의 세상에 떨어진 주인공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의 삶은 야만스러웠고 무엇보다 그 '성인식'이 정말 끔찍했지만 그는 그 세상 속에서 그들과 어울려서 그런 끔찍한 일까지 감내하고자 한다. 이 소설의 내용이 말해주는 비유는 굉장히 많이 다가왔다. 어디서든지 '인싸'가 되고 싶어 하는 우리는 그 행위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그냥 휩쓸려 가고, 그게 그저 '멋있다'라고 느끼고, 어느새 그 들 중 하나가 되고 싶어 한다. SNS는 '유행'이라는 것을 쉽게 전파하고, 또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시대에 뒤쳐진'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곤 하는데, 나는 이 소설이 두 번째 소설보다 더욱 SNS의 끔찍함과 유행이라고 하면 물불 가리지 않는 '생각 없는'대중문화에 대해 더 날카롭게 꼬집었다고 생각했다.

 

네 번째 소설은 두 번째 소설과는 정 반대의 모습이라는 생각을 했다. 남들이 보고 싶어 하는 모습과 전혀 반대되는 모습을 추구(?)하는 한 학생이 나온다. 누구나가 다 겪을 사춘기의 고민, 그리고 갑자기 압박에서 벗어난 우리네 20대 청년들의 모습을 굉장히 짧은 소설 안에 잘 담아낸 것 같다. 뿐 아니라 우리 안에 담겨 있는 어떤 비밀을 끄집어내는 느낌이 들었다. 쾌락이 주는 유혹에 못 이기는 한 편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꾸만 죄의식과 실망이 드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마주할만한 일이기에, 그것이 소설 속에서는 야동을 보고, 자위를 하고 끝내는 돈을 주고 누군가의 성을 사는 일이 되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얻은 것은 죄의식만 크게 만들었을 뿐,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다섯 번째 소설은 어쩌면 내가 가장 공감을 많이 했던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 역시 오랫동안 공부를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하필이면 세상이 완전히 뒤바뀌는 중인 갑오년, 무려 10년을 넘게 39살이 될 때까지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유생의 이야기가 나온다. 고작 1~2년이라도 공부만 하다 보면 세상의 변화가 낯설게만 되는데, 무려 10년을 그것도 서양의 문물이 물밀듯 밀려오고 조선이 점점 변화하는 시기인 근대 갑오년에… 그리고 우리 모두가 역사시간에 알았듯이 갑오개혁을 통해 과거제가 폐지가 된다. 단 한 번도 그 시절 과거를 준비하던 유생들의 마음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몇 번이고 근대사를 배웠지만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문제가 눈을 타고 머릿속으로 들어오자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이러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어찌 보면 처절한 삶들은, 고작 “갑오개혁 - 과거 폐지”라는 몇 글자 안에 묻히고 말았다. 사람들의 삶은 이처럼 한 순간에 뒤바뀔 수 있는 것이었다.

여섯 번째 소설은 굉장히 분노했다. 하지만 이 서설 역시 두 번째 소설처럼 불편하지만 주변에 흔히 있는 이야기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외모 주상 주의. 사실, 일반인들이 인플루언서기 되면서 나는 이 외모지상주의가 더욱 강해졌다는 생각을 한다. 누구니 쉽게 누군가를 판단하고 평가하는 시대. 그리고 마지막에 남자 친구의 카톡의 내용 역시도 각종 매체에서 흔히 다루는 만큼 주변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얼마 전 몰카를 당했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예 대놓고 찍고 있었다고… 그러나 사회의 관심 정도는 사실 그저 ‘어우! 뭐야아!’하고 분노하는 정도… 사회는 바뀌지 않고 피해자는 계속해서 발생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소설과 같은 매체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추천 사처럼 중요한 물음일수록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던져야 한다는 것. 그래서 불편을 많이 느끼지 않으면서 각각의 단편을 읽었고, 또 계속해서 생각했다.

마지막 이야기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화자가 ‘나’였다 그리고 군함도 이야기였다. 역사 속 한 사람의 주인공이 되어 느끼는 그 순간의 삶을 읽는 것은 앞서 다섯 번째 소설의 갑오년의 유생에 대해 읽는 것 보가 훨씬 마음이 찌릿찌릿했다. 이 책의 첫 번째 소설 역시 화자가 ‘나’인데, 처음과 마지막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 역시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단편집임에도 마음에 여운이 오래 남았으니까… 언젠가 작가님께서 군함도에 다녀오셨다는 인스타 피드를 읽은 것 같아 처음에 군함도에 대한 이야기인걸 보고는 오! 하면서 반가웠다. 그러나 내용을 읽을수록 마음이 계속해서 찢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더불어 어떤 부분이 강하게 다가왔는데, 군함도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그 끔찍한 삶 그 자체보다, 일본인 마을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볼 때 느끼는 그 박탈감에 더욱 힘들었다는 부분. 이 부분은 책을 덮는 순간 그리고 지금 이 책을 읽는 순간까지도 내 마음에 남아있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특히 이 소설의 내용이 그냥 역사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우리 모두가 느끼는 이야기 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익부 빈익빈이 극심해지는 지금도 군함도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지는 않는가. 나는 철이 없이 그 앞에서 깔깔 웃으며 지나가는 한 사람이 아닐까. 마음이 찌릿찌릿했다.

작가님은 이렇게 여덟 가지의 이야기로 나를 포함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마음을 쿡쿡 찔렀다. 이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부조리한 세상에 발 딛고 살아가고 있는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에세이를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글을 정말 잘 쓰시는 분이고, 소설의 내용도 정말 너무나도 좋아서 깜짝 놀랐다. 특히 단편이지만 심지어 시대도 배경도 주인공도 전부 다른 단편 8개를 모아놓은 책임에도 관통하고 있는 어떤 메시지가 통일되어 있는 것 같아 좋았다. 무엇보다 다음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음엔 어떤 이야기일까? 하고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어떤 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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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초식동물과 닮아서 - 초보 비건의 식탁 위 생태계 일지 삐(BB) 시리즈
키미앤일이 지음 / 니들북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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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니들 북으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오늘도 소고기가 먹고 싶어서 퇴근하는 남편에게 '자기! 소고기가 먹고 싶어'라고 했다. 남편은 소고기와 함께 양념된 두루치기를 사 왔고, 나는 계란 장조림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밥버거를 만들어 먹을 때 사용했던 참치마요네즈가 식탁 위에 올라왔다.

  그러니까 육(소고기, 돼지고기), 해(참치 통조림), 공(계란)이 모두 깔린 식탁에서 고기가 없으면 어떻게 살지? 하는 마음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그리고 지금 저녁을 먹고 불과 두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비건과 관련된 책을 서평 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내가 저녁식사에 대해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어제 열심히 쓰던 내용을 다 날려 먹어서인데, 뭐 어떠랴. 요즘 '삐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는 니들 북에서 이번에는 '나의 밥'을 주제로 비건에 대한 에세이를 출간했다. 지난번 삐시리즈 중 최정아 작가님의 [나는 트렁크 팬티를 입는다]를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어서 이번에도 신청을 했다. 그야말로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 같은 '비건'에세이.

  키미앤일이 작가님의 [우리는 초식동물과 닮아서]

 

  고기가 없는 삶에 깜짝 놀라며 기함을 하는 것은 비단 나쁜 은 아니리라. 사실 나도 비건에 완전히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하또를 키우면서 그리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식용'으로 키워지는 동물들의 끔찍한 삶을 보면, 죄책감이 문득문득 들곤 한다. 계속해서 눈을 감아 버리는 것으로는 이 불편하고 아픈 마음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이런 류의 그러니까 비건을 주장하는 책들을 애써 피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책을 굳이 선택한 것은 지난 책을 통해서 '삐시리즈'가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하는 에세이 일 뿐 나에게 강하게 이렇게 해야 해!! 하고 주장을 하거나 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혐오를 나타낸 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비건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긴 한데, 부담스러웠던 내게 이 정도는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정도의 난이도랄까?

  그리고 내 선택은 탁월했다. (서평단이 신청을 통해서 선정된 것인데, 기꺼이 신청을 했었다.) 책은 내가 예상했던 대로 비건을 실천하고 있는 작가님의 본인의 삶에 대한 에세이였다. 왜 비건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비건을 하니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담담하게 써나간 책. 무조건 비건을 해야 한다! 비건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이다!라고 하는 책은 적어도 아니었다.

  뭐 조금 흥분을 한 것 같이 느껴지는 부분도, 이거 진짜 생각보다 좋은데, 괜찮은데... 하는 느낌이어서 그냥 웃었다. 이미 처음에도 이 '좋은 것'을 잘못된 방식으로 표출하면 안티를 긁어모으는 거다 라며, 비건이 논 비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종교와 비교해서 경계를 해 놓으셨기 때문에, 독자인 나로서는 마음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작가님께서는 일단 원래부터 비건은 아니셨다. 그저 건강에 대한 염려가 발단이 되어서 비건 지향을 시작하셨고, 그렇게 밀당을 하는 자신에 대한 반성으로 진짜 비건이 되셨다. 그러니까 작가님의 '비건'의 시작은 그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지 어떤 특별한 신념 때문은 아니었다.

 자신조차도 사랑하지 못해 이지경인 내가 어찌 건강하고 온전한 사랑을 내어 줄 수 있단 말인가. 그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스스로를 돌보는 것임을 사랑에 대해 생각하다 깨달았다. 

[우리는 초식동물과 닮아서] - 키미앤일이 (p.80)

  그러나 이런 자신의 대한 사랑은 점점 밖으로 나아가게 된다. 매일 보던 티브이 속 올려진 새빨간 고깃덩어리가 마음을 울렁거리게 만들고, 마트의 고기 전단이 불편해 졌다. 그리고 인간과 동물에 대한 아무도 생각지 못하는 '차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작가님이 하신 말씀 중에 와닿았던 게, 어떤 이유에서든 '비건'이 되기는 쉽다. 그러나 유지하기는 동물권을 비롯한 다른 생명에 대한 사랑이라는 말

 건강을 위해서만 하는 채식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나를 파괴하고자 하는 욕망을 참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지속시켜 주는 건 결국 동물권에 대한 도덕성이라 생각한다. 그것으 인간이 가지고 있는 품격이며, 사랑이다. 

[우리는 초식동물과 닮아서] - 키미앤일이 (p. 110)

   그러니까 결국은 '사랑'이다.

  작가님은 채식으로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최대한 비건의 라이프를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신다. 물론 때로는 넘어지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담배를 끊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지만,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쓰셨다. 그냥 한 끼라도 오늘은 채식 위주의 반찬을 먹어볼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성공했다 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아마 성공하신 것 같다. 오늘은 실패했지만, 내 마음속에 작게나마 아주 작게나마 그래 언젠가는 채식 생활을 해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떠올랐으니까.

  쉽게 되는 것은 없다. 주위에 비건이 있다면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 들거나 (요즘도 심지어 이런 사람이 있다) 이상하게 쳐다보거나, 말이 안 된다고 하지 말고, 그들의 노력을 인정해 주고 존중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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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데 쓴 시간들
오은경 지음 / 책구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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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평단에 당첨되어 책을 지원받았습니다.]

 

얼마 전부터 책을 읽으면서, 글쓰기에 '사랑'이 담겨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면서 정말로 사랑이 가득 담긴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스타 스크롤을 내리는데, 제목부터가 '사랑하는 데 쓴 시간들'이길래, 기꺼이 서평단 신청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책이 왔다.

 결혼 5년 차, 아직은 아이에 대해 계획이 없는 부부. 사람들은 문득 묻곤 한다. 아이는? 낳을 생각 없어? 특히 친정과 시댁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는 나 자신도 건사하지 못하는데 아이를 키운다는 것 자체가 두렵고, 남편은 우리가 준비가 안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 사이가 좋은 부부에게 아이가 더 안 생기는 경우도 있다는데, 우리는 사이가 너무 좋아서 아직 아이 생각 자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육아일기에 눈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육아를 다룬 웹툰을 몇 개씩 보고, 인스타툰도 육아툰 두어 가지를 팔로우 해 놓았다. 오늘 이렇게 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일기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다. 작가님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엄마, 괜찮아. 규호 네 살 돼도 귀여워. 나 봐. 여섯 살인데도 귀엽잖아."

[사랑하는 데 쓴 시간들] - 오은경

 오은경 작가님의 [사랑하는 데 쓴 시간들]

 

 

아이 넷을 키우는 한 사람의 엄마, 그 자체가 녹아든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을 참으로 흐뭇한 마음과 얼굴로 읽으면서, 나는 아 역시 나에게 아이는 무리야 라는 생각을 계속하게 되었다. 내 삶을 바꾸기에 나는 너무나도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한 배에서 나왔지만, 성격이 각자 너무나도 다른 네 명의 아들들, 묵묵하고 진득하게 자신의 일을 하다가도 형이 필요한 일에는 언제나 출동하는 첫째, 장난꾸러기에다가 혼이 난다 하면 웃음으로 넘어가려는 둘째 그러나 밖으로 나가면 부끄럼 쟁이가 되곤 한다고 했다. 그리고 아직은 엄마의 사랑이 고프지만 예쁜 말로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드는 애교쟁이 셋째와 아직은 너무나도 어려 해내는 모든 일이 ‘성취’가 되는 넷째까지 복작복작 다복한 집이 그려지는 한 편 매일매일이 전쟁 같은 혼란스러운 집이 그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을 쓸지 보다 어떻게 쓸지가 중요하다는 작가님의 말씀처럼, 누군가와의 왁자지껄한 대화보다는 멀찌감치 떨어져 책 읽는 것이 좋다는 작가님의 성격이 묻어나는 듯, 조곤조곤한 문체로 쓰인 책을 가만히 읽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든다.

 벌써 10년째, 네 명의 아이들을 키우는 데에도 아직 부족하고 허술한 엄마라고 하시는 작가님의 말씀이 내 마음을 찌르르 찔렀다. 신이 모두를 굽어 줄 수 없어 엄마를 내렸다고 하던데, 결국 엄마는 신이 아니고, 인간일 뿐이었다. 다만, 다행인 건 인간은 배우고 성장한다. 그리고 그 성장이 이 책 가득 담겨있었다.

아이들은 항상 엄마를 용서한다. 일관성 없이 혼내고 기분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엄마를, 집안을 돌보고 자식을 챙겨야 하는 역할을 때때로 얼렁뚱땅 넘기는 엄마를. 꼭 안아주는 품 하나에 모든 과오를 덮어주고 엄마 마음의 죄책감까지 커다란 지우개로 쓱쓱 지워버린다. 

 매일 용서받는 나. 오늘도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좀 더 너그럽기를, 아이처럼 즉시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데 쓴 시간들] - 오은경(p.208)

아이들의 일상이 아닌 엄마의 일상, 엄마의 생각. 작가님은 네 명의 아이들을 키우며 그 일상을 기록함으로써 자신을 지키고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조곤조곤한 문체와 달리 국제 구호단체에서 아프리카 케냐와 우간다를 오가며 일하시던 열정은 아이를 키우는데 쓰고 있지만, ‘엄마’라는 이름 속에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은 사진을 찍고 싶은 순간에 기록을 했다는 어떤 작가님 말씀처럼, 순간순간을 메모장에, 휴대폰에 기록하며, 자신의 조각을 남겨 놓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가끔, 엄마가 되는 것이 내 삶을 내 이름을 잃어버리는 일이라고 말하는 글을 종종 보곤 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분명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삶인 데다가, 나 조차 건사하지 못하던 인생인데, 다른 인생까지 책임져야 하는 삶. 그래서 그 삶을 바라보며 '엄마'라는 이름만 가지고 살다 보면 내 이름 석자가 지워진다고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작가님을 통해 알았다. '엄마'라는 이름 옆에 내 이름을 함께 남기는 일, 작가님의 성함 석자가 새겨진 이 책은 작가님께서 '엄마'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랑이 가득 담긴 책을 읽고 싶었다. 그리고, 작가님의 책은 제목을 보며 두근두근 기대했던 내 마음을 가득 채워준 책이었다. 표지의 그림처럼,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되고, 무엇보다 작가님은 자신의 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만큼 엄마로서의 자기 자신을 사랑하시는 마음이 느껴져서 좋았다. 역시 글은 사랑이 있어야 쓸 수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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