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락 범우문고 42
알베르 까뮈 지음, 이정림 옮김 / 범우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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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 카뮈가 '우연'한 교통사고로 삶을 마감하기 전 발표한 마지막 작품인 『전락』은 꽤나 난해한 작품이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등장하지만, 대화라기보다는 며칠에 거쳐서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떠들곤 한다. 독자들 또한 전직 변호사 클라망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게 된다. 그렇다고 시시콜콜하고 가벼운 이야기하는 건 아니고 과거를 회상하며 그가 느낀 바를 줄줄이 읊어댄다.


 유능했으며 낮은 곳에 있던 사람들을 변호하면서 존경을 받았던 클라망스는 "인격적으로나 직업적으로나 남들의 존경을 받는 완전무결한 사람이 되기를 꿈꿨"다.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 과정에서 그는 타인보다 위에 섬으로써 군림했다. 


 하지만 어느 날 저녁, 센 강에서 한 여인의 자살을 목격하지만 그는 방관해버리고 만다. 그것이 그가 마주한 '전락'이다. 그녀를 살려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그는 그저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갔을 뿐이다. 이 사건 이후로 그는 변호사의 길을 접고 고해 판사의 길을 걷게 된다. 그가 여태까지 써왔던 위선의 가면을 인지하고 벗어버리기로 한 것인데, 타인에게서 비난받는 것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스스로를 먼저 자발적으로 비난-참회-하고 그 이후에 판사의 입장에서 타인을 판단하기 위함이다.


 말들은 어렵지만 쉽게 생각해보면 클라망스가 여인을 구하지 못하게 막은 것이나 그 일이 벌어지고 난 이후 그가 자각하는 것-예컨대 위선이나 선함의 가면-이 곧 부조리다.『이방인』에서 부조리의 형태가 사회의 도덕적 통념과 죽음으로 나타났다면, 여기서는 아마 인간의 선과 악의 마음이며 이를 여인의 죽음을 통해 드러낸다. 선함의 탈을 쓰고 있지만 사실 인간에게 악한 마음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너도 나도 우리 모두, 우리는 모두 같은 흙탕 속에 빠져있다. 아무리 나는 다르다-고 몸부림 쳐봐도 결국은 같은 흙탕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를 인지하고 타인을 판단하기 앞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찰과 반성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위선에 앞서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진솔함에 따른 '잘못'들을 누구보다 먼저 반성하고 성찰한다- 이 것이 부조리에 대한 색다른 모습의 반항일런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소설의 내적인 모습보다 외적인 상황이 더욱 인상적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 책은 카뮈의 마지막 작품이다. 1954년 『반항하는 인간』을 통해 공산당을 비난하면서 그의 학문적 형제와 도 같았던 사르트르와 여럿 실존주의자들과 대립하며 비난의 칼날을 세웠고, 2년 뒤 알제리 혁명이 발발했을 때 카뮈는 그의 중립적인 태도로 좌익과 우익 모두에게서 비난을 받았다. 그의 노벨문학상은 찬란해보이지만 그 속에는 수도 없는 비난 속에 그의 멘탈은 갈기갈기 찢겨졌을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발표한 『전락』. 클라망스가 카뮈 자신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며, '너나 나나 모두 같은 흙탕 속에 빠져 있다'는 말은 어쩌면 그를 비난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향한 것처럼 느껴진다. 당신들이 나를 이토록 비난하지만 당신들이나 나나 그렇게 다른 처지는 아니라고, 그렇게 외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만약 그가 1960년 그 날, 사고 없이 여행을 잘 떠나고 더 많은 작품을 냈다면 어떤 작품이 나왔을까? 이루어질 수 없었던 과거기에 더욱 궁금증이 커진다.

천만에, 내가 염증을 느끼게 된 건 특히 다른 사람들에 대해섭니다. 물론 나의 결함을 모르는 바 아니었고, 그것을 유감으로 여기기도 했지요. 그렇지만 나는 그것을 퍽 휼륭하다고할만큼 집요하게 잊어버리기를 계속했어요. 그 반면에 다른 사람들에 대한 힐난이 쉴 새 없이 내 마음속에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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